200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2002 프랑스 대선에서 넘어옴)

당시 상황을 다뤘던 다큐멘터리 중 일부이다.

1 개요

97년도 당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분위기 반전을 위해 의회를 해산하였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제대로 일어나 좌파가 과반을 넘기며 좌우 동거정부가 형성이 되었는데 계속해서 이런 문제가 생기자 결국 2000년도에 국민투표로 임기를 5년으로 축소되며 치뤄진 선거였다.

2 1차 투표

2.1

당시 상황은 좌파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97년도 총선에서 사회당을 포함한 좌파정당들이 승리하면서 리오넬 조스팽이 총리가 되었는데 경기호황이 오면서 실업률이 낮아지면서 그의 인기는 매우 높아졌다 그리하여 모두가 조스팽이 승리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그에 비해 우파는 상황이 별로 안 좋았는데 총선에서 우파가 대거 패배하면서 시라크는 실권을 잃은 마당에는데 우파는 또 UMP 그리고 UDF 란 두당으로 갈라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우파쪽에선 딱히 기대를 하던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1995년도 처럼 리오넬 조스팽과 자크 시라크의 2차전을 기대하던 상황이었는데.....

2.2

당연히 자크 시라크는 2차 결선투표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장 마리 르펜이 2차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그야말로 아무도 예상 못했던, 심지어 본인도 상대후보들도 이를 전하던 앵커마저 당황했던 충격과 공포의 출구조사였다.

좌파에 대한 지지가 너무 높자 좌파 진영 후보들이 대거 출마하는 바람에 단일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여 표가 너무 분산되어 조스팽의 득표율이 너무 낮아졌다.

르펜은 항상 득표율이 17% 언저리 였는데 상대후보들의 득표율이 너무 낮아져 버린 바람에 어떨결에 2차 투표까지 진출하고 말았다. 이 때는 자크 시라크마저도 20% 언저리밖에 득표를 못했을 정도로 표가 엄청나게 분산되었다.

3 2차 투표

3.1

1차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공화국을 사수하자면서 전국적인 르펜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1998년 월드컵에서 비난을 당했던 프랑스의 국민 축구 영웅 지네딘 지단은 인터뷰에서 "르펜이 대통령이 된다면 나는 다시는 프랑스 국대 선수로 뛰지 않겠다!"고 분노어린 발언으로 그를 비난했다. 

당시 좌파 성향 유권자들은 "우파 시라크도 맘에 안 들지만 천하의 개쌍놈 르펜보다 백만배는 낫다!"면서 시라크에게 몰표하자며 독려하였고, 리오넬 조스팽 총리도 "파쇼보다 부패한 놈을 뽑자"며 시라크를 지지하는 상황까지 왔다. 감동적인 좌우합작운동 진정한 국민통합

당연히 국민전선은 축제분위기였으며 그의 딸 마린 르펜은 눈물을 보여주기까지 했다.옘병

3.2

관광당하는 르펜.

결국, 자크 시라크는 프랑스 대선 2차 투표에서 최초로 무려 82%가 넘는 득표율과 동시에 2,000만표 넘게 받는[1] 유일무이한 대통령이 되었다...이것이 바로 진정한 국민통합!!!

4 후폭풍

결선투표제 때문에 프랑스 선거는 항상 개나 소나 모두 출마한 다음에 결선 투표를 통과한 후보를 중심으로 좌-우 진영이 뭉치는 방식이었는데, 대통령 선거에서는 극우세력이 결선에 진출할 정도까진 아니었기에 항상 중도우파 1명, 중도좌파 1명씩이 결선 투표에 진출해 싸웠다. 그러나 이 법칙이 2002년에 좌파 대분열로 인해 깨져버렸고, 덕분에 2002년 이후로 좌우파 모두 선거전에 정책연합-후보 단일화를 철저하게 하고 있다.

당시 현역 총리이자 유력한 대선주자였던 리오넬 조스팽은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이게(3위 탈락이) 사실이라면 정계를 은퇴하겠다. 라는 폭풍 선언을 해버렸고 결국 그 말을 그대로 실천하고 말았으며 덕분에 좌파진영은 대거 멘붕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반대로 우파는 축제 분위기 였으며 뒤이어 치뤄진 총선에서 다시 한번 대승을 거두며[2] 자크 시라크는 다시 실권을 되찾았다.
  1. 정확히는 전체 31,062,988 득표수 중에서 25,537,956 표를 득표했다.
  2. 프랑스 하원 577석 중에서 무려 357석을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