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21대22대23대
프랑수아 미테랑자크 시라크니콜라 사르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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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네임Jacques René Chirac
출생일1932년 11월 29일 (84세)
임기1995년 5월 17일 ~ 2007년 5월 15일
소속 정당공화국연합>대중운동연합
종교가톨릭

1 개요

프랑스 공화국의 정치인이자 제22대 대통령이다. 1995년에 대통령이 되었고, 2002년에 재선하여 2007년까지 그 직을 수행했다.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Sciences Po) (프랑스어:Institut d'Etudes Politiques de Paris)와 국립행정학교(에나 ENA) (프랑스어: École Nationale d'Administration)에서 공부를 마치고 시라크는 고급 공무원으로 그의 직업을 시작하였고, 곧 정계에 입문하였다. 이후 농림부장관, 총리, 파리시장 등 다양한 요직을 거쳐 마침내 프랑스의 대통령이 되었다.

참고로 전임이었던 프랑수아 미테랑 정부 시절부터 외규장각 반환저지를 시도하던 국립도서관 사서들을 힘으로 제압하고, 한국 측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도록 사서들에게 압력을 가했다. 한국 협상대표단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NO'로 일관하던 사서들은 시라크에게 단번에 함락당했으며, 단장인 자크 살루아는 한국측 협상단장이었던 한상진 교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모두 받아들이겠다'고 전해야만 했다.

2 생애

파리에서 은행원의 아들로 태어나 1954년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Sciences Po)를 졸업하고, 1956년부터 1년간 알제리 주둔군 사령관으로 복무하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여러 행정부에서 활약하였다.

1974년부터 1976년까지, 1986년부터 1988년까지의 두 차례의 총리를 지냈고, 1977년부터 1995년까지 파리 시장을 지냈다.

1981년 대통령 선거에 처음으로 출마했는데 이때는 4위로 광탈하고 1986년 총선 승리로 총리가 되었는데 이때는 평판이 그리 좋지 않았기에 [1]1988년 대선에서 프랑수아 미테랑에 의해 패배하였다. 그 이후로도 와신상담을 노리다가 1995년 대선에서 뒤발리에 총리를 제치고 2위(1위는 죠스팽)를 차지하면서 결선투표에 진출, 2차 선거에서 예상보다는 득표차가 적게 나왔지만 어쨌거나 무난하게 대통령이 되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경기침체로 지지율은 날이 갈수록 떨어졌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샤를 드 골 처럼 분위기 반전을 위해 1997년에 조기총선를 실시했으나 망했어요. 좌파가 대거 승리하면서 죠스팽이 총리가 되었고 시라크는 실권을 잃게 되었다.[2]그리고 5년간 외교에만 전념하다 2002년 대선에서 총리 시절의 경제정책에 힘 입은 죠스팽과 접전을 벌였다. 죠스팽이 예상을 뒤엎고 3위로 탈락하면서 시라크는 순식간에 원톱 후보가 되었다. 결국 결선선거에서 장 마리 르펜을 누르고 재선에 성공하였다. (이때부터 프랑스의 대통령 임기는 7년제에서 5년제로 바뀐다.)[3]

여담이지만 TF1과 유착으로도 나름 유명한데, 뇌물을 받으셨는지 TF1을 부아그에게 불하하는 방식으로 민영화 시킨 장본인이 바로 자크 시라크 본인(...)이었기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TF1은 자크 시라크를 적극 지지했다나....그리고 그 수혜를 후임이 이어받았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50주년을 태평양 핵실험으로 기념해 1996년 이그노벨상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는 정치적 위치가 우파였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물론 알제리는 우리땅이라고 개드립치는 우파답게 알제리 전쟁에 대한 사죄는 없었지만,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당시 정부와 군의 잘못을 시인했다. 또한 비시 정부에서 일했던 과거가 있었던 프랑수아 미테랑이 2차 대전 시기 비시 정부의 홀로코스트 사건이었던 '벨디브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정부 사과를 거부했던데 반해, 시라크는 집권하자마자 바로 '벨디브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방데 학살 언급은 여전히 안했다. 사실 이건 좌우파 모두가 쉬쉬하는 일이지만

3 경력

1953년:항공 조종사 장교(군인)

1956년:은행사원(은행가)

1958년:의정담당장관(공무원)

1960년:국무장관

1962년:교통부장관(정치가)

1964년:사회부장관

1967년:재무부장관

1969년:국회의원

1971년:내무장관

1973년:드골파 집단 위원

1974년:농무장관

1975년:민주 동맹 서기

1977년:의회의원

1979년:사회당 제1서기

1979년:국무총리

1981년:파리시장

1984년:국무장관

1985년:파리시장

1987년:제1당 총재

1992년:제1당 총재

1995년:프랑스 제5공화국 제5대 대통령
  1. 무려 민영화성애자였던 마가렛 대처도 못한 공영방송을 민영화하는 등 엄청나게 보수적으로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와 지지율이 엄청나게 떨어졌다.
  2. 이런 상황은 프랑수아 미테랑 시절부터 문제가 되어왔는데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때까지만 해도 항상 보수쪽이 대통령 배출, 의석과반을 유지해 문제가 없었으나 1986년에 좌파 대통령 우파 총리로 이루어진 좌우동거정부가 탄생하면서 정치계의 고민이 깊어졌다. 이때 미테랑은 핵발사권 등 군사, 외교 분야를 제외한 모든 분야를 당시 총리였던 시라크에게 전권을 넘겨주었는데 이것이 일종의 규칙이 되었다.그리고 이렇게 자기가 그 꼴을 당할 줄 몰랐겠지
  3. 프랑스의 국회의원 임기는 5년인데 프랑스 하원의 의장이 총리직도 겸하는 구조로 아무래도 자기네 정당에서 대통령을 배출하면 분위기상으로도 여당에게도 유리하니 5년으로 단축한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