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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5년부터 1828년까지 벌어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전쟁. 남미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의 대규모 전쟁이었다.
브라질이 시스플라티나 주를 점거하면서 속주로 만들었다. 그런데 정작 주민들은 브라질의 지배를 결사반대하는 입장이라 결국 후안 안토니오 라바예하를 중심으로 33명이 아르헨티나에 망명정부를 만들고 거기서 독립선언을 했다. 근데 중요한 것은 아르헨티나는 시스플라티나 주의 독립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줬다는 것. 참고로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몬테비데오는 바로 지척이다.
브라질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분노했고 자국의 영토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아르헨티나에 선전포고를 해서 전쟁이 터졌다.
처음에는 브라질 쪽이 우세하여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점령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군의 반격으로 브라질은 완전히 털렸다. 더군다나 시스플라티나의 주도 몬테비데오도 빼앗기고 아르헨티나의 군대는 역으로 브라질 상파울루까지 쳐들어가서 소란을 피웠다.
결국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대서양에서 위의 그림의 주인공인 준칼(Juncal) 해전이 발발했는데…. 이순신(아르헨티나)과 와키자카 야스하루(브라질)의 Ctrl+C, Ctrl+V가 되었다. 브라질은 이 해전의 패배로 이 해전에 참전한 해군의 거의 전부를 잃고 결국 인구 부족현상을 초래했다. 그래서 브라질의 황제 페드루 1세는 지지도가 급락하여 위기에 몰렸다.
이대로 갔다간 브라질이 아르헨티나에 의해 멸망당할 위기에 몰렸다. 결국 프랑스와 영국이 이 사건의 중재를 도맡았고 1828년에 종전 선언을 했다. 이에 따라 2년 간의 준비기간을 거친 후 시스플라티나 주는 우루과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했다. 우루과이가 독립했다는 소식이 브라질에 퍼지자 페드루 1세는 어린 아들에게 황제자리를 떠넘기고 포르투갈로 줄행랑을 쳐야만 했다. 성난 브라질 국민들이 황제를 돌로 쳐 죽이려고 여기저기 난리 법석을 떨었기 때문. 자국의 국민들을 엄청나게 희생시켜가며 전쟁을 벌여놓고도 승리하지 못 했으니 당연한 반응이지만….
우루과이를 독립시키기 위해 야기된 이 전쟁은 오늘날까지 3개국가 사이의 잊지못할 추억/영광/악몽/치욕으로, 잊을만하면 떠오르는 떡밥으로 남아있다. 아르헨티나는 전쟁의 승리로 국가기반을 다졌고 우루과이는 이 전쟁으로 독립에 성공하여 국가로서 인정받은 반면 브라질은 상파울루까지 쳐들어온 아르헨티나군에게 수많은 피해를 입었고 시스플라티나 주를 잃었으며 많은 인명 손실을 입었고 급기야 황제마저 달아나 정치 체제가 뒤집어졌다.
이 전쟁의 영향 때문인지 가히 다른 나라들은 무적급으로 발라버리는 브라질 축구도 아르헨티나만 만나면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펼친다. 2010년 6월 15일 기준으로 A매치 역대전적 33승 23무 33패 ㅎ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