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키자카 야스하루

시즈가타케의 칠본창
후쿠시마 마사노리가토 기요마사가토 요시아키히라노 나가야스카타기리 카츠모토와키자카 야스하루카스야 타케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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脇坂安治 ( わきざか やすはる)
(1554 ~ 1626.09.26)
이상하게 많이들 와카자키라고 알고 있다.[1] 若崎安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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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키자카의 문장, 불멸의 이순신이나 징비록, 명량등 한국의 임진왜란 사극 영화,드라마에서 한번쯤이라도 봤을 그 문장이다. 샤넬

1 소개

센고쿠 시대, 에도 막부 시대에 활약한 무장이자 다이묘. 성인 와키자카는 '와키사카'로 읽기도 한다.

오우미(近江)국(지금의 시가 현) 출신으로 본래 아자이 나가마사의 가신이었는데, 1573년 아자이가가 오다 노부나가의 공격으로 멸망하자 노부나가의 가신이었던 아케치 미츠히데의 부장이 되어 단바 공략전에서 공을 세웠다.

그리고 미츠히데를 떠나 스스로 하시바 히데요시를 찾아가 그 밑에서 히데요시의 쥬고쿠 평정전에서 활약했으며 혼노지의 변 이후 히데요시의 통일전쟁에서도 활약하여 영지를 하사받았다. 원래 그의 활약을 보면 육전에서의 활약이 많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해전에 능한 장수로 흔히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히데요시에게 해적 집단이 있던 영지를 받으면서[2] 이 무렵(1590년)에야 수군 지휘관이 되었기 때문. 가토 요시아키, 구키 요시타카와 함께 수군의 지휘관이 되어 호죠가의 오다와라성 공략전에서 수군을 이끌고 성을 봉쇄했다. 한마디로 해전이 딱히 전공인 무장은 아니란 소리.[3]

임진왜란용인 전투에서 1천 6백명의 병력으로 7~8만의 조선군을 패주시켰다. 용인 전투는 임란 초기 조선군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병크로, 결과만 보고 40~50배가 넘는 병력을 처참하게 개발살냈다고 오해하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조선군의 전사자는 7~8만명중 1천여명밖에 안된다. 더욱이 일본 쪽 기록에도 용인 전투에 대해서는 조선군이 궤주(潰走)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물론 아무리 조선군이 아침밥 먹다가 기습을 당했다지만 5만의 군세로 1천 6백한테 1천이나 도륙당하고 도망친게 흑역사인 건 사실[4]. 어쨌든 용장이지만 한국에서는 한산도 대첩에서 이순신에게 개발살난 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본래 서군이었으나 전투가 일어나기 전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미리 동군으로 갈 의사를 밝혔고 세키가하라 도중에 배신, 오오타니 요시츠구를 패퇴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자세히 말해보면 임진왜란이 끝난 뒤 일본으로 돌아가 이시다 미츠나리에게 '배신'을 때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 편에 붙어 잘 먹고 잘 살다가 천수를 누린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때 야스하루의 행동을 배신이라고 하기 애매한 게, 원래 처음부터 야스하루는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질 당시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동군 진영에 가담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야스하루가 오사카 성에 체류하고 있을 때 미츠나리가 서군을 일으켜 거병하는 바람에 미처 동군 쪽으로 붙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서군 진영에 가담했던 것. 애당초 세키가하라 전투는 도요토미 VS 도쿠가와의 대결이라기보다는 도요토미 정권 내부의 항쟁이라고 보는 쪽이 옳다.[5] 어쨌든 처음부터 도쿠가와 편이었고 당연히 제대로 전투에 응하지 않았다. 이후 기회가 오자 바로 잡아서 동군에 가담한다. 하여튼 어떤 의미에서는 도도 다카토라 못지 않은 줄타기의 달인. 게다가 유력 다이묘 숙청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세력 확장도 삼갔다. 이런 그의 처신 덕에 와키자카 가문은 에도 막부까지 무사히 존속하였으며, 에도 시대 중기에는 후다이 다이묘로 격이 높아지는 등, 메이지 유신 때까지 가문이 온전히 보전되었으며 지금도 그 가문이 이어지고 있다.[6]

위키백과에서는 노량해전에 참전하였다고 되어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노량해전은 시마즈 요시히로가 이끌던 함대가 주축이 된 것으로 와키자카 본인은 그냥 철수했다.

2 여담

  • 시즈가타케의 칠본창 중 최연장자이다. 단, 연도로 보자면, 1631년에 가토 요시아키가 죽어 연도상으로는 1626년에 죽은 야스하루보다 오래 산 것처럼 보이지만, 가토는 와키자카보다 늦게 태어나 6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 임진왜란 때 자기들이 이긴 것은 부풀리고 진 것은 쉬쉬했던 다른 일본 장수들과 달리, 자신의 승패를 솔직하게 기록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7]
  •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에게 보낸 편지 수십 장이 해독되었다. 여러 모로 깐깐하고 집요한 히데요시의 성품이 잘 드러난다고.

3 와키자카의 기묘한 버프

역사스페셜에서는 그의 관점으로 한산도 대첩 편을 방영한 적도 있고, 불멸의 이순신에서 담당 배우인 김명수의 열연 덕분인지는 몰라도 이상할 정도로 띄워주는 시각이 있고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아예 이순신의 라이벌이라는 과분한 포지션에 일본 최고의 수군 무장이라고 나레이션으로 몇 번이나 읊어주는데 이는 모두 지나친 과장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 기묘한 버프를 받는 이유는 간단하게도 한국에서 언급하는 임진왜란 3대 대첩, 그리고 그 중에서도 으뜸인 한산도 대첩에 참가한 일본 장수 중에서 살아남은 장수가 이 사람 뿐이기 때문이다. 즉 한산도 대첩을 부각시키려면 이순신의 맞은편에 그와 대립하는 장수가 있어야 하는데, 마땅히 부각시킬 사람이 이 사람 뿐이기에 우리나라의 대중매체의 흥행을 위해서 부각시키게 되는 것이다.[8]

하여튼 일본에서는 인지도가 정말 듣보잡에 가까운 장수로 실제 지위도 임진왜란 때 3만석 규모의 중소 영주였다. 일례로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칠본창으로 묶인 멤버들 이야기를 듣고는 "와키자카 따위랑 동급 취급이라니!"이라고 불쾌해 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필요 이상으로 유명한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당대 일본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잘 보여주는 부분. 안습.[9] 참고로 선봉장 고니시와 가토 기요마사의 영지는 약 20만 석이였고 노량해전에서 개박살난 시마즈 요시히로는 혼자서만 10만 석을 다스리며 사츠마 시마즈 가문 전체 영지는 약 60만 석이었다.

일본인들 중에서 역사에 어지간히 관심있는 사람들도 이 사람을 잘 모른다고 한다.[10] 되려 불멸의 이순신을 시청한 몇몇 일본인들 사이에서 "이렇게까지 분전했던 장수를 우리가 몰랐었다니 부끄럽다"라는 반응이 있었다.

2016년 1월 21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에게 보낸 33편의 편지가 공개되었다. [1] 무려 10여년동안 보낸 것으로 실제로는 히데요시가 아끼던 장수중 하나였다. 애당초 시즈카타케 7본창도 히데요시가 직접 키운 무장들이다.

4 창작물에 등장하는 와키자카 야스하루

위에서 보았듯이 일본보다는 한국 창작물에서 대접이 더 좋은 인물이다. 임진록 2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과의 라이벌 중 한 명으로 나오는 것만 해도 엄청난 특례. 이 때문에 그 두 작품보다 취급이 더 안 좋아진 명량이나 징비록의 와키자카에 대해 위화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

그리고 조이온에서 제작한 임진록 시리즈와 거상에서의 와키자카의 무장이 총이기 때문에 임진왜란 당시의 일본 및 명나라 장수들을 임진록 시리즈에서 처음 접한 사람들은 와키자카가 실제로도 조총을 주로 사용하는 일본 제일의 명사수 정도로 인식한다.

반면 일본 창작물에서는 듣보잡답게 거의 등장하지도 않는다.[11] ' 게임, 만화, 소설은 물론 심지어는 사극에서도. 다만 아오이 도쿠가와 삼대와 공명의 갈림길에서 등장하기는 한다. 공명의 갈림길에선 시즈가타케 전투 에피소드에 등장하고 전투 후 3천석을 받고 이후엔 역시 안나오는것 같다.

4.1 불멸의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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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사극에 자주 출연하는 연기파 배우 김명수가 맡았다. 그래서 그런지 알게 모르게 상당히 버프 받았다. 덕택에 이순신하고 라이벌 플래그가 섰다. 사실 와키자카와 이순신은 한산도 대첩때 처음 만났지만… 드라마상에서는 젊은 시절의 와키자카가 왜구 짓을 하는데 이순신과 칼싸움을 벌이고, 이순신이 와키자카의 얼굴에 상처를 냈다는 식으로 나온다. 게다가 상처로 인해 생긴 흉터의 위치는 매번 바뀐다. 심지어 노량 해전 편에서는 해전 중에 가리포 첨사 이영남과 칼싸움 끝에 바닷물에 빠진다.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이순신에게 패한 것을 참지 못해 자결한다고 적어 놓았지만, 논란이 많았는지 최후를 애매하게 처리한 것.[12] 정작 실제로 야스하루는 노량 해전에 참전하지도 않았다. 그걸 떠나서 왜란 전에 고니시나 도도를 은근히 비꼬는게, 정말 저랬다면 왜란이 시작하기도 전에 고니시나 도도에게 까여서 죽지 않은게 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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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인 미역으로 웰빙하라! 짤방 와키자카 하면 생각나는 가장 유명한 짤방이 아닐지? 근데 구글에서 와키자카 야스하루로 검색해 보면 우측의 인물 설명란에 이 짤방이 대표 이미지로 뜬다. 흠좀무.(...) 아마 이미지 검색 때 제일 먼저 뜨는 이미지가 이 짤방이기 때문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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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에도 기분이 좋을 때는 고양이를 쓰다듬다가 기분이 불쾌해지면 집어던지는 등의 기행을 보여준다.

불멸의 이순신이 한창 유행할 때 "내가 죽이고 싶은 사람도, 가장 존경하는 사람도, 함께 차를 마시고 싶은 사람도 이순신이다"라며 이순신을 존경했다고 그가 직접 말했다는 글이 퍼지기도 했지만, 이건 정말로 전혀 근거가 없는 낭설이다.[13]

하여튼 불멸 탓인지 우리 나라에서 필요 이상으로 용인 전투의 맹장이니 일본 수군 본좌니 하며 지나치게 띄워주는 인물이고, "이순신은 이런 용장을 이겼다. 우왕ㅋ굳ㅋ"이라고 보는 움직임도 있지만 굳이 이런 마이너 무장을 1류 무장으로 띄우는 등의 왜곡질을 안 해도 충무공 이순신이 위대한 인물임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4.2 임진록 시리즈

임진록 2에선 조총을 사용하는[14] 장수로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다는 걸 빼면 장점이 없다.[15] 체력도 낮고 공격력도 별로고 기동성도 떨어지고….

그나마 임진록 2에서는 이순신과 유닛 성능만 놓고 보면 엇비슷한 정도였으나 조선의 반격에서 이순신에게 가공할 마법 기공신포가 생기면서 이젠 이순신만도 못하다.[16] 대신 귀갑차에 탑승시키면 장수 보호도 되면서 장수 특유의 격려 시스템이 그대로 적용되고, 또 와키자카가 총병 유닛인지라 탑승시키면 귀갑차 기본 공격력도 상승하니 원펀치 쓰리 강냉이. 총병 계열에 공격력, 방어력 격려 효과를 많이 주기 때문에 조총병과 귀갑차를 끌고 다닐 때 데리고 다녀주자. 조선의 반격 시나리오에서는 이순신을 저격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인다.[17]

임진록 2 오리지날의 음성을 그대로 채택하는 바람에 선택시 대사에서는 여전히 자기 이름을 '와카자키'로 부른다.

4.3 천하제일상 거상

천하제일상 거상에도 등장하는데, 임진록 2와 마찬가지로 조총을 사용한다. 조총낭인의 레벨 40부터 와키자카로 전직이 가능하다. 임진록 2의 와키자카와는 달리 두 가지의 공격타입이 존재하는데, 커다란 조총으로 한 발을 쏜 다음 쌍권총을 꺼내 여섯 발을 발사하고[18] 다시 조총을 꺼내 쏘는 방식이다.
고유기술은 일격필살이며 쌍권총을 쏘는 상태에서 일격필살이 발동될 경우 발사된 여섯 발 모두 일격필살이 발동된다. 이 상태로 여섯 발 모두 명중시키면 몬스터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ㅎㄷㄷ 이러한 특징 때문에 여전히 와키자카를 데리고 다니는 유저들이 존재한다.
레벨 80부터 지진차로 전직할 수 있다.

4.4 코에이 게임

코에이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는 능력치가 C급이다. 전투치가 70대 초반이고 나머지 능력치는 별볼일 없고, 태합입지전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를 두고 '와키자카 맹장 떡밥'에 낚인 사람은 "임진왜란은 일본에서도 흑역사 취급하니까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도 왜란 참전 장수들을 낮게 책정하잖아"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와키자카나 우키타 히데이에[19] 같은 인물들만 놓고 보면 이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고니시 유키나가[20]도 한국인들 생각보다 그렇게 능력치가 높은 편은 아니니까. 그러나 가토 기요마사, 시마즈 요시히로, 도도 다카토라, 나베시마 나오시게코바야카와 타카카게만 봐도 그런 말은 나올 수 없다. 무엇보다 임진왜란의 주범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만 봐도 답이 나오는 문제.

태합입지전5에선 무력만 78이고 통솔은 56, 전투쪽 기능은 3레벨이 무운 말고는 없다. 그나마 꼴에 다이묘라고 안 짤리고 나온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지.. 그래도 쓰기에 따라선 칠본창중 나가야스, 가츠모토, 다케노리보단 나을 수 있다. 물론 마사노리, 기요마사, 요시아키와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

전국무쌍 4전국무쌍 4-2 에서는 도요토미 측 클론무장으로 등장한다.(...) 임진왜란 때 활약은 일본에서 듣보잡이라지만 나름 칠본창이고 유니크하게도 해전에 뛰어난 무장인데 대접이 박하다. 게임에서도 적으로 등장할 때 배를 끌고 등장하기도 한다.

4.5 명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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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에서는 와키자카 야하루로 표기된다. 담당 배우는 연기파 배우인 조진웅. 영화상 모습으로는 기존의 능력치 버프는 커녕 한국인의 이미지 기준 대폭 능력치 너프를 당했다. 구루시마 미치후사와의 티격태격 장면에서 깨갱거리는 안습한 역할에, 해전에 들어가서도 소극적으로 미적거리다가 후반부에 만신창이가 된 이순신 대장선을 향해 돌격을 감행하지만 역으로 조선 수군의 충각술에 휘말려 안드로메다로... 근데 메이킹 필름 보면 아주 약간 나오는데 투구 없는 상태로 갑판 잡고 부들부들거리고 있는 거 보면 살아있는 것 같긴 하다.[21][22]

저평가 되었다고는 하나 충성심이 강하고 흉폭한 구로시마를 상대로 밀리지 않는 기세를 보이며 이순신을 얕봐선 안된다고 거듭 말하는 것을 보면 분명 개념인. 다만 능력이 조금 부족했을 뿐. 이순신의 발언이나 와키자카의 행동을 볼 때, 본인의 처참한 경험으로 인해 소극적인 행태를 가진다는 암시가 나온다.

여담으로 명량에 등장하는 와키자카의 가몬이 묘하게 어떤 명품 브랜드 혹은 모 자동차 메이커 마크와 상당히 유사해보인다. 이 가몬은 원래 무로마치 막부의 충신 중 하나였던 하타케야마 가문의 가몬으로, 와키자카가 결혼을 통해 하타케야마 가문의 영지를 상속받으면서 가몬도 물려받은 것이다.

일본판에서는 아마다 마스오가 더빙을 맡았다.

4.6 징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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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에서 권근역을 맡은 김철기씨가 연기한다. 20화에서 등장했으며 육군에게 보급을 하고 나서 자청하여 삼도 근왕병을 무찌르겠다고 한다. 그 입지는 우키타 히데이에칠본창이라고 언급하며 알아줄 정도. 그리고 용인전투에서 조선군 5만을 전멸시켰다는 언급이 나온다. 21화에서 이순신을 치기 위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장수를 물색하던 중 마에다 토시이에의 추천을 받아 쓰시마에서 증원을 받은 후 이순신을 무찌르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 이전까지는 육군에 배속되어 있었던 모양. 불멸의 이순신때와는 달리 22화에서는 안습함이 마에다 토시이에에 의해 밝혀졌는데 그 실력과 명성이 후쿠시마가토에 미치지 못한다면서 영 탐탁치 않게 여기자 히데요시그러니 더 공을 세우기 위해서 열의를 보일 것이라며 반드시 이순신을 이기고 수급을 가져 올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와키자카는 도망가는 놈은 조선군이 아니라 내 손에 죽을 것이라며 반드시 이순신을 이기겠다고 다짐한다.

23화 드디어 대망의 한산도 대첩에서 예상대로 썰렸다.(...) 초반에 조총의 사정거리까지 유인하여 섬멸하려던 그의 계획은 학익진에 의해 쌈싸먹혀져 포격으로 하나하나 지워지며 그야말로 개털렸다. 게다가 이번에는 도도 다카토라와 달리 이순신이 추격까지 명해서 망했어요

일본에까지 이게 보고가 들어가 모든 대신들이 "실력도 없으면서 공명심에 들떠 꼬라박아 망했어요" 식으로 와키자카를 가루가 되도록 깔[23] 동안 마에다 토시이에만이 용인전투를 들먹이며 그를 변호해 준다.

24화, 목숨만 부지한 채로 섬에 표류한 그의 참상이 묘사되었다. 자기 이외에 안골포에서 구키 요시타카가토 요시아키 마져[24] 이순신에게 털린 걸 알자 허탈하게 웃다가 온 몸에 상처입은 채 이순신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오랜만에 47화, 48화에서 등장. 도도 다카토라가 공기화 된것과는 달리 우키타에게 인정받으며 칠천량 해전의 공을 "태합전하와 와키자카를 위해"라는 말로 축배를 들며 치하받았고정작 짬밥도 높고 그 전투의 주장이었던 도도 다카토라 지못미 고니시 에게 이순신을 제거해주어서 감사하다고 말한다.문제는 이순신이 복귀하자마자 한산도 대첩따위는 씹어먹을 만한 일본군 사상 희대의 대굴욕과 캐관광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거지만.

'노량 해전 예고에 등장했다! 그리고 역시나 관광당하고 쓸쓸히 일본으로 후퇴했다.

4.7 임진왜란 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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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 대첩 편에 등장했다. 일본배우 다케다 히로미츠가 맡았다. 회의장에서 구키 요시타카가 세키부네에 조선화포를 달자고 하자, 겁쟁이라 디스하며 '이순신의 목은 이 와키자카가 딸 것이다!'라고 호언장담한다. 조선 수군의 진형을 보고 '학익진이구나......!' 라며 탄식한다. 하지만 곧 '우리는 속도다! 학의 날개를 뚫고 그 심장으로 들어간다'라며 포격을 감수하고 학익진의 중앙을 돌파하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조선 판옥선의 장기인 180도 선회를 통한 연속 포격으로 궤멸당하고 본인도 바다에 빠지는 신세.바다 속에서의 포효는 덤

여담으로 실제 와키자카와의 외모가 상당히 다른데... 오히려 바로 옆에 있던 구키 요시타카 역의 배우가 실제 와키자카와 판박이 수준으로 닮았다(...)

  1. 정확히는 한국에서 만든 게임인 임진록 2에서 와카자키라 오기한 결과.
  2. 와키자카의 무가 관위는 아와지노카미(淡路守)로 아와지는 지금의 효고 현 아와지 섬과 누시마 섬 일대.
  3. 구키 요시타카의 경우는 노부나가 휘하에서 해적(본래 해적 출신이다.)으로 명성을 떨쳤던 인물이지만 요시아키와 야스하루는 원래 육전 전담 무장이었다가 영지에 해적집단이 있어서 수군을 맡게 된 케이스. 요시아키는 이요, 야스하루는 아와지에 영지가 있는데 두 곳 다 헤이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해적 집단이 자리한 곳이다. 또한 이 시대 일본의 '수군'이라는 개념은 지금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수군의 개념과는 많이 다르다. 당대 일본의 기록에서 水軍이라는 표현을 찾아볼 수 없고 수군이라 칭할 만한 것으로 海賊衆(해적중/카이조쿠슈), 船手衆(선수중/후나테슈) 따위로 나타난다. 즉 이 시대 일본에서는 수군=해적이라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4. 하지만 이 전투 후 원균 동생 원연의 유인과 매복에 걸려 개박살난 적도 있다.
  5. 도요토미 가 내의 문신파 vs 무신파이며 좀 더 확장하면 친 도쿠가와 vs 반 도쿠가와 간의 대결이기도 하다.
  6. 애초 미역 에피소드 일부분이 현 와키자카가 당주 와키자카 겐지가 제공한 것이다.
  7. 와키자카기에 의하면 한산도에서 발린 후 해초를 먹어가며 연명한 끝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역사스페셜 등에서 현 와키자카가 당주가 이야기한 것에 따르면 와키자카의 후손은 연례 행사로 그 때를 기리는 의미로 미역으로만 식사를 한다고.
  8. 단적으로 징비록(드라마)에서 이순신이 목소리로 등장했는데, 등장하자 시청률이 올랐다는 통계가 있다.
  9. 국내에서는 임진왜란때 선봉대장의 이미지 때문에 가토 기요마사가 대단한 인물인양 비춰지지만 적어도 칠본창 내에서는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항상 리더였다. 임진왜란 때는 가토 기요마사가 2군 대장,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5군 대장, 와키자카 야스하루와 가토 요시아키는 수군 장수로 참전한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고국에 돌아온 이들 젊은 과격파 장수들인 무단파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회유하는데, 리더인 후쿠시마 마사노리를 주 타켓으로 삼았다. 결국 후쿠시마 마사노리를 설득에 성공하자 자동으로 기타 장수들을 다 따라서 도쿠가와 이에야스 편에 붙어서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가하게 된다.
  10. 물론 이것은 임진왜란 자체가 일본에서는 인기 없는 화제이기도 한 탓도 있다. 그나마 임진왜란에 관해 일본인들이 자주 하는 얘기가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등의 '벽제관 전투'와 시마즈 요시히로의 '사천 전투', 가토 기요마사의 '울산성 농성' 정도.(어째 전부 조선군과 싸운 전투가 아니라 명군과 싸운 전투다.)
  11. 시즈가타케의 칠본창의 일원으로써는 와키자카의 일본 내 인지도는 딱 칠본창 7명의 중간가는 정도지만, 위 셋과 와키자카를 포함한 아래 넷의 인지도 차이가 하늘과 땅 사이에 가깝다. 그나마 아래쪽 인물들 중에는 와키자카가 "아, 그런놈도 있었지"하고 전국시대 덕후들이 기억해줄까 말까하는 레벨이라고.
  12. 그러나 작중 이영남이 부상을 입고 구출된 걸 보면 극중 일본군에 의해 구출되어 조선에서 탈출했을 가능성도 있다.
  13. 이순신을 통해 민족적 자긍심을 극대화하려는 의도 때문인지 유독 이런 낭설이 많다.
  14. 무려 두 자루를 양 손으로 들고 쏘지만 현시창
  15. 임진록 2에서는 와카자키라는 잘못된 이름으로 나왔는데, 조선의 반격에선 교정되었으나 녹음된 음성은 여전히 "와카자키입니다".
  16. 결정적으로, 이순신은 템 맞추면 일격필살 + 화전 연구로 공격업도 적용되지만, 얘는 철갑탄 업글 외엔 그런 거 없다.
  17. 이때의 목소리는 이순신이나 와키자카나 둘다 성우가 동일하므로 자문자답이라 할 수 있다.
  18. 쌍권총을 쏜 상태에서 몬스터 한 마리를 사살하면 그 다음 공격에도 쌍권총으로 여섯 발을 쏘는 게 특징.
  19. 노부나가의 야망 창조에서 B급으로 승격되었다.
  20. 그래도 고니시는 혁신에서 수군 적성이 S인 데다가 나머지 시리즈에서 내정관으로는 쓸만한 편이다.
  21. 사실 주된 상대로 설정된 건 류승룡이 맡은 구루시마 미치후사다. 물론 와키자카 야스하루나 구루시마 미치후사나 일본 내에서 듣보잡 무장인 건 똑같지만.
  22. 명량이 제작사의 의도대로 이순신 3부작으로 제작된다면, 다음에 제작될 한산:용의 출현의 경우 와키자카가 이순신에게 처절하게 패배한 전투인 만큼 부각될 위치에 있다.
  23. 참수해 버리자라는 의견도 나왔다.
  24. 적장 이름이나 어떤 전투인지는 정확히 안 나왔지만 안골포 운운하는 걸 보면 한산도 해전 이후 벌어진 안골포 해전을 의미하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