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7 이탈리아 세리에 B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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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 페루자 칼치오 | |
AC Perugia Calcio | |
정식 명칭 | Associazione Calcistica Perugia Calcio S.r.l. |
창단 | 1905년 |
소속 리그 | 이탈리아 세리에 B (Serie B) |
연고지 | 페루자 (Perugia) |
홈 구장 | 스타디오 레나토 쿠리 (Stadio Renato Curi) (28,000명 수용) |
구단주 | 마시밀리아노 산토파드레 (Massimiliano Santopadre) |
감독 | 안드레아 캄플로네 (Andrea Camplone) |
애칭 | Grifoni ("그리핀들") |
공식 홈 페이지 | [1] |
1 개요
이탈리아의 페루자를 연고로 하는 프로 축구 구단. 해체되었다가 2005년에 페루자 칼치오라는 이름으로 재창단되었지만 자금이 없어서 3부리그인 세리에C-1으로 강등당했다가 여기서도 강등당해 4부리그인 세리에C-2-B(3,4부리그는 A,B로 2개조로 3부리그는 18개씩(즉 36개 구단), 4부리그는 21개까지 가지고 있다)로 내려갔다. 그나마 2011-12 시즌은 4부리그 2위로 다시 3부리그로 승격했다. 2012~13시즌 3부리그 세리에 C-1-B에선 15차전까지 8위를 기록했다가 26차전까지 리그 2위로 올라서면서 세리에 B(2부리그) 승격 가능성을 높이는 듯 했으나 추락하면서 2013-14 시즌도 그대로 3부리그 세리에 C-1-B에서 뛰고 있다. 그러다가 2013-14시즌 우승하며 2부리그인 세리에 B로 승격하였다.
2 흥망성쇠
이 구단은 강성 구단주가 많기로 유명한 이탈리아 축구에서도 둘도 없을 괴팍한 회장 루치아노 가우치가 1991년부터 지휘한 이래 부흥과 몰락을 동시에 겪은 격동의 팀이다.
1905년 창단 이래 수십년간을 하부 리그에서 머물다가 안토니오 체시리니, 피에를뤼기 프로시오 등의 활약으로 1975년에야 세리에 A로 승격, 1978/79 시즌에는 2위로 준우승하여 UEFA컵에 진출하는 대성과를 누렸지만, 1980/81 시즌에 15위로 세리에 B로 강등당한 이후 줄곧 하부 리그를 떠돌다가 1996년에 세리에 A로 다시 승격하면서 파비오 그로소, 마르코 마테라치, 파브리치오 프란델리, 나카타 히데토시 같은 스타 선수들을 영입하기도 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정작 가장 큰 눈길을 받은건 스타 선수들이 아닌 바로 가우치 회장의 기행. 여성 선수를 기용하겠다고 땡깡을 부리는가 하면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1]의 아들인 알 사디 카다피를 영입하기도 했다. 물론 오래가지 않아 방출되었지만.[2][3]
그 중에서도 가장 압권이자 한국 축구팬들에게도 유명한 병크는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골을 넣었다는 이유로 안정환을 방출한 일이다.[4]그걸로도 부족해 "이탈리아 일용직 노동자도 안되는 월급을 받고 한국 듣보잡리그에서 뛰던 놈이 감히 이탈리아를 상대로 골을 넣어?" 이 말했다가 AFC로부터 아시아 리그를 얕잡아본다고 앞으로 페루자에 아시아 선수 진출을 금지하겠다는 말까지 들었고, 이탈리아 유력 언론들은 안정환이 한국에선 받던 돈은 유럽 중상위권 리그 주전 이상급이 받던 돈[5]이라며 언제부터 이탈리아 일용직 노동자들이 이리도 많이 받았냐면서 구단주를 비꼬았을 지경이었다.
이런 기행이 반복되면서 구단의 재정은 바닥을 드러내면서 얼마 안 가 망해버렸고 2005년에 재창단되면서도 돈이 없어 하위 리그부터 시작하는 비극을 겪게 된다. 그리고 가우치 구단주는 횡령 및 여러 죄가 드러나 구단주에서 쫓겨나고 지금까지도 교도소 복역중이다. (포포투 한국판 2008년 8월호 참고)
2009-10 시즌 클럽이 재정파탄으로 세리에 D까지 강등당하였다. 2009년 이 팀과 깊은 인연이 있던 나카타 히데토시가 이 팀을 산다는 기사가 국내 스포츠뉴스로도 보도된 바 있지만, 흐지부지 되었다.
결국 2010년 여름 새로운 구단주가 선임되고, 재정 문제가 해결되며 재창단하였다. 2010-11 시즌 세리에 D에서 우승하며 레가 프로 세콘다 디비시오네로 승격하였다. 2011년 여름 클럽 이름을 AC 페루자 칼초로 개칭하였다. 2011-12 시즌 레가 프로 세콘다 디비시오네에서 우승하며 레가 프로 프리마 디비시오네로 승격하였다.
2012-13 시즌 2위를 차지하였으나 승격 플레이오프 4강에서 피사에게 총합 스코어 3:4로 패배하면서 승격이 좌절되었다. 그러나 다음 시즌 3부리그 우승으로 2부리그로 승격했다.
14-15 시즌 초반부에 2부리그 1위까지 올라와서 1부리그 승격 희망까지 있다. 비록 7차전까지 성적이며 7위랑 승점 3점차라서 언제라도 뒤바뀔 수 있는 상황이지만. 결국 나중에 갈수록 밀리더니 최종 6위를 기록,승격 플레이오프로 나갔으나 페스카라에게 2-1로 밀려 탈락했다.
15-16시즌은 리그 10위로 마무리하여 16-17시즌도 여전히 세리에 B에서 뛰고 있다. 10라운드까지 3위를 기록 중이지만 10위랑 승점 차가 3점이라 언제라도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
3 우승
3.1 국내 대회
- 레가 프로 프리마 디비시오네 B 1회
- 2013-14
- 레가 프로 세콘다 디비시오네 B 1회
- 2011-12
- 세리에 D 1회
- 2010-2011
3.2 국제 대회
- UEFA 인터토토컵
- 2003
- ↑ 그가 이탈리아 축구팬인지라 이탈리아 축구계에선 유명하다. 그는 유벤투스팬으로 알아주기에 유벤투스가 리비아로 가서 친선경기도 벌이는가하면, 아예 유벤투스를 살려다가 실패한 적도 있다. 여하튼 유벤투스에 돈을 많이 줘서인지 이탈리아 축구협회는 2002년 세리에 A 슈퍼컵을 리비아 트리폴리에서 열기까지 했다.
- ↑ 평가는 3부리그 수준이라는 평까지 받았다. 오죽하면 카다피 돈이 많이 들어온 유벤투스조차도 테스트하곤 영입 포기했을까. 거기에 약물 도핑까지 걸려 출전 정지당했다. '아무도 막지 못한 선수'로 유명했는데, 아무도 막을 수 없을 만큼 막강해서? 아니다. 아예 막아 볼 기회조차 없었다.
- ↑ 워낙 기행이 심한 구단주였지만, 벌어먹고 살아야 되는 프로팀 특정상(거기다 세리에A는 적자가 심한 리그다. 거기서도 중위권 밑이었던 페루자는 뭐....) 어쩔 수 없다는 반응도 많았다. 하지만 횡령이 드러난 뒤는.....풋볼 매니저에서 AC페루자를 찾아서 관계를 살펴보자.
- ↑ 본래 타 팀으로 이적료 받고 보낼려고 했다. 그러나 구단주의 언플 + 현지 훌리건들의 난동이 겹치며 안정환은 팀 복귀를 거부했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페루자의 이적 시도가 실패로 끝난 뒤 소송이 걸렸다. 그리고 거기서 패소하여 안정환은 400만 유로의 빚을 지게 되었다.
- ↑ 루마니아리그 4강급 팀이던 포체스쿠에서 뛰다가 팀의 열악한 재정 악화로 결국 돌아온 김길식이 쓴 글을 봐도 자신이 한국에서 받던 돈 이야기를 하니까 서로들 한국에 올려고 할 정도였고 '그 정도 돈이라면 한국에 있지, 왜 여기로 오느냐?' 하며 팀 동료들이 이상하게 여겼을 정도이다. 하물며 안정환이 받던 돈이야 오죽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