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마테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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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나이 FC 감독
마르코 마테라치 (Marco Materazzi)
생년월일1973년 8월 19일
국적이탈리아
출생지레체
신체 조건193cm, 92kg
포지션수비수
주발왼발
선수 시절 등번호23번
소속팀SC 마르살라 1912 (1993~1994)
SC ASD 트라파니 칼초 (1994~1995)
AC 페루자 (1995~1998)
카르피 FC (1996) (임대)
에버튼 FC (1998~1999)
AC 페루자 (1999~2001)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01~2011)
첸나이 FC (2014~2016)
지도자첸나이 FC 감독 (2014~)
국가대표41경기 2골
MATRIX 23
더러운 플레이와 트레쉬 토킹으로 악명을 떨쳤던 월드 클래스 수비수.

1 소개

이탈리아의 전 축구선수. 현 첸나이 FC 감독, US 레체를 상징하는 선수 중 한 사람이자 스포르팅 CP 감독 등을 역임한 이탈리아의 축구인 주세페 마테라치의 아들이기도 하다.

2 클럽

어린 시절의 마테라치는 유명 축구인인 아버지를 두었지만, 정작 아버지는 그가 너무 키가 크다는 이유로 축구는 관두고 농구나 해보라고 하기 일쑤였고, 어머니는 마테라치가 불과 15살이 되던 해에 요절하면서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1990년과 91년 사이에 유스 선수로 커리어를 시작한 마테라치는 1993년 세리에 C2의 SC 마르살라에서 데뷔했으며, 이후 세리에 C1의 트라파니 칼초를 거쳐 1995-96 시즌부터 세리에 BAC 페루자 칼치오로 이적했다. 시즌이 끝난 이후 페루자는 세리에 A로 승격했으나, 마테라치 본인은 세리에 C의 카르피 FC로 1시즌 동안 임대되었다. 카르피 소속으로 18경기에 출전해 7골을 득점하며 공격본능에 눈을 뜨게 되었고, 6개월만에 페루자로 복귀했다. [1] 하지만 팀의 강등을 막지는 못했고, 세리에 B에서 활동하다가 1998-99 시즌을 앞두고 프리미어 리그에버튼 FC로 이적했다. 에버튼에서 27경기에 출전해 미들즈브러 FC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는 등 활약했으나, 1시즌 동안 레드카드만 4번을 받는 더티 플레이를 일삼는 등 문제를 일으켜 결국 1999-00 시즌 친정팀인 페루자로 복귀했다. 2000-01 시즌에는 리그에서 30경기에 출전해 12골을 넣는 놀라운 득점 행진을 벌였으며, 시즌이 끝난 이후 1000만 유로의 이적료로 명문 클럽인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 입단했다.

인테르 이적 이후 팀의 주전급 수비수로 자리 잡아 활약했으며, 특히 2006-07 시즌 득점 본능이 다시 깨어나 30경기에 출전해 10골을 넣는 기록을 세웠고, 이러한 활약으로 '2007년 세리에 A 최우수 수비수'에 선정되기도 했다. 무리뉴 감독 부임 후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중용되었으며, 트레블 시즌 당시에는 통곡의 벽으로 활약한 루시우, 월터 사무엘 듀오의 백업 수비수로 트레블 달성에 공을 세웠다. 이상 2010-11 시즌까지 활약하는 동안 세리에 A 5연패와 코파 이탈리아 4회 우승, UEFA 챔피언스 리그 1회 우승 등을 경험했다.

3 국가대표

200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상대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 데뷔했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 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이 당시에는 알레산드로 네스타파비오 칸나바로의 후보 선수로 기용되었으며, 크로아티아와의 경기에서 네스타와 교체되어 활약했으나 팀의 1-2 패배를 막지는 못했다. 이후 유로 2004에도 출전했으며, 이 당시에도 벤치를 지키다가 칸나바로가 경고 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하는 불가리아와의 조별 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선발 출전해 팀의 2-1 승리에 기여했다.

그 뒤 2006 독일 월드컵 당시 체코와의 조별 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네스타가 부상을 당해 전력에서 이탈하자 그 대타로 교체되어 들어왔으며, 그 경기에서 팀의 선제골을 득점하는 등 활약을 했다. 이후 칸나바로와 함께 팀의 수비를 책임지며 칸나바로 못지않은 활약을 펼쳤고, 팀은 호주우크라이나, 독일을 연달아 제압하고 결승에 올랐다.

그리고 결승을 들었다 놨다 하며 사실상의 주인공이 된다. 이탈리아의 결승상대는 지네딘 지단의 활약으로 스페인, 브라질, 포르투갈을 연파한 강호 프랑스. 출발은 영 좋지 않았는데, 전반 7분만에 페널티 박스로 파고드는 플로랑 말루다에게 파울을 범하며 페널티킥을 허용한 것. 리플레이를 보면 동료 수비수인 칸나바로가 신속히 커버를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파울이 더욱 아쉬웠던 장면. 그러나 전반 19분 피를로의 코너킥을 머리로 받아 넣으며 동점골도 만들어 냈다. 이후 위협적인 헤더 장면도 만드는 등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운명의 연장전에서 지단에게 도발을 하며 충돌을 유도했고 흥분한 지단이 결국 마테라치의 가슴에 박치기를 하는 반칙을 범하고 퇴장당한다.[2] 마테라치는 지단을 가린샤 클럽에 가입시켜줬다. 결국 서로 간에 득점 없이 연장전이 끝나고 승부차기 끝에 이탈리아가 통산 4회째 우승을 차지하게 했다. 마테라치는 승부차기 두 번째 키커였고, 성공시켰다.

이후 유로 2008에도 출전했으나, 네덜란드와의 첫 경기에서 부진한 활약을 보여 결국 후반 도중 파비오 그로소와 교체되었고, 이후에는 조르조 키엘리니가 마테라치를 대신해 선발로 기용되었다.

4 은퇴 이후

은퇴한 이후 2014년 인도 슈퍼 리그의 첸나이 FC의 선수 겸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등번호는 인테르와 같은 23번을 받았다.

5 플레이스타일

5.1 더티 플레이

따위는 가볍게 웃어넘겨주는 더티 플레이의 제왕

전체적인 플레이 스타일은 국내에서 흔히 통칭되는 별명이 마태클인 부분에서 드러나 듯, 무지막지한 몸싸움과 진짜로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 진성 살인태클로 유명하다. 심판이 안보는 데서 대놓고 발로 차버리기 같은 비매너성 플레이도 일삼는 편.

한창 마테라치가 인테르의 주전으로 뛸 시절에는 마테라치의 태클성 플레이를 조롱하는 식으로 마태클 태클 컬렉션 동영상 같은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태클 컬렉션 까지 갈 것도 없이 마테라치 스페셜 영상을 보면 이것이 마테라치 스페셜 영상인지 셰브첸코 처형 기록 영상인지 헷갈릴 지경. 이 덕에 마테라치의 딸이 학교에서 "그런 살인태클을 일삼는 축구선수의 딸"이라는 놀림을 받게되어, 태클성 플레이가 약간 수그러든 편.

일반적으로 중용되는 더티 플레이어 타입은 NBA의 빌 레임비어처럼 눈에 안띄게 치사하고 지저분하게 상대를 괴롭히는 타입이 있고, NHL의 싸움꾼이나 하인스 워드의 현역시절처럼 더 맞기 싫으면 얌전히 굴어라라는 식으로 경기 시작부터 일부러 평소보다 거칠게 기선제압으로 후려까는 타입이 있는데[3] 마테라치는 후자타입의 비매너 파이터였다. 이런 거친 플레이는 처음부터 심리전 유발의 목적도 있어서 마테라치는 상대를 도발하여 변수를 도출시키는데도 일가견이 있다. 대표적으로 2006월드컵 결승전 상기한 지단도발사건을 예시로 들수있다. 실력도 월드클래스이니 적으로 만나면 실력으로나 경기 외적으로 참 뭐 같지만 아군이라면 든든하다.

내로라할 네임드 플레이어에게 어그로를 끌어왔던 경력에 걸맞게, 갖은 야비한 수작에도 정평이 나 있다. 각종 국제대회에서도 지단을 농락했던 트래쉬 토킹이나 넘어진 슈바인슈타이거를 일으켜 세우려는 듯 손을 내밀었다 휙 쳐내버리는 등 화려한 기술의 보유자다. 이를 바탕으로 상대편 다혈질 선수들을 자극해 경기를 꼬이게 만드는 데 있어선 사실상 세계 최고급의 권위자였다.

선수 본인은 "나에겐 재능이 없었고, 살아남기 위해서의 선택이었다."라고 말한다.

5.2 득점 본능

수비수답지않게 공격본능과 슈팅력이 매우 뛰어나 인테르의 패널티 킥이나 프리키커 등으로 자주 나오기도 했으며, 특히 코너킥 상황에서 피지컬과 키를 이용한 헤딩슛이 일품.

이런 재능으로 현역 시절 중 두 번이나 한 시즌에 10골 이상을 득점하기도 했으며, 국가대표팀 소속으로도 체코와의 조별 라운드 마지막 경기와 프랑스와의 결승전 당시 세트피스 상황에서 헤딩슛으로 골을 뽑아냈다. 특히 이 두 경기에서의 득점은 팀에 반드시 필요한 골이었던지라 그 순도가 더했다.

6 여담

  • 안정환이 페루자에 있던 시절 당시 팀 주장이 마테라치였다고 한다. 안정환이 팀에 오자마자 마늘 냄새 난다고 시비 걸어 싸웠다고 이야기했는데 막상 마테라치는 팀의 왕따였다고.본격 주장이 왕따 사실은 관심간부라 카더라 편들어 주는 다른 선수들이 많이 도와주면서 마테라치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과 많이 친해졌다. 첨엔 이방인 취급을 하며 왕따를 당한 안정환이었지만 그들과 함께하기 위해 파스타와 치즈로 허기를 때우고 명품도 걸치고 스포츠카도 사면서 그들의 호감을 얻어 같이 술도 먹고 밀라노 클럽도 같이 가고 했다. 그 밀라노 클럽에는 유럽의 스타 선수들이 즐비했다고. 거기서 본 여자가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이었다. 결국 마테라치도 안정환과 친해진 후에는 괜찮게 지냈다고 한다. 같은 팀이니까 겉치레로 잘 지냈는지 몰라도, 안정환 자신은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토크쇼등에서 마테라치 욕을 엄청 했다. 나중에 인테르로 이적할 때 안정환이 어디 갔냐고 물어보며어디갔냐고? 인테르측에 안정환을 추천하기도(!) 했다카더라.
  • 월드컵이 끝난 이후에도 지단과는 계속 원한을 갖고 서로 인신공격을 일삼았으나 평소에 지단과 친분이 있던 주제 무리뉴가 나서서 지단과 마테라치를 부른 뒤 그 둘을 잘 설득시켜서 마테라치는 지단과 화해했다고 알려졌었는데, 정작 지단은 화해한 적도 없고 화해할 생각도 없다고 못 박았다.
  • 조용하나 싶었더니 이번에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시비가 붙었다. 마테라치의 소속팀인 인테르나치오날레와 슈바인슈타이거의 소속팀인 FC 바이에른 뮌헨이 챔피언스리그에서 맞붙었는데 이 때 마테라치는 결장했다. 경기가 끝나고 양팀 선수들이 유니폼 교환을 위해 그라운드에 나오자 성질 더럽기로 소문난슈바인슈타이거가 어그로의 달인 마테라치에게 주먹을 휘두르기 위해 돌진하였는데 그것을 바이에른 뮌헨의 동료들이 말려서 몸싸움으로까지 번지지는 않았다.
  • 대부분 축구팬들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사실인데, [4] 해당 경기 VOD를 보면 경기 끝난 직후 바로 충돌 장면을 3~40초 정도 볼 수 있는데, 정황을 보면 슈바인스타이거는 마테라치가 대놓고 면전에 욕 하는걸 듣고도 꾹 참고 나가려는데 어그로의 달인 마테라치가 끝끝내 삿대질을 하며 슈슈 앞에 덤빈 것. 슈바인스타이거는 몸싸움 거는 걸 뿌리치며 최대한 돌발 행동을 자제하고 나가는 걸 눈치없는 마테라치는 기어이 3~4차례 더 덤벼들다가 라노키아와 다른 동료들에게 제지당했다. 사무엘 에투와 루시우 등 마테라치의 지랄맞은 성질머리를 잘 아는 여타 인테르 동료들은 오히려 슈바인스타이거를 위로했다. 슈바인스타이거는 이후 "지네딘 지단의 심정이 어땠을지 완벽히 이해했다."라고 한방 날렸다. 자세한 상황은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문서 참조.
  • 인테르 시절 트레블을 달성한 다음 떠나려는 무리뉴를 끌어안고 만류의 눈물을 보인 장면이 유명하다.

근데 지나가던 눈으로 마테라치를 발견한 무리뉴도 대단하다.
그리고 등번호인 23번은 마이클 조던의 번호를 따온 것이며 나이키에서 자신의 스니커즈 라인업을 내놓았을 때 에어조던 1을 오마주하기도 하였다.

  1. 자서전에서의 회고를 보면 커리어 내내 요긴하게 써먹은 소위 더러운 기술들은 이 시절에 많이 익혔다고 한다. 심판이 제재를 하지 않는 등 리그 자체가 거의 무법천지에 가까웠다고 한다.
  2. 마테라치는 지단에게 경기 도중 비하발언을 했고 이에 화가 난 지단은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했다고 한다.
  3. 물론 반칙이라기보단 거친 충돌같은 거다. 메타 월드 피스같이 진짜로 일부러 후려까는 비매너는 미친놈 & 동업자정신 상실로 퇴출대상이고...
  4. 아마도 기사를 쓴 기레기들의 필력이 부족해 자세히 알려지지 않은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