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1그랑프리

1 개요

정식명칭은 '오토박스 M-1 그랑프리(オートバックス 〜M-1グランプリ〜)[1]'로 일본의 코미디 전문 기획사 요시모토 흥업이 주최했던 만자이 선수권 대회. 2001년부터 2010년까지 매년 12월에 총 10회 개최되었다.

2010년 12월에 개최된 10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종료되었다가 돌연 부활이 발표되었다. 5년의 충전 기간을 거쳐 2015년 여름에 개최. 8월부터 1회전이 시작되며 종전처럼 결승전은 12월에 방영할 예정이다. 특이사항으로는 공백을 고려하여 출전자격이 결성 10년 이내에서 15년 이내로 늘어났고 전회 준결승 진출자가 1회전을 면제받는 시드 시스템도 건재하다.
M-1 그랑프리의 종료 후에 일본 최고의 만자이 대회라는 아이덴티티는 '닛신식품 THE MANZAI'[2]가 그대로 이어받았다. 하지만 M-1 그랑프리의 부활과 더불어 THE MANZAI가 종료될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평소대로라면 THE MANZAI의 예선은 이미 6월에 시작되었어야 하지만 M-1그랑프리의 접수가 끝나가는 8월에도 접수조차 받지 않고 있어서 이 소문에 힘이 실리는 중. 개최된다고 하더라도 대회의 형식으로 열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2 상세

대회명은 '만자이(MANZAI)'의 영문 이니셜을 따온 것으로, K-1 그랑프리 등에 빗대어 M-1 그랑프리로 명명되었다.[3][4] 매년 8월 혹은 9월 초순부터 12월에 걸쳐 예선과 준준결승, 준결승전이 치뤄졌으며 결승전은 12월 하순에 개최, 결승전은 TV로 생방송되었다. 또한 결승 진출에 실패한 팀에게는 패자부활전 출장 기회가 주어졌다.참가조건은 결성 10년차 이내의 콤비 및 그룹이면 프로와 아마추어, 심지어 국적도 불문하고 누구나 참가 가능했다.

대회 집행위원장은 인기 개그맨으로 활동하다 탤런트로 전향한 시마다 신스케[5]. 그는 자신이 탤런트로 활동할 수 있게 된 것은 데뷔 초기부터 8년 동안 계속했던 만자이 콤비 '신스케·류노스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또한 탤런트 활동을 위해 중간에 만자이를 그만둔 데 대한 죄책감으로 '지금의 인기와 활동을 누릴 수 있게 해준 데 대한 보은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해 왔다고 한다. 거기에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마츠모토 히토시[6]와 '제일 웃기는 놈 뽑는 콘테스트 한번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콘테스트'의 구상을 구체화하기 시작, 2001년 첫 대회를 시작으로 10년간 수많은 인기 개그맨들의 등용문이나 다름없는 대회로 자리잡았다.

규모로 따지자면 'NHK 신인 연예대상'이나 '폭소 온에어 배틀 챔피언 대회'와 맞먹는 대규모 행사였다. 역사로 따지면 기존의 신인 만자이 대회들에 비해서는 짧지만, '만자이의 정점을 가른다'는 대회의 이념 덕분인지 특히 젊은 개그맨들 사이에서는 이 무대에 서는 것이 가장 큰 영광으로 인식되었다. 게다가 M-1 그랑프리의 당시 심사위원진도 일본 개그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었던 탓에 기존 신인 선발대회보다 이 쪽을 중요시하는 연예인이나 연예 관계자들도 적지 않았다.

우승자들은 거의 모두 스타덤에 오르며 순식간에 인생역전. 우승자 뿐만 아니라 결승 진출만으로도 화제가 되어 탑 클래스 개그맨의 자리에 오른 경우도 많다. 그만큼 많은 화제를 불러모으며 지난 10년간 무명 개그맨들의 꿈이 되어온 무대.

2014년, 주관 방송사인 아사히 방송이 2015년 부터 M-1 그랑프리를 부활시킬 것이라고 발표를 했다. 참가자격은 프로, 아마, 소속사 상관없이 2000년 1월 1일 이후 결성되어 활동기간이 15년 이내인 2인 이상의 팀이라고 하며, 2015년 연내로 참가자 모집 상세를 발표할 것이라고 공표되었고 2015년 9월 9일 현재 1차전이 진행중이다. 그리고 11월, 참가팀이 결정되었고 12월 심사위원이 결정됐다. 심사위원은 언터쳐블을 제외한 M-1 우승팀에서 주로 네타를 만드는 사람이 참가했다. 언터쳐블은 스케쥴 때문이라고.라고 했지만 그건 한 쪽의 이야기다카더라.

3 역대 우승자

2001년 나카가와가(中川家) - 오사카 요시모토 흥업 소속
2002년 마스다오카다(ますだおかだ) - 쇼치쿠 예능 소속
2003년 풋볼아워(フットボールアワー) - 오사카 요시모토 흥업 소속
2004년 언터쳐블(アンタッチャブル) - 프로덕션 진리키샤 소속
2005년 블랙 마요네즈(ブラックマヨネーズ) - 오사카 요시모토 흥업 소속
2006년 튜토리얼(チュートリアル) - 오사카 요시모토 흥업 소속[7]
2007년 샌드위치맨(サンドウィッチマン) - 플랫파이브 소속(현재는 그레이프컴퍼니라는 회사를 세워 독립)[8]
2008년 논 스타일(NON STYLE) -요시모토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도쿄 소속[9]
2009년 펑크부부(パンクブーブー) - 요시모토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도쿄 소속[10]
2010년 와라이메시(笑い飯) - 요시모토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도쿄 소속[11]
2015년 트렌디 엔젤(トレンディエンジェル) - 요시모토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도쿄 소속[12]

4 문제점

개그맨 지망생들에게는 최고의 영예로 인식된 M-1 그랑프리였지만, 한편으로는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었다.

우선 예선 심사 과정에서의 불투명성이 종종 손꼽혔으며, 참가 조건 중 '팀이 결성된 지 10년 이내'라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데다 결성 시기를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신고하는 제도였다. 또한 과거에 콤비나 그룹이 해체했다가 재결성한 일이 있는 경우 해체부터 재결합까지의 기간을 포함하지 않았다. 이런 참가 조건의 허술함을 이용, 결성 10년차를 훌쩍 넘는 콤비가 결성 시기를 속이고 출장하는 사례도 있었다. 한 예로 2008년도 대회에서는 결성된 지 11년이 넘은 콤비가 콤비명을 바꾸고 참가신청을 했는데, '변경된 콤비명으로 활동한 기간이 10년 이하'라는 이유로 참가 자격을 인정받은 사례가 있었다.

또한 '요시모토 흥업 소속 이외에는 우승이 거의 불가능한 대회'라는 주장도 나왔고 이것이 M-1 최대의 병폐라는 의견도 있었다. 사실 이런 의견은 처음부터 쭉 있어왔다. 제 1회 대회에서는 일반 심사위원 제도로 요시모토가 운영하는 극장(삿포로, 오사카, 후쿠오카)에서 익명의 일반인 100명을 모아놓고 심사하도록 했었는데 요시모토와 비요시모토 참가자의 점수 격차가 노골적으로 많이 났다. 게다가 같은 요시모토라도 지역별 차이도 눈에 띄게 심각했다. 진리키샤 출신 오기야하기[13]에 대한 평가로 오사카 극장의 일반 심사 점수가 100점 만점에서 9점이 나와 출연진을 곤혹케 했고, 도쿄 요시모토 출신의 DonDokoDon의 오사카 일반 심사 점수는 18점이었다. 이렇게 도쿄 출신이나 비 요시모토 출연진의 점수가 눈에 띄게 낮게 나오자, 특별 심사위원이었던 마츠모토 히토시는 생방송중에 오사카의 심사위원은 머리가 이상한 게 아니냐고 대놓고 비판했다. 또한 마스다오카다는 특별 심사위원 점수에서 최고점을 받았으나 일반 심사위원 점수에서 훨씬 못 미치는 점수를 받아 최종결전에 진출하지 못했다. 이 상황을 두고 시마다 신스케는 "요시모토 극장이라서 어쩔 수 없다. 점수를 높이려면 요시모토로 오면 된다"라고 반 농담조로 말했다. 자기들도 이런 주장에 대해 처음부터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었다는 얘기. 결국 일반 심사위원 제도는 이듬해인 2002년부터 철폐되었다.

아무래도 요시모토 흥업에서 주관하는 대회인 만큼 요시모토와 그 계열에 소속된 개그맨들이 강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비판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사실 요시모토 소속 개그맨들의 머릿수가 압도적으로 많기는 해도, 결승 진출 그룹들의 소속사 비율만 놓고 보면 그렇게 심하게 편중되지는 않은 편이다. 다만 역대 수상자 목록을 보면 마스다 오카다(쇼치쿠 예능), 언터처블(프로덕션 진리키샤), 샌드위치맨(플랫파이브)를 제외한 전원이 요시모토 흥업 계열에 소속된 팀이다보니 대놓고 소속사 개그맨들 푸시하는 대회 아니냐는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고, 요시모토 내에서도 칸사이 출신들의 강세가 지나치게 두드러진다는 점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14].

또한 2007년 샌드위치맨의 패자부활전 우승을 놓고 준결승 심사위원들의 자질이 지적되기도 했었다.

5 기타

동방 M-1 그랑프리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하였다.
  1. 특별 협찬사의 사명을 따온 이름이다.
  2. 역시 스폰서의 사명을 따왔다. 닛신식품은 한국의 농심처럼 일본을 대표하는 인스턴트 라면 메이커. 우승상품으로 컵라면을 준다.
  3. 다만 종목은 정통 만자이에 국한되지 않고, 콩트부터 토크, 노래까지 선보일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단 노래를 부를 경우 핀마이크는 사용 불가능)
  4. 킥복싱 이벤트인 K-1그랑프리를 흉내내어 명명한 M-1그랑프리였으나, 일본의 최대 무에타이 이벤트인 M-1무에타이챌린지가 출범하면서, 해당 이벤트에 출장하는 선수들이 'M-1 나가지만 개그맨 아닙니다'라는 농담을 간간히 하기도 한다.
  5. 2011년 야쿠자와 연관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은퇴한 그 사람 맞다.
  6. 개그콤비 '다운타운'의 보케 담당
  7. 최초의 최종결선 만장일치 우승
  8. 역대 우승자 중 처음으로 패자부활전에서 와일드카드로 올라와 바로 우승. 이후 2015년 트렌디 엔절이 마찬가지 방식으로 우승했다.
  9. 요시모토 흥업의 새로운 사명
  10. 최종결선 만장일치 우승
  11. 2002년부터 한해도 거르지않고 결승진출을 한 무관의 제왕이였다.
  12. 탈모관련 네타가 주 레퍼토리인 게닌 콤비. 2014년 THE MANZAI에서 준우승을 한후 나름 돋보이다가, 패자부활전에서 나이츠 등을 꺾고 와일드카드로 올라온 후, 파이널 라운드에 진출하고 우승을 하였다. 다만 파이널에 진출한 게닌 세 그룹 전부 요시모토 소속이어서 역시 잡음이 끊기지 않았다.
  13. 관동출신콤비로서 처음으로 결승에 올랐다.
  14. 논 스타일와라이메시요시모토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요시모토 흥업 계열) 도쿄 소속으로 우승했지만, 도쿄로 진출하면서 소속사를 옮긴 경우이다. 따라서 요시모토 흥업에 소속된 개그맨 중 비 칸사이 출신 우승자는 펑크부부 (큐슈 출신)트렌디 엔젤 (간토 출신) 두 팀 뿐이다. 비 요시모토 우승자 중에는 칸사이 출신이 마스다오카다 단 한 팀밖에 없는 것이 특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