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준(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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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팬들에겐 최악의 혐짤.
패주고 싶은 거룩한 면상.

이름김상준
생년월일1968년 7월 14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서울특별시
출신학교명지중 - 명지고 - 중앙대
포지션포워드
신체사이즈185Cm, 82Kg
실업입단1991년 한국은행 농구단 입단
소속팀한국은행 (1991~1996)
원주 나래 블루버드 (1996~1998)
대전 현대 다이넷 (1998~1999)
지도자중앙대학교 감독 (2006~2011)
서울 삼성 썬더스 감독 (2011~2012)
성균관대학교 감독 (2014~)

1 소개

저는 사실 입니다
대한민국농구인. 삼성팬들 : 뭐?! 인정 못해!!!
농구 명문 서울 삼성 썬더스흑역사의 시작점.
기량이 퇴보된 김승현을 데려오기 위해 팀의 프랜차이즈 가드전자랜드로 트레이드하는 병크를 저지르는 등 삼성팬들의 주적이자 영구제명 0순위. 즉 김상준을 감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10년 가까이 6강에 단골로 진출한 팀을 부임 첫 시즌만에 몰락시킨 주범. 이것만으로도 이 인간은 감독 자격 실격.
대학 무대 출신 감독들은 프로 무대에서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사례를 단적으로 보여준 감독. 일단 이 분은 빼고 보자!
중앙대학교 감독 시절엔 52연승 신화를 썼으나 그럼 뭐해?! 프로 무대에서는 삼성흑역사이자 구단 사상 최악의 무뇌 감독.

2 경력

2.1 선수 시절

명지고 시절에 그럭저럭 활약했던 선수다. 그 때문에 중앙대학교 진학 후에도 4학년 때 간간히 나오는 수준이었다. 애당초 뛰어난 성적을 낸 것은 아니라서 실업 팀의 스카우트를 받지 못하고, 한국은행으로 가게 되었다. 그래도 워낙 전력이 약했던 팀의 사정상 한국은행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1992년부터 1993년까지 국군체육부대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한국은행으로 돌아와 없는 선수층에도 꾸준히 주전으로 뛰면서 활약했다.

한국은행이 1996년을 끝으로 해단하면서 다른 선수들은 일반 사무직으로 남았지만, 김상준은 산업은행을 주축으로 새롭게 창단된 나래 농구팀으로 이적하면서 농구 선수로서의 삶을 이어갔다. 그리고 KBL 출범 직전 실업과 아마추어가 모두 같이 뛰는 1996-97 농구대잔치에서 자유투 성공률 1위에 오르면서 트로피를 하나 챙겼다. 한국프로농구 출범이후 세 시즌을 뛰었는데, 전반적인 활약은 그냥저냥 벤치 멤버 수준. 1997-98 시즌 종료 후에 정경호와 맞트레이드되어 나래를 떠나 현대로 이적했고, 거기서 은퇴했다.

2.2 은퇴 후 지도자로서의 행보

잠시 주유소를 운영하다가 2001년 모교인 명지중학교의 감독으로 컴백했고, 2006년에 중앙대학교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여기서 대박을 쳤다. 강병현, 윤호영, 함지훈, 오세근, 김선형같은 우수한 선수들을 조련하고, 일부는 직접 리쿠르팅하는데 성공했다. 이런 우수한 선수들을 이끌고 40분 풀코트 프레싱을 기반으로 한 질식 농구를 선보이면서 무려 52연승의 신화를 달성하였다. 이렇듯 대학 리그를 초토화시키는 활약으로 일약 주목받는 젊은 감독의 반열에 올랐고, 2011년 전격적으로 서울 삼성 썬더스의 감독이 되었다. 안돼!

그러나 프로 무대에서는 최악의 평가를 남겼다. 이 인간은 각종 개그 기록을 써내려가며 삼성이란 팀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말아먹었는데 중앙대 시절 보여주던 40분 풀코트 프레싱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애당초 2m 23cm의 라모스를 뽑았다가 풀코트 프레싱에 맞지 않다고 교체하는 촌극부터 프랜차이즈 스타강혁을 내쳤다가 가드진의 줄부상으로 가드난에 시달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김승현을 트레이드하는 과정에서 팀의 핵심 포워드인 김동욱을 내주면서 팀 전력이 급속도로 약화되었다.[1] 더구나 김상준 감독은 삼성의 각종 불명예 기록도 세우는 진기록을 보여주기도 했다. 삼성 팀 창단 이래 최다연패인 14연패, 한국프로농구 홈경기 최다 연패인 홈 14연패, 2012년 1월 12일 부산 kt 소닉붐과의 홈경기에서 시즌 최다점수차 41점차 참패 등등. 이렇게 속절없는 부진이 계속되자 급기야는 김상준 감독을 성토하는 삼성팬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전술 면에서도 단 한가지도 좋은 부분이 없었다. 특히 작전타임 때 제대로 된 전술조차 없었던것도 모자라 많은 이들의 놀림감이 되었던 일명 선수 출석체크와 출첵 이후 특색없는 아이솔레이션은 많은 비난을 샀다. 승준이! 시주니! 승혀니! 아이롸! 떠리원! 전임자도 출첵작전타임이었지만 그래도 이때는 삼성 썬더스 2차전성기이기도 했지. 결국 이러한 것들이 겹치면서, 결국 직전시즌까지 6시즌 연속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던 삼성은 단 한시즌만에 치욕적인 최하위라는 수모를 당하고 만다. 이 때문에 농구팬들로부터 10개 구단 감독들 중에서 가장 무능한 감독으로 낙인찍혀 버렸다. 그리고 김상준 감독은 팬들에게 돌상준이라는 인격 모독적인 별명까지 얻은 채 결국 시즌 종료 후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하였다. 만세!!!

2012년 미국 곤자가 대학에서 연수를 받은 후 스포츠 관련 사업을 하면서 잠시 농구계를 떠났었지만 2014년 성균관대학교 농구부 감독으로 다시 농구계에 복귀를 했다. 그런데 성균관대학교삼성그룹재단.[2] 서울 삼성 썬더스 팬들은 팀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잘도 돌아왔다며 이를 갈고 있다.[3] 현재 성대의 상황이 꽤 막장스러운지라 이번이 김상준 감독의 진짜 역량을 평가하는 장이 될거라고 주위에서 그렇게 보고 있다. 이번에도 싸놓으면 진짜 답조차 없다. 삼성에서 감독으로 부임한지 불과 한 시즌만에 팀을 말아먹은데다 후임 감독들에게조차 수습하기 힘든 피해를 주어 박수교, 박종천, 이충희 등과 함께 나쁜 의미의 프로농구 4대 천왕으로 추앙받으며 감독도 아닌 시궁창의 무능력자로 전락했다. 박종천은 여자농구에서 현란한 인터뷰 솜씨로 명예회복을 노리는 등 그나마 평가가 나아지고 있는 중.

드래프트에선 삼성에 꼭 필요한지 의문인 중대출신의 신인을 뽑아 삼성팬들을 불안하고 어이없게 만들었는데 그 의도를 영용 알수없게된것이 금빙 짤려서(...) 가는 마당까지 일그러진 제자사랑, 평생 죄송해야할 팀에게 똥을 싸고간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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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4시즌 김동욱이 극도로 부진하며 이 선택이 신의 한 수라고 평가되기도 했으나, 오히려 15-16시즌 핵심 전력으로 활약하며 우승을 차지한다.
  2. 성균관대는 축구부 감독 선임 과정에서도 2급 지도자 자격증만 있는 설기현을 감독으로 선임하는 등, 야구부와 배구부 빼고 다른 스포츠부는 다 막장이다(...). 심지어 성대 출신 장채근 홍익대 야구부 감독은 OPS를 몰랐다는 드립을 치는 등(...) 동문 감독들의 전문성도 의심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정기전도 없다 보니 대다수 학생들이 대학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상황. STC 사용가능하게 해도 안 될거야
  3. 후임이었던 김동광 감독조차도 이 양반이 질러놓은 것들을 수습만 하다가 자진 사퇴했다. 괜히 삼성팬들이 울화가 터지는 소리를 하는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