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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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乙東
1945년 10월 10일~

1 개요

대한민국배우정치인. 1945년 9월 5일생.

1963년 풍문여자고등학교졸업하고 중앙대학교 정치학과에 입학하였으나 이듬해 중퇴하였다.#

김두한이며, 배우 송일국, 송송이[1]어머니대한민국만세 삼둥이할머니이다.

2 배우 시절

동아방송 3기 성우[2]로 입사한 후 여러 드라마와 영화의 배우로 활동하였다. 전설의 고향, 용의 눈물, 김치 치즈 스마일 등 여러 드라마에 출연하였으며, 김을동 씨 말에 따르면 간호사를 빼고 다 맡아 본 것같다고 한다.[3] 영화로는 마파도 1, 2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아들과 딸이 배우이므로 송일국과(KBS 2TV 장희빈, 2002년) 또는 송송이와(SBS 모닥불에 바친다) 같이 출연한 드라마도 있으며, 부모의 영향을 받아 독립운동이나 국방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할아버지인 김좌진의 기념 사업회를 만들기도 했다.

한 때는 후배 연기자들의 연기지도를 자주 해주었다고 한다. 유동근, 전광렬, 박상원, 전인화 등의 연기파 배우들의 스승으로 유명하다. 유동근-전인화 부부를 이어 준 장본인도 김을동이다.

더불어 1990년대말 당시 한나라당이 야당이던 시절 추진하던 청소년보호법에 찬성하며 만화 및 애니에 대한 검열을 엄격하게 할 것을 주장했다. 만화평론가인 손상익과 당시 토론을 가져서 만화를 보고 아이들이 타락한다는 말을 하다가 손상익에게 "영화나 드라마도 아이들이 보면 그렇다고 해야 하는데 왜 거기에 대해선 침묵하나? 당신이 활동하는 분야에 대해선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비난을 듣자, 닥치고 아이들이 드라마를 얼마나 보겠냐고 억지를 부리며 당시 넷츠고나 유니텔 만화동호회에서 실컷 비난을 듣었다.

아들 송일국은 20대 총선 중 어머니가 언젠가는 배우로 복귀 할 것이라 했는데 선거에서 떨어졌으니 조만간 배우 활동을 재개 할 수도 있겠다.

3 정치활동

어쨌든 아버지가 나름 극우활동한 전적이 있다지만 1950년대 중반 이후로는 쭈욱- 야당 정치인으로 일하면서 이승만과 박정희에게 저항한 전력이 있기에 1991년 지방선거 당시에는 꼬마민주당에 입당하여 서울시의원에 출마했다가 야권단일화 실패와 저조한 투표율로 인해 근소한 표차이로 낙선한 바 있고 이후로도 민주당 당원으로 재직하다 1995년 지방선거 때 동대문구 제3 선거구에서 당선됨으로써 의정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듬해 민주당이 새정치국민회의통합민주당으로 분열 사태가 일어나는김에 민주당을 탈당하고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면서 정치노선을 바꿨고 15대 총선종로구에 출마했으나, 4위에 그쳐 낙선했다. 참고로 이 선거 때 상대 후보가 이명박,이종찬,노무현이었다.(...) 이러니 당연히 낙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3위는 노무현 이후로 2000년 총선에서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에 출마했지만 낙선했으며, 이후 자민련을 탈당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했지만 역시 낙선했다.

2008년에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친박연대에 입당, 친박연대의 비례대표로 공천을 받아 당선되어 대한민국 최초의 부녀 국회의원이 됐다.[4] 친박연대가 한나라당에 통합되면서 한나라당에 자연히 재입당했고, 현재도 새누리당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새누리당 최고 의원을 지냈다. 2012년 6월부터 2014년 8월까지 한국여자야구연맹 회장을 역임했다.[5]

다른 김좌진 장군의 후손들(예로 이복남매)과도 정치적인 이념에서 대립을 보였다. 국정화 문제도 찬성을 하는 쪽으로 나섰으며, 친박연대로서 박근혜를 지지하고 있는 쪽이기도 했다.[6]

다만 19대 국회의 행보를 보면 비박계에서도 '을동장군'같은 칭호로 불리고 있을 정도로 비박계 인사로 성향을 바꿨다. 20대 총선의 공천을 두고 친박계보다는 김무성 편을 들어주었다.

2014년 9월 27일 거여근린공원에서 열린 거여골 주민 한마당 축제에서 무대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한 곡 부르고 난 후 아들 송일국이 선거 유세를 도와주게 된 일화를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그 설명에 따르면 처음에는 도와달라고 부탁하자 거절을 했는데 거듭 부탁을 하자 마지못해 도와주기로 하면서 대신에 내걸은 조건이 '옳은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무슨 옳은 일을 한 건지는 알 수가 없다. 거기다 당시에 노래를 부르고 일화를 이야기하던 때는 주택밀집지역의 토요일 저녁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핵을 살 수 있는 것으로 아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지만 링크를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살 수 있으면 사서라도..." 라며 자주 국방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지, 절대로 핵을 말 그대로 돈을 주고 살 수 있다고 발언한 것이 아니다.

2016년 2월 새누리당 의원들과의 회의에서 "여자가 똑똑해 보이면 밉상이다."라는 성차별적인 발언을 하여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은 여당의 최고위원이고셀프 디스?, 며느리는 알다시피 판사다.

2016년 4월 5일 선관위가 주최한 토론회에 불참하고 본인의 선거 유세를 하여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불참 사유를 "수도권 선대위원장을 맡고 있어 다른 후보들 지원 일정 때문"이라고 밝혔는데, 실제로는 토론회가 있던 시간에 유세 차량을 타고 본인의 유세를 하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영상

2016년 4월 13일 총선에서 송파구 병 선거구에 출마하였는데, 아들 송일국의 지원 유세[7]에도 불구하고 50,212표(39.7%) 획득에 그쳐 더불어민주당남인순[8]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결국 똑똑한 여자에게 털렸다.[9] 공천 파동 등으로 민심을 잃은 새누리당강남이 털리고 부산이 털리고 대구 철옹성이 무너지는 대참패를 당하며 김무성 대표의 사퇴를 시작으로 지도부가 줄줄이 사퇴하는 거대한 후폭풍이 일어났다.

김을동이 낙선한 이유로는 공약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점, 국민의 당 후보가 보수표를 잠식 한 점 등이 있으나 가장 큰 이유로는 아버지 김두한의 관계를 강조하며 애국를 강조한 점이 대중들에게 오히려 반감을 사게 되면서 선거 유세부터 에러였다는 평이 있다. 아들 송일국의 유세도 좋은 반응을 받진 못했고 삼둥이와 엮이면서 오히려 논란만 일으켰다. 그 외에 야당이 강세이던 송파병에서 19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민주당 후보로 나온 정균환이 워낙 뻘짓을 해서 김을동이 얻어 걸린 측면도 없지 않았는데,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김을동이 유세한다며 하고다닌게 '빨갱이들 잡아야 한다'는 진부한 내용이었던 데다 일을 잘한다는 이미지를 확실하게 잡은 남인순과의 경쟁이었던 것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19대 마지막 본회의에서 유승민을 보고 여러 감정이 오고 갔는지 눈물을 보였다.#

새누리당 8.9 전당대회에 참석 했다.#

4 DNA 검사 거부 논란

김좌진 장군의 조선족 부인이라고 주장하는 故 김강석의 딸인 위연홍이라는 인물이 김을동은 김좌진 장군의 손녀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면서 김을동이 자신의 유전자 감식 제의를 거부했다고 한 바 있으나,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김을동은 DNA검사를 거부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자신이 머리카락 하나만 뽑으면 모든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하였다. 중앙일보의 보도 이후 논란을 일으킨 위연홍은 잠적했으며, 이 사건과 연관이 있는 도올 김용옥 측은 중앙일보 측의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10]
실제로 위연홍은 보훈처에서 김좌진 장군후손을 인정받지 못하고 중국으로 귀국한것으로 알려져있다.

어쨌든 김을동이 DNA 검사를 피하고 있다는 위연홍 측의 주장과 위연홍이 언론에 떠들기만 하고 찾아오지도 않았다는 김을동의 주장이 서로 상반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것도 잘 생각해보면 위연홍의 주장이 상당히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대목에서도 일반인들의 오해가 많이 들어가는데, 왜냐하면 김좌진 장군 가계도를 보면 후손이 상당히 많다.

위 가계도에 따르면 김좌진은 3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둘째부인 김계월 쪽으로 김두한과 이어지는 가계도 있지만, 정실 부인인 오숙근과 세째부인쪽으로도 자녀와 손자가 꽤 있다. 즉, 굳이 김을동이 만나주지 않아서 유전자 검사를 못했다는 핑계는 웃긴 것이다. 만나서 유전자 검사를 할 사람은 많다.
사실 위연홍의 일화에 대해 특히 세계일보가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기사를 내면서 도움을 주었고, 김좌진 장군의 고향인 충남 홍성군과 홍성군 의회 지역유지들도 후원회를 결성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안동 김씨 문중과 연결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정 김좌진 장군의 후손이란 근거가 빈약했다면, 그 많은 자손 중에 한 명과 유전자 검사를 하면 된다. 근데 굳이 김을동이 안 만나줘서 유전자 검사를 못한다며 김을동 탓을 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더 웃긴건 위연홍이 김을동이 김좌진의 후손이 아니라는 주장을 한것처럼 이상하게 소문이 났는데 그런 주장을 한적이 없다는것이다.~중국 살다가 막 한국에 온 위연홍이 김을동이 진짜 김좌진 후손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고 그런 주장을 할까. 흔한 조작질.
즉, 김을동이 그나마 유명인사라 그쪽으로 핑계를 댄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설득력 있다.

4.1 몇가지 음모론자들의 착각

1. 그러나 위연홍은 자기가 김좌진 장군의 후손이라고 주장하였지, 김을동이 김좌진 장군의 후손이 아니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즉 위연홍이 김을동이 DNA검사를 피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을 김두한의 출신에 대한 의문의 증거로 받아들인 나머지 내용이 왜곡되어 전해진 것이다. 물론 김을동이 위연홍의 DNA검사를 피한다는 게 사실이면 김을동과 그의 아버지 김두한의 출생이 뭔가 의문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추론은 가능할 수는 있지만, 위연홍 자신이 직접 김을동은 김좌진 후손이 아니라고 말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위연홍은 대대로 중국에서 살아왔고 한국에 온 지도 얼마 안 된 사람이다.
만약 그 사람이 김좌진 장군의 후손이라 해도 김을동이 진짜 후손인지 아닌지 여부는 위연홍이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위연홍이 그 여부를 어떻게 알고 가짜라고 주장을 할 것인가.
즉, 음모론자들이 김두한 및 김을동의 출생에 대한 의문을 파고들다 보니 위연홍의 주장을 확대 해석한 것이다.

2.김좌진은 여러명의 부인을 두었고 김두한 말고도 자손이 많다. 그들이 같은 대한민국에서 살아서 방해되는 게 없다.
위연홍이 실제로 김좌진의 후손이라고 한들 김을동이 위연홍을 방해하거나 김을동이 손해 볼 것도 없다.
유전자 검사해 달라고 하면 바쁘다고 아는 다른 후손 연락처 찾아주면 되는 일이다. 김을동이 아무리 권력이 있다 해도 그걸 이용해서 위연홍을 몰아낼 이유는 없다.

3. 그리고 위연홍이 한국에 막 왔을당시 김을동은 국회의원이 아니었고 송일국은 톱탤런트가 아니었다. 뭘 어찌할 권력도 없었다.

5 선거 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95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의원 동대문구 제3선거구)
민주당24,102 (65.33%)당선(1위)
1996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종로)자유민주연합(6.7%)낙선(4위)
2000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자유민주연합19,018 (20.95%)낙선(3위)
2004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한나라당32,665 (30.23%)낙선(2위)
2008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친박연대2,258,750 (13.18%)당선비례대표 5번
2012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송파 병)새누리당49,929 (49.94%)당선(1위)
2016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송파 병)새누리당50,212 (39.7%)낙선(2위)
  1. 연기자 데뷔는 오빠보다 먼저였으나, 결혼 후 완전히 활동을 접었다.
  2. 그래서 지금도 한국성우협회의 간부로도 활동 중이다.
  3. 기사
  4. 박근혜의 경우에는 아버지 박정희가 국회의원을 역임하지 않았다. 대신 국회의장을 지냈다.
  5. 현직 국회의원의 체육단체장 겸직 금지 권고에 따라 사임했다.
  6. 중요하고도 아이러니한 것이 김을동 의원의 아버지인 김두한은 박정희 정권 때 고문을 당했었고, 그 후유증으로 1972년에 죽었다는 설도 있다. 심지어 당시 김두한을 알던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54세로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김두한의 후계자, 조일환) 허나, 일본의 고문도 잘 견뎌냈던 김두한조차도 박정희 정권 내의 고문에 의해 이가 다 빠지고 폐인이 되어 버렸다고 했을 정도였기 때문. 야인시대에서도 그 인터뷰를 참고해서 김두한이 박정희 정권 내에서 고문을 당해 이가 다 빠졌다는 설정이 추가되었다. 사실 의외지만 김을동도 정치입문 초기에는 민주당 쪽으로 출마하기는 했다.
  7. 직계 가족과 배우자는 선거 운동을 할 자격이 주어진다. 단, 미성년자는 제외. 삼둥이? 다만 이 규정은 가족이 없거나 적은 미혼, 독신 후보자에게는 불리해서 형평성 문제가 있다.
  8. 페미니스트로 대한민국 페미니스트 특유의 부모성씨 같이 쓰기를 받아들여서 남윤인순으로 개명한 적이 있었으나, 19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후보 등록 당시 표기를 우려해 도로 남인순으로 개명. 통명과 본명이 달라서 정치에 입문할 때 본명으로 돌아왔다는 점은 강신성일과 비슷하다.
  9. 하필 남인순의 선거 표어가 송파 똑순이였다.
  10. 김을동측 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