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병/미국 진출

과대망상이 어떤 모습이 되는가를 보여주는 사례.

1 개요

자신이 한국에서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상당히 많은데도 불구하고 굳이 무조건 미국에서 성공해서 대박을 내고 명성을 전세계로 떨치고 더불어 국위 선양까지 하겠다는 신념 하나로 미국에서 온갖 삽질을 벌이는 걸 말한다. 게다가 위험한 것은 혼자만의 망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돈을 다 날리게 하거나, 그들을 믿고 따라나선 사람들(예 : 영구아트무비 직원, JYP 소속 가수들 중 일부)까지 같은 허상에 함몰시켜 나락으로 빠뜨리게 만든다는 것에 있다.

사대주의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는 어려운 것이 한국에서 성공하는 것과 미국에서 성공하는 것은 문화적 파급력과 벌어들이는 재화의 규모가 차원이 다르다. 한국의 좁고 한정적인 내수시장 규모를 생각하면 아무리 잘 벌어도 한계가 있고 음악시장 세계 2위인 일본은 잘라파고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폐쇄적인 구조라서 진출이 매우 어려우며, 나머지 나라의 음악시장은 아무리 중국, 동남아 음악시장이 급속성장중이고 한국보다는 수익성이 높다고 해도 여전히 이들을 다 합쳐봐야 미국, 일본 두 시장의 파이보다 한참 작다. 소녀시대,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카라 등 국내에서 정상을 찍은 아이돌이 한국에서 뜨고 몇년만 지나면 국내활동 안한다고 팬들이 불만을 제시하건 말건 해외로 열심히 투어만 도는 현실을 생각하면 대충 답이 나올 듯. 미국 시장은 지금껏 싸이단 한번의 성공만으로도 입증되었듯, 성공만 하면 그 이상의 부와 명예를 가져다 줄 수 있는 노다지의 땅이다. 그게 안되니까 그나마 가장 수익성 좋은 중국과 동남아 시장으로 SM, YG 등 대형 연예프로덕션은 물론 방송사들까지 직접 드라마를 가지고 투자자를 찾으러 중국과 동남아를 돌 정도.

문화적으로 경쟁자인 스포츠쪽에서 최대 시장인 미국 리그에 진출해 성공한 박찬호, 류현진이나, 미국과 동급의 시장규모를 가진 유럽축구 시장중 그나마 가장 한국 친화적인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1] 진출한 박지성 등이 이후 한국에서 얻게 된 위상 변화를 생각하면 그만큼 해외 시장, 그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빅리그인 미국에 진출하는 것이 대중문화, 특히 음악계에 있어서 얼마나 큰 숙원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싸이강남스타일을 통해 해내면서 이것이 불가능만은 아니라는 것은 일단 확인했다. 다만 강남스타일의 노래와 뮤비는 전혀 해외진출을 고려하지 않고 내수용(?)으로 만들었는데 유튜브를 통해 우연히 대박이 난, 말그대로 희귀한 사례다.

요는 무조건 미국에 진출만 하면 된다는 '착각'을 하고있느냐, 미국 시장을 목표로 '현실적인' 계획을 세워서 진행해 나가느냐의 차이. 그리고 미국이라는 한국과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어떻게 컨텐츠나 상품을 정착하도록 하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더불어 미국병 환자들의 특징은 마치 미국에서 엄청난 대중적 성공을 했거나 할 것처럼 과도한 언플과 홍보를 한다는 점에 있다. 보아, 세븐, , 우타다 히카루 등의 가수들이 미국시장 진출을 시도했다가 결국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아무도 이들에게 미국병 딱지를 붙이지는 않는 것을 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2 증상과 사례(...)

2.1 심형래

자신이 만든 영화가 미국 박스오피스 1위 되는 것이 최종목표. 그가 디 워 하나 만들면서 그것보다 못하다고 깠던 할리우드 영화는 셀 수 조차 없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디 워는 투자비도 회수하지 못했고, 라스트 갓파더이런 평가를 듣고 있다. 미국캐나다 개봉을 하긴 했는데...첫주에 박스오피스 29위를 했다.[2] 결국 2주차부터도 폭락하고 수익금도 별로 없었다. 쉽게 말해 망했어요.

이쪽은 안좋은 예로 가장 심각하다. 정말로 과대망상이 극에 달했다고 해도 할말이 없을 정도.

2.2 박진영

자신이 키운 가수의 노래가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위 되는 것이 최종목표. 페레즈 힐튼 블로그에 원더걸스의 노바디에 대한 포스트가 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원더걸스를 미국으로 데려가 생고생을 시키며 <Nobody> 싱글을 빌보드 HOT 100 차트 76위에 올려놓는 기염을 토한다. 사실 이것도 끼워팔기와 자기앨범 구입 등으로 특정 음반 판매지수 비슷한 것만 뻥튀기시켜서 높여놓은 슬픈 순위다. 최근엔 무슨 아동유아 코너로 갔다 카더라. 그리고 미국에서 찍었다는 원더걸스의 사진들을 보면 얘네가 과연 1위하던 걔들이 맞나 싶을정도로 안습인 모습. 게다가 힘들다고 선미도 탈퇴하고 혜림이 들어왔는데 평이 썩 좋지 않다. 저 76위를 빼면 희소식이 단 하나도 들려오지 않음. 결국 현실은 YG싸이

박진영의 생각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시장 규모나 수익성, 자본력에서 SM에 상대가 되지 않는 입장을 고려하면 언제나 한국시장에서 3인자에만 만족할 수는 없기 때문에 모험을 거는 것도 충분히 타당성이 있었다. 하지만 이를 실천하는 방법에서 그렇게 한국 스타일로 세계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해놓고 정작 원더걸스의 홍보는 한국식으로 했다가 망했다. 과대망상은 하지 않았지만 현실이해는 제대로 하지 못한 것.

2.3 아카니시 진

일본 쟈니스 사무소 소속 6인조 아이돌 그룹 캇툰의 투톱으로 쟈니스 사무소의 차세대로 상당한 기대와 인기를 끌고 있었다. 데뷔 전부터 캇툰의 멤버 카메나시 카즈야와 인기 드라마 시리즈 고쿠센 시즌2에 출연하여 일본 드라마 업계에서 손꼽히는 시청률 분기점인 20%를 가뿐히 넘어서며 존재감을 크게 알렸고, 이후 그가 소속된 캇툰은 정식 데뷔를 하게 되면서 데뷔 싱글을 100만장 넘게 판매하며 쟈니스 사무소의 떠오르는 신성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캇툰은 매 싱글마다 3~40만 장을 팔아치우는 등 강력한 팬덤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러나 에이스인 아카니시 진이 데뷔한지 1년도 되지 않아서 갑자기 미국 유학을 이유로 활동을 중지하며 그룹 활동이 일시 중지되는등 소동을 벌였고, 미국체류중에는 술 먹고 노는 사진만 유출되다가 1년을 못채우고 귀국, 어영부영 캇툰활동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미국병은 다시 재발하였고, 2011년, 이번에는 캇툰 월드 투어(라고 쓰고 아시아 투어라고 읽는) 활동을 앞두고 돌연 미국 진출을 하겠다고 긴급 탈퇴하면서 캇툰은 활동이 완전히 꼬이게 된다. 그럼에도 쟈니스 사무소의 쟈니 키타가와는 그를 총애하였던데다가, 자신도 미국 체류 경험 및 미국병에 걸렸다는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그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그 결과 아카니시 진은 쟈니 사장의 도움으로 미국에서 워너 뮤직과 글로벌 계약을 맺게 되었고 제이슨 데룰로와 함께 <Test Drive>라는 곡으로 데뷔하였다.

그렇지만 그의 미국 활동은 (일본내에서만 화제가 되었을 뿐) 미국 현지에서는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마치 한국의 몇몇 아티스트들이 미국 진출 혹은 해외 진출을 하면서 이거 저거 다 끌어다 인기가 있는 것처럼 언플하는 상황이었는데, 워너 뮤직의 도움으로 작은 클럽 무대등을 중심으로 미국 투어를 벌이기도 했으나, 관객들 대부분은 일본인이나, 기타 아시아계, 그리고 캇툰의 팬 정도였으며 공연 규모도 매우 작았다고 한다. 쟈니스 사무소는 미국 진출이 성공적이라는 논조의 언플을 게속 하였으나, 현실은 냉혹했던 것. 거기다 당시 일본 캇툰 팬들은 그동안 아카니시가 인색하게 굴던 각종 팬 서비스를, 미국 공연에서는 적극적으로 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접하게 되면서 배신감을 느낀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이후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헐리웃 영화 47로닌이라는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으나, 영화가 그야말로 지뢰작. 영화 퀄리티가 너무 떨어져서 미국에서는 제대로 극장 개봉도 못한 영화인데, 재미있게도 아카니시 진을 비롯해 시바사키 코우등 유명 일본 배우들이 출연한데다, 일본의 추신구라를 베이스로 한 와패니즈 영화라 일본에서만 나름대로 화제작 대접을 받으며 키아누 리브스가 방일하는 등의 프로모션이 이뤄졌다. 그러나 일본 흥행도 그다지 신통치 않아서, 여튼 헐리웃 영화 출연도 큰 소득없이 끝나게 된다.

결국 미국 활동은 '동료들을 배신하고 혼자 살겠다고 떠나더니 망했냐'라는 팬들의 비아냥으로 끝나게 되었다.

이렇게 미국 진출 음반 활동과 헐리웃 배우 활동이 큰 소득없이 끝나면서, 다시 거점을 일본으로 옮기고, 그래도 남아있는 일본 골수 팬들의 지지를 받으며 솔로 활동을 지속하고 있었으나, 그 와중에도 영어가 능숙한 연예인들과만 적극적으로 어울리거나, 故앙드레 김 선생님이나, 소속사 사장 쟈니 키타가와 처럼 일상 회화에 영어를 섞어쓰는 모습이 계속 알려지며 골수 미국병의 모습을 계속 보여주었다.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진글리쉬"라는 연관검색어가 야후 재팬에 뜨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소속사 후배인 오카모토 케이토영국유학파인데, 그와 자주 어울리며 영어 회화로만 대화를 시도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 배우 쿠로키 메이사와 속도위반 결혼을 하였고, 그걸 소속사에 결혼 후 보고하는 패기를 보여주었다. 소속사는 예정된 솔로 투어 취소 밎 취소 위약금을 아카니시 진에게 전액 부담한다는 발표를 하였으나, 위야금 전액 부담이 정말 이뤄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어쨌든 계속 미국 진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아키니시 진은 2014년 2월 쟈니스를 퇴사하여 독립했다. 그리고 독립 후에도 그는 미국 진출을 모색중이라고 한다.

2.4 노홍철

무한도전에서 몇 번 거론된 적이 있다. 물론 실제로 미국에 진출하고자 했던 의도는 아니겠지만, 무도와 미국 중에 미국을 고른 분인데 의도가 없었을까 예능 프로그램의 소재로 써먹을 만큼 미국 진출에 대한 환상이 국민 전반에 만연함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꿈을 이루지 못하고...

3 피해자들

4 관련 항목

  1. 가장 큰 이유는 영어가 통한다는 점. 두번째는 유럽 빅리그중 해외시장, 특히 아시아 시장에 적극적이어서 경기 시간까지 아시아 방송을 고려해 변경하는 등 보기가 아주 편하다는 점.
  2. 상영관이 58개 뿐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아니 그전에 왜 상영관이 58개뿐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