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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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統民主黨 / Real Democratic Party: RDP

1 개요

19대 총선에 창당한 정당. 친노일색의 민주통합당의 공천에 불만을 품은 민주통합당 동교동계주도로 이후 장기표계와 청년창당 제3세력과 합당하여 총선에 출마했다. 이후 득표미확보로 정당법에따라 해산함. 야권지지표를 획득분산함으로 새누리당에 결과적으로 유리하게 되면서 야권연대 지지세력에게 비난을 받고있다. [1]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야권표를 분산/ 야권지지 표를 획득하며 결과적으로 여대야소정국이 되었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손 안 대고 코 푼 격.

2 역사

민주통합당의 결성과 총선 공천과정에서 배제된 한광옥 전 의원이 김대중계, 호남지역의 구 중진들을 끌어모아 민주통합당을 탈당하여 결성한 정당. 창당 과정에서 국민생각 창당대회 직전 뛰쳐나온 장기표(녹색통일당을 창당 추진중이었다)를 영입하는가 하면 2012년 3월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 준비 과정에서 청년세력이라 주장하는 제3신당과 합당하여 정통민주당을 결성,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참여하였다.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지역구 후보 31명, 비례대표 후보 7명을 공천했다. 그러나 정당득표율은 0.2%를 기록하며 강제 해산은 확정, 게다가 박빙 지역 쪽에선 의외로 득표율이 높아서 야권 성향 유권자들에게 분산효과가 나타나 새누리당 후보에게 지역구를 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예를 들면, 진보당이 출마한 서울 은평구 을에선 2.1%, 경기 의정부시 을에선 5.5%를 기록했다. 두 지역 모두 이 비율을 합쳤으면 야권연대 측이 이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야권 입장에선 확실한 팀킬. 서대문구 을도 비슷하다. 그렇게 정통민주당이 꽤 득표했고 새누리당이 당선된 곳이 5곳 정도 있고, 새누리당이 전체 300명 중 턱걸이 과반인 152석을 얻은 점 등을 보면 여소야대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여대야소가 되었다. 통진 2석과 민통 3석이 날아갔다고 보는데 만약 이게 아니었으면 민통 130석에 통진 15석으로 새누리 148석과 팽팽한 대결구도를 펼칠 수 있었다. (더구나 무소속 당선자 3명중 2명이 호남이다) 147대 149라면 말그대로 무시무시한 대결구도가 펼쳐질 뻔 했다. 반면 상대 진영에서는 이로서 이재오, 정두언 같은 친이계가 생환하고 천호선, 홍희덕 같은 중량있는 후보들이 낙마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당의 홍보는 당명에서부터 느껴지는 대로 한민당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정통 야당"으로서 신익희, 조병옥, 장면, 윤보선, 김대중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주장하였다.

분당으로 민주통합당 지지자들에게서 정통민주당은 비판받았으며[2] 총선 이후 사태를 막지 못하고 총선에서도 참패한 민주통합당 지도부(특히 한명숙 등의 친노 계파)도 같이 까였다. 게다가 똑같이 공천불복, 탈당불사를 외쳤던 김무성 전 의원을 비롯한 서울과 PK 등지의 친이계 새누리당 공천 탈락자들을 결국 입다물고 지원을 하게 만든 새누리당의 낙천인사 관리와 대조되어 더 까이고 있다[3]유정현[4](새누리당 후보는 미래희망연대 출신 김정), 인천광역시 남동구에서 무소속 이윤성(남동갑), 국민생각 이원복(남동을), 경기도 수원시을(권선구)에서 무소속 정미경 등 공천 반발로 나온 후보들이 표를 갈라먹어서 새누리당 후보가 낙선한 예가 있다. 특히 새누리당쪽은 정통민주당처럼 많아야 5%씩 갈라먹은 게 아니라 10~25%씩 거하게 분산되었다. 그렇다고 나온 후보들은 한광옥 대표나 국회 부의장까지 지낸 김덕규 후보등의 경우에는 이미 새로운 인물들이라 보기엔 힘들었고 [5][6].

다만 같은 퇴물들이라도 친노쪽 퇴물들은(예를 들면 이부영) 푸쉬해줘서 형평성의 문제가 있긴 했지만. 게다가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으로 전국적인 화제가 된 광주광역시 서구 을의 경우는 성악가를 후보로 내세워서[7] 과연 후보 심사를 하긴 한건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 결국 유효득표율에 미치지 못해 강제 해산됐다.

평화민주당에 이어 정통민주당까지 실패하면서 호남을 연고로 하는 민주당계의 제2정당을 만드려는 계획은 번번이 무산되었다[8]. 지역에서 잘 알려진 당선 가능성이 있는 후보는 무소속으로 나오지 군소정당 후보로 나오는 길을 잘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호남 연고 정당의 정착 시도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안철수, 김한길과 천정배, 정동영, 박지원이 反盧의 기치 아래 연합한 국민의당에서 재시도되게 된다.

한편 정통민주당을 세웠던 한광옥은 제18대 대통령 선거 시즌이 되자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장기표는 이후 합리적 진보를 표방하며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 박범진 전 의원, 주대환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 의장 등 33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한 사회민주주의포럼(사민포럼)도 2014년 12월 '왜 지금 사민주의인가'라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개최하였고, 사민포럼은 2015년 상반기 창당을 목표로 삼고 있다. 2016년 창당준비위원회를 출범한 사회민주당(한국)이 사민포럼 정당이다.
  1. 정통민주당은 야권연대 참여정당이 아니었다. 이는 당시 진보신당도 마찬가지이다(#).
  2. 오죽하면 수년만에 反노무현계 호남 정치인을 깔 때 쓰는 난닝구라는 멸칭이 수면 위로 다시 올라올 정도.
  3. 물론 새누리당 역시 서울특별시 중랑구갑의 무소속
  4. 전 SBS 아나운서 출신, 당시 현역의원(초선)이었으나 공천탈락에 불복하여 탈당했다.
  5. 김덕규, 한광옥 같은 인물은 그래도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인물이란 평을 받기도 했었지만 지역구 지지율이 압도적이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돌아가신 분 관장사는 어떻게 설명할건가? (당시 민주통합당의 친노진영의 관장사도 했었다. 그래서 박지원 최고위원이 이를 제지.) 그는 정치 참여 경력이 다른 동교동계보다 꽤 터울지긴 하지만 비서실장까지 지낸 이력이 있어, 동교동 비토론자에겐 신나게 까이지만 야권연대나 당의 결속에 악영향을 주진 않았다.
  6. 더군다나 열린우리당의 창당과 17대 총선으로 인해서 동교동계의 반 정도는 낙선ᆞ정계은퇴를 해서 존재감을 제대로 잃은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DJ가 사망한 이후에는 이런 경향이 더 심해졌다..
  7. 사실 이건 국민중심당2006년 서울시장 후보 선례가 있다. 다만 그쪽은 국립 한국예술종합학교교수 직함도 달고 있었고 음악원장을 역임한 커리어도 있다.
  8. 물론 현재 사분오열된 진보쪽 정당들도 각각의 지지율은 그리 높지 않지만, 적어도 원내에 진출하기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