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군/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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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 홍주목 지역

1.1 홍성읍 (洪城邑)

소재지는 오관이다.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1]대전지방검찰청 홍성지청[2], 홍성세무서[3][4], 충청남도 홍성교육지원청, 홍성경찰서, 홍성소방서, 군부대[5], 홍성교도소[6], ..Etc. 각종 관공서가 모여 있는 홍성군의 중심지로, 오관리에 청과 사무소가 있다.[7] 홍주읍성[8], 홍주향교, 홍주의사총 등도 홍성읍에 있다.

홍성역에서 조양문 로터리까지 동서(東西)로 이어진 '조양로(路)'는 홍성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이며, 특히 이 길의 서쪽 편과 맞닿은 골목길인 명동거리(!)[9]에는 갖은 상점들이 모여 있다. 롯데마트CGV(4관, 568석)가 입점한 건물의 1층 한편에 홍성종합터미널이 있다.

남장리에는 청운대학교, 혜전대학교, 한국폴리텍Ⅳ대학 홍성캠퍼스와 학생 원룸이 자리 잡고 있다.

오관리에 상설시장[10]이 있으며, 대교리의 5일장[11]은 날짜의 끝자리가 16인 날에 이 열린다.[12]

1.2 갈산면 (葛山面)

면소재지는 상촌리이다. 김좌진 생가가 있다. 서해안고속도로 홍성IC가 있다. 29번 국도를 통해 서산시 고북면, 40번 국도를 통해 예산군 덕산면과 접한다.

1.3 금마면 (金馬面)

면소재지는 부평리이다. 장항선 화양역이 있지만 여객 취급은 하지 않는다. 향후 화양역에서 서해선 철도가 분기/합류할 예정이다. 616번 지방도를 통해 예산군 응봉면과 접한다.

1.4 장곡면 (長谷面)

면소재지는 도산리이다. 예산군 광시면, 청양군 화성면, 비봉면과 접한다.

마한시대엔 沙良(사로)라고 불렀고
백제시대엔 沙良(사라)또는 沙尸良(살라)라고 불렀다. 尸(시)은 향찰로는 ㄹ받침을 의미하고 良(량)은 '라'라고 읽어야한다. 마한시대에는 良(량)을 '로'라고 발음하는데 재미있는것은 일본어로도 良(량)을 '로'라고 발음한다는 점이다.

자세한 내용은 고유어/지명 참조.

고려시대에는 여양현(驪陽縣)으로 불렸으며 여양 진씨의 시조 진총후(陳寵厚)가 인조4년(1126년) 이자겸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신호위대장군(神虎衛上將軍)에 오르고 여양군(驪陽君)으로 봉해진 기록이 있다.

1.5 홍동면 (洪東面)

면소재지는 팔괘리이다.

국내 대안 교육, 유기농업의 중심지. 이찬갑[13]과 주옥로 선생이 1958년 이 지역에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홈페이지)[14]를 설립한 이후 마을 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면단위 벽촌임에도 평균 거주 연령이 매우 낮다. 마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친환경 농업과 협동조합 운동을 이점으로 본 도시인들이 다수 귀농했기 때문.

면단위 벽촌임에도 유치원부터 대학까지의 교육 기관이 모두 한 마을안에 있다. 갓골어린이집, 홍동초등학교, 홍동중학교,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고등부,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전공부[15][16]. 그러나 흔히들 생각하는 교육 기관을 상상해서는 안된다. 홍동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니 여느 시골 학교와 비슷한 분위기일 지라도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는 이름에서도 보이다시피 '농업학교'다. 세간에는 대안학교로 유명하다. [17] '더불어 사는 평민'을 교육 목표로 농업, 전인 등 다양한 교육을 한다.

홍동의 마을 운동은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최초의 협동조합이 홍동, 풀무학교에서 시작되었다. 시골에 있는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시내에서 학용품을 사와 학교 가판대에 무인판매를 했다고.[18] 그것이 발전되어 신협, 생협으로 마을에까지 뻗어나갔다. 또 국내에서 가장 큰 유기농업 단지가 홍동에 있는데 이 유기농업(친환경농업)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작한 곳이 이 풀무학교다. [19]

이처럼 홍동에서 풀무학교를 빼면 남는 게 없을 정도로 마을에서 이 학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우선 마을 주민들 중 다수가 이 학교의 졸업생으로 여느 청년들처럼 도시로 가지 않고 마을에 남아 농사를 짓는 경우가 많다. [20] 그러나 보통 마을 주민의 자녀가 대부분인 홍동중학교에서 풀무학교로 진학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시내의 홍성고, 홍성여고, 홍주고로 진학하는 경우가 대부분. 풀무학교는 전국에서 학생을 받는다. 참고로 남녀 공학이며 기숙학교다. 풀무학교 고등부의 전교생이 90여명 쯤 되고 거기에 풀무학교 전공부(또한 기숙학교다)로 청년들이 들어오는 걸 생각하면 청소년부터 청년 인구가 마을에 상당히 많이 거주하는 셈이다. 학원도시?

평균 거주 연령이 낮아지다 보니 마을운동이 활발하다. 마을 도서관, 마을 출판사, 논생태연구소, 소비자생활협동조합 등 마을 기관들이 활성화 되어 있다. 젊은 사람들도 많고 유기농업 기술도 많이 보급되어 있어 초여름 홍동에 가면 손모내기를 하는 젊은이들 무리를 볼 수 있다. 오리 농법은 또 다른 구경거리

전공부에는 소수이긴 하지만 해외 유학생[?]도 있다.

이 처럼 마을 분위기가 자연 친화적이고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다 보니 2012년 비례대표 선거에서 0.48%의 득표율로 정당 해산이 결정된 녹색당에서 재창당대회를 열 때 홍성에서 했다고 한다.# 홍동이 녹색당의 성지라고카더라.[21] 그러고보니 녹색당의 이념과 홍동의 성향이 매우 비슷하다.

1.6 홍북면 (洪北面)

면 소재지는 대동리 이며, 대동리 일부, 신경리, 상하리 일부에 내포신도시가 있다. 그리고 신경리에 내포신도시 홍성주민들을 위한 홍북면사무소 출장소가 있다. 참고로 최근 인구가 증가해 읍 승격을 앞두고 있다고한다.

2 구 결성현 지역

2.1 광천읍 (廣川邑)

홍성군 남쪽의 읍. 읍사무소 소재지는 신진리이다. 홍성군 남부와 보령시 북부 지역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홍성군과 보령시의 중심핵 3개를 꼽으라면 홍성,대천,광천이 있는데, 한때는 이 셋 중에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었다. 옛날부터 부자들이 많이 살아 '광천 가서 돈자랑하지 마라'라는 말도 있었지만, 지금은 홍성읍에 밀려나 있다. 여담으로 홍성읍 내의 중심가의 건물 소유주 중에 광천 출신이 적지 않다고 한다.

옛 결성군에 속했던 지역으로 서해 도서지역의 수산물과 육지의 농축산물이 모여 바꾸어지는 큰 장이 형성되었다. 광천읍 옹암리에 위치했던 옹암포구까지 배가 들어왔다. 또한 옹암리에는 조선 철종 때부터 설립되었던 보부상의 단체인 원홍주등육군상무우사(元洪州等六郡商務右社)'의 임소가 있었으며,이 임소는 장시가 열리는 지역 마다 설치되어 시장을 운영하는 기능을 하였다. 이로 인해 광천지역은 주변 도서민들과 어민들 그리고 노동자와 상인들을 위한 '서비스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당시 옹암리 포구에는 5~6곳의 크고 작은 유곽과 담배가게, 주조장, 금방앗간이 있었으며, 광천읍에는 주변지역에 물품을 유통하는 시멘트와 소주 등의 대리점이 존재하였다. 예산에 이어 호서은행의 두번째 지점이 들어서기도 했었다. 이에 당시 옹암포구에서는 “개도 500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독배에 시집 못가는 이년의 팔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성황기를 맞이하였다.

또한 옹암포에는 5~6명의 객주가 있었으며 이들은 서해 5도(백령도,연평도,대청도,소청도,우도)와 원산도, 안면도, 추자도 등지에서 수확된 농·수산물들을 교통의 이점을 이용하여 당진,서산, 태안, 예산, 홍성, 청양, 서천 등지로 판매·유통하였다. 이렇게 성황기를 맞이하였던 광천읍과 옹암리는 1980년대에 들어 쇠퇴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옹암포는 조수간만의 차이가 크고 수위가 낮아 광천장(4일,9일)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안장날’(3일,8일)인 옹암포구에서 하루를 묵어야 다시 바다로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경제적 효과가 컸으며,이러한 이유로 옹암포구에는 평저선의 출입이 잦은 곳이었다. 하지만 옹암포구는 산사태와 사금채취 사업으로 인하여 토사가 유입되면서 수위가 더 낮아지게 되었고,1970년 태안반도와 안면도 사이의 연륙교가 개통되면서 안면도 사람들이 서산장을 보러 다니게 되었으며, 동력선의 보편화로 인해 안전한 대천항으로의 입항이 가능해졌다는 원인과 옹암리에서 하루 묵고 광천장을 이용하는 불편함을 겪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대천장으로의 이동이 많아졌으며,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이유는 이렇게 서서히 침체기를 겪던 광천과 옹암리는 1997년 보령방조제 물막이 공사로 인하여 더 이상 배가 들어오지 못하면서 쇠퇴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인접한 보령시의 발전과 도로교통의 발달, 농촌지역의 인구감소와 맞물려 광천의 상업적인 기능은 현저히 약화되었다.

광천이 홍성보다 인구가 많았다는 증거중에 하나가 학교 수였는데 초등학교는 광남초등학교, 광신초등학교, 덕명초등학교, 광동초등학교, 삼육초등학교, 대평초등학교 까지 무려 여섯군데, 중학교는 광흥중학교, 광천중학교, 광천여중, 삼육중학교 네 곳, 고등학교는 광천제일고[22], 광천고등학교, 삼육고등학교까지 세 곳이었다. 삼육대학교가 광천에 유치되었더라면 진정한 교육의 도시가 되었을..아니 삼육재단 소유의 광천이 되었을지도?

현재는 인구 감소로 인하여 취학 인구가 줄어 2016년 현재, 초등학교는 덕명초등학교와 광천초등학교 두 곳으로 중학교는 광천중학교과 광천여중이 광천중학교로 통폐합되었거나 그럴 예정에 있고 새 학교가 구 광동초등학교, 구 광천중학교 자리에 신축 공사 중에 있다. 학교는 인구대비 수로 많았지만 젋은 층이 대거 홍성 내지는 내포로 많이 흡수되어 초등학교에 취학하는 학생수가 감소하게 된 것이 통폐합의 원인이었는데 문제는 이 학교 통폐합을 놓고 지역주민들간에 편가르기가 상당했다는 것. 심지어 모 군의원[23]은 광천읍 소속이면서도 자신의 자제는 홍성지역으로 전학시켜 구설수에 오르기도. 진통끝에 덕명초등학교와 애초에 사립재단 소속인 삼육초등학교를 제외한 나머지는 통폐합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버렸다. 지역주민들 사이에서 광천은 단합이 안되는 곳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았는데 그에 대한 안좋은 사례로 삼육대학교 유치 실패와 함께 거론되는 것이 바로 이 건.

매현리에는 "그림이 있는 정원"이라는 사설 수목원이 있는데 홍성 8경에도 올라 있는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과거에 운영난으로 폐원될 위기도 있었지만 어쩌어찌해서 명맥을 잇고 있는 모양.

한 때, 아시아 최대의 석면광산이 있었지만 발암물질인 석면의 위험성 때문에 현재는 폐쇄되었고 광산 인근 지역 주민들에 대한 역학 조사후, 현재 복원 공사가 한창이다.

광천읍의 중심이라 할수 있는 광천오거리는 주야간에 교통사고가 많기로 유명하였고 사거리 시절에는 청양방면으로 가는 도로가 좁아 5톤 이상의 트럭이나 버스가 진입하게 되면 교통정체의 진수를 보여주는 헬게이트가 열렸다. 과거에는 청양통이 사거리에 인접해있지 않은데다가 일반적인 2차선 도로보다 폭이 좁아 청양통의 모퉁이에 자리잡은 한 집은 정기적으로 지붕을 수리해야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게다가 오거리에 신호등이라고는 주황색 경고등이 전부였던 터라 심심하면 새벽녘에 '쾅'하는 소리가 들렸을 정도. 대낮에도 임의로 진입한 차들간의 접촉사고도 빈발했는데 광천에서 청양으로 빠지는 4차선 외곽도로의 완공과 2015년에 광천오거리를 로터리로 변경하는 공사가 끝나 현재는 옛 일이 되었다.

롯데리아가 2015년에 광천에 입점하였다~!! 이쪽 사정에 정통한 분에 따르면 애초에 시단위가 아니면 하지 않는게 상식인데 시장의 포화로 인해서 롯데리아가 확대를 위해 읍단위로 가맹점 조건을 완화했고 그 때문에 광천에도 오게되었다는 결론. 최소한 광천을 위시한 홍성군 남부지역과 보령 천북, 청소 지역은 먼 보령이나 홍성읍내까지 안가도 롯데리아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광천에 입점한 롯데리아가 얼마나 버티냐가 관건이지만..

광천읍 담산리의 일부를 점유하고 있는 오서산은 차령산맥에 소재한 산 중에서 계룡산[845m]다음으로 높은 산[791m]이다. 산 정상에 억새 군락이 있어서 중부권 식생의 수직적 분포를 보여주고 있어서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곳[24] 인데다가 중부권에 억새군락이 있는 산도 별로 없어서 2000년대 이후로는 이를 구경하기 위해 등산객들이 많이 방문하고 있다. 오서산 관광과 광천 지역경제와 연계하려는 움직임도 있지만 오서산에 인접한 보령과 비교하면 많이 밀리는 편[25]. 홍성군이 내포에 신경을 쓰느라 이쪽을 등한시하는 것도 원인이 있는 듯.

새우젓과 김[26]으로 유명한 광천이지만 수산물외에도 쌀과 우시장, 마늘, 도자기도 유명했다. 쌀은 지역주민들 사이에서는 싸전으로 불리고 있는데 현재는 상설 매장 4곳만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장날 한정으로 싸전이 열린다. 우시장은 현재 광천버스터미널 옆 주차장 자리에 열렸는데 역시 장날 한정으로 열렸다. 장날 이른 아침에는 소를 싣고 온 트럭과 터미널의 버스가 한데 뒤엉켜 북새통을 이뤘는데 환경문제[27]와 공간 협소로 인해 외곽으로 이전하였고 도자기는 시장 한가운데에 약 3400평 규모로 자리잡은 충남차이나라는 업체가 있었다. 현재 광천 시장에서 젓갈 시장 옆에 자리잡고 있는 주차장의 대부분이 전 충남차이나 공장부지[28]였다. 한 편, 마늘은 김전만큼은 아니지만 바로 옆에 마늘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점포가 남아 있으며 장날 한정으로 성황 중이다.

홍성군이 군단위에서 전국구급 양계로 유명한데는 삼화원종의 지분을 무시할 수 없다. 일반인들한테는 닭고기 하면 하림을 떠올리겠지만 이쪽은 그 닭고기가 될 병아리를 공급하는 곳이고 규모로는 전국 1위다. 광천읍 신진리에 본사가 있다.

건달 및 폭력조직 경력있는 사람 한정으로 다른 의미로 유명한 곳이 광천이다. 쉽게 말해 충청도판 벌교.

2014년에 개봉한 영화 피끓는 청춘의 촬영지이기도 했다. 이전에도 몇몇 드라마에 잠깐씩 나오기도 했었지만 제대로 된 영화 촬영지로는 처음이 아니었을까. 2013년에 촬영이 이루어졌는데 비하인드 에피소드. 촬영전에 사전 답사를 통해 옛 건물이 많이 남은 광천을 촬영지로 낙점하였는데 촬영이 이루어지기 전, 광천 오거리를 중심으로 전선의 지중화 사업과 도로 확장으로 인해 도로변에 위치한 건물들의 상당수가 철거되었고 대부분이 연식이 오래된 건물들이었다는 것. 이 때문에 광천읍의 촬영장소가 싸전 인근과 역전통으로 대폭 축소되었고 답사한 스텝이 이때문에 곤욕을 치뤘다는 한 분식집 가게 사장님의 증언. 4년전만 일찍 시작했어도 제법 좋은 그림이 나오지 않았을까. 한 편, 촬영 당시 광천을 비롯하여 인접 읍면에 사는 학생들이 촬영현장에 몰려드는 바람에 평소에는 낮이고 밤이고 한산했던 동네가 모처럼 활기를 띠기도.

2.2 결성면 (結城面)

면소재지는 읍내리이다. 1914년 홍성군에 병합된 옛 결성군의 중심지였다. 결성향교, 결성산업단지, 한용운 생가가 있다.

2.3 구항면 (龜項面)

면소재지는 오봉리이다. 29번 국도21번 국도가 지난다.

2.4 서부면 (西部面)

면소재지는 이호리이다. 홍성조류탐사과학관, 새조개로 유명한 남당항이 있다. 96번 지방도를 통해 서산시 부석면, 40번 국도를 통해 보령시 천북면과 접한다.

2.5 은하면 (銀河面)

면소재지는 대천리이다. 화봉리와 장척리에 산업단지가 있다. 서해안고속도로 광천IC의 진출입로는 은하면 장척리에 있다.

여담으로 이곳에 대판리가 있는데, 아쉽게도이라고 쓴다.
  1. 재판관할구역: 서천군, 보령시, 홍성군, 예산군 대전지방법원 - 홍성지원 누리집
  2. 관할구역: 보령시, 홍성군, 예산군, 서천군 대전지방검찰청 홍성지청 누리집
  3. 관할구역: 청양군, 홍성군 홍성세무서 누리집
  4. 이에 관해 좀 더 설명을 덧붙이면 일제강점기 때부터 홍성세무서가 있었고 이웃한 서산은 ― '92년에 홍성세무서 서산지서가 설치된 ― 홍성세무서의 관할구역이었다. 헌데 '89년에 이미 로 승격한 서산의 세(勢)가 홍성보다 커졌고, 세수(稅收)에서도 ― 대산 석유화학단지 등의 영향으로 ― 홍성을 앞지르게 된지라 서산이 세무서의 이전을 강력히 주장하면서 세무서를 지키려는 홍성과 다소의(?) 설왕설래가 있었다. 이후 홍성세무서 서산지서는 2000년에 서산세무서로 격상되어 서산시, 태안군을 관할하게 되었다.
  5. 향토사단의 연대급 제대
  6. 나는 꼼수다》의 정봉주가 이곳에서 1년간 수감생활을 하였다.
  7. 홍주읍성 복원 사업과 맞물려서 군청은 적절한 이전지를 물색 중이며, 읍사무소는 '16년에 광천통 구(舊) KT&G 홍성지점 위치로 보건소와 함께 이전할 계획이다.
  8.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홍성홍주읍성
  9. '명동골목'이라고도 많이 부른다.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의 이름을 차용한 것이 맞으며, 실제 '명동'과 비교한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여하튼 이곳이 나름 홍성에서 번화한 거리인지라 주민들 사이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붙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한때 '명동'이라는 명칭이 온당치 않다고 여긴 에서 이 거리에 '만해로(路)'라는 이름을 붙이려 하였고, 이후엔 입구(오관리 하나빌딩 왼편)에 만해 한용운 동상까지 설치하였었으나 주변에서 이곳을 "만해로"라고 부르는 주민은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도로명주소제 시행 이후에 "만해로"라는 명칭은 이곳이 아닌 홍성군 결성면 만해 한용운 선생의 고향길에 쓰이게 되었다. 더불어 월산리 아파트단지가 조성된 2000년대 이후론 이 인근이 좀 더 ― 홍성에 국한하여 ― '번화가'에 가까워졌다.
  10. '매일(每日)시장'이라고도 부른다. 자체적으로 치킨을 파는 닭전골목이 유명하니 치킨 좋아하면 찾아볼 것
  11. 흔히 '큰시장'이라고 부른다.
  12. 31일까지 있는 달의 31일에는 열리지 않으며, 이 5일장의 규모가 제법 큰지라 5일장이 열리는 날엔 상설시장이 한산해진다.
  13. 호는 밝맑. 무교회주의 운동가이자 농민운동가, 독립운동가이며 오산학교 설립자인 이승훈 선생의 조카 손자이다.
  14. 줄여서 풀무학교. 풀무원과 혼동하지 말자.
  15. 전공부는 비인가 2년제 전문대다.
  16. 인터넷에 '풀무학교', '풀문농업고등기술학교'를 검색하면 '고등부'가 나온다. '전공부'를 찾기 위해서는 그냥 '전공부',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환경농업과' 로만 검색해도 나온다. 전공부 홈페이지는 여기
  17. 고등부는 교육부의 정식 인가를 받은 사립학교다.
  18. 지금도 풀무학교엔 무인가판대에서 학용품을 판매한다.
  19. 국내 친환경 식품 유통 기업 풀무원과 한살림, iCOOP 모두 이 풀무학교와 모종의 관계가 있거나 풀무학교에서 영향을 받았다. 창업자가 풀무학교 졸업생이거나 학교 이사라거나 하는 식.
  20. 일반적인 농업학교 졸업생 중 실제 농사를 지으려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다.
  21. 카더라가 붙은 이유는 지지도는 딴판이라... 녹색당 지못미
  22. 전 광천상고 혹은 광천정보고.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실업계 고등학교였고 충청권에서는 강경상고만큼 유명했었지만 현재는 일반계와 실업계를 혼성하여 운영하는 중. 졸업 시즌에는 정문 앞에 졸업생들의 취업 축하 현수막이 걸려 있어서 근본이 실업계임을 인증.
  23. 인구가 감소된 원인중에 하나가 취학아동의 감소였는데 당시만 해도 지역 학교보내기 운동이 한창이었다. 그런데 해당 지역 군의원이 자녀를 광천에 안보내면 무슨 얘기가 나올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4. 지구 온난화와 관광객 유입으로 인해 억새군락이 점차 축소되어가고 있고 광천읍의 몇몇 사회단체들이 매년 정기적으로 잡목제거와 환경 정화 활동으로 유지에 안간힘이다
  25. 서해안 최대규모의 해수욕장인 대천해수욕장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볼 거리는 이쪽이 더 많다
  26. 정확히는 김의 산지가 아니고 과거 보령, 서산에서 수확된 김이 모이는 집산지였다. 현재 광천기차역 인근에 김전이라는 전용 시장이 따로 있다
  27. 소 배설물
  28. 1960-70년대 기준으로 읍내에 3400평이 공장부지면 당시 우리나라 경제규모를 생각해보면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현재 난다긴다 하는 대기업들이 처음에는 무엇으로 시작했는지를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