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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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洪準杓, 1954년 12월 5일 ~ )

역대 대한민국 경상남도 도지사
34대 김두관
권한대행 임채호
35~36대 홍준표(현직)

1 개요

대한민국정치인. 前 4선 국회의원이자 현재는 경상남도 도지사에 재임 중이다. 검사 시절에는 그야말로 성역이 없이, 검찰 법무부의 수뇌부와 선배 검사 등을 줄줄이 수사했던, 당시 검찰에 몇 안 되었던 소신 검사 중의 한 사람이었다. 작은 칼을 주면 작은 칼을 휘두르고 큰 칼을 주면 큰 칼을 휘두를 사람

2 학창시절

1954년 12월 5일 창녕군에서 출생[1]. 영남고등학교를 거쳐 1973~1977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했다.

땡전 한푼 없던 학생 시절에 고려대학교 구내의 서울신탁은행에서 일하던 여인에게 반하여, 전전반측 잠못 이루다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겨우 그녀와 만남을 가졌다고 한다. 첫 만남의 자리에서 불문곡직하고 "형편이 되는 대로 같이 살자"는 말로 프로포즈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얼마 안 가 그녀와 결혼을 하였다.

대학 시절 한때 학생운동에 전념했고,사법시험에도 몇 번 응시하였다. 사법시험에 떨어진 어느 겨울밤에는, 아버지가 있던 울산에 내려갔는데, 거기서 바닷가 모래밭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플라스틱 목욕탕 의자에 앉아 있던 일당 800원짜리 현대조선소의 경비원이었던 아버지를 보고서 눈물을 흘리며 불공평한 세상을 바꿀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법시험에는 계속 떨어졌고, 그래서 군대에 끌려가게 되었다. 당시 워낙 말랐기 때문에, 체중미달로 14개월의 방위병 복무를 명 받았다.[2] 복무장소는 처가가 있던 전라북도 부안의 해안초소였다.

그렇게 단기사병으로 군복무를 마친 후, 다시 사법시험에 도전하였다. 아내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덕분에 스물아홉살 때인 1982년에 제24회 사법시험에 드디어 합격하였다.

3 법조인 시절

홍준표 본인과 상대방의 말이 크게 엇갈리는 부분이 많으니 이 문서도 참조만 할것.

1984년에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청주지검 검사시보로 부임하였으며, 부산지검, 광주지검, 서울지검 등에서 검사로 재직하였다. 검사 부임 초기 1년간 2000건의 사건을 해결하였다.

1987년 6월 10일 부산지검 울산지청 검사를 거쳐, 1988년 8월 26일에는 서울지검 남부지청 특수부 검사로 부임하였다. 서울지검 남부지청 특수부에 재직 중이던 1988년 11월 23일에는 당시 치안본부 정보2과 분실장이던 서정희(徐政熙)를 구속기소하여 주목을 받았다.[3] 이어 전두환의 외조카인 기업인 김영도가 다른 기업인들과 짜고 구속된 모 기업인에게 석방시킨다는 조건으로 뇌물수수를 받은 사실도 적발하여 구속 기소했다. [4]

1992년 8월 4일에는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 검사로 부임하였다. 그 후 파키스탄인 폭력조직 주비파 두목 임란 사자드외 13명을 적발, 체포하여 그해 9월 22일 임란 사자드 외 3명에게 사형과 나머지 10명에게는 징역 15년형을 구형하였다.[5] 또 다른 파키스탄인 조직폭력배인 비키파의 사자르 아크바르 알리(당시 19세) 등 10여 명에게는 징역 15년형을 구형하였다.

1992년 10월 21일에는 보험금 7억 원을 노리고 자신들이 운영하는 지하 나이트클럽에 방화를 한 폭력조직 목포파 부두목 유희호(兪熺昊)와 행동대장 홍동표(洪動杓) 외 6명을 방화혐의로 추적하여 체포, 구속하였다. 1993년 5월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 주임검사로 보직되었다.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재직 중이던 1993년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했다.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그는 안기부 기조실장을 지낸 엄삼탁, 천기호(千基鎬) 경찰청 치안감, 그리고 대전지방검찰청 모 검사 등의 비리, 뇌물수수혐의를 입증하고, 이들을 모두 구속 기소하였다. 당시에도 협박과 압력을 많이 받았으나, 이를 모두 무시하고 그대로 처리하였다.

심지어는 상사인 이건개 당시 대전고검장을 구속 기소하기도 했다. 돈을 받고 슬롯머신 업자에 대한 내사를 무마해줬다는 혐의였다. 그 후 이건개 전 의원은 뇌물수수죄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6]

1993년 5월에는 슬롯머신 사건과 동시에 정덕진의 빠칭코 사건의 수사를 전담하기도 했다. 5월 5일부터는 빠칭코의 대부인 정덕진을 구속수사하고 전담을 맡았다. 이들을 뒷골목 깡패가 아닌 '초보적 마피아'로 규정하고 치밀하게 수사하였다.

독버섯 조직폭력배가 자라나는 토양(자본주의) 위에서는 비닐하우스(비호세력)가 항상 보호막을 치고 있습니다.[7]

정덕진을 수사하면서 고위층과 과거의 상관인 변호사들로부터 "다칠 수 있다"는 질책과 함께 "가족을 몰살시키겠다"는 협박전화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협하지 않고, 정덕진을 구속수사하여 빠칭코 관련자들을 색출, 적발하였다. 정덕진에 대한 수사를 지휘하던 당시 그는 이탈리아 사정검사의 대부 피에트로 검사의 사정활동 기사를 자신의 사무실에 항상 펼쳐두었다. 이때 성역없는 수사로 화제가 되었으나, 검찰과 법무부에서는 한때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슬롯머신 수사의 절정은 "6공의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을 구속 기소한 것이었다. 슬롯머신 업자에게서 5억 원의 돈을 받은 혐의를 포착한 것이다. 박철언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법원은 박철언의 결백하다는 주장을 외면했다. 결국 박철언은 국회의원 뱃지를 반납하고 1년 4개월 동안 감옥에서 살아야 했다. 이러한 스토리는 드라마 '모래시계' 등의 작품소재가 되었기에, 그 후 홍준표는 '모래시계 검사'라는 애칭을 갖게 되었다. 사실, 홍준표 외에도 은진수 검사가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하였다. 그러나, 은진수는 시간이 흘러 뇌물을 받고 구속된다.하지만 자신도 결국 실형을 받게 된다

그러다가 1994년에는 법무부 특수법령과 검사로 부임하였다. 같은 해 9월에는 안기부 국제범죄수사지도관이 되었다. 이후 홍준표는 1994년 11월부터 1995년 9월까지 안기부로 파견을 나갔다.[8] 안기부장 특별보좌관이 된 것이었다.

1995년 9월 21일에는 법무부 특수법령과로 다시 복귀하였다. 그러다가 10월 2일 사직서를 제출하였고, 그 사직서는 10월 4일 수리되었다. 조직에서 따돌림 받으니 못 견디고 사표제출검찰을 나오자마자 바로 변호사를 개업하고 방송 출연 등에 섭외되었다.

4 정치 활동

변호사 개업 후에 슬롯머신 사건 당시 처벌 받았던 조폭들에게서 가족의 생사를 두고 지속적인 협박을 받았다. 결국 정계 입문을 다짐하게 되었고, 김영삼 대통령의 추천으로 신한국당에 입당함으로서 정치인생을 시작했다. 원래 꽤 개혁적인 인사로 분류되어 꼬마민주당이나 국민회의 입당 가능성이 점쳐졌고, 본인도 꼬마민주당 공천을 받으려고 했으나, 이기택 총재가 꾸물거리는 사이에 강삼재 신한국당 사무총장과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입당을 제의하면서 신한국당에 입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터뷰

그 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송파구 선거구로 현역 국회의원인 조순환을 꺾고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했다. 당시 젊은 나이 덕분인지 주로 소장파 역할을 맡았으며, 노동 최저 연령 상향을 발의, 통과시키는 등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1999년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하지만 불과 2년 뒤 치러진 보궐선거[9]서울특별시 동대문구을에 출마, 당선하여 국회에 복귀했다. 그리고 같은 지역구로 제17대,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면서 4선 의원을 기록했다.

2006년에는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특별시장의 경선에 나섰다. 그러나 막판에 오세훈에게 밀려서 석패했다. 2008년에는 태권도협회 회장을 지내기도 하였다.[10]

2011년 7월에는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나섰는데, 뚜렷한 조직세 없이 대표에 선출되는 기염을 토했다.[11] 이때 대의원 유효 투표 11만 4372표 명 중 4만 1666표를 얻었으며, 2위는 유승민 후보(3만 2157표), 3위는 나경원 후보 (2만 9722표), 4위는 원희룡 후보(2만 9086표), 5위는 남경필 후보(1만 4896표)가 차지했다.[12] 대표로 선출된 후 소감을 아래와 같이 밝혔다.

"계파없이 홀로 뛴 선거에서 저 홍준표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 대의원 동지들에게 감사드린다"

"현대조선소에서 일당 800원을 받던 경비원의 아들, 고리채 사채로 머리채를 잡혀 길거리를 끌려다니던 그 어머니의 아들이 집권 여당의 대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국민 여러분이 보여주셨다"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된 후, 민주당 손학규 대표에 맞서서 한나라당의 지지세를 조금씩 회복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지지율에서 민주당에 밀리고 다음해 총선 전망도 어두워지자 결국 승부수를 던지고 말았다. 2011년 12월에 “현역의원 전원의 불출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자기희생적이고 과감한 인재영입을 추진하겠다.” “현역의원과 당협위원장은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고 선수에 상관없이 의정활동과 조직활동으로 전원 재심사를 받도록 하겠다.” “재심사위원회는 전원 당외 인사로 구성해 공천심사위에 가기 전에 2단계로 심사를 진행하겠다”는 재창당 쇄신안을 내놓은 것. 그러한 쇄신안이 당내 모든 계파로부터 거부 당하자 대표직에서 사퇴하였다.[13]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동대문을에 출마하여 국회의원 연임을 노렸으나, 민병두 후보에게 밀려 석패하고 말았다. 이명박의 실정에 분노한 서울 민심 때문에 당초에 선거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지지율이 밀리는 양상을 보였고, 그것이 당연히 패배의 결과로 이어진 것. 어쨌든 앵그리 버드를 패러디하는 동영상도 찍으며(...)[14] 나름대로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총선에서 패배한 후 몇 달 동안 야인생활을 하다가, 김두관 경남지사가 사퇴하여 경상남도 도지사가 공석이 되자, 2012년 대선과 동시에 치러진 경상남도 도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거기서 야권의 권영길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어 정치적으로 완벽하게 재기했다. 이후 2014년 6월,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당선되어 현재까지 2선 도지사로 연임하는 중이다.

이러한 여러 이력 덕분에 한때는 차기 대선 후보로도 거론되었으나, 하단 문단에 있는 갖가지 논란으로 인해 2015년 이후 여론에서 대하는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며, 대권은 사실상 멀어졌다는 의견이 다수다. 지역 여론도 좋지 않은 편이라 사실상 탄핵에 상응하는 주민소환까지 고려되고 있을 정도다. 물론 탄핵은 실제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주민소환에 필요한 총 유권자수 대비 10%의 서명을 받아 2015.11월 선관위에 제출된 상태이다. 다만 20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시점이기에, 실제 주민소환이 이뤄지기 위해선 중복서명 검사 등의 필요한 절차들을 밟기 어려운 상황으로, 총선이 끝난뒤에 명단 검토 및 주민소환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홍준표 경남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의 주도로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하는 서명을 받아 선관위에게 심의를 요청한 상태이다. 주민소환은 경남 총 유권자의 10%인 27만명을 넘으면 홍준표의 소명을 받아 실시가 되는데 현재 신청 서명한 사람이 35만명이기 때문에 유력하다. 선관위에 의해 투표 공고가 나오면 투표일까지 직위는 중단된다. 이후 투표가 진행되면 총 유권자의 1/3이 투표한 가운데 과반수를 차지하면 직무가 해제된다. 만약, 해제가 되면 내년 4월 재보궐로 새로운 도지사를 뽑게 된다.#

2016년 현재 그는 정치적으로 망해가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의 수사로 인해 징역 2년 실형이 구형되었으며 1심에서 1년 6월의 실형판결이 나왔다. 처남 및 다른 주변 인물들도 연달아 수사대상으로 올라간 데다가 경상남도 지역주민들은 야권의 주도하에 홍준표 퇴진시위를 연달아 벌이고 있다.형편에 맞추어 자기 변명과 합리화로 일관한 인간의 최후답다

1심에서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추징금 1억 원을 선고받았으나 현직 자치단체장(지방관)이라는 신분 때문에 법정구속은 되지 않았다. 이에 홍준표는 항소하기로 했다.

5 도지사 도정

5.1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

항목 참고.

5.2 무상급식 중단 사태

무상급식 예산을 삭감을 강행하여 논란이 되었다. 이를 두고 무상급식의 정당성 이전에 독자적인 행위와 미성숙한 대응 때문에 안좋은 의미로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고.

5.3 경남 FC 해체 선언

항목 참고.

5.4 성완종 리스트

경남기업에서 1억 원을 수수한 혐의로 정치자금법위반 관련 재판이 진행중이다. 문제는 이 재판이 1달에 한 번 개회될 정도로 엄청나게 느리게 진행중이라서, 2015년 7월에 불구속 기소된 재판이 2016년 6월에서 7월 가량에 1심판결이 나올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시기에 기소된 이완구 전 총리의 1심판결[15]이 2016년 1월 29일이었는데, 홍준표 지사가 재판정에 처음 출석한 것이 2016년 1월 21일이다.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홍준표(62) 경남도지사에게 징역 2년을 구형을 받았다. 결국 2016년 9월 8일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되었다. 기사 형이 확정되어야 도지사 자격이 상실되지만, 1심 판결은 확정판결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직위는 유지된다. 홍 지사는 이후 반박기자회견을 열며 노상강도 당한 기분이며 저승에서 성완종 전 의원에게 물어보고 싶다고 이야기했으며 1심에 불복해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기사

5.5 공무원 골프 대회 논란

2015년 9월 5일 경남 창녕군 장마면의 한 골프장에서 경상남도와 창원시 공무원 140여 명이 참석한 골프대회를 개최했다.

'공무원 사기 vs 국민 정서'…논란 빚는 홍준표 경남지사배 '공무원 골프 대회'
홍준표 “등산·축구는 되고 골프는 왜 안돼?”…공무원 골프대회 강행

5.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이후 새누리당의 행보에 대한 분노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로 끝나자 새누리당이 무소속 신분으로 당선된 새누리당 탈당자들의 복당을 허용하여 원내 제1 여당이 되려는 시도를 하자 국민들이 당에 등을 돌려서 제2당이 된 주제에 어찌 이따위 더러운 꼼수를 써서라도 제1당이 되려 하느냐? 국민들 보기 부끄럽지 않느냐?라며 크게 분노해서 당에 직격탄을 날렸다.

하지만 국민들이 당에 등을 돌려서 제2당이 된 주제에 꼼수 운운하며 복당을 거부하는 것 또한 말도 안 되는 것이 복당신청한 의원들의 대부분이 새누리당 복귀를 이미 전제로 하고 20대 총선에서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 당선된 것을 쏙 빼놓고 자기 멋대로 일방적으로 운운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작 홍준표 도지사 말대로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국민들의 지지와 의사를 무시하는 것이다. 당장 유승민 의원만 하더라도 기자회견에서 "오늘 저는 헌법에 의지한 채 오래 정든 집을 잠시 떠나려 합니다. 그리고 정의를 위해 출마하겠습니다"라며 새누리당의 복귀를 기정사실로 하고 20대 총선에 출마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것이다.물론 그 결과는 새누리당의 시빌 워

5.7 대 여영국 경남도의원 막말 논란

2부 2편 바로 다음의 호외편 참고 단식하는 여영국 정의당 경남도의원을 보고 쓰레기라고 했다.

# 뉴스에서도 난리가 났다.

6 업적

6.1 경상남도 채무 청산

번번이 논란의 대상에 오르며 심지어 대통령에게조차도 돌려 말하기로 비판을 받았지만[16] 홍준표 경상도지사 또한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둔 것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경상남도 재정적자 청산이다. 홍 지사는 3년 6개월 동안 매일 11억 원씩 해서 총 1조 4천억 원의 채무를 경상도 소속 도재산 하나 건들지 않고 청산을 완료하였다. 이후 경남은 '튼튼한 재정기반 아래 서민 복지·미래 50년 준비사업에 진력을 다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17]

7 기타

  • 홍준표의 연관 사건 목록은 여기에 잘 정리되어 있다.
  • 2009년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선거 당시 끼어들어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총재에 외국인이 필요하다고 하셨다는 말을 공식적으로 발언하며 외국인 후보를 지지했다가 이젠 대통령이 멋대로 선거에 끼어드네? 이명박의 스피커냐? 욕만 실컷 먹고 조정원 후보가 총재가 되어버려 태권도연맹 간부직에서 사실상 매장되었다. 사실 정치인들이 각종 스포츠 단체 간부직으로 들어가 각 정당 관계자들을 낙하산으로 끼어들어버린 게 흔한 일이긴 하지만 홍준표는 대통령 들먹이며 선거를 홍보하여 더 욕먹었다.
  • 출신지역이 지역이라보니 영남권신공항에서도 노골적으로 대구경북편을 들어 부산에서의 인기는 밑바닥을 기고 있다.
  • 2015년 12월 22일, 경남선관위에게서 "박종훈 경남도교육감 주민소환" 관련 허위서명에 가담한 것으로 홍준표 측근이 고발되었다. 서명운동본부는 이듬해 1월 자진해산 했으며, 2016년 7월 8일 검찰에 징역이 구형되었다.# 측근의 허위서명이 드러나면서 항의농성을 하는 진보계열 도의원에게 "쓰레기"라는 막말과 함께 구설수에 올랐다.#

8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96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송파 갑) 신한국당41,257 (43.3%)당선 (1위)1999년 8월 의원직상실
(선거법 위반)
2001200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16대 국회 서울 동대문 을)[18]
한나라당32,095 (50.6%)당선 (1위)
2004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동대문 을)한나라당37,058 (42.7%)당선 (1위)
2008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동대문 을)한나라당37,618 (56.8%)당선 (1위)
2012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동대문 을)새누리당36,182 (44.5%)낙선 (2위)
20122012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경상남도지사)[19]새누리당1,191,904 (62.9%)당선 (1위)
2014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새누리당913,162 (58.9%)당선 (1위)
  1. 그러나 유년시절에 합천군을 거쳐 대구시로 이사했다고 한다. 초등학교는 합천에서 졸업한 걸로 보아 창녕군에서의 시간은 별로 길지 않은 듯. 본인은 창녕 군가를 몰랐다고 소회하기도 했다. 참고로 중고등학교는 대구에서 졸업
  2. 별도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방위병은 이등병으로 전역하는 신분이다. 이 때문에 훗날 한나라당 대표가 되었을 때 "한나라당 대표의 계급이 면제에서 이등병으로 올랐다" 라는 말도 생겨날 정도였다(...)
  3. 서정희는 청와대 민정비서실 대통령 친인척관리담당관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전두환의 사돈이 투자한 회사가 부도가 나자 그 회사 소유 부동산을 처분하면서 토지매매대금의 일부를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4. 취소선 친 부분은 홍준표와 언론들이 보도했으나 신빙성이 떨어지는 내용이다. 특히 여운환 씨가 국제PJ파의 두목이라는 주장은 본인이 강력히 부인하고 있으며 경찰측 자료에도 두목은 김길룡으로 나와있다. 광주 지역 국회의원들이 비호했다는 내용도 거짓으로 드러났다. 애초에 일개 조폭이 검사를 그 정도로 협박할 수 있는가도 의심되는 부분. 1989년 5월 10일에는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형사1부로 발령받았고, 1991년 2월 28일에는 광주지방검찰청 강력부 강력계 검사로 부임하였다. 이때 각지의 술집과 유흥가에 조폭들이 연관된 것을 수사하여 적발한 후, 술집에 가지도 않게 되었고, 술도 끊게 되었다. 2013년 2월초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술을 안 하는 게 아니고, 91년 3월부터 여자가 나오는 술집은 안 갑니다. 그 때 강력부 검사로 광주에 갔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 당시 광주엔 룸살롱을 거의 건달들이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검사가 그런 데 가서 술 마시고 무절제한 행동을 하면 건달들에게 약점을 잡히기 때문에 그 때부터 소위 호스테스가 나오는 술집은 안 갑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1991년 5월에는 경찰관도 손대지 못하던 광주의 깡패가 경찰관을 구타하자 이들을 적발하여 처리했고, 7월에는 건설 입찰 대가로 뇌물을 준 건설업체와 연고지역 업체끼리 담합하던 것을 적발했다. 1991년 12월에는 광주지역의 국제 PJ파와 일본 야쿠자가 연대하는 것을 포착, 12월 4일 현장을 덮쳐 이들을 일망타진하였다. 국제 PJ파 수사를 총지휘하던 당시 지역구 국회의원들, 고위 공직자, 검찰 인사, 경찰 등으로부터 협박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1992년 국제PJ파 일당 28명을 폭력행위 등으로 구속하였다. 그러자 광주 지역 국회의원 3~4명을 비롯, 당시 고위 공직자들로부터 "왜 죄없는 청년을 건드리느냐"는 등 갖가지 수사중단 압력을 받았다. 또, 홍준표가 수사하던 국제 PJ파 두목 여운환의 삐삐가 울려서 그 번호로 전화하자 경찰청 고위 간부가 연결되기도 하였다. 물론 경찰 고위간부는 그 사람이 뭘 잘못했느냐며 그에게 압력을 넣었다. 그 외에, 수사 과정에서 모함에 시달리기도 했고,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력인사와 지역 언론인 등이 다각적으로 로비를 해오는 한편 각종 음해성 제보를 상부에 보내 수사에 몹시 애를 먹었다." 경향신문 1993년 05월 17일자 23면, 사회면 참조. 이러한 로비활동에도 꿈쩍하지 않자, 일각에서는 홍준표에게 매일 밤 전화를 걸어 "석궁으로 소리소문없이 쏴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하기도 하였다. 협박전화는 그의 집과 사무실을 가리지 않고 걸려왔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국제 PJ파 집단을 전원 사법처리하였다.
  5. 이들은 대한민국 국내에서 추방되었지만 다시 부산항을 거쳐 잠입, 대한민국으로 이주한 파키스탄인, 방글라데시인 등을 상대로 폭력, 갈취를 하거나 다른 파키스탄인 조직폭력배들과 도심 난투극을 벌인 혐의를 받고 있었다.
  6. 홍준표는 1995년 출간한 저서 '홍 검사, 당신 지금 실수하는 거요'에 이 내용을 그대로 적었다. 그리고 2003년 홈페이지 ‘저서 모음’ 게시판에도 옮겨 실었다. 그러자 이건개 전 의원은 “허위사실로 명예를 훼손했다”며, 홍 원내대표를 상대로 3억 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1심에서는 홍준표 측이 승소했으나,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민사13부(조용구 부장판사)는 양측의 조정으로 사건이 마무리됐다고 2008년 10월 23일 밝혔다. 홍준표 측이 이건개가 슬롯머신 업계의 비호세력이었다는 취지의 내용 등 게시글의 일부를 삭제하고, 향후 같은 내용을 게시할 때 이건개의 이름은 이니셜로 처리하기로 하는 조건이었다.
  7. "鄭德珍 수사 洪準杓 검사 "檢事생명 걸고「배후」와 대결", 경향신문 1993년 05월 05일자 23면, 사회면 참조
  8. 당시 안기부의 운영차장 겸 기조실장 김기섭이 그의 영남고등학교의 선배라 하여 세간에서는 김기섭이 그를 데려간 것이라는 오해가 나돌기도 했다.
  9. 전임자인 김영구 의원(6선)이 위장전입을 한 게 밝혀져서 의원직 상실
  10. 유년시절에 태권도를 배워 1단을 땄다고 한다. 운동협회 회장들을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정치인이 협회장을 맡아서 분야에 대한 깊이가 없는 경우가 허다한데, 홍준표의 경우는 태권도 협회장 중 최초의 유단자였다고 한다(...)
  11. 그래도 홍준표가 범친이계로 분류되기 때문에 친이계에서 어느 정도 지원은 해주었을 것이다. 즉 홍준표 대 유승민의 대결은 이명박박근혜 사이의 일종의 대리전이라는 것이다.
  12. 남경필까지 선출직 최고위원이 됐고, 6위 박진 후보(8956표)와 7위 권영세 후보(6906표)는 최고위원이 되지 못했다. 관련 기사
  13. 처음에는 이명박 대통령에 용감히 항거하는 이미지로 당내 지지를 얻었는데, 정작 대표가 된 후에는 애매한 스탠스를 취하면서 친박과 친이 모두로부터 버림 받았다.
  14. 스트레스로 눈썹이 빠지자 눈썹문신을 하면서 진해진 눈썹때문에 '홍그리버드'(...)라는 별명도 생긴 적이 있었다.
  15. 유죄.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추징금 3천만 원. 이완구 전 총리는 이에 항소해서 2016년 4월 현재 항소심으로 넘어간 상황이다.
  16. 같은 보수당 소속이지만 홍 지사는 친이계의 실세 중 하나였기에 과거 친이계에 의해 당에서 내몰리기까지 한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홍 지사를 굳이 무리하면서 까지 옹호해 줄 필요는 없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홍 지사가 진주의료원을 폐업한 것에 대해서 지방의료원 적자는 착한 적자라고 돌려 비판하였다.
  17. 정작 도민들은 채무청산한지도 모른다. 아는 도민들도 그냥 그러려니 하는편.
  18. 16대 총선 해당 선거구 원당선자의 위장전입으로 선거무효 판결로 인한 재보궐선거
  19. 전임자 김두관 2012년 7월 지사직 사퇴(대통령 선거 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