葛文王
1 개요
신라시대에 왕위가 적통으로 계승되지 않은 경우에 그 왕의 생부나 장인 등에게 주던 직책. 조선시대의 대원군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2 상세
《삼국사기》에 보이는 갈문왕은 왕의 생부의 경우, 골정(骨正:助賁王의 부) ·세신(世神:沾解王의 부) ·습보(習寶:智證王의 부) ·입종(立宗:眞興王의 부) ·국반(國飯:진덕여왕의 부) 등이 추봉되었고, 왕의 장인의 경우, 일지(日知) ·허루(許婁) ·마제(摩帝) ·지소례(支所禮) ·내음(奈音) ·이칠(伊柒) ·복승(福勝) 등이 추봉되었다
라고 두산백과에 서술되어 있다. 하지만 왕의 생부나 장인 등이 모두 갈문왕 작위를 받은 것은 아니라고 하며, 진덕여왕의 생부 국반 갈문왕이 갈문왕 작위를 받은 마지막 사람이라고 한다.
신라의 역사는 조선의 역사만큼 대중적으로 읽히는 역사가 아닌지라 조선의 대원군과는 달리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단어였지만 대왕의 꿈에서 진덕여왕의 아버지인 국반 갈문왕이 등장해 공중파를 타면서 널리 알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갈문왕이 작위가 아니라 시호인 줄 알았다는 사람들도 많은 모양.
학자에 따라 갈문왕은 대왕(代王) ·군장(君長)을 뜻할 것이라는 등 이설(異說)도 있다. '대왕' 즉 '대신하는 왕'이라고 해석하는 쪽에서는, '서로 번갈아들며 교차되다' 라는 뜻의 갈마들다라는 순우리말이 있는 것을 근거로 삼는듯하다. 갊은 왕 → 갈문왕 의 음차라는 해석인 셈.
예를 들어서 503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영일 냉수리비에서는 지도로 갈문왕이라는 명칭이 나오는데, 이 명칭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것은 지증왕이다. 하지만 504년이면 지증왕이 즉위한지 4년이나 지난 다음이기 때문에 왜 왕이 갈문왕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없어진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갈문왕 출신으로 즉위하면 왕위에 오르고도 몇년동안 그냥 갈문왕을 사용했다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배경이 깔끔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게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