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박물원

1 개요

1965년 중화인민공화국국부천대 당시 장제스가 유물들을 대거 가져가고 그나마 베이징에 남아 있던 자금성을 고궁박물원으로 개칭해서 유물들을 전시 중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박물관이 무조건 국유 시설물이므로 굳이 국립이라는 표현이 필요 없다고 판단해서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고궁박물원이라는 현판은 자금성의 북쪽 문인 신무문에 있으며 저우언라이의 글씨라고 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관점에서는 대만에 있는 '국립고궁박물원'은 유물들을 '훔쳐가' 옛 국립고궁박물원을 사칭하고 있는 가짜이고, 베이징의 고궁박물원이야말로 옛 국립고궁박물원의 진짜 후신이다.[1] 대만 독립파들의 입장도 기본적으로는 같아야 맞겠지만 '피해자'와 '가해자' 입장이 같지만은 않을 듯[2][3]

· 시대의 중요 유물들은 대부분 대만으로 옮겨졌기 때문에 이 시대 유물들이 빈약한 상태라고 한다 고는 하지만... 워낙 많은 황실유물이 있었기 때문에 유물의 질이 대만의 국립고궁박물원에 비해 밀리지는 않는다. 장제스가 옮기지 못한 것도 상당수. 유물의 수 면에서도 160만점으로 대만에 의해 월등히 많고, 이후 발굴된 것이나 기증받은 것도 많다. 주로 과거시대의 유물을 전시해놓는데 중국의 거의 모든 박물관이 그렇듯이 사진촬영이 자유롭다.

자금성과 동일체이기 때문에 자금성을 입장하면 동시에 고궁박물원에 입장하는 것이 된다. 즉 유물들을 자금성의 건물들에 전시해 놓고 있다고 보면 된다. 다만 건륭제가 태상황에 올라 머물던 수녕궁 구역은 진보관(珍寶館)으로, 만주족 조상들에 대한 제사를 올리던 봉선전은 종표관(鐘表館)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이 구역만 각각 따로 입장료를 받는다. 진보관에는 말 그대로 고궁박물원의 유물 중 가장 귀한 것들을, 종표관에는 청나라 황제들이 수집해 놓은 세계 각국의 시계들이 있는데 모두 매우 화려하다. 유물을 볼 생각이라면 이 곳을 입장하는 편이 좋다. 다만 엄청나게 넓으므로 주의할 것.

2 소장품

  • 서화 : 14만여점

원나라 이전의 회화(繪畫) : 420점
원나라 이전의 서법(書法) : 310점
청동기 : 1만 5천여점
선진(先秦) 시대의 명문이 있는 청동기 : 약 1600여점
고대 화폐 : 약 1만여점
동경(銅鏡) : 약 4000여점
인장(印章) : 약 1만여점

  • 도자기 : 35만여점

1급 문물 : 1100점
2급 문물 : 5만 6천여점

  • 공예품

옥기 : 28,461점
칠기, 법랑, 유리, 대나무·나무·상아·뿔 조각, 문방구 등 : 101,845 건
분재 : 1,442점

  • 서적 : 19만 5천여 책

3 관련항목

자금성
국부천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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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애초에 중화인민공화국의 관점으로는 중화민국이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승계됐기 때문에 현재는 중화민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지 않고, 대만에 있는 '중화민국'은 옛 중화민국을 사칭하는 가짜이다. 따라서 각종 국립 기관에 대해서도 유사한 관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2. 다만 유물을 '중국'에 돌려주자고 주장하는 독립파도 있긴 있다.
  3. 다만 제 3자 입장에서야 중국이 1960~70년대 저지른 희대의 반달행위를 생각하면 차라리 대만으로 건너간게 다행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