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드프리 해럴드 하디

고드프리 해럴드 하디
Godfrey Harold Hardy

1877년 2월 7일 ~ 1947년12월 1일

영국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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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사진을 찍는 것을 싫어해서 남아있는 사진이 별로 없다. 또한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게 싫어서 호텔 방에 머물 때마다 거울을 수건으로 가렸다고 한다.

리틀우드와의 공동연구를 활발히 하였다. 덴마크 수학자 해럴드 보어(닐스 보어의 동생)는 이 시대의 수학자 세 명을 뽑으면 하디, 리틀우드 , 하디와 리틀우드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스리니바사 라마누잔의 능력을 알아보고 영국으로 데려와 그의 천재성을 발휘시켰다. 라마누잔과의 1729에 관련한 이야긴 유명하다.

무신론자 이면서도 신을 매우 싫어하는 반신론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일례로 하디는 폭풍우가 치는 날 배를 타게 되었을 때 리만 가설을 풀었다는 전보를 보낸일이 있었다. 배가 침몰하면 하디가 리만 가설을 풀었다는 명예를 얻게 될 것인데 신은 그것을 용납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배를 침몰시키지 않으리라는 논리였다. 결국 배는 무사히 도착하였고 하디가 리만 가설을 풀었다는 잠깐의 소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1920년대, 그는 여섯 가지의 새해 소원을 가지고 있었다.

  • 리만 가설을 풀기.
  • 크리켓 경기에서 211점을 얻기.
  • 신의 부재를 말하는 강력한 논증을 찾기.
  • 첫 번째로 에베레스트를 오르기.
  • 영-독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이분 최소 코로 영국요리 드실 분
  • 무솔리니 죽이기.(...)

출처

이는 하디의 괴랄한관심사를 잘 드러낸다.

그는 자신이 연구하는 정수론이 실생활에 쓰이지 않는 순수수학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곤 했다. 현대사회에서 정수론을 응용한 전산학이나 암호학이 얼마나 많은 방면에서 쓰이는지 살펴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하디는 또한 노년이 되자 자살을 기도하였다. 하디 말고도 많은 수학자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창의성이 줄어든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1 업적

2 어록

수학의 증명은 별자리의 단순함과 명쾌함을 따라야 하며 은하수에 흩뿌려진 성단 같아서는 안 된다.
유클리드가 그토록 좋아했던 귀류법은 수학자들이 갖고 있는 가장 훌륭한 무기이다. 그것은 체스보다 훨씬 대담한 경기라고 할 수 있다. 체스를 두는 사람은 따위의 말을 희생시키면서 경기를 풀어나가지만, 귀류법의 논리를 펴는 수학자는 게임 자체를 담보로 잡기 때문이다.
젊은 수학자는 정리를 증명하고 늙은 수학자는 책을 쓴다.
나는 수학에 흥미를 갖지만, 그것은 창조적 예술로서의 수학이다.
  1. 참고로 이건 수학이 아니라 생물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