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스 보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1921년1922년1924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로버트 밀리컨


닐스 헨리크 다비드 보어 Niels Henrik David Bohr
(1885년 10월 7일 ~ 1962년 11월 18일)

1 개요

Niels_Bohr.jpg
http://ncc.phinf.naver.net/ncc01/2010/8/3/108/0003_.jpg닐스 보어의 개인 문장
태극문장?[1]

아인슈타인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물리학자.

덴마크 출신의 물리학자.

수소의 선 스펙트럼을 설명하면서 원자의 구조에 대한 가설(보어 모델)[2]을 내놓아 1922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설명하는 과정에서 양자론을 도입했기 때문에 이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불확정성 원리를 내놓는 데 영향을 주었다.

큰 키, 큰 머리로 눈에 띄었다는 모양이다. 사진 중에는 배우 존 트라볼타를 연상시키는 사진도 있다. 운동도 즐기는 스포츠맨 타입이나 꽤 수줍어 했던 듯하다. 그래서인지 26세 때의 그를 본 어니스트 러더퍼드의 동료는 "소년 같다"고 평하기도. 중년 때는 후학들에게 꽤나 우러러 보였던 모양. 제자인 오토 프리슈[3]는 편지에 보어와 만났던 일화를 쓰면서 "신이 내 코트 단추를 만졌다"라고까지 했고, 파인만은 회의장에서 보어를 만났을 때를 "거물들에게도 보어는 위대한 신이었다"라고 회상했다.[4][5]

지금도 코펜하겐에는 보어 연구소가 자리잡고 있다. 덴마크에서 유명한 과학자다보니 집도 근사한데, 덴마크 맥주회사인 칼스버그가 기부해줬다. 거기에 수십 년 간의 관리비까지 그냥 지급해주어서 그의 후손들은 편하게 잘 먹고 잘 산다고(…). 그의 아들 오게 보어도 1975년 노벨물리학상을 받고 평생 보어 연구소에서 소장 자리를 맡았다.

그가 원자의 구조 외에 중요한 일을 한 것이 있다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모든 국가에게 개방정책 및 공동 관리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원자력의 폐쇄적 이용에 따른 핵무기 무한 경쟁시대를 우려했으며 이를 막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하여 정치인들에게 계속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그의 예견대로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되었다.

그는 윈스턴 처칠프랭클린 D. 루스벨트를 직접 만나며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지만, 그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처칠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은 지금 정치를 하는 건가, 과학을 하는 건가?"과학자는 정치참여하지 말란법있나?

107번 원소 '보륨'의 이름은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

2 몇 가지 일화들

1. 대학 물리학 수업중에 한 교수가 "기압계를 가지고 고층빌딩의 높이를 측정하라."라는 문제를 내었다.

교수의 예상답안은 빌딩 옥상에서의 기압과 지상에서의 기압차를 이용해 측정하는 답이었지만, 대학생이던 보어는 "기압계에 줄을 단 다음, 기압계를 빌딩 아래로 늘어뜨려 그 줄의 길이를 잰다"고 대답했다.

자신의 생각대로 따라오지 않는 보어에 대해 교수는 화가 났고, 중재에 나선 다른 물리학 교수가 6분 안에 물리학 지식을 이용한 답안을 내놓으면 정답 처리하겠다고 했다. 학생은 5분 동안 조용히 이마를 찡그리며 생각에 잠겼다. 중재자는 시간이 별로 안 남았다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 말에 학생은 해답은 여러 개 있는데 어떤 걸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다시 서두르라는 말을 들은 학생은 몇 개의 답안을 말하기 시작했다.

"먼저 기압계를 가지고 옥상으로 올라갑니다. 그런 다음 옥상 꼭대기에서 기압계를 떨어뜨려 그것이 땅에 떨어지는 시간을 잽니다. 건물의 높이는 0.5gt^2 의 공식으로 잴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압계는 박살이 나겠지요.

다음으로 해가 떠 있다면 기압계의 높이를 측정하고 다시 그걸 땅에 세워서 만들어지는 그림자의 높이를 잽니다. 그런 뒤 건물 그림자의 길이를 재면 단순한 비율 계산만으로 건물의 높이를 알 수 있습니다.

훨씬 과학적으로 하고 싶다면 기압계에 짧은 줄을 묶고 진자처럼 흔듭니다. 진자운동은 먼저 땅에서 하고 다음으로 건물옥상에서 합니다. 높이는 진자의 주기 T=2pi(l/g)^(1/2)를 사용하여 계산 됩니다.

건물 외부에 비상계단이 있다면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서 기압계를 몇 개 쌓으면 건물높이 만큼 되는 지 건물벽에 대 보면서 올라갑니다. 그 숫자를 확인한 후 기압계의 길이를 곱하면 됩니다.

물론 따분하고 진부한 방식으로 하고 싶다면 기압계로 옥상의 기압과 땅위의 기압을 측정한 다음 밀리바를 미터로 나누어도 건물의 높이를 알 수 있습니다.(학교가 바라던 정답 처음부터 이렇게 말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하하 사실 난 너희들이 싫었어!) 하지만 저희는 기존의 사고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과학적인 방법을 적용하라는 훈계를 끊임없이 듣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수위실 문을 두드려 '새롭고 멋진 기압계를 갖고 싶으면 이걸 드릴 테니까 건물 높이를 알려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6]무인경비시스템이면 어쩔건데?

사실 이 일화는 거짓이다. 링크 이야기에 신빙성을 주기 위해 실존 인물을 토대로 삼은 듯.


2. 아인슈타인이 불확정성 원리에 대해 불만을 표하며 "신은 우주를 가지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자 보어는 이렇게 답했다.

"여보게 하느님께 자꾸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게."

원래 의미는 신이 주사위를 던지는 지는 우리가 상관할 수 없다 쯤이 된다. 물론 보어와 아인슈타인은 그전에도 친한 사이였다. 혹은 '과학을 논하면서 하느님을 들먹이지 말라' 는 요지의 말을 했다고도 알려져 있다.


3. 그는 유대계 사람이었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독일에게 점령당한 덴마크에서 곧 수용소로 잡혀갈 입장이었다. 가까스로 스웨덴으로 빠져나간 다음 영국으로 도망쳤는데, 스웨덴에서 그를 데리러 온 비행기는 민간용 비행기가 아닌 민항기처럼 색을 바꾼 전투기 모스키토였다. 보어는 덩치가 컸기 때문에 비행기 중에서도 폭탄 저장고 위치에 자리잡았고, 비상시를 대비해 낙하산과 조종사와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무전기가 달린 헬멧을 제공받았다. 정작 그는 머리가 너무 커서 그 헬멧을 제대로 쓰지 못했고, 결국 조종사가 "고도가 높아지니 산소마스크를 쓰세요"라는 말을 듣지 못 했기에 영국에 도착하기 전에 산소부족으로 기절했다가 깨어났다. 당시 조종사는 보어가 죽었을 거라고 믿었다. 더 흠좀무한 사실은 조종사들이 만약에 구출작전이 실패하여 나치에 체포될 것 같으면 보어를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4. 보어는 제임스 프랑크와 막스 폰 라우에의 노벨상 메달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3.의 상황에서 두 사람과 자신의 메달을 독일군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왕수에 녹여서는 살던 집 찬장에 놓고 덴마크를 탈출했다. 집을 뒤지던 독일군들은 왕수가 든 병은 건드리지 않았고, 종전 후 환원시킨 금덩이로 협회에서 다시 메달을 제작해줬다. 그냥 메달을 들고 도망갔으면 되는거 아닌가? 왕수 항목에도 똑같은 예시가 이름만 바꿔서 등록되어있음. 확인바람


5. 1941년 9월 경,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만난 사건은 과학사가 사이에서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만남에서 오간 대화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하이젠베르크가 핵무기의 개발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했다, 결백을 증명하려고 했다, 독일의 핵무기 개발능력이 없으니 연합국의 개발도 취소해 달라 등등 다양한 설이 있다.

딱 한 가지, 이 만남 이후로 하이젠베르크와 보어 사이가 소원해진 것만은 사실. 이전에는 형제처럼 지낼 만큼 친한 사이였다.
이 사건을 다룬 연극 코펜하겐이 있다.


6. 보어와 그의 제자들은 서부영화를 매우 좋아했었는지 연구중 지치면 서부영화를 보면서 쉬었다고 한다. 보던 중에 그들은 영화광들이 흔히 하는 의문이 생겼다. '왜 악당이 불의의 기습을 거는데 선역이 먼저 총을 쏴 이기게 될까?' 누군가 '의식적 기습보다 무의식적 반응이 더 빠르다'라는 가설을 세웠다. 그들은 물총으로 즉시 실험에 나섰다. 선역은 보어, 악역은 당시 학생이었던 조지 가모프. 가모프가 물총으로 기습을 걸었고 결과는 보어의 승리로 끝났다. 이를 통해 그들은 가설이 성공했다고 기뻐했다고 한다. 오오.


7. 보어는 글쓰기를 지독하게 싫어했다고 한다. 박사학위 논문을 비롯하여 이후 몇 년 간 논문을 쓸 때는 보어가 말하는 것을 그의 어머니가 받아 적었다고 한다. 편지도 쓰고 또 고치고 또 고치기를 잘해 절친한 물리학자 볼프강 에른스트 파울리에게 와 달라는 편지를 보내자 파울리가 편지의 최종교정본이 오면 그 때 가겠다(...)고 할 정도였다. 글쓰는 재능이 좀 없었던 듯. 보어가 논문을 쓰며 "문장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어려워하자 물리학자 폴 디랙이 "나는 문장을 끝낼 줄 모르면 시작하지 말라고 학교에서 배웠다"고 쏘아붙였다. 물론 악의가 담긴 문장은 아니었고 디랙이 원래 좀 이런 사람이었다.


8. 대체로 물리학자들이 수학에 매우 능하지만 보어는 수학에 능하지 못 했다고 한다. 어느 정도였냐면 간단한 삼각함수의 적분도 어려워해서 조수의 도움을 받았다고.이 점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다. Mathematics and War에서 보면 수학을 끔찍이 못했다는 주장이 있었다고는 하지만[7], 진지하지 않은 토론 중에서 나왔다고 되어있다. 그리고 그가 수학에 재능이 있다는 말이 있다.[8] 무엇보다도, 위에서 말하는 것처럼 수학을 못했다면 수학적 접근법, 수학적 모델을 이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거 볼 시간에 수학을 익히자


9. Hearts of Iron II에서 덴마크의 핵 기술진으로 나온다. 핵물리학, 원자공학, 수학의 3신기를 모두 갖춘데다 레벨도 8로 상당히 높은 편이지만 정작 덴마크가 베저 훈련 이벤트로 순살당하는지라 쓸 데가 없다... 그나마도 43년에 사라지기 때문에 덴마크가 살아있어도 의미가 없다. 아니 그 전에 덴마크가 핵 개발할 능력이 있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10. 서양의 근현대 과학자들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주역 등의 동양철학에 심취한 사람이다. 상보성 원리는 주역의 음양이론을 양자물리학의 관점에서 해석한 것이라 여긴 모양이다. 게다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태극을 아예 가문의 문장으로서 채택하고는 노벨상 타러 갈 때 옷에 팔괘도까지 그려 넣어 갈 정도였다. 이 링크이 링크를 보면 된다. 심지어 30여년 전의 신문에도 나왔다.

  1. 태극문장 맞다. 아예 문장 정의문이 백색 배경,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된 태극도(Argent, a taijitu Gules and Sable)라고 되어 있다. 모토도 그렇고 자신의 최대 업적 중의 하나인 상보성 원리를 나타내기 위해 고안한 것으로 추측된다.
  2. 원자핵 주변을 태양계처럼 전자 입자가 도는 형태. 불확정성 원리를 통해 전자가 원자핵 주위에 '구름'처럼 확률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전까지는 원자의 기본 구조로 자리잡았다.
  3. Otto Robert Frisch, 리제 마이트너의 조카이고 그녀와 함께 핵분열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4. 교과서에서 원자 모형을 제시한 공로만 나오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잘 모르지만 그 당시나 지금이나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비견할만한 물리학의 거장이다.
  5. 정작 파인만 본인은 보어 부자(父子)랑 아이디어를 논의하면서 아니다 싶으면 "그건 바보같은 생각이에요!"라고 말해서 이 위대한 신을 흡족하게 했다고 한다. 흠좀무. 대인배 배틀 보어는 아들한테 이렇게 말했다고. "저 친구를 눈여겨 봐 둬라. 내 말에 '네, 네.'밖에 할 줄 모르는 얼간이들은 신경쓰지 말고."
  6. 이 문답은 드라마 《카이스트》에도 나온다.
  7. "Indeed, one contributor to this summer's newspaper debates in Denmark has ever claimed ... that, in particular, he was extremely bad at mathematics."
  8. "He displayed great abilities in mathematics and science.", "During his last two years at school Niels specialised in mathematics and phys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