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디아누스 2세

로마의 역대 황제
군인황제 시대군인황제 시대군인황제 시대
25대 막시미누스 트라쿠스26대 고르디아누스 1세/ 고르디아누스 2세(공동)27대 푸피에누스/발비누스

Sestertius_Gordian_II-RIC_0008.jpg

Gordianus II

1 개요

고르디아누스 2세(라틴어: Gordianus II, 192년 ~ 238년 4월 12일)는 군인 황제 시대를 연 막시미누스 트라쿠스 다음의 로마 제국의 황제이다. 공동황제는 아버지이자 이름도 비슷한 고르디아누스 1세이며, 재위기간은 238년 3월 22일부터 4월 12일까지다.

2 생애

2.1 황제 즉위 전

192년 로마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고르디아누스 셈프로니아누스 로마누스 아프리카누스(Marcus Antonius Gordianus Sempronianus Romanus)로 아버지인 고르디아누스 1세와 똑같다. 그는 명문가 태생의 외할머니를 통해 트라야누스의 피를 이어 받았고, 어머니는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증손녀이자 명문가 출신이었다. 그의 아버지인 고르디아누스 1세는 로마 원로원 최상위 부자이자 교양인이며, 후원자였다. 또한 가문인 고르디아누스 가문은 제정시대 등장한 신흥 가문이 아닌, 공화정 시대부터 400년 동안 원로원 의석을 유지해온 집안이었다. 즉, 그의 가문은 제정시대에 이르러서는 몇 남지 않은 원로원 계급의 로마 최고 명문가였다. 그는 누이동생이 1명이 있었는데, 이름은 안토니아 고르디아나이다. 그녀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측근이자 히스파니아(오늘날의 스페인) 태생의 발부스를 시조로 하는 로마 명문 원로원 가문 출신의 원로원 의원과 결혼해서 고르디아누스 3세를 낳았다. 그러나 고르디아누스 2세의 삶에 대해서는 아버지인 고르디아누스 1세 만큼 자세히 알려진 것이 없다. 그렇지만 그는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시대에 재무관과 집정관을 지냈으며, 46세의 삶 동안 미혼으로 지내고 있었다고 한다.

2.2 황제

전형적인 로마 최상류층출신이었던 그는, 70대 후반에 접어든 아버지 고르디아누스 1세가 전직 집정관 신분으로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를 중심으로 하는 아프리카 속주총독으로 파견되었을 때 동행했던 것으로 보인다.[1] 그러다가 238년초, 북아프리카의 부유한 젊은 지주들에 의해 막시미누스 트라쿠스가 보낸 이들이 살해됨과 동시에, 그는 아버지와 함께 황제로 선포되게 된다. 그후, 원로원에 서신을 보내 원로원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 황제가 되었다.

원로원이 막시미누스 트라쿠스 황제를 공적으로 선포하고, 고르디아누스 부자를 황제로 선포했다는 통고문이 알려지자, 북아프리카 속주 바로 옆에 있는 누미디아 속주 총독 카펠리아누스는 이러한 통고문을 즉각 거부했다. 그는 황제인 막시미누스 트라쿠스에 대해 지지를 선언했으며, 고르디아누스 부자를 반역자로 여기고 즉시 이들 부자를 공격했다. 이에 79세의 고르디아누스 1세는 카르타고에 머물고, 아들 고르디아누스 2세가 속주 내에 유일하게 주둔하고 있는 1개 군단[2]를 이끌고 카펠리아누스 군의 공격을 저지하는 방어선을 지키려고 했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46세의 고르디아누스 2세는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서 전사했으며,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 고르디아누스 1세는 아들의 전사 소식에 절망하며 79세의 나이에 자신의 칼로 자결했다. 이들 부자의 재위기간은 1달 남짓이다.
  1. 당시 고르디아누스 1세는 79세의 노인이었다.
  2. 북아프리카 속주 내 주둔 병력은 사실상 경비병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