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디아누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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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역대 황제
군인 황제 시대군인 황제 시대군인 황제 시대
27대 푸피에누스/발비누스28대 고르디아누스 3세29대 필리푸스 아라부스

Gordianus III (225년 1월 20일 ~ 244년 2월 11일, 재위 238년 3월 22일 ~ 244년 2월 11일)

목차

개요

푸피에누스발비누스의 뒤를 이은 로마의 28대 황제. 막시미누스 트라쿠스에 대항해서 원로원이 황위에 추대한 고르디아누스 , 푸피에누스, 발비누스가 모두 죽고 유일하게 남았다. 이름이 고르디아누스 1세 2세... 이런식이니 고르디아누스 3세는 고르디아누스 2세의 아들이겠거니 생각하기 쉽지만, 고르디아누스 3세는 고르디아누스 1세의 친딸 마키아 파우스티나의 아들이다. 즉, 고르디아누스 3세 입장에서 고르디아누스 2세는 외삼촌이다.

황위에 오를 당시 나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241년까지는 어머니가, 그 이후에는 근위대장이었던 가이우스 푸리우스 사비니우스 아퀼라 티메시테우스(Gaius Furius Sabinius Aquila Timesitheus, 190~243)가 섭정을 맡았다. 티메시테우스는 자신과 황제간의 관계나 황권을 공고히 하기위해 딸을 시집보내 고르디아누스 3세의 장인이 된다. 여러모로 알렉산데르 세베루스-울피아누스가 생각나는 부분. 기록은 많지 않지만 티메시테우스의 통치나 행정, 군사 능력은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져있고, 이것이 고르디아누스 3세가 미성년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치세의 6년동안 로마제국은 안정될 수 있었던 이유이다. 한편 242년에는 장인의 도움을 받아 사산조 페르시아를 격파하기도 하였으나 장인이 죽자 고르디아누스 3세는 몰락해버린다. 새로 임명된 근위대장인 필리푸스 아라부스에게 암살당한 것이다. 만약 티메시테우스가 좀 더 오래살아 고르디아누스 3세가 제대로 친정을 할 수 있을만큼 섭정을 맡았더라면 고르디아누스 3세의 재위기간은 6년에 끝나지도 않았고, 후세가 군인 황제 시대라 불리우는 시대도 고르디아누스 왕조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6년은 왕조라 하기에는 너무 짧으니까. 로마에서 가장 짧은 왕조였던 플라비우스 왕조도 고르디아누스 왕조 보다는 5배 이상 길었다.

한편 그의 초상화가 새겨진 은화는 현제 가장 구하기 쉬운 로마제국의 은화인데 그 이유는 그가 살았던시기에 은화로서의 데나리우스가 마지막으로 대량발행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