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의

高紹義
546년 ~ ?

1 개요

북제의 황족이자 북제의 부흥운동가. 굳이 분류를 하자면 비정통 황제라고 할 수 있다.

559년

577년, 북주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북제가 망하자 당시 북제의 정주자사(定州刺史) 범양왕(范陽王) 직위에 있던 고소의는 돌궐에 망명한 상태였는데, 북주에 투항을 거부하고 영주자사인 고보녕과 함께 북제 부흥운동을 일으켰다. 황제로 추대되면서 연호는 무평(武平)으로 북제가 멸망하기 전에 쓴 연호와 같았다.

그러나 당시 북제의 영역 대부분은 북주가 차지해버린 상황이었고 고소의와 고보녕 등의 부흥운동 세력은 유주 일부와 요서일대에 겨우 의지해야 했다. [1]

고소의느 돌궐과 연합해 북주를 공격하기도 했으나 북주는 오히려 돌궐과 연계해 580년 돌궐에 의해 고소의는 북주로 압송되었다. 고소의가 압송된 뒤에도 고보녕을 중심으로 요서일대에 북제 잔당들은 583년에 완전히 진압되었다. 고소의는 촉 땅으로 유배형에 처해졌고 몇년 뒤 사망했다고 한다.

2 참조자료

  • 중국어 위키백과: 내용
  •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 내용
  1. 비슷한 상황으로 398년 이후 북위 - 후연, 북연의 모습과 유사하다. 다만 이때 산동지역과 회남지역은 남조국가인 동진의 영역이었다는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