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싱가포르 총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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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싱가포르의 정치가. 1941년 5월 20일 (75세) 생. 리콴유의 뒤를 이어 싱가포르의 제2대 총리를 지냈으며, 2016년 기준 명예선임장관(Emeritus Senior Minister) 겸 명예고문이다.
2 생애
1941년 영국령이던 싱가포르에서 태어났다. 본적지는 중국 푸젠성(福建省) 융춘현(永春縣). 리콴유(李光耀)도 다녔던 싱가포르의 명문고교인 래플스 칼리지를 졸업했으며, 학생회장을 지냈다. 1964년 싱가포르대학을 졸업하였다. 전공은 경제학. 1967년 미국 윌리엄스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를 취득했다. 본래 그는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학자의 길을 걷고자 했으나, 그가 받은 장학금의 조건 때문에 귀국해서 관료가 되어야 했다.
1969년 싱가포르에 본부를 둔 해운사 넵튠오리엔트라인스(NOL)로 옮긴 뒤 초고속 승진을 하는 등 승승장구하다, 1976년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 진출한다. 1977년 처음으로 입각하여 여러 부서의 장관직을 맡았다. 1984년 제1부총리로 발탁되었다.
1990년 리콴유가 총리에서 물러나면서 그의 후임으로 싱가포르의 제2대 총리가 되었다. 1992년에는 집권당인 인민행동당(PAP)의 당수인 서기장에 취임했다. 당초 리콴유의 후임으로는 그의 아들 리셴룽(李顯龍)의 이름이 오갔기 때문에 징검다리 내각으로서 짧은 임기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고촉통은 2004년까지 14년 동안 집권했다. 물론 그의 내각에는 리콴유가 선임장관(Senior Minister)으로 버티고 있었고, 그의 아들 리셴룽이 부총리였으며, 고촉통 본인 또한 리콴유의 노선에 충실히 따른지라 싱가포르에 큰 변화는 없었다.
2004년 총리 및 당수직을 사임하고 리콴유가 그랬듯이 선임장관이 되었다. 2011년 선임장관직에서 사퇴. 2016년 현재는 명예선임장관으로 있으며, 현 총리인 리셴룽에게 정치적 가르침을 주고 있는 듯 하다.
1976년 국회의원 출마 당시 (출처 : 위키백과 영문판)
2006년 총선 당시 인민행동당 대회에서 연설하는 모습
3 기타사항
2004년 8월 12일에 리셴룽 내각 출범식에서 선서하는 모습. 왼쪽부터 S. 자야쿠마르 전 부총리[2], 토니 탄 켕 얌 대통령(당시 부총리), 리콴유 전 총리(당시 고문장관), 고촉통 |
위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듯, 젊은시절 키가 193cm에 달했던 꺽다리이다. 할아버지가 되어서 키가 좀 줄긴 했지만 그래도 190cm. 사실 그의 전임자 리콴유도 180cm의 장신이며 리콴유의 가족들도 키가 큰 편이었지만, 고촉통 옆에 있으면 꼬꼬마가 된다.(...)
부인 탄추렝(陳子玲)과 슬하에 남매 쌍둥이를 봤다. 즉, 쌍둥이 아빠. 현재는 할아버지이다.
대한민국을 방문했을 때 싱가포르 정치에 대한 강연을 한 적도 있다.
2006년에는 아세안 측에서 유엔사무총장 후보로 내보내려 한 적이 있으나 고촉통 본인이 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