管承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장광현 사람으로 동래 부근에서 3천여 명을 이끌고 해적으로 활동했으며, 206년 8월에 악진, 이전의 공격을 받아 장광에서 격파당했다. 장합이 동래를 정벌했고 관승은 바다의 섬으로 달아났으며, 하기가 그들을 설득하기를 요청해 사신을 보내 설득하자 관승은 투항했다.
창작물에서
같은 꿈을 꾸다 in 삼국지에서는 북해의 공융을 원담에게 구출하러 가기 전에 북해에서 한 명의 인재와 오만 명의 군사를 얻을 수 있다고 태사자가 언급했는데, 그 오만 명의 군사에 해당하는 무리를 이끌던 장산군도의 광록도주였다.
관승은 노식에게 은혜를 받은 자들을 이끌었고 이들은 20년 전에 산월족이 여강, 구강을 침범하자 노식이 남흉노에게 이들을 처리했는데, 노식이 이들의 공을 상주해 군량을 주도록 상주했지만 조정에서는 이를 거부했다.
노식이 여강, 구강태수에 임명되자 관아에 동원할 수 있는 재화를 들여 용서를 빌었으며, 장강에 홍수로 구강에 넘어온 산월족에게는 적이었음에도 은혜를 베풀어 남흉노, 산월의 무리가 노식을 따랐다. 당고의 금 때 노식이 간언했다가 오히려 환관들이 남흉노, 산월의 병사가 있는 것을 트집잡아 위험에 빠뜨리자 그 당시 노식의 부장으로 있던 관승은 그 무리를 이끌고 선생님의 증표를 보이면 힘이 되겠다면서 그 때를 기다리겠다며 장산군도로 떠났다.
이준경이 증표를 가지고 찾아오자 관승은 장산군도에서 서로 갈라져 이권을 다투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남흉노 또는 산월의 무리 중에 하나를 데려가라고 제안했지만 이준경은 같이 떠나고 싶은 자들을 데려간다고 하자 이들은 섬에 익숙해져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준경과 논쟁을 벌이다가 이준경이 장산군도에 떠나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남기로 한 자들에 대한 생활을 대한 지원을 약속하자 설득에 응해 장산군도의 12지파 중에서 부여족, 고족을 제외하고 장산군도에서 떠나기로 한 유족, 조족, 허족, 난족, 미족, 백족, 맹족, 효족과 함께 강동으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