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식

盧植
(? ~ 192년)

1 개요

후한 말의 정치가, 학자, 장군. 자는 자간(子幹). 노육의 아버지.

키가 무려 8척 2촌(약 194cm)[1][2]이나 되었으며, 목소리는 종소리처럼 우렁찼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유비공손찬의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다. 주준, 황보숭과 함께 황건적의 난 토벌에 힘썼기 때문에 이 둘과 엮이곤 한다. 유주 탁군 탁현 출신으로 유비 그리고 장비와 같은 고향 출신이다.

2 생애

노식은 젊었을 때부터 청렴하고 강직해 고위 관리에게도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167년에 환제가 승하하고 영제가 즉위하자, 환제의 장인인 두무는 제후에 봉해졌다. 이때 노식은 고위 관직자로서 제후직을 겸손하게 사양할 것을 그에게 권했지만 그의 간언은 무시 당했고, 후에 두무는 십상시 세력을 공격하다 오히려 당했다.

노식 또한 두무가 환관들에게 관광당한 169년의 2차 당고의 화 사건을 전후로 벼슬을 사퇴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로도 주,군에서의 연이은 천거를 모두 사양했지만 희평(168~172) 말년에 박사로 임용되었다는 기술을 보면 몇 년 뒤에 복직한 것으로 보인다.

175년에 구강군과 여강군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3부에서 문무에 뛰어난 인물로 일제히 추천되어 구강태수가 되었고 성공적으로 반란을 진압하였다. 난을 평정한 후 그는 병을 이유로 벼슬에서 물러났으며, 곧 고향으로 돌아가 저술 활동과 후학 양성에 주력했다.[3]

훗날 조정의 부름에 응하여 복직하였다. 그는 주로 오경의 교정이나 한기의 편찬에 기여했으며, 178년에는 당고의 화로 면직된 관리들을 복직시켜줄 것을 영제에게 청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4년에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는 주준 그리고 황보숭등과 함께 난을 진압하게 된다. 황보숭이 좌중랑장으로 연주예주 등 중원지역의 진압군을 총괄하고, 우중랑장 주준이 형주양주 등 남부지역을, 그리고 노식은 북중랑장에 임명되어 장각이 이끄는 황건군의 주력이 밀집해 있던 기주 방면의 진압군을 통솔했다. 그는 병력면에서 크게 열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연전 연승을 거듭해 수만명의 적을 죽이는 전과를 올렸고, 마침내 광종(廣宗)으로 패주한 장각의 군세를 포위해 공성전에 들어가는 등 위기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전장을 감찰하러 나온 환관 좌풍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 모함을 받고 파직당한다. 이 때가 184년 6월의 일로 삼국지연의에서는 장비가 수레에 실려가는 노식을 보고 분노해 병사들을 모조리 죽이고 그를 구해내려 했지만 유비의 만류로 그만두는 장면이 나온다.

파직된 노식의 후임이 바로 동탁이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의 안하무인의 성품때문에 많은 병사들이 노식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이 무렵 중원과 형초 일대에 운집해 있던 황건군의 별동부대들도 황보숭과 주준에게 패하면서 진압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드는 형국이였지만, 동탁이 황건적의 역공에 패하면서 이에 숨통이 트인 황건적 때문에 분위기가 숭숭해졌다. 그러자 조정은 재차 동탁을 경질하고 중원 지역의 진압을 완료한 황보숭을 다시 후임으로 부임시켰다. 집권후 황보숭은 기주의 황건군을 철저히 분쇄시켰고 진압이 완료된 후, 자기 공을 모두 노식에게 돌렸기에 노식은 사면되어 상서로 복직되었다.

영제가 죽고 하진이 정권을 잡아 십상시와 대립할 때 원소의 계책에 따라 동탁 등을 불러들여 태후를 압박하려 하자, 동탁의 됨됨이가 포악하다며 이를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십상시의 역공에 하진이 살해되고 연이은 원소의 반격으로 궁궐이 혼란에 빠지자 , 장양은 소제하태후 그리고 진류왕 등을 이끌고 탈출을 시도했다. 이때 노식도 싸울준비를 갖춘채 원소측에 합류해 있었는데, 십상시의 일원인 단규가 하태후를 데리고 나가는 것을 목격하고 창을 쥔 채 단규를 노려보며 소리치자, 그 기세에 눌린 단규가 태후를 놔두고 달아났다고 한다.

하지만 태후와 별도로 소제와 진류왕은 십상시에게 이끌려 궁궐을 탈출했고, 이들의 신병을 동탁이 확보하면서 동탁이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정권을 잡은 동탁이 소제를 폐하고 진류왕을 옹립하려 하자 감히 나서서 반대하는 자가 없었지만, 노식이 면전에서 크게 반발하며 동탁을 비난했기에 동탁이 그를 죽이려 했으나, 채옹의 만류로 그만두었다. 다만 노식 역시 화를 피하기 위해 병을 핑계로 벼슬을 버리고 낙양에서 도망쳤으며, 이에 동탁이 추격병을 보냈지만 사로잡지 못한다. 이 때문인지 삼국지11에서는 노식과 동탁이 서로 혐오무장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동탁으로 플레이할시 거점인 낙양에서 재야로 딱 버티고 있음에도 절대로 등용할 수 없다.

이러한 일들 이후 그는 무슨 이유인지 고향인 탁군이 아니라 더 북쪽인 상곡군 일대에서 은거하고 있었는데, 이후 기주목이 된 원소가 그를 군사로 초빙하자 이에 응했으나 192년에 병으로 사망했다.

원소가 기주목을 양도받은 때가 191년 하순의 일이기 때문에 실제로 원소 밑에 있던 기간은 몇개월 되지 않았을 것이다.

207년, 조조원상을 쫓아 오환을 토벌하러 진군하던 중에 노식의 묘 앞을 지나가자 묘를 깨끗이 청소하고 예를 갖추었을 정도로, 당대 사람들에게 깊은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아들만 넷을 두었었는데, 장남과 차남 그리고 삼남은 이름이 분명하지 않으며 원소와 공손찬이 싸울때 여기에 휘말려서 죽었다고만 알려져 있다. 사남인 노육은 노식이 죽을 때 불과 10살이었던 늦둥이로 이후 위 조정에 출사해 조방의 대에 이르기까지 벼슬을 했고, 위명제 조예의 명을 받아 구품중정제의 인재 선발 방식을 정비하기도 했다.

3 학자로서의 면모

학자로서의 노식은 동문인 정현과 함께 후한 말을 대표하는 대학자로, 마융을 사사했다. 마융의 수업방식은 대단히 독특했는데, 수업 중에 미녀들을 시켜 주변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게 했다고 한다. 강의용 대강당 한구석에서 걸그룹이 간이공연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오로지 노식만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 스승에게서 높이 평가받았다고 한다. 단, 연의에서는 노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동문인 정현의 이야기로 바뀌었다.

유비와 공손찬의 스승으로도 유명하기에, 황건적을 무찌르는 유비의 이야기에서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다.

또한 그의 저서인 《상서장구(尙書章句)》나 《삼례해고(三禮解詁)》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유학자로서 <예기>를 비롯한 유교 경전에 주석을 많이 달았기에, 유학사에서도 나름의 비중이 있는 인물이다. 이러한 이우 때문에 동양 고전을 읽다보면 노식이란 이름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스승인 마융이나 동문인 정현에 비해서는 언급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4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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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1
삼국지 12,13

코에이삼국지 시리즈에서는 황건적의 난부터 고위 관직으로 등장해 하진으로 플레이하면 가장 많이 쓰게 될 무장 중 하나이다. 또한 반동탁 연합군 시나리오에서는 동탁과 싸우고 은퇴한 것 때문에 재야무장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고령이기에 활약할 시간은 그리 길지가 않다. 영웅집결 시나리오에서는 하진군의 군사로 활약한다. 능력치에서 무력은 대체로 60대 후반 ~ 70대 초반이며, 나머지 능력은 80대 중반으로 그야말로 올라운드 캐릭터.[4] 정치가,학자,장군 등으로 여러 분야에 종사한지라 만능형으로 책정된거 같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89/50/81/85. 영웅집결에서는 황보숭과 주준이 저평가된 하진군의 에이스. 분전, 제사, 덫, 고무를 가지고 있다. 사실상 하진군의 내정 등용 전투를 모두 담당할 수 밖에 없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88/47/82/83/85에 특기는 11개. 무력이 47로 대폭 칼질 당했으나, 나머지 능력치는 모두 80대라 실질적으론 상향되었다.일기토 할거 아니면 무력은 크게 쓸모가 없고, 전투시 공/방은 통솔, 행동력은 무력/지력중 높은것에 영향을 받는데 삼국지10에서 노식의 지력은 82다. 장수 플레이시 명사 특기도 있기때문에 산적등은 설전으로 발라주면 된다. 거기에 군사특기까지 보유하고 있는 은근히 먼치킨. 통솔 88과 맞물려 시너지가 상당하다.

삼국지 11에서는 특기가 지도라서 활용하기가 애매하다. 그래도 능력치가 좋으니 특기를 제외한다면 활약할 기회는 많다. 특기가 마음에 들지 않고 pk라면 얼른 연구해서 다른 특기로 바꿔줄 수도 있다. [5]

삼국지 12에서는 전법이 화계인데, 노식의 지력이 꽤 높은 편이라 나름대로 괜찮다.[6] 스탯은 통솔 : 86, 무력 : 63, 지력 : 82, 정치 : 85로 역시나 만능형.

삼국지 13에서는 78/63/82/85로 다른건 그대로인데 통솔이 대폭 너프당했다. 게다가 주준, 황보숭과는 달리 A급 이상의 병종 적성도 없어서 뭔가 안습하다. 전법은 공격명령. 특기가 주로 내정 쪽으로 몰려 있는걸 봐선 이번작에서는 내정 요원으로 굴리도록 의도된 듯. 그나마 중신특성은 공정무사로 매우 좋은 특성을 받기는 했다.

소노다 삼국지에서는 버프를 많이 받은 인물로 등장하는데, 자세한 정보는 추가바람.

삼국전투기에서는 프롤로그가 반동탁연합 스토리부터라 직접 등장은 없었고 이릉대전 직후 유비의 과거 회상을 통해 이름만 살짝 언급되고 넘어갔었으나, 에필로그로 황건적의 난을 다루면서 정식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황건적 토벌의 공신 3인이 모두 원피스삼대장으로 패러디 되었고 그 중 노식의 캐릭터는 쿠잔. 어쩐지 제자인 유비가 느긋하고 해이해진 모습으로 나온다 했어

드라마 영웅조조에서는 곡양에서 황건적과 싸우는 와중에 황보숭, 주준, 조조 등이 이끄는 원군의 도움을 받으며, 좌풍의 모함으로 죄인으로 끌려갔다가 조조가 변호하면서 장양이 폐하께서 조사하셨다면서 노식이 죄가 없음을 알리자 풀려난다.
  1. 그 당시 1척은 23.7cm, 1촌은 2.37cm(1척의 1/10) 환산하면 194.34cm
  2. 알다시피 요새도 완전 넘사벽급 큰 키인데, 저 당시로선..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3. 이때 유비와 공손찬을 가르쳤다. 참고로 유비는 15살때에 들어서 노식의 문하에 들어갔다.
  4. 노식처럼 능력치가 평균적으로 높은 무장은 조조, 여몽, 주유...등 매우 드물다.
  5. 지도의 숨겨진 기능이 소속부대 무장들의 전투경험치를 2배로 올려주는 것이라 현재는 쓸만해졌다
  6.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서 유비가 영천에서 장각과 싸우는 스승인 노식과 함께 화계로 적을 무찌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마 이것의 영향인 듯 싶다. 그러나 실제 화계로 적을 무찌른 장군은 황보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