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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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권두조(權斗祚)
생년월일1951년 6월 10일
출신지경상북도 포항시
학력부산중앙초-부산동성중-경남상고-중앙대학교
포지션유격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82년 롯데 자이언츠 원년 멤버
소속팀롯데 자이언츠 (1982~1983)
삼미 슈퍼스타즈 (1984~1985)
청보 핀토스 (1985~1987)
지도자 경력태평양 돌핀스 수비코치 (1988)
OB 베어스 수비 인스트럭터 (1989)
롯데 자이언츠 수비코치 (1990~1996)
한화 이글스 수비코치 (1997~1998)
롯데 자이언츠 수석코치 (1999~2001)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 (2001)
LG 트윈스 2군 감독 (2002)
SK 와이번스 수비코치 (2005)
SK 와이번스 2군 감독 (2005)
부경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2007~2011)
한화 이글스 육성팀장 (2011)
롯데 자이언츠 수석코치 (2012)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 (2013)
롯데 자이언츠 수석코치 (2014~2014.5.27)
롯데 자이언츠 스카우트 (2014.6~)

1 소개

한국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에서 활동했던 내야수.

2 선수 시절

1975년부터 실업야구 제일은행에서 활동했으며 1982년 프로야구가 창단함에 따라 롯데 자이언츠의 원년멤버이자 첫 주장으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원년에 모든 경기에 출장하였으나 이미 32세였던 그는 당시에는 상당한 노장 축에 속했던 선수였고[1] 더불어서 상당히 왜소한 체격이었던 탓에 홈런은 전무했으며 타격은 2할대 초반의 타율을 기록하였다. 다만 그의 최고의 강점은 선구안으로 원년 시즌 삼진 27개를 당하는 동한 볼넷은 36개를 얻어내었으며 통산기록도 삼진 159개, 볼넷 157개로 차이가 단 2개뿐이었다.

하지만 MBC 청룡에서 김재박에게 자리를 내준 내야수 정영기가 포수 차동열을 상대로 트레이드[2]되어 롯데로 이적함으로서 권두조는 주전 유격수 자리를 내놓게 되었다. 결국 1983년 시즌 후 삼미 슈퍼스타즈임호균이 롯데로 이적할 당시 4명의 반대급부 선수 중 한명으로 지목되어(권두조, 박정후, 우경하, 김정수) 팀을 옮겨서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였다. 1984년에는 타율 0.267을 기록하여 타율 20위 안에 들었으며, 청보 핀토스에서 1987년까지 인천 야구의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였다. 하지만 1986년에는 타율 .162를 기록, 한 시즌 최저 타율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태평양 돌핀스로 팀이 바뀌기 전에 은퇴하고 수비코치로 부임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다. 현역 시절에는 희생번트 등의 팀 플레이를 잘하고 1983년 중반부터 은퇴하기 전이었던 1987년까지 지속되었던 역대 7위에 해당하는 433경기 연속출장 등의 성실함으로 인정받았던 선수였다.

3 지도자 시절

은퇴하자마자 태평양 돌핀스의 수비코치를 맡아 한 시즌을 재직했으며 OB 베어스, 그 이후 친정 팀이었던 롯데 자이언츠, 한화 이글스, SK 와이번스 등에서 계속해서 2001년까지 팀은 옮겼지만 코치 생활을 계속하였으나 백인천 감독이 부임하자 팀을 떠나 2004년까지는 야인으로 지내게 된다. 2005년 조범현 감독의 SK 와이번스의 수비코치로 계약했으나 팀의 부진이 지속되자 5월 말에 2군 감독으로 보직 개편되어 2군 감독으로 한 시즌을 보내고 다시 팀에서 나왔고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부경고등학교 감독을 맡았다가 2011년 8월 한화 이글스의 육성팀장으로 임명된다.

3.1 롯데 자이언츠 2기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서 롯데 자이언츠 프런트양승호 감독을 보좌할 수석코치로 권두조를 점찍어 영입하였다. 1년 전에 제리 로이스터를 해고하고 프런트 경험이 있었던 양승호 감독을 영입했던 점으로 미루어 감독의 권한을 최소화하는 대신 프런트 야구를 지향하려 한다는 우려가 제기되었었다. 그럭저럭 1년동안 수석코치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다가 양승호 감독이 포스트시즌 이후 전격적으로 감독에서 사퇴하자[3] 이후 새로 선임된 김시진 감독이 권영호 영남대학교 감독을 수석코치로 발탁하자 2군 감독으로 보직 이동되었다. 그러나 한 시즌 만에 다시 권영호 1군 수석코치와 보직을 맞바꾸어 다시 1군 수석코치로 돌아오게 되었다. [4]

하지만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CCTV 사찰 사건을 통해 진짜 문제는 권두조가 아니라 사장이었던 최하진이었던게 드러났다!
  1. 전문 트레이너들의 체계적인 피지컬 트레이닝를 도입한 1994년의 LG 트윈스 이광환 감독 이전까진 30대 초반이면 대부분 선수 생명의 끝줄이었다.
  2. 선수 간 트레이드 1호다. 서정환은 현금 트레이드 1호.
  3. 고려대학교 감독 시절 입시비리에 대한 혐의로 구속되었는데 이것때문에 양 감독이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사임했다는 설이 매우 유력하다
  4. 참고로 권영호는 2군 감독 부임 1주일 만에 구단 프런트와 훈련방식에서 마찰을 일으켜 결국 해임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