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 |
정영기(鄭永基 / Young-Ki Jung) | |
생년월일 | 1956년 2월 29일 |
출신지 | 대전광역시 동구 |
학력 | 신흥초-한밭중-충암고-영남대 |
포지션 | 내야수(유격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82년 MBC 청룡 창단멤버 |
선수 경력 | MBC 청룡(1982) 롯데 자이언츠(1983~1988) 태평양 돌핀스(1989~1990) |
지도자 경력 | 태평양 돌핀스 코치(1991~1992) 쌍방울 레이더스 코치(1993~1995) 한화 이글스 코치(1996~1998) 한화 이글스 코치(1996~1998) 한화 이글스 2군 수비코치(2001~2006)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2007~2008) 경찰청 야구단 수석코치(2009~2009.09) 한화 이글스 2군 감독(2009.09~2011) |
프런트 경력 | 한화 이글스 스카우트 차장(1999~2000) 한화 이글스 스카우트 팀장(2012~) |
1 소개
현 한화 이글스 프런트인 스카우트 팀장으로 재직중. 현역 당시 포지션은 유격수이다.
2 선수 시절
대전광역시 출신으로 충남중학교를 졸업한 뒤 상경해 충암고등학교와 영남대학교를 졸업한다. 이 후 MBC 청룡의 창단멤버로 합류해 원년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지만, 이듬해 김재박이 입단하면서 주전 자리에서 물러났고, 마찬가지로 1983년에 입단한 한문연, 심재원에 주전 자리를 내준 롯데 자이언츠 포수 차동열과 맞트레이드되어 롯데로 이적했다.[1] 롯데 자이언츠에서도 강병철의 양아들로 불리며 1984년 한국시리즈 우승, 1985년 통합승률 2위 때 주전 유격수를 맡는 등 잘 나가다가 1989년 태평양 돌핀스로 이적해 1990년 은퇴했다.
청룡시절 이지만 팀을 옮기고 우승한걸 생각해보면 탈쥐의 원조가 아닐까
3 지도자 시절
선수로써는 2할 5푼을 넘긴 시즌이 3시즌에 불과하고, 통산 홈런 8개에 도루 26개에 불과하며 여러 팀을 전전하는 등 전형적인 수비형 유격수이자 저니맨이었지만, 지도자로써는 성공한 케이스. 자신과 줄곧 한솥밥을 먹어 왔던 이광길과 비슷하다고 해야할까? 한화 이글스 스카우터로 재임하던 2000년에는 높으신 분들의 반발을 무시하고 무명의 대구고 내야수 이범호를 2차 1순위로 지명해 한화의 노령화를 막았다. 롯데 2군 감독 재임 시절에는 조정훈, 이승화 등 전임 양상문 체제에서 냉대받던 선수들을 1군 즉시전력감으로 만들면서 롯데 자이언츠의 2년 연속 2군 남부리그 우승을 이끌었다.[2] 이 외에도 쌍방울 레이더스 수비코치 시절 다리 부상으로 인해 1루로 전향한 백인호가 다시 2루수로 전향할 수 있도록 도왔고, 1996년 한화 내야진의 평균 연령을 8개 구단 최연소로 만드는 등 수비코치로써의 능력도 우수하다.
그러나 강성으로 타협을 모르고 올곧은데다가, 지기 싫어하는 성격을 갖고 있어서 프런트와는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다고 한다.
2012년까지 한화 이글스의 2군 감독을 맡았는데, 과거 수비코치 시절이나 롯데 2군 감독 시절 때처럼 매직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전임 김인식 감독 때 지명한 수비력 없는 우타 거포 일색에 상군매직, 우경하가 방치해 놓아 기본기까지도 떨어졌기 때문.[3]
그래도 2년 간 고생한 결과 눈에 띄는 결과물들을 하나씩 보여 주었는데, 대표적인 선수들이 장민재, 김혁민, 신주영 등의 젊은 투수들이 한화가 탈꼴찌에 성공한 2011년 1군에서 자리를 잡았다는 것.[4] 타자들의 경우에는 아직 눈에 띄게 성장한 선수는 없지만 이양기가 오랜 암흑기를 벗어나 처음으로 1군에서 중용되기 시작했으며[5] 김회성 등 1군에 테스트를 받기 시작하는 선수들도 하나씩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현재 한화 이글스의 야수진은 좌익수 최진행과 포수 이희근, 신경현, 2루수 한상훈을 제외하면 전 포지션이 타팀에서 영입한 선수들도 메우고 있는데, 하나둘 2군에서 선수들이 올라오고 있다.
2016년 5월 엠스플 칼럼에 따르면, 현재 김성근이 한화에서 전권을 휘두르는 관계로 정영기는 스카우트 자리에서 사라졌으며, 현재 한화 스카우트팀장 역할은 1년차 일본인이 맡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