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범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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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감독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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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감독 시절. 눈이 그림자에 푹 잠겨있어 은근 무섭다 ㄷㄷ 감독되자마자 데뷔전을 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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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wiz 감독 시절.극한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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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시즌 개막전에 앞서 이종운 감독과 함께.

SK 와이번스 역대 감독
강병철
(2000~2002)
조범현
(2003~2006)
김성근[1]
(2007~2011)
KIA 타이거즈 역대 감독
서정환
(2006~2007)
조범현
(2008~2011)
선동열
(2012~2014)
kt wiz 역대 감독
팀 창단조범현
(2013~2016)
김진욱
(2017~)
이름조범현(曺凡鉉 / Bum-hyun Cho)
생년월일1960년 10월 1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경상북도 의성군
학력대구초 - 대건중 - 충암고 - 인하대
포지션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82년 OB 베어스 창단멤버
소속팀OB 베어스 (1982~1990.10.20)
삼성 라이온즈 (1990.10.21~1992)
지도자삼성 라이온즈 2군 배터리코치 (1992)
쌍방울 레이더스 1군 배터리코치 (1993~1999)
삼성 라이온즈 1군 배터리코치 (2000~2002)
SK 와이번스 감독 (2003~2006)
KIA 타이거즈 1군 배터리코치 (2007)
KIA 타이거즈 감독 (20072008~2011)
삼성 라이온즈 포수 인스트럭터 (2013)
kt wiz 감독 (2013~2016)
종교개신교
보유 기록
1977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MVP
2009년 한국프로야구 우승 감독
나의 재계약보다 팀의 모습이 우선이다. 내가 옷을 벗는 한이 있어도 아닌건 아닌거다.

ㅡ KIA 타이거즈 감독 시절.

1 소개

OB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의 야구 선수. 前 SK 와이번스, KIA 타이거즈, kt wiz 초대 감독이다. 또한 KBO 최초로 1위와 10위를 경험한 감독이다.

장성우, 오정복, 장시환, 김상현 등으로 속을 끓이고 있는 야구계의 생불.

야구계의 김진.[2]

2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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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 베어스 선수 시절, 감독인 김성근과 함께 항의하는 모습.[3]

충암고인하대를 졸업하고 1982년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에서 포수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포수로는 준수한 수비형 포수였다. 3년 연속 도루 저지율 5할을 넘겼지만[4], 달감독 때문에 주전으로 뛴 기간은 짧았다. 1990년 윤석환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에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한 뒤 백업포수로 있다가, 스승인 김성근 감독이 해임되면서 같이 은퇴하게 된다.

2.1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
1982OB 베어스48118.271327229122
19834169.17412300730
198477175.1943472318164
198587239.2385780333304
19864165.16911111683
19874880.15012200631
19885872.19414000340
19895486.16314301561
199084102.13714200680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
1991삼성 라이온즈5161.2621630110110
19922624.1253101410
통산6151091.2012193751210710215

3 지도자 시절

역대 감독 전적
연도경기정규리그포스트시즌
2003SK 와이번스133666434위준우승
2004133616485위-
2005126705063위4위
2006126606516위-
­통산51825724318
연도소속팀경기수정규리그포스트시즌
2007KIA 타이거즈1[5]010
2008126576906위-
2009133814841위우승
2010133597405위-
2011133706304위4위[6]
­통산5252672544
연도소속팀경기수정규리그포스트시즌
2015kt wiz1445291110위-
20161445389210위-
­통산2881051803
총계133162967725

3.1 코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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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배터리 코치 시절.
은퇴 이후 쌍방울 레이더스삼성 라이온즈의 코치를 하였다. 쌍방울에서 박경완날라차기을, 삼성에서 진갑용을 국가대표급 포수로 조련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3.2 SK 와이번스 감독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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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철 감독의 후임으로 2003년부터 SK 와이번스의 제2대 감독으로 부임했다. 쌍방울과 삼성의 배터리 코치로서 쌓은 명성 덕분에 야구계에서는 감독감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SK에서 강병철 감독의 후임 감독을 선임하려고 할 때, 프런트 전 직원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적당한 감독감을 추천하라고 하자 가장 많은 표가 나온 사람이 조범현이었다고 한다. 이를 보고 당시 초대 SK 와이번스 사장인 안용태 사장이 조범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프런트가 추천하는 인물이니 그냥 과감하게 임명을 했다고. 정식 감독 부임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감독 제안이 처음 오고갔을 당시가 2002년 한국시리즈 무렵이었고 일반적으로는 코치에서 감독으로 부임이 영전인지라 축하해주는 것이 평범한 수순이지만, 2002년 한국시리즈가 워낙 처절한 접전이 돼버리면서 감독 영전 자체를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것이 삼성 입장에서 팀 분위기를 들뜨게 하는 일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결국 삼성이 극적으로 우승하면서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나서 조범현은 SK의 공식 감독으로 취임할 수 있었다.

2003년 초반에 1위에도 잠시 오르는 등 돌풍을 일으켰지만 시즌 후반부터 처지기 시작하면서, 결국 정규시즌 자체는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4위 자리를 놓고 다투던 한화 이글스를 잡아내며 4위로 간신히 준플레이오프에 턱걸이하였다. 어쨌든 팀 창단 첫 번째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 그리고 준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에서 삼성과 KIA를 잇따라 스윕하면서 정규시즌 4위에서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며 이른바 "돌풍의 SK"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이때 우승을 했다면 태풍의 SK가 되었겠지 그리고 한국시리즈에서도 7차전까지 가능 접전을 펼쳤지만, 아쉽게도 3승 4패로 현대 유니콘스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1, 4, 7차전에 모두 등판해서 3승을 따낸 현대의 에이스 정민태를 공략하지 못한 것이 컸다. 43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감독직에 올라 2003 시즌의 예상치 못한 큰 성과로 당시 프로야구계의 감독 40대 기수론이 유행하기도 하면서 이듬해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에 40대의 젊은 양상문이, LG 트윈스의 감독도 역시 40대의 젊은 그 분이 임명됐다(...). 그리고 김응용은 60대 기수론을 거론했다

2004년에는 기존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5위에 그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지만,[7] 2005년 박재홍, 박경완, 이호준, 김재현, 이진영을 축으로 한 타선과 김원형신승현으로 이루어진 토종 선발 원투펀치, 정대현, 위재영, 조웅천으로 구성된 계투진 등 팀을 잘 꾸리면서 후반기 최고 승률을 기록하는 등 승승장구하면서 정규시즌 마지막 날까지 시즌 2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시즌 마지막 날 LG에게 덜미를 잡히면서 턱밑까지 따라와 있던 두산에게 역전을 당해 시즌 3위로 내려앉았고, 이 충격 때문에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에게 2승 3패로 패하면서 탈락했다.

조범현이 이끄는 SK가 우승 최적기였던 이 시즌에서 허망하게 무너진 후, 2006년에는 초반 팀 타선의 핵이었던 외국인 타자 시오타니 가즈히코의 부상과 투수진의 붕괴로 미끄러지면서 6위에 그쳤다.

결국 2006년까지 감독 생활을 했지만 구단 측이 조범현과의 재계약 대신, 조범현의 스승인 김성근 감독과 계약을 맺으면서 첫 감독 커리어는 이렇게 끝났다. 사실 이때 2006 신인 드래프트에서 인천고의 이재원이 아닌 동산고의 류현진을 2차 1라운드 지명을 했다면 잘리지 않았을 거라는 평이 많은데[8], 당시로서 류현진은 대수술을 한 불안정한 유망주의 신분이라 어쩔 수 없었다.

조범현 감독은 SK의 감독으로 있으면서 강병철 감독이 닦아놓은 토대에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고, 기존의 이호준, 조경환, 김원형, 이승호, 조웅천 등 기존의 선수들과 박경완, 박재홍 등 외부 영입 선수들을 적절하게 기용하여 SK의 허접했던 약체 이미지를 벗겨내고 제대로 된 강팀의 기틀을 닦아 당당히 포스트시즌에 도전할 수 있는 팀으로 성장시켰으며 김성근 감독 부임 후 SK 와이번스의 3차례 우승을 이끌었던 젊은 핵심전력 정근우, 김강민, 최정, 박재상, 조동화, 정우람, 윤길현 등, 팀의 미래를 책임지게 될 선수들을 1군으로 끌어올리는 등 결코 팀의 역사에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성과를 내었던 바 있다. 하지만 노리타들은 이것도 김성근 감독의 업적이라고 한다

다만, 조범현의 성적을 낼 수 있던 시절에는 정작 조범현이 SK시절 키운 선수보다 외부 영입의 주효과 조범현 부임이전 기존의 선수들의 활약으로 했다. 롯데에서 20홈런 이상을 처낸 조경환, 현대시절 이미 최고의 중간계투였던 조웅천, 해태시절 장타력이 입증된 이호준,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 출신인 아마추어 최고 유망주 정대현, LG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FA로 팀을 이적한 캐넌히터 김재현, SK출신 신인왕 투수 이승호, 쌍방울 시절 최연소 노히트노런 등 꾸준히 활역한 김원형, 이미 현대에서 기량을 보여준 위재영, 기아와의 갈등 속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한 호타준족 박재홍, 그리고 견고한 수비의 베테랑 유격수 김민재와 KBO 리그 최고의 포수 중 하나인 박경완 등.

3.3 KIA 타이거즈 감독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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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스포츠 서울의 객원기자로 있다 2007년 6월 KIA 타이거즈의 배터리 코치로 취임했다. 이를 두고 당시 KIA 타이거즈 팬들 사이에는 서정환 감독의 후임으로 구단 측이 데려왔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물론 서정환 감독은 자신이 부탁해서 왔다고 말했지만 서정환 감독과 별로 인연도 없었던 조범현 감독이 선뜻 배터리 코치로 부임한 것은 의문이 가는 대목이다.

그리고 2007년 10월 시즌 후 서정환 감독 대신 김응용 감독 이후 첫 비 해태 출신[9] KIA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여담으로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취임하자마자 데뷔전을 치르게 되었다. 보통 정식으로 감독에 취임하는 시기는 정규시즌이 모두 끝난 뒤이므로 이례적인 사례인데, 이는 하필이면 슈퍼 한국시리즈(...)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부임 후 2008년에는 6위에 그쳤지만, 2009년 정규리그 우승과 2009년 한국시리즈의 우승으로 팀에 열 번째 우승을 안겨 주며 일약 명장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2010년에 지독한 연패의 늪에 빠지는 바람에 지지도가 많이 떨어졌고, 2011년에는 전반기 선두를 달리다가 주전들의 줄부상 속에 4위로 추락하면서 결국 2011년 10월 18일 KIA 타이거즈 감독직에서 자진사퇴하게 되었다. 사퇴 전까지 2012년 계획구상에 대한 기사가 나온 것을 보면 구단의 권고에 의한 사실상의 경질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기아는 2015년 현재까지 암흑기에 빠지게 된다

3.3.1 2010년

조범현/2010년 문서 참고.

3.3.2 2011년

전반기엔 잠깐 삽질을 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연승 행진을 이어가며 1위 자리까지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1위 자리를 삼성 라이온즈에게 빼앗기고, 미덥지 못한 불펜 운용으로 4위 자리까지 추락. 포스트시즌에서도 이만수SK 와이번스에게 2009년 코리안시리즈의 리벤지를 당하며 1승 후 3연패로 탈락하며 허무하게 가을 야구를 마감했고, 팬들의 성화에 밀려 결국 KIA 감독에서 물러나게 된다.

조범현/2011년 문서 참고.

3.3.3 KIA 감독으로서의 총평

객관적으로 보면 상당히 유능한 감독이다. SK에서나 KIA에서나 팀을 중상위권에 고정시켰다. 특히 KIA는 조범현 부임 전, 유남호-서정환 때문에 해태의 이미지가 모두 갉아먹히고 엘롯기 시대를 연 약팀으로 일컬어졌으나, 조범현 시절에 이르러선 어쨌든 강팀의 이미지를 되찾게 되었고 삼성, SK 등과 더불어 우승후보에 거론될 정도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그의 부임시기에 선동열, 김경문과 같이 개성있는 젊은 감독들이 맹활약한 탓에 존재감이 다소 밀린 데다가, 후임 감독이 엄청난 성과를 낸 SK나, 비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라는 약점[10]이 있는 KIA에서는 자팀 팬들에게도 인정을 못 받은 탓에 저평가를 받았다.

다만 한 박자 늦는 작전 타이밍, 투수 운용의 무리, 거기에 겹친 여러 선수들의 부상[11] 등등 약점도 뚜렷하게 보이는 면이 있었다. 이 때문에 2011년 전반기를 1위로 마감하고서도 후반기에 성적이 급전직하하여 팬심을 잃어버렸다.[12] 물론 이런 "운"이라는 요소도 감독은 그 여파를 최소화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결국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여러모로 2011년 한 시즌은 조범현식 야구의 축약판으로 볼 수 있는데, SK 시절이나 KIA 시절이나 계약 초반에는 잘 하다가 후로 갈수록, 그리고 주전 선수들이 무너지게 된다면 팀이 급속도로 약해져 가는 식을 반복하였다. 이런 것을 보면 막장화된 팀을 리빌딩하여 중상위권으로 끌어올리고 기회가 오면 상위권으로 팀을 도약시키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으나, 상위권 팀으로 올린 뒤 이 전력을 장기간 유지하는 면에서는 좀 서툰 것으로 보인다. 결국 주전 선수들을 받쳐줄 1.5군 선수 양성을 소홀히 했고 불펜 운용이 서툴렀다는 점 등을 이유로 팬들의 마음이 떠났고, KIA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13]

그렇게 팬들의 지지와 신임을 잃고 물러났지만 KIA 팬들이 잊어서는 안 될 사실이 있다. 과거의 영광을 잃고 2007년까지 약팀의 대명사인 엘롯기라 조롱을 당하던 KIA 타이거즈에게 V10을 안기고 해태시절의 강팀으로 재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다져놓은 장본인이 바로 조범현 감독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더구나 인수 이후 사실상 야구단을 방치하던 모기업 현대차그룹이 2009년 우승 이후, 적극적인 투자로 돌아섰다.[14] 200억을 투자해서 함평에 최신식 2군 훈련장을 지었고, 광주신구장 건설비 500억도 내놓았다. 그리고 3군 체제를 처음 도입한 것도 조범현 감독 시절 말기의 일. 모두 2009년 우승의 부산물이다.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는 무난한 평을 받고 있다. 아무래도 기나긴 암흑기를 물리치고 V10을 달성하게 해준 감독인지라... 더군다나 조범현 감독이 리빌딩 하기 전인 2007년도 라인업(소위 송산4번을 치던.)짤만 뜨면 조범현 감독 찬양을 하는 갤러들도 볼 수 있다. 지칭하는 별명은 주로 버며니 어빠가 되는 듯.

2012년 선동열, 이순철이종범을 강제로 은퇴시켜버린데다, KIA가 SK와의 개막 2연전에서 2연패하는 등 지속적인 경기력 난조를 보이자 KIA 타이거즈 갤러리를 중심으로 재평가 운동이 일어났다.#

2013년 시즌, 팀 최종 순위가 8위로 추락해 9위를 확정지은 한화 이글스와 함께 하위권을 형성, 투타에 수비까지 죄다 무너지는 총체적 난국을 연출하였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2000년대 롯데나 LG처럼 최소 수년의 리빌딩이 소요될 것이 분명해진 상황이라 KIA 타이거즈 갤러리 등에서는 조뱀을 깐 나 자신을 반성한다는 식의 자아비판까지 줄을 잇기도 했다. 그렇게 조범현을 전기톱으로 썰고 썰고 또 썰던 호랑이 사랑방에서마저 조범현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나타나기도 했다.

선동열은 3년 계약기간이 끝난 2014년까지의 성과를 보면 정확히 김재박의 전철을 밟았고, KIA 타이거즈가 선동열 지휘 아래서 우승이나 4강권은 커녕 탈꼴지를 걱정해야 할 수준으로 몰락한 시점에서 보면 2011년의 조범현의 계약기간 내 경질과 선동열 선임은 프랜차이즈 선호에 눈이 먼 비(非)이성적인 팬덤 + 팬덤에 휘둘린 구단수뇌부의 경거망동 + 선동열에 대한 과대평가가 빚어낸 최악의 한 수임으로 판명되고 있다. 이 때문에 조범현에 대한 평가는 계속 올라가는 중.

하지만 밑에도 나오듯 홀수해 징크스가 있기 때문에 설상 1년을 더 간다 해도 더 까이면 까였지 덜 까이진 않을 것이란 주장도 존재한다. 박수칠때 떠났다

3.4 야인 시절(2012~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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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포수 인스트럭터 시절.

2012년 한국야구위원회 육성위원장으로 부임하면서 전국을 순회하며 야구 유망주들을 지도하였다.

2012년 곯을 대로 곯은 한화 이글스에서 한대화 감독이 경질되면서 차기 감독 후보로 떠오르기도 했다. 리빌딩에 있어서는 최고의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화팬들의 지지를 꽤 받았다. 외에도 이정훈 북일고 감독이나 감독 대행을 맡은 한용덕도 차기 감독 후보로 꼽혔다. 한편 스승인 김성근고양 원더스와 재계약하면서 당분간은 프로로 복귀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하였다.

이르면 9월 말 신임 감독을 최종 결정한다고 한다.

9월 15일, 차기 한화 감독으로 낙점받았음이 밝혀졌다. # 일전에 언급된 시기보다 빨리 밝혀진 셈인데, 한화 구단은 예정 그대로 9월 말에 공식 발표할 예정이었던 듯 하나 정보를 미리 입수한 기자가 단독으로 기사를 낸 것으로 보인다. 잠깐 그러면 장성호는 어떻게 되는 거지 기사가 뜨자 마자 한화는 차기 감독에 대해 정해진 것이 없다고 급히 사태를 봉합하였다.

9월 16일 한화에서 이런 서투른 행보를 한 이유가 다른 팀에서도 조범현에게 감독 제의를 했기 때문에 서두른 것이라는 기사가 떴다.# 한화 이외의 일곱 구단에서 경질될만한 감독이 없어보여서 그저 카더라에 그치는줄 알았는데...

9월 17일 김시진 감독이 넥센 히어로즈에서 경질되면서 분위기가 묘해졌다. 넥센 팬들은 구단을 성토하는 한편으로 은근히 조범현을 기대하는 상황이며, 한화 팬들은 반대로 김시진을 모셔오자고 하기도... 덕분에 '밀약'이라도 있던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한화 이글스에서 김재박 감독의 선임이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서 조범현 감독은 넥센으로 가는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화 이글스에서는 김응용 감독을 영입하는 강수를 두고, 넥센 히어로즈에서는 염경엽 주루코치를 감독으로 내부에서 승격 시킴에 따라 두 팀의 감독으로 활동할 일은 없게 되었다. 그 탓에 감독직 대신 김응룡의 배터리 코치로 부임하거나[15] 앞으로 창단될 제 10구단 KT 위즈의 감독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이런저런 하마평이 나오는 가운데 2012년 포스트 시즌이 끝난뒤 롯데감독이 사퇴하면서 동시에 구속당하고 롯데로 간다는 소리도 나왔다. 2013년 V3가 현실로? 그러나 롯데는 넥센 히어로즈에서 짤린 김시진을 영입하면서 롯데 감독직 획득도 좌절.

결국 더이상 감독할 자리가 없어지자 2013년 1월 초 삼성 라이온즈의 포수 인스트럭터로 초빙되었다. 스프링캠프 때만 포수들을 지도하게 되었다가 아예 삼성 포수들을 지도하게 되었다. 선동열조범현간 맞트레이드 삼성 팬들은 그가 이지영과 함께 김동명 등 2군 포수들의 실력을 향상시켜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현실은 이지영은 물론이고 2군 포수들도 노답 그리고 전병호 코치와 유망주들만 홀라당 빼갔다[16]

그러나 2014 시즌 수술로 빠진 진갑용, 개막전 이후 부상으로 이지영이 결장한 사이 2년차 신인 포수 이흥련이 괜찮은 모습을 보이고 이흥련을 삼성 인스트럭터 시절 조범현 감독이 미친듯이 굴리며 담금질했다는 기사가 나와서 다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진갑용 시즌 말 복귀예정이고 이지영이 결장만 1달에 기존의 제 3 포수였던 이정식은 봉와직염으로 1~3포수가 죄다 아웃인 점을 감안하면 삼성 입장에선 이흥련의 활약이 천만다행인 셈이었기에.

3.5 kt wiz 감독 시절

2013년 8월 2일, 신생구단 kt 위즈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리고 8월 5일 취임식을 가졌다. 이전에 감독으로 있었던 SK 와이번스KIA 타이거즈와 맞붙으면 어떤 모습이 나올지 기대를 받기도 했다.

2014년 11월 28일 특별지명에서 KIA 타이거즈이대형을 지목하면서 정작 이대형이 20인 보호 명단에 없자 이대형이 무슨 병이 있나 해서 어리둥절했다고 하였다. 이에 KIA 타이거즈 갤러리 등에서 조리둥절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3.5.1 2015년

해당 문서로. 초대 콱동님 이젠 아끼던 선수에 의해 또동님이 되었다.

신생팀 감독을 맡으며 감독 생활 중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할 만큼 힘든 한 해를 보냈으나, 그런 와중에도 조무근, 김재윤 등 필승조 발굴과 김상현, 박경수 등 기존선수들의 재발견으로 팀의 기반을 잘 다져놓았다는 평을 받았다.

3.5.2 2016년

2015년 후반 사생활 논란으로 중징계를 받은 장성우에 대해 부모가 자식에게 뭐라고 하겠나라며 대인배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장성우가 욕한 대상에 본인도 포함되어 있음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kt 위즈 팬들의 심금을 울린다는 평. 여기에 트레이드 상대였던 박세웅이 어느정도 기량이 성장하면서 개인성적보다 팀이 우선이라는 리더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2016년 kt 선발투수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부각된다.

그런 와중에도 2016년 2차 드래프트에서 LG에서 사실상 내다버린이진영을 얻어왔다. 이진영이 보호선수명단에서 빠진 것을 보고 놀라서 kt 프런트 직원에게 LG 트윈스 프런트에 전화하여 정말로 이진영이 빠진 것이 맞냐고 확인을 시켰다고 박동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조리둥절 2탄 어쨌든 단번에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고. 이대형 때도 그랬지만, 어쨌든 주전급 선수를 거저 얻은 격.조범현 : 사랑해요 LG

2월 3일 박동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장성우의 잘못에 대해 야구팬들에게 용서를 구한다며 머리를 숙이셨다. 본인 또한 뒷담화의 피해자이면서도 결국 고개를 숙이기까지 했다는 부분에서 kt 팬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3월 13일 오정복이 음주운전으로 입건돼 징계를 받으면서 '조범현 감독님 수명을 얼마나 깎아먹을 셈이냐'는 드립이 베스트댓글이 되었다.

5월 말이 되면서 선발진이 완전히 무너졌음에도 6선발을 고집하는 것과 6선발 고집으로 인한 장시환고영표의 혹사, 부진한 상태인 김상현, 앤디 마르테 등을 과도하게 기용하는 것 양아들 등으로 비판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여기에 5월말부터 6월초 심재민을 9경기중 무려 8경기에 등판시켜 논란이 되고 있다. 물론 이 분처럼 혹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언급을 잘 안할 뿐..

7월 12일 이번에는 김상현이 약 한달전 익산의 2군 구장에서 경기가 끝난후 차내에서 밖에 서있는 여성을 보며 음란행위를 하여 수사를 받고 있음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쯤되면 조범현 감독 몸에 사리가 생기는거 아닌가 싶다(...) 이번 사건에 휘말린 선수가 다른 선수도 아니고 KIA 시절부터 연을 맺었으며 올 시즌 죽을 쑤고 있음에도 무한 신뢰를 하며 꾸준히 주전으로 출장시켰던 김상현이라 전보다 속이 엄청 많이 쓰릴 것이다.

전반적으로 위의 'KIA 감독으로서의 총평' 문단에 적힌 평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야구를 보여주면서 경기운영이 답답하다는 팬들의 성토가 나오고 있다. 또 본인의 재계약보다 팀 성장이 우선이라는 말을 했으나 자기 스승한테 보고 배웠는지 선발투수가 조금이라도 흔들린다 싶으면 퀵후크를 남발하고 불펜은 그 반대급부로 지독하게 혹사하는 등 팀 성장에도 도움이 안 되고 성적을 내서 재계약을 노려보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경기운영을 반복하고 있다.

2016년에도 이창재와 고영표 등이 혹사지수 상위권에 올랐기에 유일신 김성근, 혹사에서도 콩라인인 김경문에 이어 혹사 3위, 혹은 인간계 혹사 2위라는 평가를 받으며[[17], 이는 육성형 감독이라는 조범현 감독의 최대 장점을 크게 갉아먹는 요소이다. 비슷하게 경기운용에 꽤나 부족함이 있지만 미래의 팀을 잘 만들어놓았다는 김진욱 전 감독의 경우 혹사는 비교적 확실하게 배제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조범현 감독의 평가가 내려갈 수밖에 없다. 특히 지금 데리고 있는 투수코치인 정명원 코치가 바로 두산 시절 김진욱 전 감독과 함께하던 코치이며 2군의 차명석 코치도 LG 시절부터 명코치 평가를 받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혹사에 관해서는 이미 다른 팀에서 전과가 있는 조범현 감독에게 제일 많은 비판의 화살이 쏠리는 편이다. 팬들의 인식만큼 나이가 많은 편이 아니지만 김성근 선동열 김경문으로 대표되는 타이트한 불펜야구 시대에 감독을 하고 우승을 했던 것이 오히려 젊은 감각으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2010년대에는 발목을 잡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시즌 초반 선전하며 좋은 출발을 보이는 듯했으나 여름 들어 영 시원찮은 경기력으로 결국 10위로 곤두박질친 팀, 불펜 혹사 논란, 선수들의 잇따른 야구 외적 사건사고 등 때문에 재계약은 힘들 듯하다. 8월 24일 이런 이유를 들어 '프로야구 kt wiz, 조범현 감독과 재계약 안할 듯'(경기일보)이라는 기사가 올라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삭제되었다.

10월 12일 새벽 1시 30분경 결국 kt가 조범현 감독과 결별을 택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후임 감독은 김진욱두산 베어스 감독.

3.5.3 kt 감독으로서의 총평

팀의 문제점을 뒤집어쓰기도 했지만 본인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팀이 창단하자마자 주력 전력의 노쇠화와 유망주 투수들의 혹사로 인한 부상 및 수술 위험이라는 문제점을 남기고 떠난 감독.

kt팬들과 팬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린다. kt팬이 아닌 사람들은 기존에 알려진 바와 같이 조범현이 리빌딩의 달인이라는 멘트와 함께 구단이 투자를 안 해서 kt가 실패한 것이라며 조범현이 원했던 그림 중 제대로 된 게 하나 없다는 평가를 한다. 그러나 팀이 투자에 소극적이었고 사건사고가 지나치게 많았던 부분을 인정하더라도 조범현의 kt 운용은 비판받을 여지가 충분히 있다.

우선 상단 KIA 감독으로서의 총평 문단에도 언급된 '한 박자 늦는 작전 타이밍, 투수 운용의 무리'에 대해서는 kt 감독으로 있는 동안에도 전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투수운용은 팬들도 답답함을 토로할 정도로 교체 타이밍이 너무 늦는 경우가 잦았다. 딱 한 번 귀신같은 투수교체로 승리를 챙겼던 2015년 9월 21일 경기가 있긴 한데, 잘했던 것보다는 못했던 게 더 기억에 남는다지만 투수교체를 잘했던 경기의 대표적 예시로 꼽을 것이 이 경기뿐인 수준이다.반례는 무수히 많다. 갑자기 조급증 출첵야구해서 대역전패로 스승님 승리를 챙겨드린다던가...

연패를 끊어내는 능력도 제로에 가까워 한번 연패에 빠지면 계속 무기력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팬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재주는 덤.

또 신생팀 감독으로서 전력의 내실화에 힘을 쏟아야 했음에도 조급증에 걸린 것처럼 유망주 선발투수가 조금만 흔들려도 바로 불펜을 가동시키고, 이는 불펜의 과부화로 이어져 장시환, 조무근이 2016년 들어서 전년도의 페이스를 완전히 잃었으며, 2016년 4월과 5월에 걸쳐 고영표심재민을 타자 수준으로 출전시키는 등 두 번째 해에도 이런 모습은 개선되지 않았다. 고영표와 이창재 등이 혹사지수 상위권에 랭크되었지만 한마디로 혹사지수보다도 더 혹사가 심하다. 2010년대 중, 후반 감독치고는 연투와 집중투에 무심한 편으로, 2013년 초반 김승회를 미친척하고 굴려서 후반기에 뻗게 만든 롯데의 김시진 감독이나 4월 송창식 애니콜 논란을 일으킨 한화의 김응용 감독처럼 시즌 끝나고 보면 등판횟수가 적어서 혹사가 아닌 것 같지만 단기간 집중적으로 무섭게 굴려서 여러 투수의 폼을 떨어뜨리는 행동을 저질렀다. 다르게 말하면 이건 김성근이나 김경문처럼 알고도 총 이닝을 많이 먹이는 혹사를 저지르는게 아니라 투수운용을 그냥 못하는거다. 이닝 천천히 고르게 먹였으면 아무도 혹사 안할 수도 있었다. 심지어 정명원-차명석 등 다른 팀에서 좋은 의미로 검증된 투수코치 라인을 데리고도 과거 자신이 고집하던 투수운용을 그대로 반복했다.

야수의 경우 주력선수들은 이적생 출신의 베테랑 타자들(김상현, 박기혁, 박경수, 이대형, 유한준, 이진영 등)이 대다수이고 여기에 트레이드했거나 팀 창단 시 뽑았던 노망주들(오정복, 하준호, 김사연 등)이 주전과 백업을 오가는 상황이다. 16년 신인드래프트에서 투수를 거르고 야심차게 1픽으로 지명한 남태혁조차 16시즌 내내 모습도 드러내지 않다가 이미 순위가 다 결정난 시즌 막바지에 와서야 1군에 콜업되는 등 유망주로서 포텐을 터뜨린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야수 육성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2군에서 아무리 잘 쳐도 항상 베테랑 위주로 라인업을 구성하기 때문에 2군 선수들을 잘 콜업시키지 않으며, 어쩌다 올라와도 단 한 번의 기회만을 제공한 후 뭔가 보여주지 못하면 금방 내려버리는 식의 운용이 시즌 내내 반복되었다. 야수 주전 육성 0명이라는 결과는 조범현이 리빌딩과 육성을 잘하는 감독이라는 인식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것으로, 조범현이 kt에서 실패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단순히 결과만 좋지 않았다면 야수 자원의 부족이나 시간의 부족 탓을 해도 되지만, 조범현 감독의 경우는 그 과정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아무리 봐도 타격 컨디션이 별로인 김상현을 믿음의 야구로 일관하며 타율이 2할 초반대에 머무는데도 꾸준히 4번에 기용하거나, 기계적인 수준의 좌우놀이에 집착하는 등 현대야구 추세인 데이터 야구를 전혀 하지 않는 모습도 신생팀으로서 신선한 야구를 보여줬으면 하는 팬들의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오랜 경력에 비해서는 비교적 나이가 젊은 편이지만, 나이가 무색하게 확실히 옛날 야구를 한다.

박세웅을 보내고 장성우를 영입한 것도 후대엔 재평가가 될지 모르겠지만 16시즌을 마친 현재로서는 실패한 트레이드에 가깝다. 박세웅이 롯데에서 쌓은 승수만큼 kt에서 기록한 투수는 외국인 중에도 없다. 반면 장성우는 인성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굳이 데려왔고 결국 사고를 내는 바람에 16시즌 내내 전력외가 되고 말았다. 다 큰 성인이 자기 앞가림이야 자기가 하는 것이 맞지만, 선수들의 사건사고를 책임질 사람을 찾는다면 당연히 감독이 될 수밖에 없다.

해임 일주일 전에는 신인들과 잡힌 상견례에 참석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구단 직원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많은 팬들이 크게 실망했다. 비록 구단이 구두로 재계약 약속을 한 상황에서 김상현 사건으로 유야무야 넘어가버리는 등 조범현이 구단에 불만을 가질 만한 상황이 조성되기는 하였으나 진정 팀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신인들을 다독여주는 지도자로서의 책무를 다했어야 하는데 구단 하는 짓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꼬장을 부리는 듯한 행동을 보인 것.

한편 조범현이 잘했던 점으로는 박경수의 포텐셜을 알아보고 홈런타자의 재능을 일깨운 것, 포수로 뽑은 김재윤을 투수로 전향시키고 필승조로 자리잡게 한 것, 주권(야구선수)을 선발로 꾸준히 믿고 기용해 가장 믿을만한 토종 선발 후보로 만들어낸 것, 하위픽 출신 조무근을 신인왕 후보까지 올린 것, 방출된 선수였던 김종민(야구선수)이해창(1987)을 백업포수로 길러낸 것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결국 성적 부진과 선수 관리 실패라는 표면적 이유로 단장과 함께 해임되었으나, 엉뚱하거나 불가항력적인 원인으로 인해 억울하게 재계약에 실패했다고 평가하기에는 실제 문제는 공식입장에서 언급된 것보다 훨씬 많았으며, 그를 그리워할 kt팬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3.6 지도자로서의 성향

3.6.1 개관

코치 시절에는 훌륭한 배터리 코치였다.[18] 이 사람 밑에서 제대로 포수로 조련받은 선수가 박경완, 진갑용 등 현 한국프로야구 최정상의 포수. 특히 쌍방울 배터리 코치시절 박경완을 새벽 6시부터 저녁까지 지옥훈련으로 굴린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LG 트윈스현대 유니콘스에서 주전 포수로 활약하며 역시 최고의 포수라는 평가를 받은 김동수와는 궁합이 안 맞는다며 딴 곳에 보내버렸고, SK의 감독으로 오자마자 김동수부터 방출해 버렸다. SK 재임시절 정상호는 결국 조범현 재임 시기에 재능을 터뜨리지 못했으며[19] KIA에서도 제대로 키운 포수 자원이 없어서[20] 정말 포수 육성 능력이 있기는 한 거냐는 의견도 존재한다. 다만 포수라는 게 원래 프로에서 성장시키기도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포지션이고, SK 시절부터 조범현은 감독으로 활동했기에 포수 육성에만 집중할 수는 없었던 터라 전문적으로 배터리 코치로 활동하던 시절에 비해 성과물이 안 나온 거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2013년 삼성 라이온즈 포수 인스트럭터로서 이흥련을 과거 박경완처럼 지옥훈련으로 조련해서 쓸만한 포수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21]

우승 경험은 1982년 OB 선수 시절의 원년 우승, 2002년 삼성라이온즈 배터리 코치로 우승, 2009년 KIA 타이거즈 감독 우승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였다. 거기에 더불어서 2010년도에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국제대회까지 우승하며 한국프로야구에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유일한 사람이다! 그와 함께 그의 별명이 조바마(조범현 + 버락 오바마)가 또 생겼다.

김상엽처럼 홀수 해에는 좋은 성적을, 짝수 해에는 나쁜 성적을 거둔다는 징크스가 있다. 2003년 2위[22], 2004년 5위, 2005년 3위, 2006년 6위, 2007년 1경기 1패, 2008년 6위, 2009년 1위, 2010년 5위, 2011년 4위 그러나 이 법칙은 2015년에 kt wiz가 KBO 사상 첫 10위를 찍으며 깨지고 말았다. 물론 신생팀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3.6.2 선수단 운영

세밀한 작전 지시에서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이 많지만, 양현종, 곽정철을 비롯한 젊은 투수진의 수준을 끌어올려 리빌딩에 성공한 것은 조범현의 공으로 볼 수 있다. 팀 성적에 따라 별명도 조뱀에서 조백사, 조갈량으로 진화.

SK 감독 시절에는 여러모로 미숙한 점이 많았다. 전임 강병철 감독 시절의 열악한 투수진 때문에 데뷔 첫 해부터 모든 부담을 짊어지고 혹사 당해 반드시 쉬어야 했던 에이스 이승호는 혹사 여파로 인해 관리가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굴려지며 결국 3년을 부상으로 날렸고 복귀 후에는 선발로 나오지 못하고 중간계투가 되었다. 선수단 관리도 미숙해서 1차 지명 출신 송은범은 멘탈 케어가 안되어서 놀아버렸고[23] 제춘모는 2003년 한 해 반짝한 후 자기관리 실패로 인해 다시는 그 때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신승현, 엄정욱 등은 부상의 늪에 빠졌다.[24] 선수 보는 안목도 문제가 있어 류현진 대신 (2라운더에서도 충분히 지명할 수 있는) 이재원과 김성훈을 선택했고[25] FA로 한화에 간 김민재의 보상선수로 신체 건장한 양훈 대신 김인식의 혹사로 맛이 간 정병희를 선택했다. 야수 기용도 마찬가지라서 자질있는 젊은 야수들을 키우려는 시도는 했지만 정작 키우는 방식은 미숙해서 제대로 된 포지션 하나 못잡아주고 여기 박았다 저기 박았다 하면서 정처없이 떠돌게 만들었다.

시즌 구상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06년 시즌을 앞두고 어깨부상 당한 이승호와 인저리프론 엄정욱이 건강하게 돌아온다는 별 신빙성 없는 구상을 바탕으로 타자 용병만 2명 뽑았다가 6위로 실패하고 결국 본인은 재계약 불가 크리[26]로 물러나고 말았다.

반면 리빌딩의 대가 강병철이나 화수분 야구의 김경문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야수 부문에서 장기적인 안목의 리빌딩을 무난하게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병철의 양아들이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조범현 역시 젊은 선수들 위주로 기용하며 양아들 키우냐는 비아냥을 많이 들은 편. SK시절만 해도 정근우, 김강민, 박재상, 조동화, 최정등을 어떻게든 쓰기 위해 제 포지션이 아닌 땜빵포지션이라곤 해도[27] 꾸준히 1군에 등록하며 경험을 많이 제공했다. 뒤이은 KIA 시절에도 김선빈, 안치홍으로 이루어진 젊은 키스톤 라인을 구축했고, 나지완을 팀내 4번 타자로 성장시켰다. 트레이드로 데려온 채종범은 끝끝내 부활하지 못했지만... 부임 첫해에는 성적이 안 나온다고 욕먹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로 인해 09년의 우승이 가능했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다만 육성 관련해서는 이 선수가 이 포지션에 적합하다고 생각하고 그 능력을 키우는게 아니라 쓸만한 선수 여기 써보고 저기 써보고 하는 식으로 돌려쓰다 어디 한 군데 적응하면 좋고 아님 말고 식이라 한계가 있었다. 당장 최정은 조범현 시절 고정된 포지션이 없어 정처없이 떠돌아 다녔다. 포수를 잘 키운다는 주장도 있으나 정작 감독이 되고나서 제대로 키운 포수가 단 한 명도 없어서 그냥 박경완, 진갑용이 얻어 걸린거라는 반론도 있다.

두산의 김경문 감독과 같은 포지션에 같은 팀에서 뛰었지만 감독이 된 후의 성향은 상당히 차이가 많이 난다.[28] 둘 다 포수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블로킹에 관한 견해가 다르다는 것이 재미있다. 김경문이 포수는 막으라고 있는 포지션이라고 가르치는 반면 조범현은 선수생활 오래하고 싶으면 주자가 뛰는 길은 막지 말라고 가르친다.

또 다른 문제는 KIA의 감독을 맡은 뒤, 6선발 체제의 선발 중심 야구를 하는건 좋은데 불펜 운용에 취약한 면을 드러냈다는 것. 한 템포 느린 터프한 상황에서 교체, 손영민, 김희걸 등의 잦은 등판으로 인한 혹사 논란 등을 들 수가 있겠다. 이점은 kt에서도 변하지 않아 2016 시즌에 신인 투수들이 선발을 소화할 상태가 못되는데도 무리하게 6선발을 고집했고 그 결과 한화 뺨치는 불펜 혹사를 기록하고 있다.

3.6.3 인간적인 면

전 소속 팀의 팬들에게 인간적인 면에서는 그리 좋은 평가를 못 받는데, SK 와이번스 시절에는 송은범을 할아버지의 발인식[29]에 보내지 않음으로 인해 상당히 비난이 많았다.[30] 이에 대해 송은범이 엇나간 것이 조범현의 책임이라는 비난은 옳지 않고, 그가 학창 시절부터 이미 잘 노는 선수로 유명하여 구단 차원의 관리 대상이었다는 반박도 있다.# 하지만 저 사건이 송은범에게 크나큰 정신적 데미지를 주었을 것은 자명한 일이며, 관리 대상이라 하더라도 직계 존속의 발인에 참석하지 말라고 지시한 감독과 구단의 행태는 당연히 비난감이다. 조범현은 이미 인간적으로 배려가 없는 한참 모자란 짓을 한 것이다.

한국 야구계 자체가 인간적인 부분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이 사건과 비슷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 후에 이종운 감독과 손아섭 관련 사건으로 다시 불거지지만, 그전의 김성근 당시 SK감독만해도 2군 코치가 부친 기일에 잠깐 다녀와도 되느냐고 당시 이만수 2군 감독에게 허가를 요청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만수 2군 감독은 야구가 없는 휴일이라 괜찮겠지 하면서 김성근 감독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OK를 했는데, 2군 훈련과 재활까지 모두 챙기는 김성근 감독이 어딜 감히 장수가 전쟁 중에 전쟁터를 비우냐라고 화를 냈다는 일화가 전한다.#
[31] 이와 정반대되는 일화를 전하는 가장 확실한 인물은 제리 로이스터 감독[32], 즉 대한민국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다.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지 4일 만에 수석코치인 김종모를 경질하고, 타격코치 황병일을 수석코치에 앉혔고 kt wiz에 와서도 황병일을 불렀다.[33] 김종모에겐 부임할 때 끝까지 같이 가자고 말해 놓고 우승하고 나니 껄끄럽다고 경질해 버린 것. 김종모가 타이거즈 프랜차이즈 스타였음던지라 배타적이던 기아팬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다. 조범현이 김종모를 경질한 이유를 추측해 보자면, 당시 김종모는 차기 감독을 염두에 두고 감독의 의중과 상관없이 KIA 구단에서 수석코치로 임명된 사람이었다. 즉 '김성근 감독 - 이만수 수석코치'와 비슷한 예. 우승 이후 이방인으로 지역색이 강한 선수단을 장악하기 위해 잠재적인 라이벌을 내치는 것은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팀 프랜차이즈 스타인 장성호를 찬밥 취급하여 결국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하게 만들었다고 비난을 받았는데, 조범현 감독의 부임기간 동안 장성호의 성적은 하락세였고 2009년에 1루수 경쟁자 최희섭은 골든 글러브를 받는 등 전성기를 맞았다. 김상현트레이드로 합류하기 전까지 KIA 타이거즈는 오른속 거포가 절실했기 때문에 유망주 나지완플래툰을 한 것이다. 2014년 11월 장성호의 인터뷰에 따르면 본인의 훈련 태만으로 인해 화가 난 조범현 감독에게 오히려 대들며 트레이드 요청을 했다고 하며, 이는 4년간 서로간의 앙금으로 남아 있다가 2014년 5월 조성환의 중재로 인하여 풀어지게 되었다. 여기에서 조범현 감독의 대인배적인 모습이 드러나는데, 훈련 태만과 관련된 다툼이 있었다고 언론에 언급했다면 자신에게 가해지는 비판은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었겠지만 조범현은 일언반구의 말도 하지 않고 그 모든 비난들을 참아넘겼다.[34] 그리고 장성호가 2014 시즌을 마치고 롯데 자이언츠에서 방출된 후, 조범현 감독은 장성호를 다시 받아들였다.

감독으로 부임한 후 조경환을 방출한 것을 두고도 뒷말이 많았었다. 조경환은 조범현에게 밉보였는지 SK 와이번스에서 2006년 6월 26일에 웨이버 공시됐고, KIA 타이거즈가 계약 양도를 신청하여 이적했다. 그런데 조범현이 KIA의 감독으로 오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조경환을 내친 것이었다. 비슷한 경우로는 김동수가 있었다. 삼성 라이온즈의 배터리코치로 있으면서 조범현과 사이가 나빴던 선수가 김동수였는데, 2003년 시즌을 앞두고 SK 와이번스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김동수부터 SK에서 제거해 버렸다. 그리고 FA 자격을 얻은 애제자 박경완을 영입했다.

이재주의 경우는 이재주 자신이 자초한 일이다. 이재주는 2군 훈련 시간에 늦게 나오는 데다가 좀 더 훈련하라는 코치들의 말을 무시하고 그냥 자신의 벤츠를 몰고 가 버렸다. 이렇게 팀의 케미를 해치는데 방출하는 건 당연했다. 그나마 친정이라고도 할 수 있고 선수를 팔아먹기도 했던 넥센 히어로즈[35]에서 영입하려고 했으나 계약하기 직전에 본인이 연락을 끊어 없던 일이 되었다.

부임 내내 팬들에 의해 저평가되고 안 좋은 모양으로 사실상 경질당했음에도 2012년 언론기고에서도 KIA 타이거즈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고, 선동열 신임 감독을 격려하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팀 성적도 부침이 심했고 가는 곳마다 대인관계에 있어서 잡음이 심했던 건 사실이라, 일각에선 '정치력'이 부족한 것 아니냔 평도 있다.

2015년 장성우 사생활 폭로 사건에서 조감독도 장성우가 뒷담화을 한 사람들중 한명이었다.천하의 개쌍놈 이 일은 큰화제가 됐고 장성우는 프로야구 팬 전체에게 가루가 되도록 욕을 먹었다. 조범현 감독 본인도 큰 데미지를 받았지만 성우가 내게는 이미 고개를 못들 정도로 사과를 했다. 부모가 자식한테 어찌 모질게 하겠느냐. 선수단 전체에게 새로 교육을 해야겠고 성우가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태어난 마음으로 살았으면 한다. 명포수로는 못키우더라도 인간은 만들어 놓겠다.라고 조감독 본인은 장성우를 용서하였다. 여기에 박동희의 기사로 화제가 되었던 폐지 위기의 모가중 야구부를 kt 코치진들과 함께 지도하고, 2015년에는 홈경기에 초청하기도 했다는 사실도 알려지며 점점 이미지가 좋아지고 있다.

4 김성근과의 인연

감독으로는 김성근 감독의 제자[36]로, 데이터 야구를 표방한다.[37] 그러나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부임하고 2008 시즌을 보내며 악평이 많았는데, 대표적으로 타자에게 맡기는 팀컬러와 다른 감독 스타일과, 2008년 시즌중에 있었던 전병두를 포함한 2대3 트레이드 건이 있다. 주전 포수 김상훈이 부상 당함에 따라 별 수 없었던 트레이드였지만, 해태 시절부터 대대로 좌완, 특히 좌완 투수는 귀한[38] KIA에서 딱 둘 있는 좌완투수 중 한 명인 전병두를 트레이드했기에 팬들이 분노했다.그리고 받아온 3명은… 거기에 대 SK전에는 거의 조공식으로 지다시피했다[39].

김성근 감독과 인연이 상당히 각별하고, 김경문 감독과 악연이 많다. 조범현은 대구 대건고 야구부였는데, 팀이 해체위기에 놓이자 공주고로 가는데, 김경문에게 밀린다(…). 다시 대건고로 돌아갔지만 대건고는 결국 해체되고, 결국 서울 충암고로 전학을 가서 야구를 계속한다. 이때 감독이 김성근이었다. 1977년 황금사자기 8강전서 충암고신일고에 패했는데[40], 이때 조범현은 포수마스크로 땅을 치며,“이제 우리 대학 우찌 가노, 우찌 가노...”했다 한다.[41] 여담으로 이는 김성근 감독이 야구인생에서 울어봤던 단 2번의 일 중 하나라고 한다.[42] 다른 한번은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5 기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프로야구계의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현역 시절에는 아니었는데 1995년 무렵 막내이자 장남을 희귀 신장병으로 잃고 방황하던 차에 종교의 힘으로 간신히 극복하고 일어설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잃은 아들 생각만 하면 감정이 격해진다고... 물론 현장에서는 슬픈 티를 안 내려고 선수들을 더 열심히 훈련시켰다고 한다.

별명은 조뱀.[43]덕분에 최훈카툰에서 모자쓴 으로 묘사된다. 2009시즌 초반의 부진한 모습이 점차 사그라들고 결국 시즌 중반 1위에 오르게되자 조갈량으로 레벨업(?)이 되었다. 최훈카툰에서의 캐릭터묘사도 제갈량 복장의 뱀으로 변경. 그리고 삼국전투기조범도 이 뱀 캐릭터로 등장한다.

야구친구의 2014년 3월 6일자 상식과는 조금 다른 야구 이야기 코너에 의하면, 500경기 이상 출전했던 은퇴 선수들 중 타율이 낮은 순대로 뽑은 '역대 최악의 타자 2위'라고 한다. 가장 최악이라 할 수 있는 1위인 염경엽과는 불과 6리(=0.006) 차이. 도찐개찐. 그 외에도 역대 최악의 타자 톱10에 조범현 자신을 포함해서 현역 감독3명과 단장이 1명….[44] 흠좀무. 물론 감독 중에서 독보적으로 죽을 쑤는 역대 최고의 투수도 있었다.

50대 중반이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할아버지가 되었다.
  1. 시즌 도중 경질
  2. 프로리그 우승 경력 - 김진 : 2002년 대구 오리온스 통합우승, 조범현 : 2009년 KIA 타이거즈 통합우승. 국제대회 우승 경력 - 김진 :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농구), 조범현 :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금메달(야구). 이와 같이 프로리그 국제대회 우승 경험이 비슷하다. 얼굴에 비하면 워낙 강성이미지가 심하다. 리빌딩은 책임져주고 선수의 재능을 끌어올리는 건 좋지만 주전 혹사와 불펜 혹사 및 선수단과 약간의 마찰을 빚는 게 공통점이다.
  3. 심판과 조범현 사이에 서잇는 타자는 당시 롯데 자이언츠 소속이였던 포수 故 심재원.
  4. 둘다 수비형 포수지만, 김경문이 그나마 타격이 덜 나빴다.
  5. KBO의 막장 리그 운영때문에 벌어진 촌극. 자세한 내용은 슈퍼 한국시리즈 문서 참조.
  6. 준플레이오프에서 SK에게 패배
  7. 당시 LG에서 갈등을 일으키던 이상훈을 데려와 기존 마무리 조웅천과 함께 더블 스토퍼로 기용하려고 했으나 이상훈의 은퇴 선언과 조웅천의 부진으로 인한 뒷문 부재가 SK의 포스트시즌 탈락에 한 몫 하였다.
  8. 단, 이때의 류현진은 수술경력때문에 타 구단들에서도 지명을 기피하는 상황이었는데 한화가 복권 긁자는 심정으로 덥썩 낚아챈 것이다.
  9. 사실 김응용 감독의 장기 집권으로 해태 - KIA는 30여년 세월 동안 단 8명의 감독만이 취임했다. 김동엽 - 김응용 - 김성한 - 유남호 - 서정환 - 조범현 - 선동열 - 김기태. 이 중에서 비 해태 출신 감독은 조범현, 김기태 2명밖에 없다! 그나마 김기태 감독은 해태-KIA의 연고지인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광주일고 출신이지만 조범현 감독은 연고지와도 전혀 상관없는 경북 출신인데다가 서울에 위치한 충암고 출신이다.
  10. 대구에서 태어나 OB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KIA 내지는 해태하고는 이렇다 할 접점이 없다.
  11. 다만 부상 문제는 악명높은 광주 무등야구장, 군산야구장과 2군 함평구장이 부상 선수를 양산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무등야구장은 심심할 때마다 선수 무릎을 아작내는 걸로 유명하고, 군산구장의 펜스도 사람을 여럿 잡았다. 논 한가운데 야구장 하나 덜렁 있는 함평 연습장은 고교야구부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거기다 막장 수준인 제휴병원과 부실한 재활시스템도... 일단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 함평-KIA 챌린저스 필드의 건립 등으로 조금씩 인프라가 나아지기 시작했다.
  12. 물론 연쇄적인 부상은 열악한 무등야구장의 환경 및 다른 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적은 우천취소에도 원인이 있었다.
  13. 다만 조범현의 경질은 구단 고위층에서 내려진 지시라는 설이 있다. 프런트는 큰 이변이 없는 이상 2012년에도 조범현과 함께 가려고 했던 듯.
  14. 현대차의 후계자인 정의선(정몽구의 장남) 기아차 사장이 우승 직후 선수들에게 '그동안 지원이 미흡했던 걸 인정한다. 앞으로는 달라질 거다'라고 직접 약속하였다.
  15. 다만, 잘 알려져있듯 조범현은 학생시절부터 코치시절까지 김성근과 함께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과연 김응용이 코치로 기용을 할까라는 의견도 있었다. 다만 조범현은 2001년부터 2002년까지 김응용 삼성 감독 밑에서 배터리코치로 있긴 하였다. 실제 한화 이글스의 신임 배터리코치로는 조범현이 아닌 전종화가 부임했다.
  16. 이로 인하여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 트로이의 조뱀, 산업스파이 취급 받았다.
  17. 심지어 일각에서는 혹사지수는 누적스탯(...)이기 때문에 김경문이 아닌 조범현이 인간계 혹사 1위라는 의견도 있다. 이번 시즌 kt 불펜은 번갈아서 혹사로 뻗어버려서 풀시즌을 못던졌고 그래서 혹사지수 상위권에 올라가지 못했기 때문.한줄로 요약하면 질의 조범현, 양의 김경문, 질과 양의 김성근
  18. 인터넷방송 라디오볼 2014년 4월 28일 방송에서 정철우 야구전문 기자는 "대한민국조범현, 김경문 이후에 배터리 코치라고 불릴만한 배터리 코치가 나오고 있지 않다" 라고 언급하였다.
  19. 그나마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상무에 입대시켜 군 문제를 해결하게 하였고 제대 후 20대 중반의 군필 포수가 되었다. 실제로 후임 감독 김성근이 군 문제가 해결된 20대 포수라는 정상호의 장점을 살려 트레이드 카드로 사용하려고 하였던 바 있다.
  20. 그나마 차일목이 포수공 받아주는 사람 구실을 하게 된 게 조범현의 공이라 보는 이들도 있다.(...)
  21. 진갑용, 이지영이 줄부상으로 쓰러지면서 좌절하던 2014 시즌 삼성팬들에게 이흥련이 지금 한줄기 빛으로 다가온 걸 보면... 이지영과 달리 이흥련은 실질적인 데뷔 첫 해부터 홈런도 쳤고.
  22. 정규시즌 4위.
  23. 다만 이 쪽은 송은범이 고교 재학 시절부터 놀기 좋아하는 성격이었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24. 즉 SK 시절 조범현은 투수진에 있어서는 투수깎는 노인 소리 듣던 강병철보다도 남긴게 없다. 당시 19세의 신인이었던 송은범이 (부모님과 다름없는)조부의 발인식에 가는 걸 못가게 해서(발인식은 아침에 하니 경기 전까지 돌아오는 것도 가능했고 결정적으로 이날은 우천취소가 되었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건 덤, 실제로 이 두가지가 SK 와이번스 창단후 4년만에, 자신이 감독으로 부임한 해 바로 코시에 진출했음에도 SK 와이번스 팬덤들로부터 저평가를 받는 가장 큰 이유다.
  25. 다만 류현진 대신 이재원을 픽한 것은 조범현의 탓이라기보다는 당시 전반적인 인식이 팔꿈치 수술한 투수는 위험하다는 쪽이었기 때문이었다. 류현진보다 1년 전에 드래프트된 오승환도 팔꿈치 수술 경력 때문에 지명 순번이 실력에 비해 낮게 나왔다(2차 1라운드 5번). 조범현의 SK뿐만 아니라 롯데도 류현진을 걸렀다. 게다가 SK는 다음 해에 안산공고 김광현을 1차지명에서 픽할 수 있었기 때문에 팔꿈치 수술을 받은 선수를 선택하는 위험을 굳이 감수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26. 우승을 걸고 이미 재계약을 한번 해주었는데 상승하는 전력에도 불구, 최종 성적이 오히려 더 내려갔다.
  27. 정근우는 좌익, 2루, 3루, 유격을 오갔으며 김강민, 박재상, 조동화는 이진영과 박재홍이 주전을 차지한 가운데 돌려가며 꾸준히 기용됐고 최정 역시 1, 3루를 번갈아가면서 보았다. 물론 포지션 문제가 있었고 전임자만큼 타격 코칭을 해주지도 못했지만 적어도 1군 경험은 충실히 쌓았다.
  28. 김성근 감독의 말에 따르면 선수 시절 김경문 감독은 '여기서 맞아도 괜찮다'는 식으로 전체적으로 큰 틀을 그리고 게임을 할 정도로 대범한 성격이었던 반면에 조범현 감독은 상황 하나하나를 노트에 빼곡히 적고 밤새 분석했을 정도로 치밀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성격이 감독이 된 후의 철학에서도 나타나는 듯.
  29. 장례식으로 오해하고 있는데 불타는 그라운드에서도 송은범이 "할아버지 발인하는 날 있잖아요. 묘로 가는 날. 비가 진짜 많이 왔어요. 게임이 취소 된 거예요."라고 장례식이 아니라 죽은 이를 장지로 이동하는 "발인식"에 가지 마라는 지시를 했다고 인터뷰했다. 이게 와전돼서 장례식 자체를 못 가게 한것으로 팬들이 오해한 것. 이후 기사에서도 장례식에는 단 하루지만 다녀왔다고 밝히고 있다.
  30. 불타는 그라운드라는 방송을 통해 송은범의 눈물과 함께 그 사연이 소개되어 송은범은 긍정적으로 이미지가 좋아졌고 조범현 전 감독에 대한 비난은 더 거셌다. 방송 캡쳐는 이쪽
  31. 물론 그래놓고 자기가 급해지니 졸렬하기 그지 없었다. 자세한 건 2016 송창식 혹사 사건 참고
  32. 제리 로이스터는 "가족과 관계된 일"이라면 무조건 가족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한 일화를 들자면 송승준의 경우에는 4강싸움을 하고 있던 와중에도 아내의 출산일에 맞춰서 선발도 무기한 연기시켜줬었다.
  33. 그래서 황병일 수석코치도 kt와 조범현 감독의 재계약이 불발되자, 두산에서 함께한 적이 있는 김진욱이 왔음에도 조범현 감독 보좌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34. 또한 장성호가 트레이드 될때 사석에서 성호 덕분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수 있었고 한화에서 잘하라는 말을 기자에게 남기기도 했다.
  35. 이재주는 태평양-현대에서 뛰다가 2002년 KIA 타이거즈에 현금 트레이드되었다. 넥센은 공식적으로는 현대 유니콘스와 별개의 구단이지만 삼청태현의 선수단과 일부 코치진을 승계했다.
  36. 충암고 감독-선수 OB투수 코치-포수, 삼성 감독-선수 쌍방울 감독-코치
  37. 이와 이름으로 인해 얻은 별명이 조뱀이다.
  38. 김응용강영식을 그렇게 아낀 이유가 있다. 원래 좌완 파이어볼러는 지옥에서라도 끌고 오라는게 야구계의 격언이기는 하지만.
  39. 2008시즌 대 SK전 4승 14패. 그러나 2009 시즌에는 상대전적에서 앞섰고, 결정적으로 한국시리즈에서 SK를 이기고 우승했다.
  40. 전국대회 4강은 대학스카우트가 보장되는 어마어마한 메리트였다.
  41. 이 이야기는 김성근 감독이 쓴 책에도 나와 있다.
  42. 그래도 충암고는 그 해 봉황대기배 우승에 성공해서 조범현은 특기생으로 대학을 갈 수 있었다.
  43. 조범현을 경상도 사투리로 발음하면 조배맨. 주로 ㅓ,ㅕ 발음을 ㅐ 로 한다. 주호민 을 보면, 후임들이 주호민을 쭈뱀~ 등의 호칭으로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2008 년의 부진한 성적을 빗대어 호랑인줄 알았는데 뱀이네~ 등의 비하적인 의미도 있었다.
  44.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현역 감독들은 모두 2015년 기준으로 21세기에 창단한 야구팀의 감독들이란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