伎伐浦戰鬪
기벌포 전투 | ||
날짜 | ||
음력 676년 11월 | ||
장소 | ||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 앞바다 | ||
교전국1 | 교전국2 | |
교전국 | 신라 | 당 |
지휘관 | 시득 | 설인귀 |
병력 | 불명 | 불명 |
피해 규모 | 불명 | 4천여 명 전사 |
결과 | ||
신라군의 승리로 대동강 이남에서 당군을 축출. |
676년 음력 11월에 금강 하구 기벌포에서 벌어진 통일신라와 당(唐)의 해전. 나당전쟁 최후의 전투이다.
1 소개
1년 전인 675년 이근행이 이끄는 당군이 매소성 전투에서 패배하자, 당군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이번에는 수군을 이끌고 설인귀가 금강 하구의 기벌포에서 신라의 측면을 공격했다.
2 진행
겨울 11월에 사찬 시득이 이끄는 신라 수군이 설인귀가 이끄는 당나라 수군과 소부리주 기벌포에서 싸웠지만 첫 번째 전투에서 패했으나, 시득은 다시 진군해 크고 작은 22번에 걸친 싸움에서 연달아 승리하고 4천여명의 목을 베었다.
설인귀가 당에서 최정상급 네임드 장군이고 당나라가 이전에 백제와 고구려를 칠 때 대선단을 동원해서 병력수송과 물자보급으로 짭짤한 재미를 본 만큼 당나라 수군의 규모는 결코 작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신라군은 뛰어난 수군 운용능력과[1] 홈그라운드 이점을 바탕으로 수급을 4천개나 취하는 대승을 거두었다.[2]
3 기타
대왕의 꿈에서는 나레이션과 함께 매우 짧게 묘사되는데, 해전이 아닌 육전으로 등장해 난전이 벌어져 설인귀가 신라군의 병사를 죽이거나 예원이 당군의 병사를 죽이는 모습과 함께 전투가 끝난 후에 시체가 널린 전장만 보여준다.
소정방 휘하의 장수 두 명이 매소성에서 신라군과 싸우는데, 김원술이 말갈족 출신의 소정방 휘하의 장수를 죽이는 모습이 나오고 당나라의 군사들을 물리치고 승리하자 함성을 외치는 것으로 나온다.
HQTeam의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천년의 신화에서는 신라군 최종미션으로 등장한다.- ↑ 신라가? 이런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당나라나 일본 기록을 보면 신라의 배는 매우 견고하고 빠르다는 기록이 자주 보인다. 괜히 장보고 장군의 청해진이 유명한게 아니다.
- ↑ 고대나 중근세 중국에서 타국을 침략할 때 군세가 수만단위에서 수십만 단위로 놀아서 4천개 수급이 큰 전과가 아닌 것 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수급이라는 것에 주목해보면 이는 엄청난 전과이다.(특히 해전일 때) 고대 해전은(비단 고대해전 뿐만 아니라 우수한 함포가 개발되기 이전의 모든 해전은) 대부분 화공이나 충각 이후 선상백병전의 과정을 통해 전개되는데 배가 산산조각나고 불타는 와중에 또는 해전이 끝나고 나서도 시체를 건져내어 목을 벤다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당장 난중일기만 봐도 조선 수군이 수급 몇개 건지려다 익사하는 사고가 많아서 충무공께서 수급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훈시를 하신 적도 있다. 한산해전에서 무수한 일본 함선을 파하고도 취한 일본군 수급이 얼마 안된다는 것을 봤을 때 4천개나 되는 수급을 취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숫자의 당군이 죽었다는 말이 된다. 일부 과장이 있다 쳐도 신라수군과 싸운 당수군의 규모는 상당했으며 많은 당수군이 살상당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