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득

施得

1 개요

23전 22승 1패 전적의 신라의 이순신.

신라 중대 문무왕 시대의 수군 지휘관.

이름이나 관등을 보았을 때 진골이 아닌 6두품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그렇다면 670년의 설오유와 함께 나당전쟁 당시 진골 귀족이 아닌 자가 대병력을 인솔한 유이한 사례 중 하나.

2 생애

나당전쟁이 진행되던 7세기, 당나라는 육로를 이용해 675년 대대적으로 신라를 침공했으나 천성 전투매소성 전투의 승리로 패퇴했고 이듬해인 676년 11월에는 절치부심한 설인귀가 당나라 수군을 이끌고[1] 신라의 서해로 쳐들어왔다. 당시 17관등 중 8관등 사찬 관등에 있던 장수 시득이 소부리주[2]에 있는 금강 하구 기벌포[3]에서 100척 정도의 병선으로 맞서 싸웠다. 첫 번째 전투에서는 패했지만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반격을 가해 크고 작은 전투 22번에서 모두 승리했고 4천여 명의 수급을 베는 전과를 올렸다. 이 것이 나당전쟁의 마지막 싸움인 기벌포 전투이며 이 전투를 끝으로 당은 신라에 대한 공격을 완전히 포기했고 7년간에 걸친 나당전쟁이 끝이 났다.
  1. 당나라는 앞서 백제, 고구려와의 싸움 때도 황해로 대규모 수군을 보내 쏠쏠한 성과를 봤다.
  2. 백제수도권,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과 인근 지역을 관할
  3.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