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동(목사)

1 개요

1938년 충청남도 서산군 출생. 목사, 시인, 수필가.
서울성락교회 원로감독. 베뢰아국제대학원대학교 명예총장. 사단법인 한국수필가협회 부이사장. 월산재단 이사장. 기독교베뢰아교회연합 설립총회장

호는 월산(문학 활동과 문학 저서에만 사용), 시무언(목회 활동과 기독교 저서에만 사용).

기성 개신교단에서 목회를 시작했으나 최삼경 목사 등이 관련된 이단 시비 등으로 소속 교단에서 탈퇴/제명 후 독자 교단을 설립한 3인의 목사 중 1인이다. 나머지 2인은 예수교대한성결회(안양 성결대학교)에서 제명되어 예수교대한연합성결회를 설립한 만민중앙교회의 이재록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측(천안 백석대학교)에서 제명되어 대한예수교장로회 부흥교단을 설립한 사랑하는교회(구. 큰믿음교회)의 변승우 목사다. 2016년 9월 12일부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에서 변승우 목사(사랑하는 교회)[1], 故 박윤식 목사(평강제일교회)[2], 이명범 목사(레마선교회)[3]와 함께 특별 사면되었으나..# 사면 이후 "이단은 정죄와 해제의 대상이지 사면의 대상이 될수 없다.", "이단을 풀어주고 말고 하는 것은 개교단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라는 의견 등등 여러 교단 내외의 논란과 함께 결국 채영남 총회장 채동욱 검찰총장이 사면을 철회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결국 101회 총회에서 사면이 취소되었다.# 그러자 뉴스타겟 같은 몇몇 언론사는 이 일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부분에 대해 자세한 사항은 2016 예장통합 사면 취소 사태 항목 참고.

2 활동

명지대 국문학과와 대한신학교, 침례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Canada Christian College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와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69년 서울성락교회를 개척하여 목회를 하였다. 이단시비 이전에는 극동방송에 베뢰아의 시간이라는 라디오 설교를 하기도 하고 타 교회에 설교하러 다니기도 하고 기침의 지방회장[4]을 하기도 하였으나 이단시비[5]가 있자 1987년 기독교한국침례회를 탈퇴하고 '기독교남침례회[6]'라는 교단을 만들었다. 이후에는 주로 성락교회와 기베연 교단 내부에서만 활동하며 이단시비 이전에 친해진 기성 교계의 몇 인물과만 교류를 하고 있다. 2013년에 서울성락교회 담임감독직[7][8]아들인 김성현 목사에게 위임하고 원로감독으로 물러났다.[9][10]

1997년에 故조경희 선생의 특별추천으로 수필가로 등단한 뒤 수필가, 시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하바나 국제시인대회, 이탈리아 모데나 시인대회 등 다수의 국제 시인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라틴 아메리카나 중국에서는 시인으로서 꽤 알려져 있는 듯하다. 2013년에 중국에 '월산시선'이라는 시집을 출판했는데 중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11년부터 월산수필문학상을 만들어 수필가들에게 시상을 하고 있고, 2012년부터는 쿠바에서 월산문학상을 만들어 젊은 문인들에게 시상을 하고 있다.

많은 책을 냈지만 모두 '도서출판 베뢰아'에서만 냈기 때문에 서울성락교회 교인이 아닌 이상 그의 책을 접하기 힘들다.[11] 2015년 초까지 '가슴에 그린 미화'를 포함한 9권의 시집과 '이야기가 있는 산'을 포함한 7권의 수필집, '하나님의 의도', '마귀론', '목사학' 등의 200여 권의 기독교서집 등 다수의 책을 냈다.

3 수상

3.1 문학

1997 제3회 한국문학예술상(수필 부문) 수상
2004 제22회 한국수필문학상 수상
2006 제7회 포스트모던작품상(시 부문) 특상
2008 한국문인 신인상(시 부문) 수상
2010 2010 한국일보 대한민국 문학 그랑프리(시⋅수필 부문) 수상
2012 제5회 한국문학백년상 수상
2014 제12회 소월문학상 본상 수상

3.2 그외

1991 한국발명특허협회 '이 달의 우수 발명가' 선정
1993 서울특별시 건축대상 수상(서울성락교회 신길본당 건물주 부문)
2008 한국일보 주최, 2008 대한민국 종교 그랑프리(세계선교 부문) 수상
2008 한국을 빛낸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기독교발전공로 부문) 수상

  1. 원래 이름은 큰믿음교회이다. 2015년에 부목사의 마트 여자 몰카 사건으로 논란이 되었고, 그 부목사는 교회의 자정작용을 위해 출교하였다. 그 후 송파로 교회가 이전하면서 이름이 사랑하는교회로 바뀌었다.
  2. 그룹 빅뱅의 멤버 대성이 다니는 교회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이 교회의 옛날 이름이 대성교회 였다. 통일교로 매도되었었으나 법원에서 통일교와 관련이 없다고 판결이 났다.
  3. 여자 목사이다.
  4. 장로교로 치면 노회장, 참고로 기침등에서는 지방회 밑에 연회를 둔다. 연회는 장로교로 치면 당회와 같다.
  5. 불신자 사후의 영이 귀신이며 이 귀신이 사람의 몸속에 들어와 각종 병과 우환을 일으킨다. 따라서 예수이름으로 그 귀신을 쫓는 축사(逐邪)를 해야 한다는 류의 주장, 일명 "귀신론"을 주장한 것이 이단시비의 주된 요인이다.
  6. 기독교남침례회 -> 한국기독교침례회연맹(기침연맹) -> 기독교한국침례교회 -> 現 기독교베뢰아교회연합(기베연)으로 변경. 이상은 기베연 홈페이지의 '교단연혁'코너 참조
  7. 감독제도가 없는 침례교회에 웬 감독직이냐 할 수 있겠지만, 김기동 목사가 최초로 신앙생활을 한 곳이 감리교회고 김기동 목사가 전도사 시절 많은 영향을 받은 오경린 목사도 감리교단 총회장까지 지낸 분이다. 아마 그 영향으로 감독직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성락교회는 꽤 큰 편이라서(성도수가 전세계 침례교회 중에서 최상위권에 속할 정도로 많다. 등록교인 25만 명, 출석교인 4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또한 주일 3부 예배시 사용하는 크리스천 세계선교센터의 대성전은 단일예배당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감독직을 만들어도 이상할 건 없다.
  8. 성락교회는 50개가 넘는 지교회가 있고 이 지교회들마다 담임목사가 있다. 아마도 이 담임목사들 위에 있는 사람을 똑같이 담임목사라고 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해서 담임감독이라는 호칭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9. 당시 개신교계는 교회 담임직의 부자세습 논란이 극심할 때였는데 정작 성락교회 내부에서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교계에서도 성락교회는 아예 교계의 외부쪽 일이라 생각했는지 별 반응이 없다.
  10. 다만 은퇴한 것은 아니며 지금도 중요 예배시의 설교나 정기사경회(베뢰아성회), 여름수련회 인도는 한다.
  11. 다만 시중 서점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책이 없는 곳이 많지만 일부 시중 서점에서 살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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