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문(배드민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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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과 인생의 파트너인 라경민과 함께.

한국의 배드민턴 선수. 두 개의 올림픽 금메달을 가지고 있는 선수이며, 2000년대 초중반 한국 배드민턴을 대표했던 선수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혼합 복식 금메달, 2004 아테네 올림픽 남자 복식 금메달리스트. 2012년부터 원광대학교 교수다.

1975년 9월 22일생으로 고향은 익산시. 배드민턴 선수가 된 후, 친구 하나를 꼬셔서 배드민턴 선수로 만드는데 그게 그의 일생의 파트너 중 한 명인 하태권. 어쨌든 유망주로 주목받으면서 고2 때 처음 국가대표에 발탁된다. 유망주 수준이던 그를 1996 애틀랜타 올림픽을 앞두고 첫 정식 종목이 된 혼합복식 부문의 카드로 발탁했는데, 선배인 길영아와 함께 조를 꾸렸다. 그래도 불안했는지 협회는 박주봉을 컴백시키고, 박주봉의 제자였던 라경민을 한 조로 만들기까지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괜한 중복이었다. 결승전에서 공교롭게도 이 두 조가 만났는데, 우승은 예상을 깨고 김동문-길영아 조의 몫이었고, 김동문은 그렇게 생애 첫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후, 남자 복식에서 하태권과, 혼합 복식에서 라경민과 짝을 이뤄 두 영역 모두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먼저 남자 복식의 경우 각종 오픈 대회에서 우승한 후, 비록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부담감 때문에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며 동메달로 만족해야 했지만,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뒀다. 김동문 자신의 말로는 즐기면서 배드민턴을 한다는 것을 깨달음을 준 것이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었고, 그래서 그 후에는 오히려 더 잘 풀렸다고 한다.

혼합 복식이 사실 업적은 더 뛰어난데, 전성기 시절에는 14개 대회 연속 우승, 역대 최다인 70연승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기록을 남겼다. 두 사람의 호흡이 정말 잘 맞았고, 누구나 올림픽 금메달 후보로 꼽았지만, 이 조는 모든 대회는 다 우승했지만, 딱 하나 올림픽 금메달만 차지하지 못했다. 그렇다. 올림픽만큼은 콩라인이다. 시드니와 아테네 두 차례 올림픽에서 모두 8강 탈락한 것. 김동문의 성격은 굉장히 세심하고 소극적인 편이라는데, 우승 후보라는 말에 그만 주눅이 들면서 말린 탓이 컸다고 한다. 파워풀한 면은 떨어지는 대신에 상대의 심리를 읽고 허를 찌르는 재치있는 플레이에 능한 선수였는데, 이게 부담감이 클 때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신 혼합 복식은 김동문에게 큰 선물을 안겨주었다. 바로 그의 아내가 현역 시절 파트너인 라경민이다. 김동문이 실연당한 상황에서 라경민이 위로해주다가 서로 눈이 맞아서 결혼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대신 철저하게 모든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숨겨서, 대표팀 감독 및 그의 절친인 하태권까지 모두 축하해주면서도 은근히 배신감을 느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배신감을 느낀데는 다 이유가 있는데,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8강 탈락하자 그 원인으로 두 사람이 딱 경기만 하고 헤어지는 것 때문에 서로 붙어다니라고 말이 나왔었다. 그래도 안 친한 것처럼 보이자 2003년에 대표팀 감독인 김중수씨부터 나서서 둘을 사귀게 하려고[1] 별 짓을 다 했는데 안 되니까 포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때, 이미 두 사람은 사귄지 1년째(...)

2004 아테네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해서, 방송 해설위원을 잠시 맡았다가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다. 2011년 말에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다. 본인의 목표는 모교인 원광대학교에서 교편을 잡는 것이라고 밝혔는데, 2012년 그 목표를 이뤄 원광대학교 사회체육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선수 시절의 화려한 업적을 인정받아 아내인 라경민과 함께 2011년 세계 배드민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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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당시 김동문은 실연당한 상태로 다들 알고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