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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시절과 인생의 파트너인 김동문과 함께.
前 한국의 배드민턴 선수이자, 現 배드민턴 지도자. 2000년대 초반 세계 배드민턴 계를 평정한 전설의 혼합 복식 조합인 김동문-라경민 조로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 그러나 유독 올림픽과는 인연을 맺지 못한 비운의 선수이기도 하다.
1976년 11월 25일 생이다. 미림중과 미림전자산업고를 나왔는데, 유망주로 인정받아서 이미 전략적으로 육성하던 선수였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을 앞두고 당시 처음으로 채택된 혼합복식에서 금메달을 가져오기 위한 필승의 카드를 위해 은퇴했던 박주봉을 컴백시키면서 그 파트너로 낙점된 선수가 바로 한체대 제자이기도 했던 라경민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조합은 아쉽게도 실패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조합의 목표를 좌절시킨 것은 같은 한국 대표팀의 제 2 카드였던 김동문-길영아 조합이었다. 결승전에서 만난 한국 선수들끼리의 대결에서 김동문-길영아 조합이 이긴 것. 연습 경기 때는 성적이 반대였지만, 실전은 달랐다.
그 뒤 박주봉과 길영아가 모두 은퇴하고, 김동문과 호흡을 맞춰 혼합복식 조합을 다시 꾸렸다. 이 둘의 조합은 무적이었는데, 국제 대회에서 이 둘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둘 중 한 명이 다치는 것 외에는 없다는 평까지 들을 정도였다. 실제로 2000 시드니 올림픽 당시에는 라경민의 부상 때문에 세계 랭킹이 4위였지, 실제로는 우승 후보였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정말 모든 오픈 대회란 오픈 대회는 다 휩쓸었고,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도 가볍게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리고 2004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는 14개 대회 연속 우승과 국제대회 70연승이라는 먼치킨급 기록을 찍는, 그야말로 정말 적수는 없을 것처럼 보였는데...
그러나 이 조합이 올림픽 금메달과는 끝내 인연을 맺지 못한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모두 충격의 8강 탈락을 경험한 것이다. 김동문은 그래도 1996년 신예 시절의 금메달과 2004년 아테네에서 남자 복식 금메달(하태권과 함께 차지)을 차지했을 정도로 남자복식도 상당한 수준이었지만, 최강까지는 아니었던 여자 복식에서 뛰던 라경민은 결국 여자 복식에서는 올림픽 4위와 동메달 하나를 차지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래서 라경민은 올림픽 금메달이 없다. 고로 올림픽에서는 콩라인
라경민의 금메달이 없는데는 1996년 애틀랜타에서는 자신이 학교 스승이던 박주봉과 같이 하면서 그만 얼어 버린 탓이 컸다. 반대로 2000년 시드니에서는 김동문과 라경민 모두 주눅이 들었고, 2004년 아테네에서는 김동문이 얼어버렸다고 한다. 결국 우승후보 0순위라는 부담감이 그들을 주눅들게 한 것. 실제로 올림픽 배드민턴 종목의 징크스 중 하나가 혼합복식에서 세계랭킹 1위는 금메달을 따지 못한다는 것이다.[1]
선수 생활은 결혼과 함께 잠시 접게 되는데, 결혼상대는 영혼의 파트너였던 김동문. 원래부터 연인은 아니었고, 2002년에 김동문이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고민 상담을 라경민에게 털어놓으면서 점차 가까워져 연인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연애 사실은 모든 동료들에게 철저하게 숨겼다고 한다. 심지어 당시 감독인 김종수 감독은 나이도 비슷하니까[2] 혼합 복식은 남녀 사이가 좋아야 한다며 은근히 둘을 밀어주려고 단 둘이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었는데, 반응이 없어서 포기하기도 했다고. 그런데 그 때는 이미 두 사람이 사귀던 중이었다. 들키기 싫어서 일부러 모른 척 했다고 한다. 결혼 발표 당시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색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잠시 남편인 김동문과 함께 캐나다로 건너가 학업과 현지 클럽 지도를 병행한 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선수로 컴백해 실업 무대에서 뛰다가 2010년부터 대교 눈높이 팀의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량은 사실 녹슬지 않아서 실업 단체전에서 선수가 부족하자 직접 선수로 나가 금메달리스트인 이효정을 단식에서 잡은 적도 있을 정도.[3] 그래서 간간히 현역 복귀 떡밥이 나왔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
비록 올림픽 금메달은 없지만, 혼합복식 부분에서 전설아닌 레전드인지라 2011년 배드민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