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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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世中 (1928년 7월 24일 ~ 1986년 6월 24일)

한국조각가. 종교천주교이며, 세례명은 프란치스코이다.

경기도 안성(安城) 출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및 대학원 졸업.[1] 1952년 이후 모교에 재직, 교수를 거쳐 1972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장이 되었다.

1957년 한국미술협회 상임위원이 되었고 1958년 국전 추천작가, 1961년 제10회 국전의 심사위원 및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이 되었고 1962년 한국문화단체 총연합회 이사(理事)가 되었다. 작품활동으로는 1956년 미국 뉴욕 월드하우스 화랑에 초대출품한 것을 비롯하여 1962년 마닐라 국제미술전, 사이공의 국제미술전에 각각 한국대표로 출품했고 사이공 국제전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도 있다. 1963년 국제조형미술협회 제4차 정기총회(뉴욕)에 한국대표로 참가하는 한편 UN탑을 제작하였다.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역임하던 중 과로로 작고하였다. 1987년 김세중 기념사업회가 발족되었다. 작품으로 <희망> <토루소> <청년> 등이 있다.

부인은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인 김남조 시인이다.[2]

광화문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도 그의 작품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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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래는 프랑스에 종교미술을 공부하고자 유학을 준비했으나, 6.25전쟁이 발발하는 통에 포기하였다.
  2. 한국전쟁 당시 마산으로 피난을 가서 여고의 미술 선생님으로 부임했는데, 당시 같은 학교에 국어교사로 근무 중이던 김 시인과 만나 혼인하였다.
  3. 당시 광화문 일대의 일제의 잔재를 제거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예상됐는데 이에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본이 가장 무서워 할 인물의 동상을 세움으로써 일제의 이미지를 희석시키고자 하였다. 실제 이 동상은 박 대통령의 헌납에 의해 세워진 동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