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알렉산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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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활동 당시 찍은 사진

김알렉산드라(본명은 Александра Петровна Ким,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 1885~1918).

제정 러시아 출신의 공산주의 혁명가이며, 한국 독립운동가이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관련기사

한국 최초의 공산주의자로 꼽힌다. 그녀는 한국의 공산주의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굉장히 이른 시간대에 활동하였다. 고려인 거주지 중 하나였던 시넬니코보에서 태어난 이후 아버지 김두수와 함께 러시아로 이민을 갔는데,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만주로 돌아가자 10살의 나이로 따라갔다가 아버지가 사망한다.

이후 아버지의 러시아인 친구였던 표트르 스탄케비치라는 사람에게 입양되었는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여학교를 졸업하고 스탄케비치의 아들과 결혼한 후 교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여기까지라면 평범한 한인의 삶이었겠지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독립운동에 종사하게 된 그녀는 결국 스탄케비치의 아들과 이혼하게 된다. 그리고 우랄 산맥 일대로 이주했는데, 1916년에 한 정당에 가입하게 된다. 이 정당이 다름아닌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이 이후의 행보도 비범하기 짝이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닌 블라디미르 레닌과 협력 관계가 된 그녀는 극동 지역으로 떠나게 된다. 먼저 독일의 밀정으로 오해받아 체포되어 있던 이동휘를 구명운동으로 석방시킨 그녀는 김립, 이동휘와 함께 한인사회당을 결성하게 되는데 그게 1918년이다. 이때의 직위는 무려 "극동인민공화국 외무위원". 비록 짧은 시간 존속했던 땜빵용 정권이었지만, 이 경력으로 인해 그녀는 한국인 최초의 외국 장관이다. 볼셰비키 측에서 "인터네셔널리스트"로 분류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단 5개월 만에 멘셰비키일본군에게 체포되었고, 1918년 9월 16일에 처형당하게 된다. 이때의 유언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그녀가 사형당할 때 마지막 소원이 "8보(步)만 걷게 해다오" 였다고 한다. "왜 하필 8보냐?"라고 물으니, "비록 가보진 못했지만 우리 아버지 고향이 조선인데 8도라고 들었다. 내 한발 한발에 조선에 살고 있는 민중들, 노동자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 새로운 사회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라고 하면서 죽었다.

- 출처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

여담으로 김알렉산드라는 한국민족대백과에 독립운동을 위해 공산주의를 추구한 이동휘와는 달리 처음부터 볼셰비키였다(...) 라고 쓰여 있다. 물론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볼셰비키 소속 공산주의 혁명가이긴 하였으나 독립운동에도 큰 족적을 남겨 건국훈장을 수훈한 독립운동가인데 공산주의에만 중점을 두어 서술된 것은 씁쓸한 일이기도 하다.

러시아 하바롭스크의 마르크스가24번지에는 김알렉산드라의 기념비가 있다. 비문은 아래와 같다.

1917∼1918년 이 건물에서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이 일하였다. 그는 볼셰비키당 시위원회 사무국원이며 하바롭스크소비에트 외무위원이기도 하였다. 1918년 그는 영웅적으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