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택

동명의 1992년생 투수에 대해서는 김정택(1992)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파일:/image/081/2011/06/23/1308771724.678399 SSI 20110622174513 V.jpg

1 소개

상무 피닉스 야구단의 초대 감독. 1953년 2월 23일생. 1982년 육군 경리단 감독을 시작으로 2011년까지 한 팀에서 무려 30년간 감독으로 있었다.

2 선수 시절

부산광역시 출신으로 성남초 재학 시절 큰형이 글러브를 사주면서 야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부산중, 부산고에서 투수로 활동하다 서울 대광고로 전학갔다. 이 시기에는 중견수로서 동문인 김재박과 같이 활동하기도 했다.

경성대학교로 진학을 하지만 성적도 별로였고 가정 형편도 어려웠기에 결국 야구선수의 꿈은 포기하였다.

3 지도자 시절

대신 군인을 선택해 육군 단기 사관 소위로 임관했다. 그로부터 7년 후인 1982년, 대위로 35사단 중대장으로 근무하다가 육군중앙경리단 감독을 맡게 되었다. 원래 감독이었던 심말룡 감독이 갑자기 퇴임하면서 육군 내부에서 각 부대 장교들 중에서 적임자를 찾다가 야구 선수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선택된 것.

학생 시절 야구를 했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감독이 되긴 했지만 1983년 경리단이 재편된 육군체육지도대, 1984년 국군체육부대 감독도 계속 맡았다. 故 장효조, 정구선, 우경하 등 프로 초창기 선수들을 시작으로 윤학길, 양준혁, 故 임수혁, 마해영 등의 스타 선수들까지 군 복무 시절에 김정택 감독을 거쳐간 선수들은 대략 500명 정도 된다.

아마야구 시절에는 거의 무명이나 다름없던 선수인데다 워낙 오랜 기간 감독으로 있었기 때문인지, 한때는 '군인 출신 인사가 낙하산으로 내려와 선수빨로 우승한다'는 철밥통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김정택 감독은 30년간 실업야구 시절과 프로야구 퓨처스리그 합류 후 치른 1200여 경기에서 통산 6할대 후반의 승률을 기록하면서 각종 대회에서 60여 차례 우승했고, 퓨처스리그에서는 7년 연속(2004년~2010년) 북부리그 1위를 했다. 김정택 감독도 좋은 선수들이 있었기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고 회고하지만, 아무리 좋은 선수들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좋은 성적을 꾸준히 내는 건 어렵다.

국가대표팀 감독도 3차례[1] 하면서 2005년에는 국제야구연맹(IBAF)의 올해의 감독상도 수상했다. 그야말로 프로야구팀 감독 빼고는 야구팀 감독으로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 셈.

김정택 감독은 1989년 소령으로 예편한 후 4급 서기관으로 임용되어 계속 상무 팀을 이끌었다. 2011년 군무원으로서 정년 퇴임을 앞두고 총감독으로 승격되었고, 박치왕 코치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같은해 6월 30일 상무 감독직에서 공식 퇴임했다.

2012년 11월 보은제약 실업야구단의 창단 감독을 맡게 되었다.
  1. 2001년 34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 2005년 36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 2010년 17회 대륙간컵 야구 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