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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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윤학길(尹學吉)
생년월일1961년 7월 4일
출신지울산광역시 남구[1]
학력장생포초-부산동성중-부산상고-연세대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86년 롯데 자이언츠 1차 5순위[2]
소속팀롯데 자이언츠(1986~1997)
지도자 경력롯데 자이언츠 코치(1999~2002)
한화 이글스 코치(2003)
롯데 자이언츠 투수코치(2004~2006)
경찰 야구단 투수코치(2007)
우리 히어로즈 투수코치(2008)
LG 트윈스 투수코치(2010)
롯데 자이언츠 수석코치(2011)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2012)
LG 트윈스 2군 투수코치(2015)
1988년 한국프로야구 다승왕
김시진(삼성 라이온즈)윤학길(롯데 자이언츠)선동열(해태 타이거즈)
사람들은 저를 고독한 황태자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롯데 팬분들이 계셨기에 전 고독하지 않았습니다.

1 소개

롯데 자이언츠의 전 프로야구 선수.

별명은 "고독한 황태자" 이 말의 의미는 여러가지로 해석되는데, 당시 다승 1위를 했음에도 선동열이라는 황제에 가려 빛을 못 봤다는 의미도 있고, 롯데 자이언츠에서 투수다운 투수는 윤학길 하나였다는 의미도 있다. 사실 팀 내에서도 롯데의 초대 에이스 최동원과 그 후의 염종석, 박동희, 주형광 등의 임팩트에 가려진 감도 없지 않았지만 이들이 불꽃처럼 타오르다 사라지는 가운데서도 묵묵히, 가장 오랫동안 마운드의 한 축을 지탱해 온 명투수였다.

최동원의 뒤를 이어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중반까지 롯데를 책임진 에이스, 그리고 크보 역대급의 이닝 이터. 야구 팬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100완투의 전설. 다만 이상군과 마찬가지로 선수와 코치로서의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통산기록은 117승 94패 평균자책점 3.33이지만, 정작 중요한 건 100완투라는 미친 듯한 기록. 이는 선동열도 하지 못했던 기록[3][4]으로, 그래서 통산 완투 부문 1위에 올랐다. 75승을 완투승으로 따냈다. 20승으로 완봉승 2위[5]에 올랐다. 당연히 이닝도 많이 먹어서 통산 1,863⅔이닝이다.

덤으로 윤학길은 통산 308경기를 출전했는데, 이 중에 구원으로 등판한 경기도 상당수라 선발 등판 횟수는 총 231회이다. 즉 231회를 선발 등판해서 100완투를 했다는 건데 대충 때려맞추면 두 경기 중 한 경기는 무조건 완투 라는 소리다. 이쯤되면 사람이 아니다.

롯데를 거쳐간 투수들 중 최다승을 올렸다. 생각보다 상복이 박복했는지, 1988년 최다승(18승)으로 다승왕을 따낸 정도가 최고의 기록이다. 상복만 박복한 게 아니라 구단으로부터의 대우 또한 박복했는데, 일례로 1993 시즌에 203이닝 12완투 4완봉 12승 12패, 평균자책점 3.01이라는 호성적을 올렸음에도 구단에서는 윤학길이 7,800만 원의 고액 연봉자로서 성적 부진을 이유로 연봉 재계약 시 연봉을 깎으려 들었다. 윤학길은 12승 투수의 연봉을 깎는다는게 말이 되나며 항의했고 결국 2백만 원 인상으로 마무리했다. 1993년의 윤학길은 저 엄청난 이닝과 완투 횟수, 그리고 훌륭한 평균자책점에 비해 승운이 정말 따르지 않았던 시즌이었지만 꼴런트가 승패수만 보고 저런 어이없는 짓을 저지른 것이다.(...)예나 지금이나 꼴런트는....

2 선수 시절

윤학길/선수경력 문서로

3 지도자 시절

하지만 지도자로서의 평가는 대단히 나쁘다.

은퇴 후 롯데, 한화, 히어로즈 등에서 코치를 역임했으나 처참한 기량만 보여 주며 계속 떠돌았다.

양상문, 이상군 등의 화려한 삽질에 묻혀 있어서 그렇지 여태껏 제대로 키운 투수가 거의 없는 크보 최악의 막장 투수코치 중 한 명이다.

3.1 LG 트윈스 1기

2009년 8월 30일 LG 트윈스의 투수코치로 영입되었다. 정작 LG의 프랜차이즈 투수였던 김용수는 스카우트 쪽으로 갔다. 그리고 윤학길은 결국 투수 한 명도 제대로 못키우고 짤리고 최계훈 코치가 투수코치를 맡게 되었다.

3.2 롯데 자이언츠 2기

2010년 10월 21일, 롯데의 새 코치를 맡는다는 기사가 나왔다. 롯데팬들은 기껏 양상문을 피해서 좋아라 했는데 그렇게 사람보는 눈이 없나라고 생각했는데 맡은 직책은 투수코치가 아닌 수석코치였다. 박영태와 수석코치라는 단어가 한 문장 안에 없으니 어색하다

선수 시절만 해도 미칠듯한 완투 퍼레이드와 미친 존재감으로 각인되었는데 코치로서는 영 실적이 없다. 양상문, 이상군처럼 대형 사고를 친 적은 없지만 딱히 키웠다 할 선수가 없다. 한마디로 딱 욕먹지 않는 수준의 코치라고나 할까? 거기가 코치로서의 존재감은 오로지 공셔틀로만 기억되고 있다. 빵셔틀이 일진한테 빵 갖다주듯이 투수 교체할 때 공들고 셔틀노릇하는게 별명으로 남을 정도. LG코치일 때는 완투 능력이 병신인 LG 투수진 좀 이닝이터 만들어줬으면 하는 기대도 컸다. 윤학길 자신이 KBO 최고의 이닝 이터였으니 말이다.

2011년 새로 LG의 투수코치가 된 최계훈 투수코치의 성과 덕분에 2010년 LG의 투수코치였던 윤학길은 더더욱 비교가 돼서 까였다.

2012 롯데 자이언츠의 2군 감독으로 보직을 옮겼다. 롯데 2군이 퓨처스 리그에서 막장 성적을 찍으며 역시 고도칸이라는 평가를 받다가, 박준서, 이정민 등 2군에서 콜업된 선수들의 포텐이 뻥뻥 터지며 재평가 분위기가 슬슬 돌았다.고도칸 매직?

그러나 역시 시즌 종료 후 롯데와 재계약하지 못했다. 이유는 2군 리그 꼴찌라는 성적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애초에 롯데 자이언츠 2군에 야수가 너무 부족했던 것과 NC 다이노스의 약진을 생각하면 다소 아쉬운 부분.

3.3 LG 트윈스 2기

2014년 9월 30일 LG 트윈스의 2군 투수코치로 복귀하였다.

대부분 팬들의 반응은 노찬엽과 마찬가지로 왜 또 실패한 사람이 돌아왔느냐 하는 반응과, 이번에는 다르겠지라는 반응이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나 2군이 주목을 못 받는 상황에 가려져서 그렇지, 비상식적인 투수 운용으로 인해 2군까지 가서 보는 몇몇 골수 팬들에게 비판받고 있다.

유원상의 경우 부상으로 인한 1군 말소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21명의 타자를 상대시켜서 삼진0, 볼넷0, 10안타로 피안타율 0.611의 환상적인 기록을 남긴 채 재활군으로 보내 버렸다.

이외에도 양상문 감독이 굴려서 관리가 필요하던 김선규도 환상적인 운용으로 결국 2군의 평범한 불펜 투수로 만들었다. 심지어 김선규의 경우 작년에 2군에서 0~1점대 방어율을 왔다갔다 하면서 2군을 씹어먹던 걸 생각하면 두 감독 코치의 행태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김선규 2군 등판 기록 결국 2015 시즌 후 김선규는 2차 드래프트로 NC 다이노스에 끌려갔다.

물론 가장 이해가 안 되는건 이렇게 실패했던 전적이 있는 사람을 등용하는 프런트의 인사가 더 문제지만.

결국 2015 시즌 후 장광호 배터리코치와 함께 LG에서 해임됐다.

4 그 외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딸 윤지수펜싱(사브르) 선수로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단체전에 출전했다.
  1. 당시 한참 과거에 경상남도 울산군이였다.
  2. 1984년에는 1차 7순위로 지명되기도 했다. 상무 입대와 LA 올림픽 참가로 인해 입단을 보류한 듯.
  3. 선동열은 통산 146승 중에서 절반인 73승이 구원승이다. 이는 선동열을 조커처럼 활용했던 김응용의 기용법 덕분이기도 하다.
  4. 100완투가 대단해 보이지 않는 분들을 위하여 설명하자면, 10시즌 만에 100완투를 했으니 1시즌에 평균 10완투를 했다는 것인데, 이는 데드볼 시절에나 나올 만한 기록이다. 랜디 존슨이 22시즌만에 100완투를 했다는 걸 기억하자. 투수 분업화가 이루어진 이 시점에서는 나와서도 안 될 기록이다. 2000년대 후반에 그 이닝 잘먹는다는 류현진도 한 시즌에 6완투가 최다 기록이다.
  5. 1위는 선동열의 29승. 한참 후에 정민철이 20승을 거두며 공동 2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