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시절의 김진우(사진출처. 짠물의 인천야구)
이름 | 김진우 |
생몰년도 | 1958년 9월 24일 ~ 2008년 7월 |
출신지 | 인천광역시 |
학력 | 인천고-인하대 |
포지션 | 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83년 삼미 슈퍼스타즈 1차 지명 |
소속팀 | 삼미 슈퍼스타즈(1983~1984) 청보 핀토스(1985~1987) 태평양 돌핀스(1988) MBC 청룡(1989) |
등번호는 11번(삼미 - 청보)[1] - 12번(MBC)[2]
인천고-인하대를 졸업했으며 포지션은 포수. 아마 시절 강타자로 이름이 높았으며 1982년 서울 세계야구선수권 대회에서 국가대표로 뛴 경력도 있다.
1983년 삼미 슈퍼스타즈에 입단, 그 해 15홈런을 기록하며 향후 삼미의 4번 타자와 안방마님 자리를 굳건히 지켜줄 것으로 기대... 했지만 이후 남긴 성적은 아마시절의 그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1988년 시즌을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하며 시력이 나빠지는 후유증을 겪었고 결국 청보에서 방출. 이듬해 MBC에 입단했으나 1할대의 부진한 성적만 남기고 그 해를 마지막으로 프로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통산성적은 타율 0.250, 43홈런, 173타점.
현역 시절 세밀함은 부족했지만 일발 장타력이 있었고, 포수로서 어깨는 강했는데[3] 투수리드는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1983~1985년 까지 배터리를 이룬 장명부와는 팀 전체 케미스트리에 악영향을 미칠 정도로 사이가 지독하게 안 좋았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장명부가 선발로 등판하면 금광옥 또는 최영환이 선발로 마스크를 쓰고 김진우는 벤치에 앉는 일도 허다했고, 심지어는 1984년엔 장명부가 같은 재일동포 출신인 롯데 홍문종의 도루왕을 지원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김진우는 해태의 김일권이 1루에 나가면 도루저지를 게을리 하는 등의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그해 도루왕은 김일권의 차지였지만...
은퇴 이후의 행적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2002년 9월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동산고 vs 인천고 OB의 친선경기에 인천고 유니폼을 입고 오랫만에 모습을 드러내 팬들을 감개무량하게 만들기도 했다. 항간의 소문으로는 MBC에서 은퇴 후 직장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얼마 못가 그만두었고 상당히 어렵게 생활하며 음주로 건강을 망쳤다는 얘기도 있다.
2008년 7월 당뇨 합병증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예전의 명성과는 달리 그의 빈소는 상당히 쓸쓸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