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세 미키오 成瀬巳喜男 (1905~ 1969)
1930년대부터 1950년대 이르는 시기를 대표하는 일본 감독 중 하나이다. 그와 비슷한 시기(혹은 후배거나)의 미조구치 겐지, 구로사와 아키라가 1950년대에, 오즈 야스지로가 1970년대에 평가받은 것에 비하면 나루세는 국제적으로 1980년대에 들어 재조명받기 시작했다.[1]
1920년 15세에 쇼치쿠(松竹)에 입사했으며, 조감독을 거쳐 1930년에 <찬바라 부부>로 데뷔했다. 나루세가 성장했던 도쿄 빈민가를 무대로 서민극 장르 영화를 많이 만들었고,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점에서 오즈 야스지로와 비교되곤 했다. 나루세의 여성상은 미조구치보다 강했고, 숏에서는 오즈보다 형식적인 면모가 약하다. 나루세의 영화에서 시련에 맞서는 인물들은 어두운 화면 속에서 감정에 충실할 뿐, 관객의 감정에 쉽게 호소하지 않는다. 그래서 갈등이 극에 달한 가족도, 사랑을 나누는 남녀도 웬만해서는 말이 없다(결정적인 장면에서 침묵을 선택하는 멜로드라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루세의 영화는 겉으로 보면 잔잔하게 보이지만, 그 내면 아래는 격렬한 감정의 풍랑이 느껴진다. 나루세의 영화는 풀 숏으로 보면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이지만, 클로즈업으로 바라보면 가족과 연인과 같은 인간관계의 이면을 바라볼 수 있다.
나루세의 영화에서 감정의 스펙터클에는 해피엔딩과 같은 완결된 형태의 마무리는 흔치 않다. <부운>에서 유부남과 처녀의 사랑은 전후의 절망적인 시대상에서 비극으로 마치며, <번개>에서 갑작스런 보험금으로 갈등을 겪는 가족은 본심을 숨긴 채 식사를 마쳐야한다. 나루세 미키오에게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관계의 보호막이 되지 못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데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한다.
다카미네 히데코는 나루세 미키오의 페르소나이다. 다카미네 히데코는 <방랑기>, <부운>, <흐르다>등 나루세의 영화 중 15편에 출연했다. 히데코의 연기는 일본 여성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은 물론 나루세의 영화적 묘사만큼 절제되어 있다. 다카미네 히데코가 나온 나루세 영화는 대부분 추천할 만 하다. 그 중에 특히 <방랑기>는 가난과 불행의 가족사, 반복되는 실패의 좌절을 통해 후미코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다룬다.
나루세 미키오의 유작은 1967년의 <흐트러진 구름>이다.
박찬욱은 <친절한 금자씨>에서 나루세 미키오에 대한 오마주로 금자(이영애)가 일하는 빵집의 이름을 ‘나루세’라고 지었다.
나루세 미키오의 대표작들
- 찬바라 부부(1930)
- 아내여 장미처럼(1935)
- 번개 (1952)
- 산의 소리(1954)
일본 문학의 거장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이 원작이다. 나루세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뽑았다.
- 만국(1954)
- 부운(1955)
<번개> <만국>의 원작자이자 일본 근대 여성문학을 대표하는 하야시 후미코의 원작 총결산으로 기획한 작품이다. 나루세 미키오의 최고작으로 평가받으며 가장 사랑 받는 작품이다.
- 방랑기(1962)
하야시 후미코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이다. 나루세가 하야시 후미코의 소설을 마지막으로 영화화한 작품.
- 흐트러지다(1964)
- 흐트러진 구름(1967)
- ↑ 일본영화의 3대 거장으로 거론할 때, 구로사와, 오즈, 미조구치는 언급되지만 나루세가 종종 제외되는 이유는 이 때문일 듯 싶다. 요즘에는 나루세를 포함해 4대 거장으로 말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