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토 마사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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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다 4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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内藤昌豊 (ないとう まさとよ)
1522년 ~ 1575년 6월 29일

가중 제일의 부장(家中一の副長).[1]

1 개요

센고쿠 시대의 무장. 본명은 쿠도 스케나가(工藤祐長)로 이름에 관해서 나이토 마사히데(内藤昌秀)라는 설도 있다.

쿠도 토라토요(工藤虎豊)의 차남으로 아버지가 다케다 노부토라에게 살해당해 가문을 떠나 유랑생활을 하였다. 이후 노부토라가 다케다 신겐에게 추방되자 1546년에 복귀하면서 사무라이 대장에 임명된다.

다케다가의 주요 합전에 참가하였으며 제 4차 가와나카지마 합전에선 사이죠 산 별동대로 활약한다. 미노와성 공략에도 활약하였고 이후 미노와죠다이로 임명되어 우에노 방면의 지휘를 맡는다. 1568년에 이 때까지의 공적으로 나이토가를 계승하면서 슈리노스케(修理亮)를 자칭했다고 하며, 1569년에는 미마세토우게전투에서 코니다 부대(보급 부대)를 이끌고 보급하였다. 1571년에 호조 우지야스가 죽자 호조 가문과의 동맹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아 이를 수행한다.

4명신 가운데 가장 존재감이 없는 인물[2]로, 생애 단 한번도 감사장[3]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주군 다케다 신겐은, '마사토요 정도의 인물이라면 마땅히 범인을 능가하는 전공을 올려야 한다'고 하였고, 마사토요 자신도 '싸움에서 대장의 지휘에 따르는 것이야말로 승리를 얻는 길이며, 개인의 공에 얽메이는 건 치졸한 짓'이라며 신경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 정도로 신겐과의 신뢰관계가 깊었다는 일화이다.

나가시노 전투를 가장 심하게 반대했으나, 노신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카츠요리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죽을 생각으로 참전했다고 한다. 마침내 다케다군이 대패하였고 자신은 전사한다.

2 대중문화에서

심하게 안습이다. 공적이 상당한 무장이자 중신임에도 불구하고 푸대접받거나 아예 등장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캐릭터가 분명치 않기 때문인듯.

2.1 영상물

다케다 가문을 상세히 다룬 두 NHK 드라마에서 한번도 얼굴 한번 내비치지 못한 진정한 안습의 무장. 어째서?!

2.2 노부나가의 야망

파일:内藤昌秀.jpg

노부나가의 야망시리즈에서는 타 4명신에 비해 무용에 얽힌 이야기가 적다는 점, 상기한 감사장을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을 반영하여 상대적으로 전투 능력은 낮게 나오지만 반대급부로 지력과 정치면에선 일반적인 무장보다 높은 능력치가 주어진다. 그 일례로 한 시리즈에서는 통솔 78 무력 70 지력 82 정치 79로 만능형으로 등장했다.

2.3 센고쿠(만화)

그야말로 안습의 결정체. 다케다 4천왕 자리를 아키야마 노부토모에게 뺏긴 것도 모자라, 최후마저 오바타 노부사다, 하라 마사다네등과 함께 전사 했다고 1줄로 처리... 동료인 야마가타 마사카게, 바바 노부후사는 각각 천정기 5권, 6권의 표지를 장식하며 그 권에서 처절하게 전사했으며 심지어 자신보다 급이 낮은 츠지야 마사츠구, 사나다 노부츠나, 사나다 마사테루의 최후도 정성들여 그린 것에 비하면...
  1. 침착하고 사려깊은 성격으로 주로 후방 지원, 공작을 맡았다.
  2. 센고쿠에선 다케다 4명신 자리를 아키야마 노부토모에게 뺏겼고 전국란스에선 사나다 유키타카에게 뺏겼다. 오다 노부나의 야망에서는 4명신의 일원이지만 존재감이 없어서 신겐이 맨날 까먹는다.
  3.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자에게 주는 상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