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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다 4명신 | ||||
야마가타 마사카게 | 바바 노부후사 | 나이토 마사토요 | 코사카 마사노부 |
山県昌景 (やまがた まさかげ)
1529년 ~ 1575년 6월 29일
1 개요
본래 이름은 오부 마사카게(飯富昌景), 아명(兒名, 어릴때 불렸던 이름)은 겐시로(原四郞). 처음에는 다케다 신겐의 근습으로 각자의 전투에서 무공을 세운다. 1565년 신겐의 장남 다케다 요시노부(武田義信)과 그의 모리야쿠(傅役)[1]이었던 오부 토라마사(飯富虎昌)[2]가 반란을 모의하자[3] 신겐에게 밀고하여 이를 진압한다. 그 공적으로 다케다 노부토라대에 단절된 야마가타가를 계승하였고 토라마사가 이끌었던 '아카조나에(赤備)'[4]의 대장이 된다.
이타가키 노부가타(板桓信方), 아마리 토라야스(甘利虎泰)가 사망하자 다케다가의 정치 최고기관인 시키(職)를 하라 마사타네(原昌胤)과 함께 맡았다. 그후 다케다가의 주요 합전마다 참전하여 무공을 세웠으며 외교에도 뛰어난 수완을 보이며 활약한다.
신겐의 상경작전때 나가시노를 거쳐 하마마츠로 진격하며 여러성들을 함락하며 도쿠가와군을 압박하였다. 그리고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군을 대패시켰고 이에야스는 병졸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도망쳤을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5]
신겐이 사망하였을 때 따로 불려져 '내일은 세타[6]에 그대의 기를 세우라.'는 유언을 들었다. 그 후, 가츠요리를 보좌하였으나 소외당한다. 나가시노 전투에서는 다른 노신들과 함께 퇴각을 권유하였으나 가츠요리에 의해 결국 좌익 중추로 나서게 된다. 죽음을 각오하고 오다군의 진지를 공격하였으나 결국 온몸에 총탄을 맞고 전사한다. 이때 끝까지 지휘봉을 든 채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그의 가신이었던 시무라 미츠이에(志村光家)는 그의 수급을 적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잘라내 파묻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전투에서 사위인 사에구사 모리토모(三枝守友)도 함께 전사하였다.
당대 일본인이 키가 작기로 유명했지만, 동시대 일본인 중에서도 키가 정말로 작았다고 한다. 130~140cm 정도 였다고. 다케다 군단을 대표하는 용장으로 이름을 떨쳤지만 그가 선봉에 서면 적들이 "신겐의 난쟁이가 나타났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고. 또한 거기다 언청이까지 있어서 매우 추남이었다고 한다.
그가 이끌었던 아카조나에는 여러 다이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훗날 이이 나오마사나, 사나다 유키무라등도 이를 계승하였다.
2 대중매체에서의 모습
물건너에서는 꽤나 인기있는 무장인듯 하며,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유명한 영화 '카게무샤'에서 처음에 신겐을 꾸짖는 늙은 가신이 바로 야마가타 마사카게이다.
3 전국란스의 캐릭터
여기서도 다케다 4장의 일원이며, 능력치 8888의 실로 욕나오는 스탯을 보유.
다케다만의 전용부대인 기마대로서, 적이 전열에 있던 후열에 있던 가리지 않고 공격이 가능해서 후열에 아시가루로 방패막이를 둬도 한 방에 빈사가 되기 일쑤. 돌진이라도 해왔다간 괴멸확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다 그 병력을 갖추고서 전과업2를 달고 있으니 시간 끌어서 이기기도 힘들다. 거기다 다케다 4명신 전용스킬인 풍림화산으로 시작부터 올 버프를 받고 앉아있으니...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인 풍림화산 4연격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캐릭터로서 손색이 없다. 손색이 없는 수준을 넘어서 미칠듯이 두렵다.
여담이지만 이름에 山이 들어가 있었던 덕분에, 풍림화산을 맞추기 위해서 개명당한 다케다 4명신 가운데 유일하게 개명당하지 않은 인물이 되었다.
정사에서는 다케다 멸망시에 사망했다.
4 노부나가의 야망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는 흔히 다케다가 최강의 맹장으로 등장하곤 한다. 오다의 시바타 가츠이에나 도쿠가와의 혼다 타다카츠와 비슷한 포지션. 천도에서의 개인 특기는 아카조나에 대장답게 적비(赤備). 아군으로 기병대를 이끌면 엄청난 화력을 뽑아내지만 적으로 만나면 정말 공포의 대상.
최신작인 창조에서의 전법은 급습. 난전(접근전)의 위력을 강화시켜주는 전법으로, 마사카게의 능력치에 비해서는 아쉬운 감이 있다. 하지만 능력치 상한선이 120에서 100으로 고정된 이번 시리즈에서 통솔 91 무용 96을 마크한 위용넘치는 스탯이 이 아쉬움을 상쇄해준다. 지력도 80대로 상향되었다.
5 센고쿠(만화)
다케다가 제일의 맹장으로 등장. 미카타가하라 합전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그야말로 개박살낸다. 아카조나에의 대장답게 전장에서도 말에 탄 채로 선봉에서 맹활약하는데, 이 때 지휘채를 입에 물고 부대를 지휘하는 버릇이 있다. 이후 나가시노 합전에서 온몸에 총격을 받았음에도 기어이 적들을 베어 넘기다 다시 무수한 총격을 받고 전사. 죽기 직전 자신의 삶을 회상한다.- ↑ 지도역 즉 문무를 비롯하여 예절등 교육과 후견 역할까지 맡는 중차대한 역할이며, 가문을 이을 적남을 맡는 경우라면 그 책임은 더욱 막중했다.
- ↑ 토라마사는 마사카게의 형 또는 삼촌으로 알려져있다.
- ↑ 요시노부는 1552년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딸과 결혼.(친 이마가와 성향을 띄기 시작) 1560년 오케하자마 전투로 요시모토가 죽고, 이마가와의 세력이 쇠하는 틈을 탄 신겐이 이마가와 공략을 준비하자 마침내 반란을 일으켰다.
- ↑ 모든 군장을 붉은 색으로 통일해 아카조나에라 불렸으며, 가중 제일의 정예부대였다. 다케다 멸망 이후는 도쿠가와가 그 세력을 흡수 이이 나오마사가 아카조나에를 맡게 된다.
- ↑ 이때 이에야스는 말안장에 똥을 쌌으며 전투가 끝날 때까지 이 사실을 몰랐다고 하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때 이에야스는 "야마가타라는 자, 실로 무서운 무장이로다."라고 했다.
- ↑ 교토의 옛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