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image/139/2013/02/02/SK004 20130202 640401 59 20130202171506.jpg
성남 FC U-12 코치 | |
남궁도 (南宮道 / Namgung Do) | |
생년월일 | 1982년 6월 4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서울특별시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신체조건 | 186cm, 89kg |
종교 | 개신교[1] |
프로입단 | 2001년 전북 현대 |
소속팀 | 전북 현대(2001~2004), 48경기 8골 로열 앤트워프(2001)[2] 전남 드래곤즈(2005), 19경기 2골 광주 상무 (2006~2007), 39경기 9골 포항 스틸러스 (2008~2009), 29경기 7골 성남 일화 (2010~2011), 38경기 5골 대전 시티즌(2012)[3], 18경기 0골 FC 안양(2013~2014), 29경기 1골 |
코치 | 성남 FC U-11(2015~) |
국가대표 | 2004~2005, 8경기 0골 |
1 소개
It's DO time!
186cm의 키를 바탕으로 신체능력이 탄탄한 타겟형 스트라이커이고, 의외로 빨라 윙어로도 쓸 수 있다. 하지만 특출난 장점이 없는 것이 단점이다. 2001년 전북 현대에 입단하자마자 벨기에의 로열 앤트워프로 6개월 임대를 갔으나 별 활약 없이 돌아왔고 이후 2004년까지 당시 전북에서 활약했다. 2005년에는 전남으로 이적했고 그 다음해 광주 상무에서 주전으로 기용되며 괜찮은 활약을 하고 제대 후 포항과 성남을 거쳐 2012년 대전으로 임대되었다.
2013년부터 2시즌을 안양에서 뛰다가[4] 은퇴, 2015년 4월부터 안양 시절 감독인 변성환 감독과 함께 성남 FC의 유소년 팀에서 어린 선수들에게 우승의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1.1 국가대표 시절
2004년에는 본프레레 감독이 국가대표에 발탁했으나 이후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고, 아드보카드 감독이 이끈 2006년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다만 본프레레 시절 한가지 특기할 만한 대목이 있는데 바로 지금까지도 축구팬들에게 전설처럼 회자되는 독일과 친선전이다. 당시 본프레레는 한창 뜨는 신예 최성국, 박주영을 탈락시켜 엄청난 비난을 받았는데 대신 선택한 공격수가 김동현, 이동국, 조재진, 차두리 그리고 남궁도였다. 이는 허리와 수비진도 마찬가지여서 엔트리를 대놓고 떡대 파이터들로 도배[5]해버렸다. 그리고 2004년 12월 19일 부산에서 독일과의 경기에서 많은 팬들이 이동국 하면 떠올리는 환상의 발리슛 득점 장면을 보면 남궁도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사실 뻥축구에 가깝게 완만하게 올린 크로스였는데(...) 후반 교체투입된 남궁도에게 독일 수비수가 어그로몰리면서 순간적으로 이동국 마크가 느슨해지고..... 시밤쾅!
1.2 우승청부사
커리어를 봐도 그다지 특출난 선수라고 할 수는 없고 기량이 하락세로 들어선 2007년 이후로는 어느 팀을 가도 주전으로 기용되지 못하고 있지만 남궁도가 국내의 축구팬들에게 유명한 이유는 남궁도가 가는 팀은 몇번을 제외하면 한번씩은 꼭 우승을 한다는 것으로 남궁도의 우승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 2003년 전북 현대 - 대한축구협회 FA컵 우승
- 2004년 전북 현대 - 슈퍼컵[6] 우승
- 2006년 전남 드래곤즈 - 대한축구협회 FA컵 우승
- 2007년 전남 드래곤즈 - 대한축구협회 FA컵 우승[7]
- 2008년 포항 스틸러스 - 대한축구협회 FA컵 우승
- 2009년 포항 스틸러스 -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 2010년 성남 일화 -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 2011년 성남 일화 - 대한축구협회 FA컵 우승
- 2012년 성남 일화 - 홍콩 아시아챌린지컵[8] 우승[9]
이러한 화려한 우승기록으로 인해 축구팬들에게 남궁옥새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리그든 FA컵이든 우승을 하고 싶다면 일단 남궁도부터 영입을 해야한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그러나 운빨이 다 했는지 2012년에는 우승컵을 얻는 것이 좌절된 상황이라고 많이 생각을 하지만... 성남이 구정컵을 먹을 때 남궁도는 아직 성남소속이었다!
2013년에는 새롭게 창단된 FC 안양에 입단하였으나 옥새의 효력이 다 했는지 팀에 아무 타이틀도 안겨주지 못했다. 시즌 기록은 29경기(20경기 교체투입) 1골 1도움. 끝내 더 이상의 우승을 기록하진 못하고 2014년에는 부상과 노쇠로 사실상 시즌을 흘려보낸 뒤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 이야깃거리
남궁도의 동생인 남궁웅 역시 프로 축구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2011년에는 성남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다른 팀에 있으면서도, 은퇴하면 성남에서 지도자를 맡겠다고 공약했고, 그 꿈은 이루어졌다.
- ↑ 올림픽 축구 대표팀이 부르는 찬양앨범에도 참여하였다.
- ↑ 임대
- ↑ 임대
- ↑ 2014년에는 얼마 뛰지도 못했다…
- ↑ 엔트리 가운데 단 한명 김두현만 175cm이고 나머지 전원 182~7cm였다(...)
- ↑ 전년도의 리그 우승팀과 FA컵 우승팀이 개막 전에 하는 경기로 잉글랜드의 커뮤니티 실드와 같은 개념
- ↑ 06,07년에 군입대를 하여 광주 상무에서 뛰고 있었지만, 엄연히 전남소속이었다.
- ↑ 구정컵
- ↑ 대전으로 임대이적 한 것은 2012년 2월 28일이었다. 이 대회는 그리고 1월에 열렸다. 즉 구정컵을 먹을 때 남궁도는 성남 소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