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서울 2017 시즌 스쿼드 |
1 유현 · 2 황현수 · 3 심우연 · 4 김동우 · 5 오스마르 · 6 주세종 · 7 김치우 · 8 이상호 · 9 데얀 · 10 박주영 · 11 윤일록 · 13 고요한 · 14 조찬호 · 15 김원식 · 16 하대성 · 17 신광훈 · 19 심상민 · 20 정인환 · 21 양한빈 · 22 윤승원 · 23 이석현 · 25 전호준 · 26 김주영 · 27 김정환 · 29 황기욱 · 30 김철호 · 31 손무빈 · 32 김한길 · 33 박민규 · 34 마우링요 · 35 임민혁 · 36 박성민 · 38 김근환 · 40 김원균 · 43 윤종규 · 45 신성재 · 55 곽태휘 · 88 이규로 |
* 이 표는 간소화된 버전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 타 팀으로 임대 간 선수는 제외되었습니다. * FC 서울 스쿼드에 변동이 있으면 두 틀 모두를 수정해주세요. |
FC 서울 No.10 | |
박주영 (朴主永 / Park Chu Young) | |
생년월일 | 1985년 7월 10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대구광역시 |
신체 조건 | 183cm, 71kg |
포지션 |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
주로 쓰는 발 | 오른발 |
등번호 | 10번 |
소속팀 | FC 서울 (2005~2008) AS 모나코 (2008~2011) 아스널 FC (2011~2014) RC 셀타 데 비고 (임대) (2012~2013) 왓포드 FC (임대) (2014) 알 샤바브 FC (2014~2015) FC 서울 (2015~) |
국가대표 | 68경기, 24골 |
종교 | 개신교 |
2005년 K리그 신인상 | |||||
문민귀(포항 스틸러스) | → | 박주영(FC 서울) | → | 염기훈(전북 현대 모터스) |
2005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
FW 박주영 | FW 마차도 | ||||||||||
MF 김두현 | MF 이천수 | MF 이호 | MF 조원희 | ||||||||
DF 임중용 | DF 유경렬 | DF 조용형 | DF 김영철 | ||||||||
GK 김병지 |
목차
1 프로 입단 전
대구광역시 청구고등학교시절부터 축구 천재로 불렸으나, 막상 지역 연고팀인 대구 FC는 당시 창단 초창기 무렵이라 유스팀을 지원할 여건이 되지 못했다. 대신 포항 스틸러스가 손을 내밀었고, 프로 데뷔시 자신들과 우선협상을 한다는 조건으로 박주영은 브라질 축구유학을 다녀오게 된다. 이후 청구고 졸업 무렵에는 대학에 가고 싶다는 박주영 본인의 의사를 포항이 흔쾌히 받아들여 고려대로 진학. 그리고 아시아청소년선수권에서의 환상적인 활약으로 인해 박주영은 더이상 대학 축구에서 썩고 있어서는 안되는 귀한 몸이 되어버린다.
결국 대학 생활 1년만에 프로팀들과 협상을 벌이기 시작. 국내 빅클럽들은 물론 J리그의 팀들까지 경쟁에 뛰어들었고, 개중에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던 것이 FC 서울이었다. GS그룹의 회장(고려대 출신)이 직접 고려대 총장을 만나 협상을 벌였으며, 박주영의 이적이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다짜고짜 고려대에 인조잔디 구장을 지어주기 시작. 결국 이런 노력이 먹혔는지 박주영은 FC서울에 입단하게 된다.
박주영이 '지방팀에서 뛰기 싫다'는 이유로 포항을 배신하고 서울에 입단했다는 소리도 있다. 포항은 계약 위반 조항에 따라 브라질 유학비의 2배 금액인 5000만원의 보상금만큼은 받아내겠다고 밝혔으나, FC서울(GS그룹)측에서는 당사자들인 박주영과 포항이 해결할 일이지 우리와는 관계가 없다며 일축했다.관계없단 사람들이 고대에 잔디는 왜 깔았는지 의문이다 그 외에도 포항이 청구고에 대한 지원을 끊은 것에 대해 박주영건으로 인한 보복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으나, 이는 지역 연고제 차원에서 포항의 직계학교인 포철 동/서초, 포철중, 포철공고 외에 모든 학교에 대한 지원을 끊은 것뿐이지 박주영에 대한 보복은 아니다. 한편 박주영의 유학이 포항 구단측이 직접 지원한 것이 아닌 포스코 재단차원에서 장학금 개념으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우선협상 계약의 직접성과 강제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박주영팬들의 쉴드도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기사에도 유학비 지원의 주체는 포항 스틸러스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사실 기사에 언급된 브라질 유학 수혜자 중 신진호, 오범석, 황진성 등이 포항에 입단한 것만 봐도 장학금 개념이었단 쉴드는 설득력을 잃는다. 응? 이 선수들은 포항 유스인데?
하지만 박주영 이적파동은 결국 한국 프로축구 드래프트 부활의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당시 드래프트를 주장하던 시민구단과 반대파인 기업구단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 박주영 사건이 터졌고, 유스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드래프트에 있어서 가장 완강한 반대파인 기업구단 포항과 전남은 기존의 계약방식으로는 선수를 지킬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유스우선계약 4명, 그래 4명이라도 어디냐, 이라는 떡밥을 물고 시민구단과 함께 드래프트 찬성으로 돌아서 버렸다. 덕분에 드래프트 제도가 케이리그 이사회에서 손쉽게 통과되어 버렸다. 물론 드래프트 시행의 원인이 전부 박주영의 책임은 아니지만 상당한 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당시 고려대 감독이었던 조예스조민국에 의해서 한참 후인 2015년이 되어서야 그 당시 정황이 나타났다. 고려대를 갔을때부터 서울과 수원, 울산과 고려대가 접촉을 시작한 것. ###
2000년대 전후 천재로 칭해진 선수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시드니 올대의 주축이었던 박진섭은 히딩크가 부임하고 한 순간에 국대에서 사라졌고, 한때 자타가 공인한 천재로서 리그와 대표팀을 호령했던 고종수, 이천수는 뜻하지 않게 커리어가 꼬여버렸고, 권집, 최성국 등은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 때문에.[1] 전성기 시절 본인은 언제나 천재가 아니라고 겸손해 했지만 적어도 당시 국내에서 그만한 재능을 가진 선수는 드물었었다.
청소년대표 시절 '킬러'라고 불릴 만큼 감각적인 슈팅과 개인기, 탁월한 골결정력 등 한국 축구를 이끌어나갈 차세대 유망주로 지목받았었다. 청소년대표팀 경기에서 중국 수비수 3~4명을 제치며 개인기로 골을 만들어내던 장면은 지금봐도 인상깊을 정도.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2 클럽 경력
항목이 길어져 분리하였다. 박주영/클럽 경력 참고.
3 국가대표 경력
항목이 너무 길어져 분리하였다. 박주영/국가대표 경력 참고.
4 논란
항목이 너무 길어져 분리하였다. 박주영/논란 참고.
5 플레이 스타일
FC서울 시절 스페셜 | AS모나코 시절 스페셜 |
입축구 간증 동영상
국내 기준으로 '천재'라는 수식어가 사실 부끄럽지만은 않은 선수였다. 팀 동료를 이용하는 플레이나 빈 공간으로의 쇄도, 2선에서의 침투는 발군의 능력을 자랑했다. 뛰어난 키핑력에 국대에서 차두리에 이은 2위에 랭크되는 스피드를 가지고 있으며, 점프력면에서도 뛰어나 (100cm를 뛴다고 카더라) 180초반대라는 키를 생각해보면 상당한 제공권을 가지고 있다. 이 점프력을 이용한 정확한 떨구기도 수준급이었었다. 이 당시 쉐도우 스트라이커로서의 능력을 바탕으로 판타지스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박주영이 키핑력이 좋긴 한데, 키핑력을 활용하는 면에서 약점을 보이곤 했다. 시야와 패스 능력이 좋아서 공을 끌어도 별 상관이 없을 수도 있는데 높은 레벨일 때 문제의 소지를 보였었다. 등진 상태나 회전하면서 다음 동작으로 전환할 때 프리미어리그 레벨의 수비수들은 운동능력이 뛰어나 박주영의 다음 동작이 따라잡히고 따라서 질질 끌고 템포만 잡아먹는 결과로 끝났다.
드리블의 경우 전성기때에는 뛰어난 순간 속도와 예측력을 기반으로 한 번에 확 치고 나가는 스타일을 선호했다. 즉 일단 공을 잡아놓고 상대수비수가 마크하러 오면 수비수의 다음 행동을 예측해서 반대 방향으로 순간적으로 확 치고나가는 스타일이었다. 볼키핑력과 순간속도, 예측력이 있기에 가능한 스킬이었는데 폼이 죽으면서 이런 스타일의 드리블은 잘 시도하지 않는다. 다만 아직도 예측력은 유효한 강점으로 상대 수비의 움직임이나 공의 흐름 같은 것을 잘 읽는 편이다. 그래서 흐르는 볼에도 강점이 있다.
위치선정도 뛰어난 편이다. 특히 유럽 진출 전 선수생활 초기에는 오프사이드 라인을 타다가 침투해서 득점하는 경우가 많았다. 유럽진출하고 피지컬이 보강되면서 버티고 헤딩따는 스타일로 변했지만 어린시절 피지컬이 부족할 때는 라인선상에서 왔다갔다하며 침투해서 골을 넣거나 나와서 공을 받아서 수비수를 제껴서 넣는 2지선다형 공격수였다. 위의 드리블도 그렇지만 수비수에게 계속 선택을 강요한다.
프리킥도 뛰어나다. 다만 혼다의 무회전 프리킥이 화제가 될 때 한국 네티즌이 대항마로 내세울 정도였으나, 내셔널리즘에 입각했던 대항마 내세우기였고, 냉정하게 얘기해서 박주영의 프리킥이 이천수나 김형범 염기훈의 전성기 시절 기량에 근접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창 전성기 때 일본이나 국내에서 정말 첫손 두손에 꼽히는 최고의 선수보다 못하지만 잘 차는 선수인 것은 확실하다.
FC서울 시절 당시 박주영은 높은 키핑력과 발재간, 골 결정력으로 먹고 사는 선수였지만 몸싸움에서 약점을 보였는데, 당시 정교한 패스로 상당수의 골 기회를 제공해 주었던 히칼도 역시 몸싸움에서 약점을 보였다. 이 시기 박주영이 잘 나가던 것도 데뷔 당시의 전반기 시즌뿐으로, 후반기 시즌에 들어서면서 이미 박주영 공략법이 나왔다는 다른 팀 수비수들의 인터뷰처럼 박주영의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상대팀이 거친 몸싸움으로 대응해오면서 후기리그에 FC 서울의 성적이 크게 하락하는 원인이 되었고, 2006년에도 월드컵 여파 혹은 그냥 후반기 시즌처럼 수비수에게 패턴이 읽혀서인지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2007년 세뇰 귀네슈가 부임한 이후에는 스트라이커가 아닌 사이드 미드필더로 뛰면서 경기력을 크게 회복했다. 하지만 데뷔시즌 말고는 스탯생산력은 처참한 수준이었고, 히칼도 의존도가 대단히 높았다.
모나코 이적 이후 몸싸움과 제공권을 아주 크게 보강했다. 덕분에 어엿한 원톱 공격수로 변화를 이루었지만 이 때 이후 스리톱의 중앙 공격수로만 국대급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선수가 되어버렸다. 물론 신인 시절에도 포지션 제한성은 논쟁거리였으나 그땐 어렸으니 그러려지 했지만, 나이가 20대 후반에 이르자 제한된 포지션에서만 뛸 수 있다는 것이 커다란 약점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피지컬, 위치선정, 헤딩, 피딩, 패스분배, 중거리, 쇄도, 수비수 끌고 다니며 공간 만들기, 발재간 등등 많은 장점을 가진 선수로 원톱의 풀패키지형이라 할 수 있지만 바꿔 말하면 어중간하게 고른 기량을 갖춘 선수다.
허나 결정력이 저조하다는 게 가장 큰 약점인데 컨디션이 좋을 때에야 원톱 공격수로 그럭저럭 합격점인 정도이다. 박주영은 선수 본인이 머리 굴려서 생각할 필요가 없는 골은 잘 넣는데, 라인 깨면서 슬라이딩 슛이나 헤딩슛, 아니면 옆에 수비수 좀 달고 있으면서 찰 수 있는 각도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차는 공이 잘 들어간다. 그런데 생각하면서 찰 경우는 전매특허인 골대 반대편 구석으로 아슬아슬하게 빗겨가며 떼굴떼굴 구르는 슛을 쏘기 일쑤다. 아스날에서 박주영을 영입할 때 모나코 팬들이 아스날 팬들에게 기술이 뛰어나고 영리하지만 1:1 결정력이 약하다고 소개했었다.
박주영의 이런 특성은 의외로 비슷한 팀과의 경기에서 곤란을 겪는데, 원톱이 가져야 할 모든 능력을 가지고 있는 종합 패키지인 박주영은 현대 축구 대세가 원톱이므로 일단 감독이 박주영 이름을 톱에 딱 적어놓고 다른 선수들의 이름을 써 내려가면 박주영은 다른 선수들의 특성에 맞춰서 경기를 풀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특히 육체적 능력과 축구지능이 좋은 게 강점이므로 훨씬 기량이 뛰어난 강팀과 상대할 경우 박주영은 최전방에서 혼자 공을 지키고 뿌리며 플레이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전력이 비슷한 상대와의 경기에서는 공격수들의 결정력이 강팀과의 싸움이나 아예 양민학살의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이 시험받게 되는데, 박주영은 결정력이나 집중력, 투지에서 약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깔끔하게 찬스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경기가 좀 진흙탕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집중력과 투쟁심 부족도 큰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는데, 침착하게 페이스를 유지하는 건 좋지만 페이스를 확 끌어올려야 할 지점에서도 침착하게 본인의 페이스와 리듬만 유지하다 템포를 못 따라가 잠깐 멍하니 있는다거나, 안일하거나 어이없는 플레이가 한 번씩 나오곤 한다. 투지 부족도 가끔 지적된다. 그래서 한국이 상대적으로 약팀과 경기하는 아시아권 대회에서 맹위를 떨쳐야 되는데, 최용수나 황선홍 이동국처럼 상대를 압살하는 플레이는 거의 보여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너무 약팀과 붙을 경우 본인의 집중력이 크게 떨어져 루즈한 플레이를 자주 보여주기 때문이다.
데뷔부터 지금까지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활약상을 쭉 돌이켜보면 들쭉날쭉 극심한 널뛰기를 뛴 것 같지만, 사실 뜯어보면 의외로 일관성이 있다. 실력에 비해 활약상이 저조했을 때는 예외없이 팀에서 에이스 대접을 받지 못할 때였다. 일종의 멘탈 문제라고 할 수도 있는데, 본인 위주로 팀이 돌아가야만 플레이가 온전히 살아난다. 이것을 한때 설이라는 말이 있었으나 모나코를 제외한 아스널 셀타비고랑 비교해 2016년 4월 현재 최고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FC서울과 박주영을 보았을때 확실해 보인다. 왓포드랑 알샤밥은 판단이 힘들다
확실히 왕자병 기질만을 멘탈 문제라고 말하기는 어렵긴 한데, 박주영의 문제는 이 왕자병 기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투지나 집중력 부족도 동시에 지적받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팀 페이스가 어떻게 흘러가건 항상 내 페이스는 유지하고, 팀의 중심이 되어야 하며 강한 상대와의 싸움에도 굴하지 않지만 약자에게는 또 집중력이 루즈해지는, 실로 만화 캐릭터같은 대단히 드문 케이스인데, 인간적으로는 모르겠으되 약팀 강팀 골고루 싸워야 되고 일관성이 있어줘야 감독이 선수를 신뢰하고 판단하기 편하다.
15시즌 FC서울이 초~중반 미드필더진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때 본인이 직접 3선까지 내려가며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였다. 원래 미드필더 출신인 만큼 킬패스나 경기운영 능력도 뛰어나다.
어쨌든 박주영은 한국 축구에서 비교적 현대적이고, 또 축구적으로 멘탈, 피지컬, 스킬을 통틀어 대단히 오묘한 캐릭터를 지닌 선수라는 것은 확실하다.
6 역대 기록
6.1 국가대표팀 기록
박주영 국가 대표팀 득점기록 | ||||||||||
일시 | 장소 | 상대팀 | 경기결과 | 대회명 | ||||||
2005년 6월 3일 | 타슈켄트 | 30px 우즈베키스탄 | 1-1 | 2006 FIFA 월드컵 독일예선 | ||||||
2005년 6월 8일 | 쿠웨이트 | 30px 쿠웨이트 | 4-0 | 2006 FIFA 월드컵 독일예선 | ||||||
2006년 1월 21일 | 리야드 | 30px 그리스 | 1-1 | 친선경기 | ||||||
2006년 1월 25일 | 리야드 | 30px 핀란드 | 1-0 | 친선경기 | ||||||
2006년 3월 1일 | 서울 | 30px 앙골라 | 1-0 | 친선경기 | ||||||
2008년 2월 17일 | 충칭 | 30px 중국 | 3-2 (2득점) | 2008 동아시안 컵 | ||||||
2008년 5월 31일 | 서울 | 30px 요르단 | 2–2 | 2010 FIFA 월드컵 예선 | ||||||
2008년 6월 7일 | 암만 | 30px 요르단 | 1–0 | 2010 FIFA 월드컵 예선 | ||||||
2008년 11월 19일 | 리야드 | 30px 사우디 아라비아 | 2-0 |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예선 | ||||||
2009년 6월 6일 | 두바이 | 30px UAE | 2–0 |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예선 | ||||||
2009년 8월 12일 | 서울특별시 | 30px 파라과이 | 1-0 | 친선경기 | ||||||
2009년 9월 5일 | 서울특별시 | 30px 호주 | 3–1 | 친선경기 | ||||||
2010년 5월 24일 | 사이타마 | 30px 일본 | 2–0 | 친선경기 | ||||||
2010년 6월 23일 | 더반 | 30px 나이지리아 | 2–2 |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 ||||||
2011년 3월 25일 | 서울 | 온두라스 | 4–0 | 친선경기 | ||||||
2011년 6월 3일 | 서울특별시 | 30px 세르비아 | 2–1 | 친선경기 | ||||||
2011년 9월 2일 | 고양시 | 30px 레바논 | 6–0 (3득점) |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예선 | ||||||
2011년 9월 7일 | 쿠웨이트 | 30px 쿠웨이트 | 1–1 |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예선 | ||||||
2011년 10월 11일 | 수원시 | 30px UAE | 2–1 |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예선 | ||||||
2011년 11월 11일 | 두바이 | 30px UAE | 2–0 |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예선 | ||||||
2014년 3월 5일 | 아테네 | 30px 그리스 | 2–0 | 친선경기 |
6.2 K리그 기록
역대기록(K리그) | |||||||||||
시즌 | 팀 | 소속 리그 | 리그 | FA컵 | 리그컵 | ||||||
경기 | 골 | 도움 | 경기 | 골 | 도움 | 경기 | 골 | 도움 | |||
2005 | FC 서울 | K리그 클래식 | 19 | 12 | 3 | 2 | - | - | 11 | 6 | 1 |
2006 | 26 | 7 | 1 | 2 | 2 | - | 3 | 3 | - | ||
2007 | 11 | 2 | - | 1 | - | - | 3 | 3 | - | ||
2008 | 13 | 2 | 4 | - | - | - | 4 | - | - | ||
2015 | 23 | 7 | 2 | 1 | 2 | - | - | - | - |
6.3 해외리그 기록
역대기록(해외리그) | ||||||||||||||
시즌 | 팀 | 소속 리그 | 리그 | FA컵 [2] | 리그컵 [3] | UEFA 챔스리그 | ||||||||
경기 | 골 | 도움 | 경기 | 골 | 도움 | 경기 | 골 | 도움 | 경기 | 골 | 도움 | |||
08~09 | 모나코 | 리그앙 | 31 | 5 | 5 | 3 | - | 1 | 1 | - | - | - | ||
09~10 | 27 | 8 | 3 | 5 | 1 | - | 1 | - | - | |||||
10~11 | 33 | 12 | - | - | - | - | 2 | - | - | |||||
시즌 | 팀 | 소속 리그 | 리그 | FA컵 | 리그컵 [4] | UEFA 챔스리그 | ||||||||
경기 | 골 | 도움 | 경기 | 골 | 도움 | 경기 | 골 | 도움 | 경기 | 골 | 도움 | |||
11~12 | 아스날 |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 1 | - | - | 1 | - | - | 2 | 1 | - | 2 | - | - |
시즌 | 팀 | 소속 리그 | 리그 | FA컵 [5] | 리그컵 [6] | UEFA 챔스리그 | ||||||||
경기 | 골 | 도움 | 경기 | 골 | 도움 | 경기 | 골 | 도움 | 경기 | 골 | 도움 | |||
12~13 | 셀타 비고 | 프리메라 리가 | 22 | 3 | - | 4 | 1 | - | - | - | - | - | - | - |
시즌 | 팀 | 소속 리그 | 리그 | FA컵 | 리그컵 [7] | UEFA 챔스리그 | ||||||||
경기 | 골 | 도움 | 경기 | 골 | 도움 | 경기 | 골 | 도움 | 경기 | 골 | 도움 | |||
13~14 | 아스날 |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 - | - | - | 0 | 0 | - | 1 | - | - | - | - | - |
시즌 | 팀 | 소속 리그 | 리그 | FA컵 | 리그컵 [8] | UEFA 챔스리그 | ||||||||
경기 | 골 | 도움 | 경기 | 골 | 도움 | 경기 | 골 | 도움 | 경기 | 골 | 도움 | |||
13~14 | 왓포드 | 풋볼 리그 챔피언십 | 2 | - | - | - | - | - | 1 | - | - | - | - | - |
시즌 | 팀 | 소속 리그 | 리그 | FA컵 [9] | 리그컵 [10] | AFC 챔스리그 | ||||||||
경기 | 골 | 도움 | 경기 | 골 | 도움 | 경기 | 골 | 도움 | 경기 | 골 | 도움 | |||
14~15 | 알 샤바브 | 사우디 프로페셔널리그 | 7 | 1 | - | - | - | - | - | - | - | - | - | - |
7 수상 기록
- 청소년 대표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대회 득점왕 (2004)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대회 MVP (2004)
- 올림픽 대표팀
광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동메달 (2010)
런던 올림픽 축구 동메달 (2012)
- 국가대표팀
동아시안컵 득점왕 (2008)
- FC서울
프로축구 골든볼 골든슈 시상식 골든볼, 골든슈, 신인왕 (2005)
삼성 하우젠 K리그 대상 공격수부문 베스트11, 신인선수상 (2005)
올해의 프로축구대상 올해의 선수, 신인, 인기선수, 득점왕 (2005)
FA컵 우승 (2015)
8 잡담
기레기들이 무척 싫어하는 선수들 중 한 명이다. 박주영 관련 기사 써내는 걸 보면 전혀 그런거 같지 않지만 넘어가자 인터뷰 요청을 안 받아줘서 그렇다고 한다. 심지어는 셀타 비고 이적 후에도 저런 태도로 일관해서 결국 현지에서도 비난하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박주영의 인터뷰 거부에 대한 관련 글 ### 공식 인터뷰는 피한 적이 없으나 축구 선수에게 이런저런 기자와 언론의 사적 인터뷰 제의를 다 거절하면 공식 인터뷰라는 것이 몹시 드물기 때문에 프로 선수는 구단의 사업을 돕고 지지해주며 돈을 쓰는 팬들에 대한 의리상 인터뷰에 적극적이어야 할 의무까지는 아니어도 필요가 있다.
당연하지만, 포항팬들은 박주영을 매우 싫어한다. 2001년에는 포항이 브라질 유학을 전액 부담해서 보내주고 박주영의 모교였던 청구고에도 많은 지원을 해주었다. 이 때 브라질 유학을 보내주면서 포항은 박주영과 K리그 프로계약시 포항과 우선협상권을 갖는다는 합의를 맺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포항팬들은 우선협상권을 가지고 있어서 당연히 포항으로 올 줄 알았던 박주영이 FC 서울로 가버리자 분노. 이 우선협상권이란게 구속력이 없는 조항이어서[11] K리그 규정 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긴 한데 애초에 포항이 박주영 지원계약을 할때 5천만원을 선지불하면 우선협상권이 소멸한다는 규정을 넣었다. 물론, 포항은 그놈의 대승적 차원이라는 여론에 밀려 5천만원을 못 받았다.[12]
FC서울과 그다지 나쁜 감정은 없었던 포항 스틸러스는 박주영 이후 묘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 둘의 대결을 놓고 검빨더비라는 말이 생겼지만 포항팬들은 검빨더비라는 표현을 정말 싫어한다. 박태준 회장의 축구사랑으로 K리그 초창기부터 함께한 구단 중 유일하게 연고이전과 관련이 없었기에 특히나 자부심이 강하기 때문. 이후 최용수 감독과 황선홍 감독의 라이벌리, 최용수 감독의 후임으로 FC 서울의 감독이 된 황선홍 감독 등 양구단 사이에 흥미로운 스토리가 많이 생겨났다.
K리그 팬이 아니면 잘 모르던 사실인데 FM 제작사인 스포츠 인터랙티브에서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2006버전부터 포항 스틸러스의 싫어하는 인물에 박주영을 넣어놨다. 그것도 혐오도 90에 영구적으로 혐오 체크까지. 실은 한국 FM 평점 주는 것은 한국 사람이 한다. 그래서 이영표 선수가 싫어하는 선수에 이임생이 들어가 있을 정도. 하지만 주관적인 평가가 많이 개입되면 나중에 제작사에서 모든 데이터를 취합한 뒤 상식껏 조정을 한다고 한다.
풋볼 매니저에서의 능력치는 K리그 시절에는 유럽 주요 리그를 제외한 타 리그는 스카우터를 파견하지 않고 리그의 수준에 맞춰 랜덤 포텐[13]으로 대신하게 되어있는지라 선수의 능력치를 잘 표현을 못했으나 유럽리그인 AS 모나코 이적 이후에는 활약에 맞추어 능력치가 개편되었다. 개편이후 2010까지 밸런스는 양발은 유지한체 포워드의 능력치는 전체적으로 좋아졌으나 그에 맞춰 구단 내의 위상이 핵심 선수로 변경됨에 따라 초기 시작 시기에 영입을 타진하려면 400억 이상의 영입료를 지불해야 한다. 2011버전에 또다시 개편되어 양발 사용이 오른발 사용으로 바뀌면서 그에 비례해 전체적인 능력치가 올라갔다. 하지만 아스날에 가면서 제대로 출전하지 못한 탓인지, 2012에서는 골결정력이 11로 내려가는 등 폭풍 하향을 먹었다. 2013에도 골결정력이 또 10으로 내려갔으나 아스날 시절 퍼스트 터치도 못해서 키핑은커녕 마지못한 백패스만 주고 받은 선수치고는 AS 모나코 시절의 능력치가 아직까지 높게 평가되는지 신체적 능력, 퍼스트 터치 [14] , 정신적 능력은 그리 너프 되지 않아 감독의 전술적 역량에 따라서는 다득점을 노릴 수 있었으나 최신작인 FM2015에서는 월드컵의 엄청난 활약과 아스날의 강제 방출 및 무적기간 덕분에 전작의 유럽 하부리그 준주전급 선수에서 유망주급 능력치로 변경되어 엄청난 너프를 먹었다.## .
위의 계약파동을 계기로 수도권 팀들의 유스 빼오기에 지방구단들이 폭발하면서 K리그에 드래프트 제도가 다시 도입되고 만다. 어떻게 보면 K리그를 역행시키는데 한 몫 한 셈. 그리고 포항 유스팀 중 하나였던 청구고는 김동현 사건에 이어 박주영 사건이 터짐으로써 완전히 찍혀버리는 바람에 포항 유스팀 자격 박탈, 그 뒤로 변변찮은 고교팀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 사건은 10년 가까이 흐른 후 포항 유스가 키운 유망주 황희찬이 구단의 우선지명을 무시하고 FC 레드불 잘츠부르크와 계약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다시 회자되게 된다. 그냥 회자만 되면 좋았을 것을 박주영 팬들이 '박주영은 통수 아니다! 황희찬보단 낫다!' 이러면서 해묵은 쉴드를 시전하는 바람에 사우디에서 잠자던 박주영이 다시 해묵은 욕을 먹고 있다. 안 먹을 욕이라기엔 자기가 한 일이고 이제까지 그 흔한 사과나 유감 한 마디 없어서 욕 먹는 건데 뭐.... 이미 단기적 임팩트로는 황희찬이 박주영을 앞질렀다는 평가도 있다.
고려대 졸업 당시 서울 동북고등학교에 교생실습을 나간 적이 있다. 당시 동북고등학교 학생들이 축구하고 있었는데, 박주영이 나와서 학생들 공을 뺏고 드리볼 하던 도중, 학생들에게 공을 빼앗기고 마는데... 당황한 박주영은 다시 공을 빼앗아 중거리 슛을 날려 골을 넣었다는 일화가 있다.
2004년 청소년 대표팀에 소집되었으나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정기전 출장으로 이탈, 언론에서 뭇매를 때렸고 연대 학생들은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고 벼르고 있었으나...연세대와의 정기전에서 연세대 수비진을 완전히 농락, 고대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그것을 본 고려대 학생들은 다음 해 고연전 축구를 매우 기대했지만 정작 결과는 무승부. 그것도 끝나기 5분여 전 극적인 동점골을 내주며 무승부를 맞이했다.
모나코의 구단주이자 모나코 공국의 공작 알베르 2세에게 초청장을 받은적이 있다고 한다. 모나코에서도 프리킥 연습을 빠지지 않고 하고 있다고 하는데 문제는 감독이 프리킥 찰 기회를 안준다. 모나코TV에서 니마니와 친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근데 니마니는 박주영에게 패스를 안 한다. 니마니는 결국 박주영과의 주전경쟁에서 패해 프리미어 리그 번리로 임대갔다.
잘 안 알려져 있지만 패션테러리스트다. 꼭 유니폼 팔 사이즈를 조금 크게 입어서 소매가 손을 덮고 있다. 소매로 손등 덮기는 어지간히 캐주얼한 옷을 입지 않는 이상 여자가 해도 드물게나마 지탄받을 수 있는 패션이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라서 골을 넣으면 항상 기도 세레머니를 하는데 이에 대해서 많은 말이 있다. 하지만 팀동료들은 별로 신경쓰는 것 같지 않다. 리그앙 시절, 스타드 렌과의 리그경기에서 골을 터뜨리고 세레머니를 할때 오히려 동료들이 장난을 치는걸 보면 그들도 즐기는 듯. 여담이지만 루니의 슬라이딩 세레머니에선 아무말도 없다가 박주영의 세레머니에선 무릎다친다고 까는 해축팬들도 간혹 있다. 본인은 안정감을 준다고 한다. 하지만 세레모니하다가 부상 당하는 선수들도 있기 때문에 팬들에게는 괜히 애먼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줬는데...2010년 12월 25일,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이를 두고 동료들이 위에서 눌러서 생긴 일에 불과하다는 주장과, 정작 깔려서 심각한 무릎 부상이라더니 아시안컵 엔트리가 발표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귀신같이 훈련에 복귀하는 모습이 대립하며 더더욱 구설수에 올랐다. 그러나 경기 출전은 아시안컵이 끝나고 1주정도 지나고 출전을 할 수가 있었다. 어쨌든 박주영은 이날 이 때까지 아시안컵에 한번도 출전하지 못했고, 덕분에 병역면제가 있는 아시안 게임 올림픽은 꼬박꼬박 나가도 병역면제가 없는 아시안컵 따위는 나가지 않는다'이라는 비꼼을 들었다. 실제로 박주영의 기나긴 축구력 중 기도 세리머니하다 부상을 입은 경우는 단 한 번뿐이다. 저 때 이후로 옛날의 과감한 기도 세리머니가 사라졌긴 한데, 개신교 인구가 많은 한국 특성상 k리그에서도 기도 세리머니 하는 사람이 많은데 부상 입었다는 소식은 아직까지 들리지 않는다.
2006~2008년 사이에, 너구리알이라는 사람이 박주영키우기 게임을 제작하였다. 하지만 관계자의 요청에 의해 현재는 모든 자료가 소실된 상태. 군복무 중 다른 게임으로 고소크리 맞고 그때까지 자신이 만든 게임을 전부 삭제했다. 덕분에 영창도 다녀왔다. 참고로 고소한 사람은 엔하위키 시절 작성금지 되었다가 나무위키 에서는 해금이 되었다.
2010년 인천과 AS 모나코(프랑스)와 친선 경기에서 출전 수당으로 거액을 요구해 관계자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경기를 진행했던 관계자는 "이날 박주영이 늦게 경기장에 나선 이유도 출전수당을 협상하는 과정이 경기 중까지 계속됐기 때문이다"며 "금액을 계속 올려 진땀을 뺐다"고 전했다. 박주영은 당시 부상을 이유로 후반전에 교체투입됐다.# 후에 김현회와 김태륭 해설위원의 싸움에서 진상이 밝혀졌다. 박주영은 통수치지 않았다는게 사실. 김태륭 해설위원 페이스북 참조#김태륭 해설위원 페이스북 사진1 #김태륭 해설위원 페이스북 사진2
2011년 6월 12일에 한살 연상의 모교 선배와 결혼. 가까운 사람들만 참석한 비공개 결혼식을 올렸다. 사회자는 이휘재, 축가는 김태우. 가나전 이후에는 선수들이 여러모로 축하(?)해줬다. 결혼축하 헹가레 받고 내동댕이 쳐져도 웃는다. 백호에게서 음료수 세례도 받았다.
아스널 이적 당시 이적료가 공개되지 않아 이적료 추정금액의 오차가 상당했다. 2011년 10월 알려진 이적료는 350만 유로였다.참고 그러나 박주영이 병역을 해결한 이후 350+300으로 650만 유로를 내게 되었다. 참고
용품 스폰서를 자주 옮기는 편이다. 나이키, 아디다스, 미즈노와 계약을 맺었지만 대부분 계약기간을 채우지 않고 금전적 지원이 더 많은 곳으로 옮기는 것을 반복하다 2012년 병역논란으로 스폰서에게 퇴짜를 맞은 상태...같은 소리는 하지말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축구화 등을 공급하고 있는 미즈노사 촬영이었다. 미즈노는 지난 해부터 박주영을 후원하고 있었으나 정식 계약을 맺지는 않았다. 병역 문제가 이슈로 불거지자 박주영 측이 먼저 "계약을 미루자"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참고 사진 그러다가 2016시즌부터 언더아머의 지원을 받기 시작한다!
2012년 즈음부터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탓에 까들의 활동이 부쩍 늘었다. 본진이라 할 수 있는 다음 해축게에서 공개적으로 타 사이트 공대를 모집하고 있을 정도.참고. 이런 무개념 박까들의 난입으로 개소문닷컴의 청정지대(?)[15] 중 한 곳이었던 축구 게시판이 이미 큰 피해를 입었다.
박주영이 병역 논란 당시 귀국 후 최강희 감독의 기자회견 제의를 거절하고 최강희 감독은 물론 축협 등의 모든 연락을 거부하며 잠수 탔을 때 이를 비꼬는 사람들이 투명하다, 사라졌다, 보이지 않는다며 비꼴 때 사용되는 인터넷 은어 종범 대신 이제 대세는 주영이라며 대체하려고 했다. 은어로 쓰이는 종범 자체가 워낙 광범위하게 퍼진 말이라 대체되진 않았지만 그 후에도 이따금씩 사용례가 발견되곤 한다. 그런데 종범이 지역감정 문제로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것도 있고 은퇴하면서 존재감이 낮아진 반면 박주영은 아스널서 절정을 찍고 있기에 주영의 점유율이 치솟는 중.
2014 브라질 월드컵 전 소속팀 아스날 FC에서 방출당하며 소속팀이 없어졌는데, 대한축구협회에선 박주영의 소속팀을 아스날로 정하였다. 그러나 6월 6일 FIFA의 공식 지정으로는 왓포드 FC로 표기하였고, 순순히 받아들이는가 했는데 정작 월드컵 선수 소개에서는 아스날 선수로 표기되어있다. 반면 지동원은 도르트문트가 아닌 아우크스브르크로 지정을 따르며 그의 아스날 사랑을 보여줬다. 외신에서는 월드컵에서의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의 부진한 성적과 함께 '아스날 맨' 이라 불리며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여담으로 박주영이 거쳐간 셀타 비고와 왓포드는 모두 상승세를 타고 있다.
2000년대 중반 박주영을 주인공으로한 육성 시뮬레이션 플래시 게임인 '축구왕 박주영'이 있었다. 박주영을 키워 프로선수로 만드는 게 목적이고 중간 중간 '불멸의 이순신' 플래시 게임이 들어가있었지만 축구협회측에서 합의한 초상권 협의 종료로 결국 사라졌다. 관련 사진
SNS는 일절 하지 않다가 2016년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하였다. 그런데 계정을 파자마자 논란에 휩싸였다. 광주 FC로 이적한 정조국과 농담따먹기를 하며 돌 찾으러 갔냐는 말을 하는가 하면, 상주 상무로 입대하는 후배 박희성의 사진을 올리며 비웃고 외모를 조롱하는 포스팅으로 크게 논란이 되었다. 3월엔 태국으로 이적한 김진규가 그립다는 최용수 감독의 인터뷰를 올려놓고 ㅋㅋ를 연타하고, '푸하하', '짝사랑' '뭥미', '뜬금포' 등의 해시태그를 덧붙이면서 마치 감독의 인터뷰를 디스하는 듯한 뉘앙스를 남겼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안티들이 논란을 만든거고 당사자들끼린 잘 지낸다. 최용수 감독과는 10번 가지고 농담 주고받고 15시즌 중반 최 감독이 중국 장쑤의 오퍼를 받자 가지 말라고 메시지를 보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고 FC 서울 동료들과도 친분이 깊다. 전북의 심판매수로 흉흉하던 시절 여유롭게 동료들과 야유회 나온 사진을 올려서 서울 팬들 사이에서 소소하게 화제가 된 바 있다.
9 별명
인지도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엄청 까이는 인물이다 보니 별명이 무식하게 많다. 어쨌거나 유명인인 그가 비범한 행보를 밟을 때마다 그를 기리고 아끼는 뜻에서 많은 사람들이 별명을 붙여줬기 때문에 별명을 둘러보면 대충 그의 행보를 알 수 있다.
- JYP : 원래 영문 표기는 Chu-Young Park 이었으나, 모나코 이적 후 마킹을 J. Y. PARK으로 달기로 하면서 진짜 JYP가 되었다.
- 관중영: 경기에 계속 나가지 못해서 관중이나 다름없는 신세라 관중+(박주)영.
- 겨유득 : 겨레의 유일한 득점 루트. 2012년 셀타 임대 당시 걸렸던 박주영 팬카페의 메인화면. #
- 공원 : 세 별명 모두 앞의 영박으로 인해 생긴 별명.
- 도주영 : 이 별명은 도주영 30년 축구 인생의 모토에 대한 압축적 표현이다. 행위의 결과는 이미 주체 안에 내재되어 있었다는 일부 철학 학파의 시선으로 볼 때 도주영 별명 석 자는 포항에서 서울로 달아날 때부터 예고되었다, 이후 모나코에서 릴로 이적하려다 벵거의 전화를 받고 아스날로 이적하며 도주영 3글자는 거의 수면 가까이까지 부상하였으나, 축구선수의 전격적 이적은 왕왕 있어온 일이라 현실화되기에는 아직 충분치 못하였다. 그러나 최강희 감독의 부름은 시종 무시하면서도 홍명보 감독의 부름은 덜컥 받아들여 병역에서마저 성공적으로 도주하는 기이한 솜씨가 아니고서야 도주영 세 글자 별명은 성공적으로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후에도 박주영은 표홀히 아스날, 왓포드, 알 샤밥 등지를 방랑하며 주급만은 쏙쏙 챙겨먹는 솜씨로 도주영 세 글자 이름을 드높였다.
- 동팡주영 : 비슷한 맥락에서 한 때 맨유에 존재하기만 했던 중국인 공격수 동팡저우에 빗대.
- 따봉박 또는 박따봉 또는 꿀엄지 : 유래는 너무도 명확하다.
- 따봉충(-蟲)[16]
- 모나코왕자 : 병역기피 시도가 대중에게 알려진 후의 별명인지 아닌지 불분명.
- 모나코인, 모나코박 : 병역기피 시도 후에 한국 브라운관에 자주 비치기는 하는데, 한국 스포츠계 초유의 국적미상 상태의 선수라 이 선수의 국적이 도대체 어디인지 논란이 분분했던 가운데 일부 인물들은 그가 모나코인이라고 여겼던 듯하다.
- 무슈 팍 : 만약 그가 모나코인이라면 마땅히 프랑스어를 사용해서 불러야 하기 때문에, 프랑스의 남성 호칭인 무슈를 활용하였다.
- 무적의 스트라이커 : 말 그대로 무적의 스트라이커였기 때문에.
- 박시탈 : 런던올림픽에서 일본 상대로 선제골을 터트려서 얻은 별명
- 밥꼼수: 병역과 관련해서 일반인들은 듣도 보도 못한 온갖 법조항 사이를 누비는 모습을 보고 붙은 비아냥. '밥'은 박주영의 다른 별명인 '밥줘영'에서 유래.
- 박나모토 : 아스날에 잠시 소속되었던 일본 축구선수 이나모토와 같다 하여. 이나모토는 아스날이 경제적 목적으로 영입한 후 출전시키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 박주여
- 밥줘영: 박주영의 이름을 비슷한 발음으로 웃기게 비튼 것.[17] 줄여서 '밥줘'라고도 한다. 깔 때 쓰기도 하지만 장난스런 애칭으로 쓰는 사람도 있다. 알샤밥으로 이적하며 알샤밥줘영, 알샤밥줘, 알밥샤줘영 등의 바리에이션이 생겼다. 그러나 알 샤밥 시절에서 별다른 임팩트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바람에 알샤밥줘영 등은 조용히 묻혔다.
- 박코치 : AS 모나코 시절 한창 폼이 좋았을 당시 팀 공격진 중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생긴 별명. 축구를 배우러 갔는데 오히려 가르친다고.
- 박힐러, 프리스트 박 : 박주영이 아스날을 떠난 이후 몇몇 선수가 박주영 아스날 재직시에는 건강했으나 그 전후에는 부상에 시달리던 선수인 것이 발견, 박주영의 존재가치를 새롭게 발견한 팬들이 환호하며 찬양하기 위해 붙인 별명. 사실 박주영은 벤치에서 힐과 버프를 주며 선수들을 회복시키는 역할로 기용한 벵거의 혜안이었음이 밝혀졌다. 무엇보다 박주영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종교적인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며 성공한 별명.
- 박XX : 일부 입이 거친 사람들이 지나친 비속어를 사용하여 이렇게 잠시잠깐 불렀다. 당연히 평소에는 한국 축구에 관심 없고 앞으로도 없을 월드컵 냄비들이다. 왜냐면 2014년 발효된 별명인데 그 전까지의 행보를 고려해 볼 때 월드컵에서 똥 쌀 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고 병역기피 등등의 행적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사실 어찌 보면 일반명사에 가까운 비속어들로 특정인물을 호칭하기에는 대한민국에 박씨가 너무 많다.
- 버블팍 : 아스날 입단 후 여러모로 거품(버블)에 가까운 모습이 보여지며 붙은 별명. 발음 자체는 현아의 히트곡인 버블팝의 패러디이다. 기사 댓글에서 주로 버블버블 팍팍 하면서 조롱할 때 자주 쓰였다. 곡의 연차가 오래되고 박주영의 거품도 꺼지면서 점차 생명력을 잃었다.
- 봉와주영 : 소위 황제훈련 도중 봉와직염을 앓으면서 유래했다. 많은 남성들이 군대 시절 행군과 함께 접하게 되는 병명이다. 대부분의 남성은 군생활 도중 행군경험이 있으므로 약간의 위생관리만으로도 발병을 억제 가능함이 널리 알려진 바이며, 주로 더럽고 게으른 고참이나 게으르진 않지만 바짝 쫄아붙어 있는 이등병들이 자주 걸리며 모두의 골머리를 썩게 하는 병으로 유명하다. 친숙하면서도 동시에 짜증스러운 주제였기 때문에 수많은 네티즌들은 프로 축구선수의 위생관리에 대한 의문과 함께 위생상태 불량에 관한 혐오감을 표시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애초에 더러운 질병이라 생명력이 길 수 없는 별명으로 잠시잠깐 반짝했다.
- 벤치영: 경기에 계속 나가지 못해서 벤치에 앉아 있는 신세라 벤치+(박주)영.
- 사우디박 : 사우디 시절 종종 사용되던 별명.
- 선례왕(先例王) : 합법적 병역 연기 및 면제는 물론 포항에서 서울로의 도주 등 박주영 인생 전반을 걸친 선구자적 면모가 일반인들에게는 상상의 영역조차 초월한 바, 박주영에게는 감히 왕의 칭호가 어울리다고 뭇사람들이 기림과 함께 얻은 영예로운 별명. 인간 박주영의 생애 전반에 대한 깊고 날카로운 통찰이 빛난다.
- 스텔스박 : 남아공 월드컵에서 공격수인데 마치 스텔스기와 같이 적의 시야에 잡히지 않았다. 엄지를 들어올릴 때 빼곤 아군의 시야에도 잘 잡히지 않았던 것은 덤.
- 스티붕밥(박): 모나코 장기 체류를 통한 병역 연기한 모습이 같은 예체능계에 종사하던 00년대 가요계의 전설적 댄스 가수 스티브 유와 같다 하여 그의 별명 '스티붕 유'에서 성을 따와 사용되었다.
- 승부사 : 2010년 국가대표 훈련시 한 동영상에서 "야 형 승부사야 임마" 하면서 코너킥 위치에서 골대 안으로 공을 집어넣은 것에서 유래. # 이후 인생의 분수령이나 갈림길마다 귀신같은 결단력을 보여주면서 재조명. 골결정력과는 전혀 관계 없음.
- 썬더 : 남아공 월드컵 때의 아디다스 광고문구 '모든 팀에는 썬더가 필요하다'에서 유래. #
물론 비꼬는 의미이다.박썬더 벤치썬더 등으로 응용된다. - 액받이 무녀: 출처.
- 여왕벌 : 기성용, 구자철 등이 포함된 소위 말하는 런던 올림픽 파의 수장이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런던파는 런던파라고 추정되는 축구인들을 비롯해 많은 축구인과 일부 기자들에게 극구 부인되고 있다. 다만 몇몇 선수들로부터 의도적으로 암시되기도 했다. 사실 원래 우리나라 파벌은 조폭도 경찰이 구분하기 쉽게 이름 붙여주는 거지 지들끼리는 무슨무슨 파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축구인들이 사회 상식에는 조금 약한 것을 잘 보여준다.
- 영박 : 아스널 홈페이지에서 박주영의 성명을 영박으로 표기하는 바람에 생긴 별명.주 영박
- 일류 : 브라질 월드컵 종료 당시 힘들 때 웃는 게 일류라는 이상민의 발언이 그의 과거 행적과 대비되며 비꼬는 의미로 이너넷에서 한창 유행하고 있었다. 때마침 벨기에전이 종료된 후 손흥민이 울고 있는데 박주영은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의 사진에서 유래하였다. 이후 귀국 사진에서도 비교적 여유로운 모습의 사진들이 찍히며 잠깐 유행했다.
- 주님영 : 주멘보다는 좀 비꼬는 성향 이 덜하지만 어쨌든 종교색을 강하게 드러내는 박주영의 행태를 눈꼴시게 보는 일부 인물들이 이렇게 부른다.
- 주님요 : (기도 세리머니→)주님 + 브라질 축구스타 주닝요 패러디. 당연히 이 별명은 비꼬는 맥락에서나 쓰이며, 주님영보다 귀염성이 덜하다.
- 주멘: 주님 또는 박주영 + 아멘[18]
- 주영신(갓주영) : 비꼬는 의미로 더욱 많이 쓰이나 가끔 가다 현실이 되기도 한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결승전 한 골을 넣고 잠시 이런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가끔이라기에도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결승전 딱 한 순간뿐이고 그 이후에는 없다. 가금은 가끔인데 가끔이 너무 가끔이야. 그리고 사실 한일전 그것도 청대에서 한골 넣었다고 갓주영이면 역대 한일전 최다득점자인 최정민은 옥황상제인가?
- 주젊공, 공원, 젊은 공원 : 구글 번역기로 번역하면 박주영의 박이 공원으로 영이 젊다로 해석되어 주 젊은 공원이라는 해괴한 이름이 나오는데 이를 줄인것. 박지성의 센트럴 파크도 괜히 나온 별명이 아니다. #
- 쪼꼬형 : SNS에 부인이 준 발렌타인 초콜릿을 인증하면서 쪼꼬라고 하는 바람에 쪼꼬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제는 FC서울 공식 인스타그램에서도 박주영을 쪼꼬형이라고 부른다...
- 토템박, 토템풋볼 : 아스날 시절 시작된 별명이다. 신비적, 주술적 요소를 듬뿍 함유하고 있는 별명으로 박힐러, 프리스트 박 등과 그 얼개를 함께 한다.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추태로 인해 더욱 널리 알려졌다. 주로 퐈이야와 짝지어 불린다.[19] 이들 둘은 필드에 서 있을 때는 무용지물이지만 벤치에 앉고 나서야 마치 옥침대와 같이 이로운 영향력을 은은하게 발휘한다는 취지의 별명이다.
- 합법줘: 합법적으로 병역을 연기했다며 비꼬는 의미에서 나온 별명. '줘'는 다른 별명 '밥줘영'에서 유래. 한국프로야구를 통해 이미 정착돼 있던 합법드립에다가 '밥줘영'을 결합했다. 물론 원래의 합법드립은 진짜 합법인 건 아닌데 오해해서 비꼰 것이 정착된 것이지만, 박주영의 병역 연기는 어쨌든 합법이라는 점에서는 다르다.
- 힐러 : 힐에 능하다.
타인이 아니라 자신의 멘탈 한정으로 - 재평가행 : 브라질올림픽 축구가 끝나고 4년전에 런던에서 박시탈강림으로 동메달에 큰업적을 남긴 박주영을 그리워하며 다시 국대로 부르자 는 재평가가 압도적으로 많아지면서 생기게 됀별명. 덧붙여 손흥민의 저평가도 꼭따라온다.
10 같이 보기
FC 서울 2017 시즌 스쿼드 | |||||||
등번호 | 이름 | 포지션 | 국적 | 생년월일 | 비고 | ||
1 | 유현 | GK | 30px | 1984년 8월 1일 | |||
2 | 황현수 | DF | 30px | 1995년 7월 22일 | |||
3 | 심우연 | DF | 30px | 1985년 04월 03일 | |||
4 | 김동우 | DF | 30px | 1988년 2월 5일 | |||
5 | 오스마르 | MF | 30px | 1988년 6월 5일 | |||
6 | 주세종 | MF | 30px | 1990년 10월 30일 | |||
7 | 김치우 | DF | 30px | 1983년 11월 11일 | |||
8 | 이상호 | MF | 30px | 1987년 5월 9일 | |||
9 | 데얀 | FW | 30px | 1981년 7월 27일 | |||
10 | 박주영 | FW | 30px | 1985년 7월 10일 | 부주장 | ||
11 | 윤일록 | FW | 30px | 1992년 3월 7일 | |||
13 | 고요한 | MF | 30px | 1988년 3월 10일 | |||
14 | 조찬호 | MF | 30px | 1986년 4월 10일 | |||
15 | 김원식 | MF | 30px | 1991년 11월 5일 | |||
16 | 하대성 | MF | 30px | 1985년 3월 2일 | |||
17 | 신광훈 | DF | 30px | 1987년 3월 18일 | |||
19 | 심상민 | DF | 30px | 1993년 5월 21일 | |||
20 | 정인환 | DF | 30px | 1986년 12월 15일 | |||
21 | 양한빈 | GK | 30px | 1991년 8월 30일 | |||
22 | 윤승원 | MF | 30px | 1995년 2월 11일 | |||
23 | 이석현 | MF | 30px | 1990년 6월 13일 | |||
25 | 전호준 | DF | 30px | 1994년 2월 3일 | |||
26 | 김주영 | MF | 30px | 1997년 5월 5일 | |||
27 | 김정환 | FW | 30px | 1997년 1월 4일 | |||
29 | 황기욱 | MF | 30px | 1996년 6월 10일 | |||
30 | 김철호 | GK | 30px | 1995년 10월 25일 | |||
31 | 손무빈 | GK | 30px | 1998년 5월 23일 | |||
32 | 김한길 | MF | 30px | 1995년 6월 21일 | |||
33 | 박민규 | DF | 30px | 1995년 8월 10일 | |||
34 | 마우링요 | FW | 30px | 1989년 12월 10일 | |||
35 | 임민혁 | MF | 30px | 1997년 3월 5일 | |||
36 | 박성민 | FW | 30px | 1998년 12월 2일 | |||
38 | 김근환 | DF | 30px | 1986년 8월 12일 | |||
40 | 김원균 | DF | 30px | 1992년 5월 1일 | |||
43 | 윤종규 | MF | 30px | 1998년 3월 20일 | |||
45 | 신성재 | MF | 30px | 1997년 1월 27일 | |||
55 | 곽태휘 | DF | 30px | 1981년 7월 8일 | width=30&align=center | ||
88 | 이규로 | DF | 30px | 1988년 8월 20일 |
- ↑ 리그베다 시절 어떻게 보면 대단치 않은 걸로 수정논쟁이 좀 벌어졌는데, 천재라 불린 인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물이라는 평을 둘러싸고 아직 커리어가 남았기 때문에 성급하고, 현재로서는이라던가 아직까지는 등의 단서를 붙여야 한다는 주장과 그냥 살아남았다는 서술로 끝내야 한다는 주장이 붙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어쨌든 경력이나 인생의 평가는 다 끝나기 전까지는 분명 섣부른 측면이 있는 것이다.
- ↑ 쿠프 드 프랑스
- ↑ 쿠프 드 라 리그
- ↑ 캐피탈 원 컵
- ↑ 코파 델 레이
- ↑ 수페르 코파 데 에스파냐
- ↑ 캐피탈 원 컵
- ↑ 캐피탈 원 컵
- ↑ 사우디 크라운 프린스 컵
- ↑ 사우디 챔피언스 컵
- ↑ 참고
- ↑ FC서울이 5천만원을 대신 내줬다는 소리도 있다. 사실 줬어도 계약상 문제인건 맞다. 계약서에는 분명히 선지불 후우선협상권소멸이었다. 근데 박주영은 포항과 한마디의 상의도 없이 서울과 계약했기에 그 당시 상황은 명백한 후지불 상황이다.
- ↑ 첫 등장인 06버전에서 -9포텐, 07에서는 -8포텐
- ↑ 정식 발매판에서는 볼 트래핑
- ↑ 사실 여기도 파고들어 보면 문제가 많은 곳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서로간에 심한 욕은 안하는 분위기가 정착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럭저럭 청정지대 소리는 들을 수 있을지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개소문닷컴에는 이것도 안 되는 지대가 많다
- ↑ 이 말은 페이스북 유저 비하 표현이기도 하다. 페이스북의 추천 버튼인 '좋아요'(영어로는 'Like') 버튼에 그려진 아이콘이 엄지를 치켜드는 것(따봉)이기 때문.
- ↑ 사실 이는 상상플러스에서 네티즌 별명중 '축구스타 밥줘영'에서 나온것이다.
- ↑ 또 다른 뜻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때 주영 또는 주멘으로도 불린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라는 뜻으로도 쓰이며 야구의 종범과 비슷한 의미.
- ↑ 월드컵에서의 정성룡은 좀 억울한 바가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