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런 부슈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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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Nolan Bushnell
1943년 2월 5일 ~

아타리의 창업자이자 비디오 게임 산업의 아버지.

2 상세

유타 대학 전기공학과 학생시절에 MIT의 학생들이 만든 스페이스 워라는 게임을 보고 게임산업에 흥미를 가지게 되어, 학업을 때려치고 집의 차고에서 스페이스 워를 바탕으로 한 첫번째 아케이드 게임기를 제작, 2500대를 판매하고 3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제작비보다 판매량이 적어 손해 봤다. 그 게임의 이름은 Computer Space(컴퓨터 스페이스).

첫번째 게임기가 손해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게임 산업의 전망을 밝게 본 놀런은 1972년에 단돈 500달러의 자본으로 아타리를 설립, 본격적인 게임기와 소프트웨어 개발에 뛰어들었다. 특히 버클리 공대 출신의 알 알콘을 고용한 놀런은 알 알콘이 개발한 을 판매, 게임기를 설치한 가게 주인들은 엄청난 동전이 게임기에 쌓여 기계가 작동을 멈추자 고장난 줄 알고 아타리에 전화질을 해대거나 엄청난 무게의 동전을 들고 은행으로 희희락락 쳐들어간 등 크게 성공했다.[1]

당시 미국의 발명가 랠프 베어가 1972년에 출시한 첫번째 비디오 게임기 마그나복스 오디세이를 만들며 비디오 게임에 대한 특허를 갖고 있었고, 그 사이에는 과 유사한 게임도 있기 때문에 소송이 제기 되었으나, 놀런은 그 특허를 70만 달러에 사들였다. 게임기 열풍은 서핑보드 열풍처럼 나중에는 시들 거라 생각했고, 미래에는 게임이 장사가 안 될 거라 판단한 베어는 그 돈을 받고 찌그러졌지만 이후 비디오 게임 산업은 대규모로 늘어났다...[2]

1976년에 퐁의 성공에 눈독을 들인 워너에서 놀런 부슈널에게 접근하여 아타리의 매각을 교섭하였고, 신형 게임기 아타리 2600의 판매를 위해 부슈널은 500달러로 시작된 회사를 2700만 달러에 매각했다. 하지만 아타리 2600의 초기 판매부진과 워너측 경영진과의 마찰로 부슈널은 결국 아타리를 떠났고, 게임산업에 대한 이해 없이 아타리를 운영한 워너에서는 결국 허접소프트를 난발하다가 1983년에 아타리 쇼크를 일으켰다.

놀런 부슈널이 아직 아타리의 경영에 참여 하고 있었을 무렵, 그가 큰 돈을 버는 것을 본 많은 컴퓨터/전자관련 인재들이 아타리에 입사하거나 아타리와 협력하여 일을 하게 됐고, 이 사이에는 나중에 애플을 만든 스티브 잡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실제로 잡스는 친구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브레이크아웃'의 기판을 개선하는 일에 성공하여 나중에 애플 컴퓨터 제작의 기초를 닦았다.[3]

이후 부슈널은 아타리 매각 자금으로 게임 광고 회사인 <네오넷지>을 설립 하고 게임계의 원로 대접을 받으며 가끔 강연회를 하는 등 여유 있는 삶을 누리고 있다.

최근에는 소니PS3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가 까인 적도 있고, 고령화사회에 발맞춰서 노인들을 위한 게임기와 소프트웨어가 개발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고...[4]
  1. 이후에 스페이스 인베이더에서도 있어났다고 한다.
  2. 베어는 에 대해 일정부분 로열티도 받아서 잘먹고 잘 살았다고..
  3. 우리가 흔히 알카노이드로 알고 있는 블럭깨기 게임. 그러나 사실 일은 거의 워즈니악이 다한데다가, 잡스가 워즈니악을 속이고 부슈널에게 받은 자금의 대부분을 착복하고 워즈니악에게 푼돈만 줬다. 워즈니악 호구 전설은 이미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여담이지만 워즈니악의 설계가 도에 지나치게 고차원적이어서 생산공장에서 생산을 거부했기 때문에 결국 다른 엔지니어의 설계대로 나갔다는 후일담이..
  4. 결국 그걸 해낸 회사가 있으니 그게 바로 닌텐도이다. 애초에 이 회사는 모든 연령대를 노리고 게임을 만드는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