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워즈니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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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DC2013을 참관중인 스티브 워즈니악[1]


2013년. 거대하다. 마라도나 그라가스?

2012060402012122734001.jpg 2012년 5월 31일 제주도에서 개최한 제주포럼에 참석한 후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돌하르방을 기증하는 장면
왠지 닮았다

1 개요

Stephen Gary Woz Wozniak[2]

공식 사이트

20세기 컴퓨터 시대를 연 인물 중 하나

애플의 공동 창업자. 1950년 8월 11일 생. 20세기 본격적인 PC(Personal Computer)의 시작을 연 사람.이자 컴퓨터 산업 태동기의 대표적 호구 줄여서 워즈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실상 애플 시리즈를 혼자서 만든 괴수. 애플 컴퓨터를 개발하면서 특허도 몇 개 따 놨는데, 그중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US Patent No. 4,136,359 - "Microcomputer for use with video display" 로 바로 모니터가 달린 컴퓨터이다. 즉 이 양반이 없었으면 모니터 달린 컴퓨터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혹은 지금보다 늦거나 다른 방향으로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다.

2 생애

록히드 사에서 미사일을 개발하던 아버지 아래에서 자랐는데, 아버지의 작업물에 대한 내용은 어떠한 것도 들을 수 없었지만 아버지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아 어려서부터 공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3], 대학 중퇴한 스티브 잡스빌 게이츠와 마찬가지로 명문 UC 버클리에서 1년만에 중퇴하고 휴렛패커드(이하 HP)에 입사했다. 주로 했던 작업은 계산기 분야.

이 시기 가장 큰 전환점은 고등학교 후배이자 친구에게 장난치기를 좋아하고 전자회로에 관심이 많은 비상한 고등학교 후배를 소개받게 된 것이다. 잡스가 워즈니악의 고등학교의 친구라고 자주 언론에 나오는데 실제로 잡스는 워즈니악보다 5살 어리다. 스티브 잡스를 소개해준 이 친구는 Bill Fernandez로 훗날 애플 컴퓨터 최초의 직원이 된다. 잡스와 워즈니악의 무용담은 아래에서 확인할 것.

고등학교 때부터 전자회로와 계산기에 관심이 많던 워즈니악은 컴퓨터 동호회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고, 잡스 역시 이 동호회에서 활동했다. 1977년 워즈니악은 구형 텔레비전에 연결된 조잡한 회로를 동호회 친구들에게 보여주게 된다. 오랜만에 이 동호회에 나타난 스티브 잡스는 이 물건이 장사가 될거라 생각하고 워즈니악에게 같이 회사를 차리자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워즈니악에게는 이미 HP라는 걸출한 직장이 있었고 여건만 된다면 HP에 PC 부서를 두는 것이 어떻냐고 상사에게 제안하는 중이었기에 선뜻 긍정을 못했지만, 잡스는 자신이 알고있는 모든 인맥을 총동원해서 매일같이 워즈니악과 그의 친구들에게 " HP는 워즈니악같은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없으니 차라리 워즈니악이 HP를 그만두고 새 회사를 차려 사업은 사업가에게, 개발은 개발자에게 맡기는게 낫다"라고 설득했다. HP에서 워즈니악의 개인용 컴퓨터 사업 제안을 여러차례 거절하자, 결국 HP를 그만두고 잡스와 동업하여 애플 컴퓨터를 설립하게 된다. 참고로 사업비도 워즈가 냈다.(...)

애플 컴퓨터를 세운 이후 부품 조달, 마케팅과 조립 등은 잡스에게 맡기고 거의 개발에만 전념한듯 하다. 대표적으로 애플 II의 설계를 맡았다.

1981년 워즈니악은 자신이 몰던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큰 부상을 입은 치료차 휴직을 하게 되었다. 휴직을 한 겸사겸사 학교를 복학하여 졸업을 하고, 1983년 회사에 복귀했다. 애플에 복귀해보니 회사는 매킨토시 사업부와 애플 사업부 둘로 쪼개져서 서로 경쟁하는 살벌한 환경이 되어있었고, 자신이 원했던[4] 모습의 회사가 아니라는 사실에 충격받은 워즈니악은 모든 주식을 매각해버리고 회사에 사표를 내게 된다. [5] 실질적으로는 그만둔거지만 지금까지도 애플에 직원 목록에는 그의 이름이 있다. 본인말로도 자신은 새로운 일을 찾았을 뿐 애플을 공식적으로 그만둔적은 없다고 말했을 정도. 다만 애플 직원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것이, 1주일에 적은 돈을 받는다고 한다. [6]

3 근황

현재는 스토리지 회사인 Fusion-io라는 회사의 수석 연구원 겸 애플 자문 역으로, 꽤 성공한 삶을 살긴 하지만 빌 게이츠의 파트너인 폴 앨런이 억만장자가 되어 잘 살고있는 걸 볼 때 대조적인 모습이다. 물론 워즈도 백만장자 정도는 된다. 이 양반도 시가 100억이 넘는 집에 산다.

2006년 자서전을 냈는데, 제목이 "iWoz". 국내에도 "스티브 워즈니악"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애플 사에서 나올 때까지의 일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또한 워즈니악에 관련된 오해들을 풀고 다음 세대에게 "포기하지 말고 계속 도전해라"라는 조언을 해주고자 책을 썼다고 서문에 밝혔다. 그런데 그 오해들이라는 게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거나[7], 애플I을 함께 만들었다거나[8] 등.

2009년 2월에는 자신이 타고다니는 도요타 프리우스의 전자식 스로틀 조절 프로그램과 브레이크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를 해서, 프리우스의 리콜을 이끌어 냈다.

지금은 실리콘 밸리라 불리는 캘리포니아 산 호세에 살고 계신다. 워낙 동네에 공돌이, 특히 코딩머신컴퓨터 분야 공돌이가 많아 살기 때문에 다들 우연히 워즈니악과 마주치면 "오오 워즈다 오오" 한다고 한다. 또 그렇게 알아봐주는 사람들을 친절하게 맞아주는 훈훈한 사람이다.(또 블로그에 글을 남기거나 메일을 보내면 그걸 꼬박꼬박 답변해준다고.)

메일로 "애플에 다시 입사할 수 있다면 할 것이냐고" 질문을 던졌다. 답장은 5분 안에 왔다. 내용은 간단했다 "다신 다니고 싶지 않아"라는 답장이였다.

또, 굉장한 전자기기 덕후라서 새로 나오는 휴대폰 종류는 애플이고 안드로이드고 기타 등등이고 편식하지 않고(……) 다 구매해서 가지고 논다. 그리고 트위터로 나 이거 새로 삼ㅋ라고 염장질도 자주 하신다

워즈가 여행할 때 가지고 다니는 전자제품들은 이 링크를 가보면 알 수 있다. [1]

갤럭시 넥서스미국 내 출시되기 전에 소유하기도 했다. 구글 직원들하고 찍은 사진. 우리중에 스파이가 있나봐 관련 기사(영문) 아예 저 옆의 직원 하나는 사과를 베어먹고 있다(...)

애플 삼성 특허 분쟁에 대해 캘리포니아 법원에서 평결한 10억 달러가 잘못된 판결이고, 결국엔 기각 될 것이라 봤다. 덤으로, 클리앙에서 애플을 깠는데, 도리어 찬양을 받는...이 인터뷰에서 모든 특허 기술을 서로 교환하고, 모두 사용할수 있는 세상을 희망한다고....

2015년 10월 개봉한 <스티브 잡스>에 대한 감상 인터뷰가 나왔다. 원작인 전기를 한번도 읽어보지 않은 것과 대조적으로 영화를 세번이나 봤을 정도로 굉장히 좋아했다고 한다.

아이폰6 발표 직후 한 인터뷰에서, 아이폰6가 더 커진 스크린을 탑재하면서 자신이 가진 안드로이드 기기를 전부 처분했다고 밝혔다.

여담으로 2016년 대선에서는 버니 샌더스를 지지하고 있다.

2016년 3월에 레딧IAMA[9]를 진행했다. 번역1/2 번역2/2

4 성격과 일화

워즈니악이 큰 부자가 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여전히 백만장자긴 하지만 잡스가 애플 복귀 후 아이맥아이팟이 히트를 쳐서 억만장자가 된 것에 비하면 소박한 수준이다. 애플에서 직원들에게 워즈 플랜이라고 직원들에게 자신의 주식을 공짜로 나눠주기까지 했다. 잡스는 이걸 좋지 않게 보았다고 한다. 워즈니악이 속고 있다는 말도 했다고... 아니나다를까 정작 주식을 받은 직원들에게 워즈니악은 호구 취급을 당했다. 심지어 주식을 받은 직원 중 한명은 빈민이 그려진 불우이웃 돕기 포스터 밑에 '워즈니악의 미래 모습'이라며 낙서를 해놓기까지 했다고 한다.이런거 보면 이유없는 선의는 베푸는 의미가 없는것 같아

US 페스티벌 음악회를 연다든가 하는 자선 활동을 했고 지금도 지역사회에 교육 관련으로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또한 클라우드 나인(Cloud 9)이라는 회사를 만들어서 만능 리모콘을 만든다든가 하는 식으로 여러가지를 하면서 사업성보다는 새로운 기술 개발에 집중했다. [10]

개인적으로도 재밌는 면이 많은데, 프리메이슨 회원이다.[11]. 근데 정작 종교나 신비학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무종교이기도 하고. 심지어 애플I의 가격을 666.66달러로 하고서도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고 그냥 숫자 하나만 쓴 것이 멋지게 보일 것 같아서라고...그러다 소비자의 편지를 받고 666을 연상시킬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당시 오멘이 한창 개봉할 때라 문제가 될 뻔 했다고. 근데 주위 사람도 아무도 눈치를 못 챘다고 한다.[12] 테트리스가 취미이며, 광팬이라고 하다. 닌텐도 파워라는 잡지에 자기의 신기록을 냈는데, 잡지에서 더이상 자기 점수를 안내주자, Evets Kainzow이란 이름으로 내기도 했다고...[13]

덤으로 이 아저씨, 장난을 무지하게 좋아한다. 한번은 학교 사물함에 움직이면 째각소리가 더 빨라지는 시계 장치를 넣어놔서, 학교 전체가 난리 난 적이 있었다. 잡스는 그런 워즈니악이 장난의 레전드 오브 레전드로 보고 재능이 뛰어난 것을 간파했다고 한다.

또한 대학시절인 1971년 AT&T사의 장거리 통화 네트워킹을 해킹해 장거리 전화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장치 "블루 박스"를 제조했고, 심지어는 그걸 가지고 로마 교황한테 공짜 장난전화를 거는 용자짓을 하기도 했다.[14]
교황에게 전화할 때 자신을 헨리 키신저로 소개했다고... 성대모사를 했다고 하는데 걸렸으니까 이런 에피소드가 있겠지...사실 교황과 직접 통화는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더 웃긴 건 당시 전화를 받은 주교가 여기 새벽이니 한 시간 뒤에 통화하셈이라 말해서 워즈니악이 한 시간 뒤에 다시 전화를 걸자, 전화를 받은 주교가 너님 키신저 아니지? 내가 좀전에 키신저랑 통화를 했는데 뭔 소리여라 응수한 것(...) 미국 최고 외교관과 바로 통화가 가능한 바티칸의 위엄

그런가 하면 학교 기숙사 TV 시청실에서 방해전파를 쏴서 시청을 방해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TV 안테나를 이상한 곳으로 옮기면 전파를 껐다고...[15]뭐 다들 알고 있지요? 착한 어린이는 따라하면 안 돼요.
또 전화를 걸면 유머를 말해주는 일종의 ARS 서비스인 다이얼조크를 서비스 하기도 했는데, 그때 다이얼조크에다 폴란드인 유머를 신나게 하다가, 지역 폴란드인 협회에서 "우리 까지마셈!"이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그 협회에서 "우리 까지마셈!"라고 말한 사람에게 최고의 폴란드계 미국인을 주었다고(...).[16]

유명한 말로 "창밖으로 내던지지 못하는 컴퓨터는 믿지 말라(Never trust a computer you can't throw out a window)."라는 말이 있다. 문명 4에서 컴퓨터를 발명하면 이 대사가 나온다. 라이프 해커에서 한 인터뷰에 따르면 컴퓨터 사이즈에 대해서 비슷한 말을 했지만 정확히 이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 안 난다고.

5 스티브 잡스와의 관계

운명적인 장난 파트너하지만 거듭되는 통수

워즈니악도 잡스도 장난치는것을 굉장히 좋아하고 둘다 기계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둘은 나이를 떠나 마음이 잘 맞는 절친 관계였다. 한편으로는, 서로 가지지 못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내성적이고 효율적이고 기술에 재능을 가진 워즈니악과, 제멋대로이고 예술적인 감각을 갖췄고 인맥을 총동원해서 일을 추진하는 능력이 있는 잡스는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였다.

그러나 잡스는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자기 위주로 가야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17]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잡스가 아타리에서 일하던 시절의 일이다. 잡스는 아타리에서 게임기 설계를 단순화한 일을 맡아서 보수로 5,000달러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18] 경영인 자격으로 보수를 받은 잡스는, 실제로 작업을 혼자서 다 한 워즈니악에게 겨우 700달러 받았다면서 워즈니악과 똑같이 나누기로한 약속대로 반인 350달러만 떼어줬다. 윌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 전기에 이와 관련된 인터뷰가 있는데 아이작슨이 잡스에게 이에 대해 묻자 "왜 그런 말이 도는지 모르겠어요. 전 분명 돈을 제대로 주었습니다." 라는 말을 했다. 제대로 주긴 했는데 속인 금액에서 제대로 줬다는게 함정 이에 워즈니악과 아타리 사장이던 놀런 부슈널은 "우리는 분명 5,000달러를 지급했고, 워즈니악은 350달러만 받은 것이 맞다"며 확인사살했다. 기억 소거? 이에 워즈니악은 자서전에서 칩 50개 미만이면 700달러, 40개 미만이면 1000달러로 계약이 되어있는 줄 알았다고 한다.

이런 성격적 차이는, 애플을 떠난 이후에 워즈니악이 잡스를 "그냥 아는 사람"이라고 할 만큼 두사람을 멀게 만들었다. 나중에 잡스가 화해를 시도했고 표면적으로는 화해한 듯 보이지만 워즈니악의 이후 기고글이나 인터뷰 등을 볼 때 잡스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은 듯 하다. 특히 2010년 4월 26일에 뜬 기사를 보면 확실히 화해를 한 적 없음이 분명하다. 심지어 잡스가 워즈니악에게 자서전 축사를 부탁했는데 싫어라면서 거절한 일도 있고... 그러게 애초에 왜 호구취급을 해서 (...) [19]

그래도 어떻게해서 잡스가 죽기 직전에는 화해에 이른 듯하다. 잡스가 사망 직전 워즈니악에게 전화를 해서 애플로 돌아올 것을 요청하였다고 한다. [20] 잡스 사후에 워즈니악은 홈페이지에 잡스를 추모하는 사진을 올리기도 했고 인터뷰에서 잡스를 추억하며 눈물을 훔치는 가슴 찡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와는 별개로 스티브 잡스가 공개적으로 '"숟가락 얹기"'를 하는 것은 엄격하게 반박하는 편이다. 일례로 위에 나온 "블루 박스" 에피소드는 잡스가 이 장치와 장치에 관련된 일화를 자신이 한 것으로 포장해서 인지도를 높였다. 참고로 이 장치도 워즈니악 혼자서 개발하였고, 잡스는 학생들에게 장사 수완만 보였다고 한다. 또한 애플 I 개발에 자신이 메모리 교체를 포함한 다양한 제안을 해서 성공했다고 자찬하는 잡스에게 "잡스는 한 것이 없다"라고 비판한 것도 같은 예이다.

경쟁사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폴 앨런처럼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회사를 설립했다는 점은 비슷하나,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은 둘 다 공학도 + 사업가적인 사람인 반면, 잡스와 워즈의 관계는 철저한 사업가적인 잡스와 철저히 공학도적인 워즈의 관계로 다소 다르다. 한편 앨런은 마이크로소프트 내에서도 초고위직에 있었으며 게이츠와 함께 세계 부호순위 손가락 범위 내에 올랐지만 잡스를 거의 신격화하는 애플에서의 대접은...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6 한국 대중 사이에서의 인지도

워즈니악 자신은 2011년 3월에 대한민국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물론 알아보는 사람은 극소수(……). 공돌이라면 알아봤을 텐데... 지못미

잡스가 아이팟에서 아이폰으로 한국 대중 사이에서 이름을 알리고 온갖 성공신화로 치장되면서 특히 중장년층 사이에서는 성공한 기업가로써 인지도가 높지만, 워즈니악에 대한 인지도는 거의 전무한 수준.

2011년 11월 5일 방영된 무한도전 수학능력 특집에서 이 사람의 이름(풀네임도 아니다!)이 무한도전 vs 서울대 학생부 퀴즈 문제로 나왔는데, 대학생부가 유독 이 문제만은 굉장히 버벅거리면서 맞추었다...그의 한국 내 인지도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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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실직자로 잘 알려져 있다 빅뱅 이론 자막제작자의 오역이다. 사실 저 말의 'jobs'를 직업으로 번역해도 워즈니악 없는 직업(...)이 되고, 잡스라고 해요 워즈니악 없는 잡스라고 해야 한다. 네이버와 구글에 "직장없는"까지 치면 바로 연관검색어가 완성될 정도로 짤방화되었다.

짤방을 보면서 머릿속에 '?'가 떠올랐다면 정상입니다

7 매체에서

빅뱅 이론 시즌 4 에피소드 2에 출연했다. 등장해서 대놓고는 아니지만 슬쩍 스티브 잡스를 깠다. 무슨 짓을 해도 안 나올 것 같던 쉘든을 스스로 나오게 하는 위엄을 선보였다.

교향시편 에우레카7의 등장인물 '워즈'의 모델이 되었다. 퓨처라마에선 3010년에 워즈니악 너드 아카데미(Wozniak Nerd Academy) 운영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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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전기 영화에는 반드시, 비중있는 조연으로 출연한다. 1999년작 <실리콘 밸리의 해적들>, 2013년작 <잡스>, 2015년 10월 개봉한 <스티브 잡스> 모두에 등장. 극중 묘사는 고증에 맞춰서 수염 덥수룩한 털보에, 체구는 조금 비만형이고, 컴퓨터 자체에 심취한 공돌이 타입. 잡스의 외모를 돋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담당
  1. 신형 맥 프로가 소개된 직후
  2. 출생증명서에는 어머니의 실수로 Stephan이라 기재되어 있다고 한다.
  3. 11살 때부터 친구들과 전자 장치를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6학년 때 아마추어 무선 자격증을 아버지와 함께 취득했다.
  4. 워즈니악 본인은 개발에만 전념하고 싶었지 사내 정치나 경영에 전혀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5. 당시에도 워즈니악과 애플의 결별은 새로 떠오르는 매킨토시 사업과 애플 II 사업부의 상대적인 홀대 때문이었다고 여겨졌지만, 실제로 워즈니악은 복귀 이후엔 매킨토시 개발에 참여했다. 그러나 애플 II 사업부에서 일하는 개발자들을 위해 잡스에게 직접 말을 해본적이 있었고, 당연히 이는 무시되었다고 한다. 이는 애플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으로 이어졌다.
  6. 근데 본인 말과는 다르게 매년 $120,000 정도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거짓말쟁이!더 많이 받는 사람이 많나보지
  7. 그만둔 건 잡스다. 워즈니악은 애플 창업 후에 오래걸리긴 했어도 결국 졸업까지 다 해냈다.
  8.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워즈니악 혼자 만들었다.
  9. 레딧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코너
  10. 여기서 잡스와 악연이 또 있는데, 워즈니악은 만능 리모콘 디자인을 애플 제품의 디자인을 담당하던 프로그 디자인사에 맡길려고 했는데 잡스가 그걸 알고는 프로그 디자인 회사 사장에게 Anything you do for Woz, belongs to me!라는 협박을 가해서 워즈니악과 관련된 업무를 받지 못하게 했다. 물론 언론은 잡스의 옹졸함을 신나게 까댔다.
  11. 전 마누라의 비위를 맞춰줄려고 가입했다고 자서전에 적어놨다.
  12. 하기사 요즘에야 광범위한 인터넷 문화가 정착되어 여러 밈들이나 각종 정보들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지 당시의 미국 시대상을 생각해보면 워즈 뿐만 아니라 주변사람 모두가 악마의 숫자 666이라는 낭설을 모른 것도 당연하다.
  13. 잘 읽어보자. 그의 이름 철자를 뒤집은 것이다.
  14. 참고로 이 공짜전화에 대한 일화는 [2] 역시 해킹은 짱
  15. 이 일화는 잡스가 키노트에서 한 번 소개한 적이 있다.
  16. 참고로 워즈니악도 폴란드계이다(...). 워즈니악은 폴란드계 성 중에 10번째로 흔한 성 보즈니아크(Wozniak)의 변형.
  17. 워즈의 아버지가 몇차례 아들에게 잡스의 배신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워즈니악의 회고에 따르면, 잡스가 남을 무시하는 성격은 누구한테나 그런거고 그래도 잡스는 절대 자신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진 않았다고 한다. 반대로 자신은 불만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성격이었다고.
  18. 세계 최초의 벽돌깨기 게임 Breakout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게임기 설계상 칩이 130~170개가 들어가야 작동할 수 있었는데 아타리는 이를 70~100개로 만들길 원했다. 이때 우리의 굇수 워즈니악은 낮에는 HP에서 일을 하면서 밤에는 개발에 몰두하여 4일간 밤을 지새워서 44개로 완성.. 아타리의 경영진은 성과에 감명받아 잡스에게 예정보다 아주 많은 보수를 준것. 그러나 워즈니악의 디자인이 워낙 압축됐고 복잡해서 아타리의 제조 설비에 적용이 어려워 아타리측에서 생산에 적합하게 수정해야 했고 결과적으로 100개 가량의 칩이 필요했다.
  19. 그런데 곰곰히 따져보면 자신이 참여하지도 않았고 읽어보지도 않은 책의 축사를 거절하는 것은 당연한거다.
  20. 그러나 애플엔 자신과 같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고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