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마카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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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 브레이브스 No.22
닉 마카키스 (Nicholas William Markakis)
생년월일1983년 11월 17일
국적미국
출신지뉴욕 주 글렌 코브
포지션우익수
투타좌투좌타
프로입단2003년 아마추어 드래프트 1라운드(전체 7번)
소속팀볼티모어 오리올스 (2006~2014)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15~)

1 개요

미국 MLB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소속의 프로 야구 선수이다. 포지션은 외야수이며, 중장거리 타자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스계인데, 실제 발음은 /mar-KAY-kiss/로, 마케이키스에 가깝다.

2 아마추어 시절

뉴욕 주 글렌 코브(Glen Cove) 출생이지만 조지아 주로 이사를 갔다. 어릴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고, 조지아의 우드스톡 고등학교를 나왔다. 타격과 투구 모두 출중했기 때문에 2001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신시내티 레즈에 지명되었으나 영 해리스 대학 (Young Harris College)에 진학했다. 당시 포지션은 투수 겸 외야수였다고 한다. 2002년 조지아 지역 대학리그에서는 .439에 21홈런, 92타점에 12승 무패란 만화같은 기록을 냈다고 한다. 이렇게 대학 때 출중한 능력을 보여줘서 2002년 베이스볼 아메리카 선정 올해의 주니어 칼리지 선수에 뽑혔다.

한편 2003년 드래프트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그를 1라운드 전체 7순위로 지명했고, 최고 96마일을 찍을 정도로 투수로서 강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마카키스의 타자로서의 재능을 더 높이 평가한 오리올스는 그를 타격에 집중시켰다.

3 마이너리그 시절

2004년 싱글A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그는 타율 0.299에 11홈런 64타점으로 준수한 성적을 보여주었고, 특히 이 성적은 시즌 후반기를 결장하고 거둔 성적. 이미 2003년에 그리스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유럽선수권 야구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는데 공헌된 바 있는 마카키스는 2004년에도 미국 국적이지만 그리스 대표팀으로 2004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했다. 시즌 후반기를 결장한 건 부상 때문이 아니라 바로 올림픽 때문이었다.

2005년에는 마이너리그 올스타에 등극했고, 각종 상을 휩쓴다. 베이스볼 아메리카 선정 전체 21위 유망주까지 선정되었을 정도로 오리올스의 최고 유망주로 성장했다.

4 메이저리그 시절

2006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오리올스의 개막전 로스터에 들어갔고, 첫 게임에는 대타에 외야수로 출장하였다.

8월 22일, 홈구장 캠든 야즈에서 3연타석 홈런을 쳐서 커튼콜을 받는 등 팀의 6-3 승리를 견인했을 뿐만 아니라, 데뷔 첫해이자 풀타임 1년차부터 확고한 주전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2006년 최종성적은 타율 0.291에 16홈런 62타점과 2도루.

2007년부터 붙박이 주전 우익수로 확실히 자리잡았다. 타율 0.300, 23홈런 112타점, 18도루를 기록하고 이후 2년 연속으로 3할 타율과 20홈런을 기록했다.

2009년에 6년 6천 6백만 달러의 다년계약을 맺으며 이때부터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널리 인정받기 시작하고, 2011년엔 통산 1천안타를 기록했다. 선수 생활 말년을 맞은 블라디미르 게레로가 볼티모어에 입단해서 붙박이 지명타자로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오리올스는 예상대로 꼴찌로 전락했지만 마카키스 본인은 개인 통산 첫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4.1 2012년

손목 뼈조각 제거수술을 받기 위해 메이저 데뷔 후 최초로 개막전 로스터에서 제외되었고, 7월 7일 마이너리그 보위 베이삭스에서 리햅경기로 처음 출전했고, 13일 메이저로 올라왔다. 9월 8일에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에서 CC 사바시아의 투구에 손가락을 맞고 골절해서 시즌 아웃되었다. 팀이 오랜만에 DTD를 벗어나 포스트시즌까지 올라갔으나 뉴욕 양키스에게 패해 디비전 시리즈에서 탈락한다. 정작 필요할 때 사라져 버리면 어떡하나

4.2 2013년

오리올스는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선전했으나, 포스트시즌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마카키스 본인은 선구안과 장타력에서 부진을 보이며 0.271 .329 .356 10홈런 59타점이라는 평범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조정 OPS는 데뷔 이후 처음으로 100 이하로 내려갔다. 2012년 부상의 후유증인듯. 비록 2015년 팀 옵션이 있긴 하지만 2014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종료되기 때문에 다시 한번 거액의 계약을 따내려면 분발해야 한다는 평이 있었다.

4.3 2014년

.276 .342 .386 14홈런으로 어느 정도 나아졌고 수비에서도 회복된 모습을 보였다. 여러 모로 전성기만은 못하지만 선방한 성적을 올리며 리드오프로 활약했다. 15년 팀 옵션은 거부되었지만 오리올스에서 장기계약으로 묶으려고 하는 중이었는데...

시즌 종료 후 사실상의 고향팀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4년 44M 계약을 체결하였다. 업튼 형제중 한명을 트레이드하고 그자리를 마카키스로 채우는 것이 브레이브스의 전략인듯. 없튼은 타팀에서 줘도 안가지겠지만

마카키스는 볼티모어의 프랜차이즈로 인식되었기 떄문에, 자발적으로 재계약을 거부하고 이적한 것은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를 의식한 마카키스는 지역신문인 "볼티모어 선"에 2페이지에 걸친 전면광고로 작별 인사를 할정도로 팬심을 달래야 했다. 2면에 걸친 광고

4.4 2015년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항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도대체 왜 닉 마카키스를 영입했느냐는 불평불만을 들으면서 올스타브레이크 이전 전반기를 소화했는데,
타율 .293, 출루율 .359, OPS .733 등은 애틀란타의 타선에서 나름대로 괜찮은 성적이긴 한데, 문제는 장타율이 급락했다. 거의 전경기 풀타임 출장인데도 2015 전반기 홈런 0개에 빛난다[1]. 당연히 ISO도 바닥을 긴다. .061로 메이저리그 뒤에서 2위.[2] 목수술의 여파인지 뭔지...
그런데 7월 20일(현지시간 기준)에 드디어 1홈런이 나왔다. 상대팀은 다저스, 허용한 투수는 브랜든 비치이다.

2015년 최종 성적은 타출장 .296 .370 .376에 3홈런 53타점. 수비는 좀 많이 안 좋아서, WAR는 fWAR 1.6, bWAR 1.9이다.

5 이모저모

보스턴 레드삭스팬으로 자랐고, 약쟁이 로저 클레멘스를 존경해서 21번을 단다고 한다. 아내 크리스티나와 아이 두 명이 있고 불우아동과 암환자를 돕는 등 자선활동에도 열심이라고 한다.

우익수 포지션 좌타자에 그럭저럭 갭파워, 높은 출루율 등 플레이 스타일과 나이까지 비슷하다보니 추신수가 데뷔했을 무렵 국내팬들이 추신수의 롤모델이자 향후 장기계약 척도로 가장 많이 인용한 선수가 이 선수였다. 막상 추신수가 자리를 잡은 2009년 이후로는 출루능력, 장타력, 도루능력 등 대부분의 공격능력에서 추신수가 더 나은 모습을 보이고 마케이키스는 부상 등으로 하락세에 접어들면서 연봉이나 기대치 등에서 입지가 역전된 지 오래.

오리올스 프랜차이즈 선수인 마카키스가 등번호 21번을 선점하고 있는지라 2014년에 오리올스에 입단한 윤석민은 다른 번호를 골라야 했고, 결국 비어 있던 번호인 전 소속팀 감독인 어느 레전드의 등번호 18번을 선택했다.[3][4]
  1. 동시 정규타석을 채운 선수중에서 0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단 3명 뿐이다. ML 전체 ISO 꼴지인 앙헬 파간, 수비형 유격수 오마 인판테, 그리고 닉 마카키스
  2. 앞서 각주에서 언급한 것처럼 1위는 .057의 앙헬 파간이다.
  3. 한국과 일본에서 18번은 에이스 투수의 등번호로 선호되는 경우가 많다. 선동열을 비롯해 사와무라 에이지, 쿠와타 마스미, 구로다 히로키, 마쓰자카 다이스케 등이 18번 투수로 유명.단 구로다는 카프시절엔 15번을 달았고,다시 카프로 복귀한 이후엔 15번을 다시달고있다
  4. 참고로 이 번호의 이전 주인이 2014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한 용병타자 펠릭스 피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