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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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짝짓기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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亂婚

1 개요

원시시대의 결혼에 대한 가설이다. 평생을 함께할 짝을 이루지 않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며 살아가는 것. 쉽게 말해 프리 섹스(free sex)다.

사회진화론자들에 의해 19세기부터 주장되었다. 원시시대에는 결혼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집단내의 모든 이들이 근친상간이나 혹은 정절의 터부 없이 집단내에서 누구와도 자유롭게 성관계를 맺는 단계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확실히 아는 것이 불가능한 아버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출산으로 확실히 알 수 있는 어머니가 중요한 모권사회가 인류 사회의 진화의 첫 단계에 있었다고 한다. 이를 난혼이라고 하며 이런 사회를 모계사회라고 한다.

2 연구

20세기에 인류학이 발달되면서 이러한 가설에 대해서는 다양한 검증이 이루어졌으며, 여러가지 비판과 의견들이 나오게 된다. 아무리 원시적인 부족에도 난혼이나 모계사회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는 주장도 있으며, 그래서 현재 난혼이나 모계사회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한다. 그런 인류학 역시 과학이기 이전에 이념에 바탕을 두므로, 기반을 두고 있는 이념에 따라 극히 다양한 의견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실험으로 재현할 수도 없고 고고학적 증거도 희미한 오랜 과거의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념 문제를 따지면 어떤 학문도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하며, 현대에 남아있는 원시 부족에 대한 연구라는 뒤받침하는 근거가 있다.

또한 19세기 학자들이 원시 사회의 난혼제를 설명하면서 예로 든 영장류의 경우에도 이후의 동물사회학 연구에서는 난혼보다는 가족의 개념이 보이기 때문에 생물학적인 연구에서도 난혼제는 부정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가족의 개념이란 것도 정도의 문제이고, 공동체 전체적인 가족의 개념과 "난혼"은 양립 가능하기도 하다.[1] 무엇보다 사람과 다른 영장류는 종이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접근에도 한계는 있다.

또한 문화적, 혹은 언어적인 차원에서 "난혼"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에도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19세기와 21세기 학자들이 영장류를 연구하면서 난혼제에 대해 얻은 결론들이 상반되는 이유는, 단순히 19세기 학자들의 관찰 이론에 오류가 있었다거나 하는 문제로만 귀결되는 게 아니라 200년 가까이 흐르면서 "난혼"이란 단어를 받아들이는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장류 사회에서 보이는 가족의 개념은 인간 사회에서 보통 "윤리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가족의 형태에 비교했을 때는 일시적인 면이 강하며 그 이후에도 한 개체가 다른 가정을 다시 책임지는 일도 있는데, 사회 윤리가 훨씬 보수적이던 19세기 시각으로는 가족을 일시적인 관계로 취급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난혼의 흔적임을 제시했으나 비교적 잦은 이혼 및 재혼이 자연스러운 일이 된 21세기 관점에서는 이를 반드시 "난혼제" 및 그 흔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으로 본다.[2]

자연계에서 난혼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사회로 침팬지 사회를 흔히 꼽곤 하는데, 침팬지 암컷들은 딱히 반려자라는 개념이 없이 가능한 수컷들마다 저마다 교미를 하는 방식을 따른다. 이러한 방식은 원론적으로 수컷 간의 경쟁이라기보다는 정자 간의 경쟁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으며, 앞선 수컷이 남긴 정액을 전부 걷어내고 자기 정액을 대신 사정해야 하는 필요성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이 역시 사회적인 수준에서의 수컷 간 경쟁을 피할 수는 없는데, 왜냐하면 침팬지들도 어쨌건 권력의 차이, 서열의 차이에 따라 교미의 기회에 차등이 생기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암컷 침팬지는 서열이 높은 침팬지들과 주로 교미를 하다가 가끔가다 서열 낮은 침팬지와 교미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난혼제라고 해서 꼭 그렇게 "프리" 한 섹스가 가능하다고 보장할 수 있지는 않다.

다소 다른 시각에서는, 애초에 인간이 일부일처제를 갖고 살아본 적이 없다는 시각도 있다. 사람들, 특히 남성들은 언제나 성매매, 처첩 제도 등을 통해서 일부다처제를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이는 페미니즘 계열의 시각인데, 이에 비판적인 좌파의 계급적 시각에서는 남성들이라고 해도 다양한 계급적 위치에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그와 별개로 페미니즘적 시각은 성매매 등이 지속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반론도 있으나 애초에 페미니즘적 시각에서는 "지속적인 관계," 즉 우리가 말하는 "혼인관계"라는 것 자체의 허위성을 지적하는 것이기 때문에 적절한 반론은 아니다. 반대로 가톨릭으로 대표되는 몇몇 종교나 문화에서는 가족 제도 자체의 신성함과 초역사성, 보편성을 강조한다는 점이 차이가 난다.

3 트리비아

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나가가 이런 형태의 혼인을 유지하고 있다.
  1. 고대에 지금과 같은 결혼제도가 확립된 이후에도 인류는 일회성의 성관계를 (강간 포함) 소위 "혼외정사"의 형태로 분명히 지속해왔다. 여전히 태어나는 아이들의 70%는 배우자의 아이란 말도 있기는 하지만 이건 달리 말하면 30%는 혼외정사로 태어났단 얘기다.
  2. 이에 대해서는 현생 인류의 생태는 "반복적 일부일처제(Serial Monogamy)"로 설명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