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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1 개요
- 2 설명
- 3 상징
- 4 명칭
- 5 역사
- 6 분파
- 6.1 자유주의 페미니즘 (리버럴 페미니즘)
- 6.2 래디컬 페미니즘 (급진적 페미니즘)
- 6.3 상호교차성 페미니즘
- 6.4 트랜스페미니즘
- 6.5 사회주의 페미니즘
- 6.6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여성해방론)
- 6.7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탈근대주의적 여성주의)
- 6.8 보수주의 페미니즘
- 6.9 스피리추얼 페미니즘
- 6.10 포스트콜로니얼 페미니즘
- 6.11 에코 페미니즘 (생태여성주의)
- 6.12 성적 차이 페미니즘
- 6.13 다윈주의적 페미니즘
- 6.14 흑인 페미니즘(우머니즘)
- 6.15 이슬람 페미니즘
- 6.16 아나카 페미니즘
- 6.17 비만 페미니즘
- 6.18 성 긍정 페미니즘
- 7 비판 및 논란
- 8 관련 여론조사
- 9 기존 학문의 재해석과 충돌
- 10 대안
- 11 정당
- 12 관련 문서
- 13 외부 링크
1 개요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ㆍ경제ㆍ사회 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
Feminism, the belief in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equality of the sexes. Although largely originating in the West, feminism is manifested worldwide and is represented by various institutions committed to activity on behalf of women’s rights and interests.페미니즘은 성별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평등이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주로 서양에서 유래했지만, 페미니즘은 전세계적인 주장이며 여성의 권리와 이권에 관련한 활동을 하는 수많은 단체들이 내세우고 있다.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의 정의
페미니즘(Feminism) 또는 여성주의(女性主義)는 남성중심주의와 가부장적 사고에서 탈피하여 여성의 권익 신장을 포함한 젠더 불평등의 타파를 논하는 이론이다.
2 설명
2015년부터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키워드이며 나무위키를 비롯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비롯하여 정치계, 언론계를 뜨겁게 논하는 이슈 중 하나다.[1] 여성주의(Feminism, 페미니즘, 女性主義)는 여성의 권리를 추구하며, 여성에 대한 차별을 반대한다. 페미니즘(féminisme)이라는 용어는 1837년 프랑스의 유토피아 사회 철학자 샤를 푸리에가 만들어 냈다고 흔히 알려져 있다.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는 1872년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1890년에는 영국에서, 1910년에는 미국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옥스퍼드 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은 1852년을 여성주의자(Feminist, 페미니스트)가 처음으로 출현한 해, 1895년을 페미니즘의 해로 수록했다. 페미니즘은 20세기 초, 여성 참정권의 인정을 기반으로 시작되어 여성의 사회적인 이미지와 권리를 남성과 동등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여성의 권리 확장과 성차별적인 대우의 타파를 통해 여성해방과 여성우월을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상이다.[2]
근대 초기부터 지금까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참정권, 투표권, 여성이 의무교육을 받을 권리, 여성이 남성과 법적으로 동등한 지위를 획득할 권리, 아동과 노약자 보호, 성폭력 예방, 올바른 성교육, 환경보호, 사회복지, 노동환경 개선 등 폭넓은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이루어 냈다. 학계에서는 학제 간 연구의 일환으로 여성학 협동과정 등의 정규과정을 통하여 활발하게 탐구되고 있다. 페미니즘의 선구자로는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주장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3]가 꼽히며, 대표적인 저작으로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이나 베티 프리댄의 《여성의 신비》[4], 케이트 밀릿의 《성 정치학》 등이 있다. 성 평등을 주장한 19세기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여성의 사회활동 참여를 주장해 초기 자유주의 페미니즘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페미니즘에는 엄청나게 많은 이해 관계와 이익 관계, 역사와 현재, 합리적 판단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등 많은 것들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기에, 주제 자체가 문화권을 막론하고 거대한 화두가 됐다. 한국에서는 페미니즘이 2015년 이후부터 큰 이슈가 되었지만, 그 이전에도 페미니즘은 한국 포털사이트에서 자주 내리오른 용어였다.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가 당선된 2012년에는 해외 언론에서 페미니즘 사상이 한국에서 부각되고 있다고 보도할 정도로 이미 페미니즘 사상은 2015년 이전에도 자주 인용되었다. 페미니즘은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뜨거운 이슈이며, 유럽과 북미에서는 한국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이슈화되었다.
3 상징
페미니즘 상징, 여성 기호 깃발 | 여성주의의 상징색 보라색[5] |
4 명칭
상술한 대로 등장했던 시대가 시대인지라 사상의 이름에서부터 'Femini-(여성의-)'를 포함하는 만큼 일단 대외적으로 성적 불평등이 상당수 해결된 21세기 현재로선 '여성만을 위한 사상이다.'라는 인상으로 여겨진다는 의견이 나타나면서 외부만이 아닌 페미니즘 운동권 내부에서도 명칭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는 중. 즉 다른 성평등을 추구하는 단어를 찾을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사용되던 단어를 계속 쓸 것인지의 차이.
페미니즘 명칭 존치측에서는 Femini라는 단어를 제외할려는 것에서 여성에 대한 문제를 감추려는 의도가 어느 정도 다분하기 때문이며 어느정도 개선되도 유리천장, 유리벽 등 암묵적인 차별이 크게 와닿는 와중에 근본적 해결이 안 된 상태에서 바꾸면 페미니즘을 완벽히 달성할 수 없으니 명칭을 바꾸기엔 아직 빠르다는 주장이다.
페미니즘 변경 찬성 측에선 상술한 의견도 긍정하긴 하지만 현재로선 그 이상으로 시스젠더나 트랜스젠더등 성의 기준자체가 모호한 사람이 많고 여성보다 이들이 더 소수이며 그만큼 더 차별을 받는 와중에 페미니즘이란 늬앙스는 원래의 모든 성의 평등을 가리키는 것과는 반대로 차별받는 축에서도 여성만을 위한다거나 아니면 남성과 다른 성을 배척하고 여성들부터 살펴야 한다는 반발이 나올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변경하자는 의견 측의 주장대로 원래 페미니즘이 주장하는 '성평등'에서 현재까지도 성적소수자들까지 포용하기보단 근대 여권신장운동에서 시작하여 여성의 인권만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고 어디까지나 과거에는 제3의 성이란 것 자체가 없다시피했으므로 페미니즘의 사상이 여성에 쏠리기도 한다는 것과 현재 페미니즘 단체가 여초상태나 아니면 남성 자체를 배척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실제로 틀린 게 없는 의견.
다만, 페미니즘 운동 초기에 추구하던 여성 참정권, 사회 참여 등의 진전과 함께[6][7] 최근에는 생물학적 성에 기인한 억압과 차별에 대한 폐지와 양성의 동일한 권리, 기회를 옹호하는 입장으로 차별 타파 위주의 평등주의와 혼용되기도 한다. 즉 페미니즘은 평등주의 그 자체는 아니지만 다른 부분에서도 평등주의의 입장을 많은 부분에서 수용하려고 노력한다. 배우 엠마 왓슨의 UN 여성의 날 스피치 역시 같은 관점을 반영했으며[8], 디즈니 또한 남성에 대한 차별을 이야기했고,[9] UN의 여성 권리 운동 역시 성별, 종교, 인종 등으로 인한 차별의 타파를 추구하고 있다.[10]
물론, 모든 페미니즘 분파가 모든 차별의 타파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월성 Superiority참조.) 국내의 워마드처럼 남성 혐오 분파는 오직 생물학적 여성들의 권리만을 위해 남성 성소수자, 트랜스 여성에 대한 차별과 비하를 묵인하거나, 그 차별과 비하를 적극적으로 행하기도 한다.[11] 물론 여기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도 존재한다.(TIRF) 참고로 이러한 극단적 현상은 인권운동에서 나타나는 흔한 양상으로 인종차별주의가 만연하여 한창 흑인인권운동이 활성화되던 60년대 미국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편하다. 인권운동이 활성화되면 꼭 집단이기주의를 동반한 극단적 우월주의도 따라오는 법이다. 허나 여성이면서 극단적 여성우월주의를 싫어하는 사람또한 존재한다.
5 역사
크게 3개의 시대적 사조로 구분이 가능하다. 일반적인 역사 연구에서는 n세대라는 표현을 흔하게 쓰지만, 최근 여성 운동권이나 여성학계에서는 이 시대적 구분을 'wave'로 부르고 n파(또는 'n의 물결')로 번역하고 있다.
5.1 페미니즘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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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랭프 드 구즈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
The belief and aim that women should have the same rights and opportunities as men; the struggle to achieve this aim.여성이 남성과 같은 권리와 기회를 누려야 한다는 믿음과 목표, 혹은 이를 성취하기 위한 투쟁
옥스퍼드 영어사전
Feminism is a radical notion that women are people.페미니즘은 여자도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급진적인 개념이다.
마리 시어 (Marie Shear)[12]
일반적으로 페미니즘(여성주의)은 18세기 근대 유럽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학자들 중에서는 프로토 페미니즘이란 용어를 써서 계몽 시대 이전에 존재했던 성평등 이념의 역사를 다루는 이도 있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에서 "신체적인 힘에서 비롯된 차이만을 제외하면 여성과 남성은 동등하다"고 언급했다.[13] 프로토 페미니즘과 페미니즘을 가르는 기준은 "페미니즘 개념이 정립된 때"이다.[14] 그렇다면 페미니즘 개념이 언제 정립됐는지가 중요하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특정한 신념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한 건 1837년 샤를 푸리에가 처음이라고 흔히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주장이 오류라는 반론도 있다.[15] 최초로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칭한 인물은 프랑스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인 위베르틴 오클레르(1848~1914)였고[16], 1892년 파리에서 열린 '제1차 국제여성회의'에서 "성평등 이념에 입각하여 여성에게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주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페미니즘을 정의했다고 한다. #참조 여러 사료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페미니즘 개념이 온전히 정립된 건 19세기 후반 이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만약에 '프로토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를 받아들인다면, 페미니즘의 기원은 당겨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늦춰질 수도 있다. 그래서 몇몇 학자들은 프로토 페미니즘을 거부하기도 한다.[17]
18세기 근대 유럽, 당시 계몽주의는 인간의 이성을 중시했고, 동등한 이성을 지닌 인간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 그러나 만인이 평등하다는 천부인권은 여성에게는 인정되지 않았다. 많은 계몽주의자들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이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도 일부는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이성을 갖고 있으니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주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프랑스 혁명 이후 여성에게도 참정권 등의 법적 권리를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 벌어진 논쟁은 근대적인 성평등 이념을 이끌어냈다. 초기 페미니스트들은 계몽주의에 입각하면서도 계몽사상의 한계인 남성 편향성을 극복하려는 비판적 성찰을 가졌다. 최초의 페미니스트라고 불리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활동하던 시절도 바로 이 때이다.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계몽 시대의 남성우월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에밀>(1762)에서 "여성은 남성의 마음에 들도록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남성은 가정에서 여성의 뜻에 따르는 대신에, 사회에서는 강자 행세를 하게 된다. 남성은 이성에 따라 스스로 성욕을 억제할 수 있지만, 여성은 남성에게 순종하여 정숙한 아내이자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루소는 여성이 남성에게 예속되는 것을 정당화했다.[18] 다만, 루소의 여성관에 대해서는 상반된 해석도 존재한다. 루소는 성(sex)에 있어서만 남녀의 차이를 주장했고 종(species)에 있어서는 남녀의 평등을 주장했으며,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존재라고 강조했다. 여성성을 강조하였으며 여성 교육을 주장하면서 당시로서는 페미니즘의 발전에 긍정적인 불씨를 제공했다는 것이다.[19]
메리 울스턴크래프트(1759~1797)는 계몽 시대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중 한 명이다. 그는 프랑스의 정치인 탈레랑이 "여성은 가사교육만 받아야 한다"라고 주장한 데 반박하여, 저서 《여성의 권리 옹호》(1792)에서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을 것"을 주장했다. 《여성의 권리 옹호》에서 주된 비판 대상은 루소였다. 울스턴크래프트는 루소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여성상에서 '이성(理性)'이 결여되어 있음을 비판했다. 루소가 주장했던 여성 교육 역시 가부장제에 부합한 행실과 욕망을 자극하는 용모만을 갖추는 데 그친 노예 훈련이라고 비판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이 남성처럼 정치.경제.사회.문화 활동 전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을 마련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남성과 여성은 상호관계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성에 대한 이중잣대를 공격했다. 다만, 울스턴크래프트에게도 한계점은 있다. 그는 여성과 남성이 완전히 동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아주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즉, 완전히 같은 내용의 시민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지는 않다.
울스턴크래프트는 1797년 둘째 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고드윈'을 낳고 사망했다. 향년 만 38세. 딸 메리는 낭만주의 시인 퍼시 비시 셸리와 결혼했으니, 호러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가 그 메리다. 울스턴크래프트의 사상은 생전에 나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사후, 세 번째 남편이자 선구적 아나키스트였던 윌리엄 고드윈(1756~1836)이 <여권의 옹호 저자에 관한 회고록>(1798)을 발간한 걸 계기로 맹비난을 받았다. 고드윈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개방적인 인물이었고 <회고록>에서 아내 울스턴크래프트의 연애 이력, 이혼, 자살 시도, 부부 생활을 꽤나 솔직하게 밝혔다. 당대의 사회 통념과 보수 윤리에는 어긋나는 내용들이었기 때문에 고드윈의 의도와는 다르게 울스턴크래프트의 평판은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울스턴크래프트의 선구적인 정신은 백여 년 동안 잊혀졌지만, 20세기 들어서 버지니아 울프(1882~1941)와 엠마 골드만(1869~1940)에 의해 발견되고 재평가받았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직후 작성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은 여성이나 무산계급을 배제하고 남성에 대해서만 인권을 천명했다. 이에 반발한 몇몇 계몽주의자들은 여성에게도 권리를 부여할 것을 주장했다. 예를 들어, 니콜라 드 콩도르세(1743~1794)는 <여성의 시민권을 위한 청원>(1790)에서 남성에게 부여된 자유와 권리를 여성에게도 부여할 것을 요구하며 여성 참정권을 주장했다. 올랭프 드 구주(1748~1793)는 <여성과 여성시민의 권리 선언>(1791)에서 남성에게 부여된 모든 권리를 여성에게도 적용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자코뱅은 자신들을 비판하는 세력들을 숙청하는 공포 정치를 단행하고 있었다. 올랭프 드 구주는 왕정제를 옹호하고 자코뱅을 비판하는 저술활동을 벌이다가 길로틴에서 처형당했고, 그의 동지였던 콩도르세 후작은 체포된 직후 음독 자살했다.
"페미니즘이 이갈리타리아니즘(평등주의)에서 파생되었나"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우선 이갈리타리아니즘이라는 용어가 문서마다 각각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키백과나 철학의 기초에서는 이갈리타리아니즘을 평등 이념을 하나의 사상 체계로 정립한 것으로 넓은 의미에서 정의하고 있다. 넓은 의미의 이갈리타리아니즘은 스토아 학파의 코스모폴리타니즘(세계시민주의)이나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평등 사상을 포괄하는 의미로 쓰였다.[20] 반면에 스탠포드 철학사전 등에서는 고전적인 리버럴리즘(자유주의)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별개의 운동이 된, 좁은 의미의 이갈리타리아니즘을 상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이갈리타리아니즘은 용어가 정립된 이후인 19세기 후반에 형성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참조 "페미니즘이 이갈리타리아니즘에서 파생되었다"고 주장하는 측은 좁은 의미가 아닌 넓은 의미의 이갈리타리아니즘을 말하고 있다.
스토아 학파가 이갈리타리아니즘적이라는 건 "후대의 평가일 뿐"이라는 반론이 있다. 이 반론에 일관성을 맞춘다면, 이갈리타리아니즘이라는 개념이 정립된 19세기 이전에 존재했던 평등 사상들이 이갈리타리아니즘적이라는 건 모두 "후대의 평가일 뿐"일 것이다. 그리고 페미니즘 개념이 정립되기 이전에 여성의 평등을 주장했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1759~1797)나 올랭프 드 구주(1748~1793)의 사상이 페미니즘적이라는 것도 "후대의 평가일 뿐"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이갈리타리아니즘과 페미니즘을 모두 가장 협소한 의미로 파악하게 되어 서로 간에 큰 상관관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개념짓기 이전인 프랑스 혁명기의 여권 운동가들도 페미니즘이라고 용어의 반경을 넓히는 이상 "후대의 평가일 뿐"이라는 반론은 자기모순이 있다. "후대의 평가"라는 반론 외에도, 프로토 페미니즘인 플라톤이 스토아 학파보다 이전의 세대이므로 페미니즘이 이갈리타리아니즘보다 먼저 발생했다는 반론도 있다. 잘못된 반론이다. 프로토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의 기원이 아니라 전사(前史)를 말하므로, "플라톤이 프로토 페미니즘"이라는 말은 "페미니즘은 아니었지만 그 이전에 영향을 준 사상"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프로토 페미니즘만으로는 페미니즘이 이갈리타리아니즘보다 먼저 발생했다는 결론이 도출되지 않는다. 차라리 "이갈리타리아니즘을 분명히 정의하고, 스토아 학파는 이갈리타리아니즘이 아니라 이갈리타리아니즘의 전사(前史)에 해당한다"고 반론을 제기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스토아 학파는 평등에 이론적으로 영향을 주었을지언정 근대 정치철학으로서의 평등 사상까지 이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페미니즘의 역사를 근대적 의미로 한정한 예에 비추어봤을 때, 스토아 학파를 이갈리타리아니즘의 전사(前史)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계몽주의자들의 평등 사상까지는 이갈리타리아니즘의 범주로 묶일 수 있을 것이다.
넓은 의미의 이갈리타리아니즘은 상당히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평등은 인류 보편의 관념이지만, 어떤 것이 평등인지에 대한 근대적 이론 체계는 고안되는 것이며, 이런 이론들은 넓은 의미에서 이갈리타리아니즘이라는 범주로 묶일 수 있다. 사변적으로 봤을 때 페미니즘 역시 이갈리타리아니즘의 범주로 묶여 일응 하위 개념이나 파생 개념으로 보일 수 있지 않을까도 싶다. 그러나 아무리 이갈리타리아니즘을 넓게 보더라도, 일상적으로나 학술적으로나 현실상에서 페미니즘은 이갈리타리아니즘의 하위 개념, 파생 개념이 아니라 별개의 독립 개념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계몽 시대의 페미니즘은 이전의 이갈리타리아니즘을 그대로 계승한 게 아니라 안티테제로서 등장했다. 장 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1755)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의 권리 옹호>(1792)보다 시기적으로 앞섰고,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1789)은 <여성과 시민의 권리선언>(1791)보다 앞섰지만, 단순히 시기적으로 앞섰다는 사실만으로는 파생관계라고 볼 수 없다. 계몽 시대와 그 이후에 이갈리타리아니즘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던 지식인들은 지속적으로 여성을 평등의 대상에서 배제해왔으며, 페미니스트들 역시 자신들을 이갈리테리안과 구분지어왔고 오랫동안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애초에 이갈리타리아니즘이라는 용어는 좁은 의미로나 '평등'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로 많이 쓰이고, 계몽 시대의 평등 사상은 이갈리타리아니즘이라고 묶이기도 하지만 계몽주의 일반이나 자유주의와 함께 묶여서 설명되는 경우가 더 흔하다. 이러한 역사적 전개과정과 통용되는 언어 사용을 고려했을 때 페미니즘은 이갈리타리아니즘과 별개의 범주로 묶는 것이 타당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된다. 생각을 서로 공유하거나 영향을 받은 지점이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아나키즘의 탄생에 자유주의의 영향이 있었을지라도 아나키즘이 자유주의의 파생 개념인 건 아니다. "페미니즘이 이갈리타리아니즘에서 파생되었다"라고 주장하는 건 온전히 맞는 얘기라고 볼 순 없을 것 같다.
다만, "페미니즘이 이갈리타리아니즘에서 파생되었는가"라는 논의는 "페미니즘을 젠더 이갈리타리아니즘으로 대체할 수 있는가"라는 논의와는 결이 다르다. 비록 페미니즘이 이갈리타리아니즘으로부터 파생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건 이갈리타리아니즘이라는 개념을 현실적인 쓰임과 과거 용례 등 언어의 사회성을 고려해서 정의내렸기 때문이다. 대체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측도 현실적인 쓰임을 주요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언어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함께 변화한다. 오늘날 말하는 이갈리타리아니즘은 젠더 평등을 포함하고 있고, 페미니즘이 과거 여권 운동의 틀을 넘어서 젠더 평등을 지향하는 운동이 되었기 때문에, 대체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대체되려면 사회적 수용과 합의가 뒤따라야 한다. 아직은 일상에서나 학계에서나 논의가 미흡하다.
5.2 # 제1파(1세대 페미니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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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멀린 팽크허스트 | 에밀리 데이비슨 | 캐리 네이션 |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
"1세대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는 원래 미국 68운동 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이 자신들을 2세대로 규정지으면서 여성 참정권 운동을 부르던 말이었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전개되었으며,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발견된 페미니스트도 포함시킨다. 주로 자유주의 페미니즘 성향이 말했지만, 동시대에 유럽에서 진행되던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21]나 사회주의 페미니즘도 포함시킨다. 이들은 법적 수단을 통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얻으려 했으며 여성의 자유와 선택을 중시하였다.
존 스튜어트 밀과 그 아내 헤리엇 테일러 밀은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근간으로 하여 페미니즘 사상을 한층 더 이론적으로 강화시켰다. 울스턴크래프트와 밀 부부는 뒤이은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형성에 기여하였다.
18세기부터 20세기 초에 걸쳐서는 참정권, 취업권, 재산권 등 법률적 권리의 획득과 관련된 투쟁이 이어졌다. 특히 1890년에서 1920년 사이에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일어났던 여성 참정권 운동이 핵심이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에멀린 팽크허스트였다. 그는 1903년 여성 참정권 도입을 목표로 여성사회정치연합(WSPU)를 창립했다. 《서프러제트》는 이를 다룬 영화이다. # 이 움직임들은 당시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으나, 결과적으로 여성의 권리가 많이 신장되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최초로 여성의 투표권을 보장한 나라는 1893년 뉴질랜드였고, 1920년 미국에서도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해방 이후 실시된 첫 선거(1948년)부터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되었다.
여성참정권론자들의 경우에도 남성성에 우월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여성들이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남성과 같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경향은 20세기 중반의 2세대 페미니스트들에게 비판받게 된다.
개중에는 비백인 여성과 여성 노동자를 차별하는 등 친제국주의 성향의 여성 운동가도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비판받았다.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렇게 말했다. "남성 특권에 맞선 투쟁에서는 사자처럼 행동하는 부르주아 여성들은 대부분 참정권을 얻고 나면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반동 진영의 유순한 양이 될 것이다."#참조
심지어 에멀린 팽크허스트조차도 장녀 크리스타벨 팽크허스트와 함께 국가를 위한다는 이유로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일에 앞장섰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팽크허스트 가의 반(反) 볼셰비키 성향이 강해져 1926년 에멀린-크리스타벨 모녀는 파업을 분쇄하기 위해 여성특별경찰부대에 자원 입대했다. 성병의 유해성을 이유로 남성 순결을 주장하는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삼녀 아델라 팽크허스트는 훗날 파시즘에 심취하여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일본 제국을 옹호하다가 구금되기도 했다.[22]
한편 미국에서는 여기서 페미니스트들이 기독교 근본주의와 결탁해 금주법 제정 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캐리 네이션은 첫 남편이 알코올중독과 도박으로 사망하자, 금주, 금연, 금오락 운동을 주도했고, 보수주의 페미니즘 단체 '여성기독교금주연맹'을 이끌었다. 술집을 폐쇄하기 위해 직접 도끼를 들고 다니며 술집과 오락실, 경마장을 때려 부수다가, 30번이나 체포되었다. 결국 미국에서는 1920년 여성의 참정권 부여와 함께 금주법이 시행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금주법 시행 이후 범죄가 폭증하자 금주법 반대 연합 AAPA를 중심으로 금주법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여성 정치인 폴린 세이빈은 1929년 금주법을 반대하는 여성 단체 WONPR를 결성하기도 했다.
영국의 로버트 오언(1771~1858)은 자본주의의 한계를 인식하고 협동조합 같은 대안 공동체를 통해 사회변혁을 꿈꿨던 유토피아 사회주의 사상가였다. 그는 여성의 재생산 기능(가사노동, 양육과 교육 등)을 공동체 전체의 책임으로 확대하려고 노력했다. 윌리엄 톰슨(1775~1833)은 오언주의의 여성관을 확장시켰다. 톰슨이 1825년에 저술한 <인류 절반을 위한 호소(Appeal of One Half the Human Race)>에서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내에서 여성의 재생산은 필연적으로 남성에 대한 경제적 종속을 초래한다고 보았다. 만약에 협동조합에 기초한 사회주의로 이행한다면, 여성의 경제적 독립이 보장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오언주의자들은 여성 노동자에게 가사노동과 임금노동이라는 이중부담을 지우는 걸 거부하고 결혼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기도 했다. 다만, 성적 자유에 관해서는 일치된 견해가 존재하지 않았다. 여성도 남성처럼 합리적으로 정념을 다루고 출산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성욕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오언주의자도 있는 반면에, 여성이 남성보다 경제적으로 취약해 연애 시장에서 불리하다는 이유로 자유 연애에 반대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프랑스의 생 시몽(1760~1825)도 자본주의의 한계를 인식하고 상호협력에 기초한 노동자연합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게 하여 무산계급을 해방시키려 한 유토피아 사회주의 사상가였다. 생 시몽 사후에 그의 추종자 앙팡탱(1796~1864)은 진정한 해방을 위해선 정치적 혁명만으로는 불충분하고 전통 윤리를 대체하는 도덕 혁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가톨릭이 여성성을 억압해왔다고 봤고, 여성의 감정적인 본성이 남성의 이성적 본성을 보완하는 사회를 꿈꿨다. 성적 자유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보았다. 앙팡탱을 위시한 생시몽주의자들은 점점 종교적 성격을 띠어 여성 메시아의 도래를 굳게 믿고 종교공동체를 조직했다. 그러나 1832년 앙팡탱이 풍기문란죄(집회조례 위반)로 투옥된 걸 계기로 이들 조직은 해산되었다. 앙팡탱의 여성관은 당시로서는 진일보한 면도 없진 않았으나, 오늘날의 관점으로 봤을 땐 '여성숭배'에 해당되어 비판의 여지가 많다.
프랑스의 샤를 푸리에(1772~1837) 역시 유토피아 사회주의 사상가로서, 이성과 도덕에 기반을 둔 문명 사회 전반을 부정하고 '정념'의 해방을 부르짖었다. 그는 시장경제는 빈곤을 양산한다는 이유로, 일부일처제는 성욕을 억압한다는 이유로 인민의 욕구 충족을 방해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모성 이데올로기는 여성의 정념, 즉 사회적 능력과 성욕을 억압한다. 푸리에는 여성 해방을 사회진보의 척도로 삼았으며,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보장하고 여성의 성욕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족제도가 변화할 것을 주장했다.
5.3 # 제2파(2세대 페미니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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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드 보부아르 | 베티 프리댄 | 케이트 밀레트 |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
1960년대~1970년대에 걸친 운동으로, 소위 래디컬하다 일컫는 래디컬 페미니즘과 에코 페미니즘이 그 중심이 된다. 단순히 일할 권리만이 아니라 직장에서의 평등. 그리고 남성 유명 대학에 입학할 권리, 임신중절 합법화와 시민권 운동의 일환으로 행해진 운동이다. 차별적 관행뿐만 아니라 가부장제 철폐를 목표로 하는 래디컬 페미니즘 계열이 주가 된다. 근세기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여성우월주의도 2세대 페미니즘에서 갈라져 나왔다.
1세대 페미니즘의 성취로 여성참정권 보장 등 법적 기본권이 확대되었고, 세탁기, 분유, 피임약의 발명은 여성들이 짊어지고 있던 이전까지의 가사노동이나 출산의 부담을 경감시켰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사회구조가 지속되고 있었으며, 68혁명 이후의 세대들은 여기에 의문을 갖고 새로운 페미니즘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사상사적으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1949), 베티 프리댄의 <여성성의 신화>(1963), 케이트 밀레트의 <성 정치학>(1970), 캐럴 해니쉬의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1969),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블랙 파워 다음은 여성의 해방>(1969),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1970)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1963년 미국의 프리랜서 작가였던 베티 프리댄(1921~2006)은 <여성성의 신화>[23]를 출간해 페미니즘의 제2파를 촉발시켰다. 여기서 프리댄은 많은 여성들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면서도 주부로서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모성으로 대표되는 여성성이 과도하게 찬양받는 사회를 비판했다. <여성성의 신화>는 큰 반향을 이끌어 1963년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천명한 임금평등법이 제정되는 데 영향을 미쳤으며, 프리댄은 '현대 여성 운동의 어머니'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후 프리댄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 성향의 사회 운동을 벌였다. 1966년에는 전미여성기구(NOW)를 창립하여 여성권리장전을 채택하였는데, 이 단체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여성주의 단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968년에는 처음으로 코넬 대학교에 여성학 강좌를 개설하는 데 공헌했다.
1967년 슐라미스 파이어스톤(1945~2012)이 뉴욕급진여성모임 NYRW를 창설했는데, 이 단체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표방했다. 이들은 성차별적이라는 이유로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에 항의하는가 하면, 전통적인 여성상을 상징하는 마네킹을 땅에 묻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급진-페미 계열의 단체 '레드 스타킹'은 낙태 금지 법안을 폐지할 것을 주장했다. 파이어스톤은 1970년 <성의 변증법>에서 프로이트, 라이히, 마르크스, 보부아르 등의 사상을 급진주의 페미니즘으로 종합하여, 여성학의 토대를 형성했다. 1970년 케이트 밀럿(1934~2017)은 <성의 정치학>을 출간해, 가부장제를 분석했다.
여기서 '급진'이란 과격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여성 억압의 근원을 파헤친다는 의미이다. 물론 한국에선 진짜로 과격하지만 이들은 제도적 변화를 강조하는 리버럴-페미를 강하게 비판하고, 제도의 기저에 깔려 있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급진주의의 입장은 관점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뉘는데, 파이어스톤은 남성 지배가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구성되었으며 여성 해방을 위해서는 과학기술을 통해 여성이 성을 스스로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케이트 밀럿은 문화적 차원을 강조하여 가부장제 문화가 남성 지배를 확산시키기 때문에 가부장제를 해체할 것을 주장했다.
급진주의 경향은 68세대 젊은층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으나, 7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퇴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캐서린 맥키넌(1946~ )과 안드레아 드워킨(1946~2005)은 급진주의를 극단적으로 적용하여 사회의 모든 폭력적인 것들을 가부장제나 강간 문화와 결부짓기 시작했다. 특히 포르노, 성매매, 그리고 BDSM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고, 80년대 안티-포르노그래피 운동을 주도했다. <포르노그래피: 여자를 소유하는 남자들>(1981)에서 드워킨은 "포르노는 이론, 강간은 실천", "결혼이란 강간을 정당화하는 제도" 등의 언급을 했으며, 문예 비평에서도 남성 작가들이 강간과 성폭력을 에로티시즘으로 긍정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기독교 우파와 결탁하여 음란물을 규제하는 법을 제정하는 데 힘쓰기도 했다. 이들은 미네폴리스주와 버지니아주에서 반 포르노법을 제정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와 급진 리버테리안 페미니스트들이 FACT(Feminist Anti-Censorship Taskforce, 페미니스트 반 검열 대응본부)를 표현의 자유 운동가들가 함께 세워 연방대법원에 위헌 소송을 하였고, 이에 대법원이 받아들여 미국에서 반 포르노법은 폐지된다.[24]
맥-드워킨주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 진영으로부터 "도덕적 권위주의이자,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라는 이유로 공격 받았을 뿐만 아니라, 게일 루빈(1949~ ) 등 급진주의 페미니즘 진영 내부에서도 안티-포르노 운동은 비판받았다. 엘렌 윌리스의 저서 <여성 운동은 친-섹스인가?>(1981)에서는 섹스가 남성 지배의 수단이 아니라 여성을 위한 오락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고, 포르노그래피는 다양하며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관건이라고 역설했다. 친-섹스 페미니스트들이 포르노의 남성편향성을 부정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이것 역시 여성 억압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그 징후이고, 안티-포르노 운동은 본말전도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친-섹스주의자들은 페미니즘 포르노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러한 대립은 가수 마돈나를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으로 예를 들 수 있다. 친-섹스주의자들은 마돈나가 여성의 성을 주체적으로 표현하는 페미니스트라고 본 반면에, 맥-드워킨주의자들은 마돈나가 남성우월주의를 선전한다고 분노했다. 마돈나의 누드집 <섹스>(1992)가 발매되었을 때는 "마돈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노출이 심한 여자다. 사람들은 마돈나의 몸에 대해 자기 배우자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이렇게 여성주의 성 전쟁을 거치면서 2세대 페미니즘은 내부 갈등을 빚으며 퇴조하였고,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부활하게 된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여성 억압의 원인을 자본주의의 문제로 보았던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과 그 원인을 남성 지배의 문제로 보았던 급진주의를 절충한 사조였다. 또한 페미니즘 외부에서도 페미나치, 포스트 페미니즘이라는 신조어가 생기는 등 대중이 페미니즘에 질려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사회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 역시 하향세를 걸었다. 대신에 80년대에는 페미니즘이 여성학이라는 이름으로 학계에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운동권 측에서는 여전히 학계의 남성편향성이 심하기 때문에 주류편입에 따른 보수화와 타협을 우려했다. 그러나 여성학은 운동으로서의 언어를 학문으로서의 보편 언어로 정제하여 페미니즘의 깊이를 한층 더 난해 심오하게 만들어주었다.
5.4 # 제3파(3세대 페미니즘) #
주디스 버틀러 |
90년대 들어 새롭게 등장한 페미니스트들은 여성학과 퀴어이론의 영향으로 2세대와는 선을 긋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했다. 이들은 2세대에 비하면 정치적 운동으로서의 성격은 약했지만, 대신에 일상의 페미니즘을 주장했다. 정신분석학, 포스트 모더니즘, 생태주의 등 다양한 학문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페미니즘의 새로운 흐름을 창출해냈다. 그리고는 어떤 틀에 자신을 맞추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삶에 페미니즘을 맞췄다.
제2파에 이어 보다 여러 분파로 나누어지게 된다. 이 시기부터 '여성주의'의 범위에서 벗어나 서구권, 백인, 중산층 여성 등의 권리뿐만 아니라 제3세계, 제 3, n개의 성 등의 "상호교차성" 담론에 도달하였다. 즉 제2파에서 전제되어왔던 소위 '여성문제'라는 것이 대체 어디서 어디까지로 규정되는지 의문이 일었고, 학계의 논의가 진전됨에 따라 여성과 여성문제를 일반화된 범주로 인식하는 것은 오류라는 합의에 이른 것이다. 예컨대 같은 여성이라도 무급가사노동에 종사하는 30대 히스패닉 여성과 고소득 전문직을 가진 50대 백인 여성의 삶의 양식은 크게 다르다. 이들이 겪고 있는 삶의 문제를 모두 '여성문제'라는 프레임에 끼우는 것이 아니라 n개의 성, 내지는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 등의 개념을 통해 좀더 넓은 범위에서 성 문제에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 현대 페미니즘 학계의 주된 경향이다.[25]
n개의 성에는 생물학적 남성과 그 속의 수많은 젠더, 섹슈얼리티가 모두 포함된다. 요컨데 현대 페미니즘은 여성만이 아닌 다른 소수성에 대해서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상호교차성 페미니즘, 트랜스 페미니즘, 아나코 페미니즘, 우머니즘과 같은 다른 소수자와의 연대, 여성내에서의 차별을 주장하거나 아나키즘 등 사상을 결합한 페미니즘이 3세대 페미니즘에 들어간다. 립스틱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도 3세대 페미니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근래 한국에서는 래디컬 페미니즘의 급진성과 과격성에 지친 일부 이들이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을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현대 선진국에서는 래디컬 페미니즘의 대안, 신좌파와 페미니즘의 결합을 주장하는 이들과 인권을 키워드로 삼은 이들이 주가 되고 있다. 물론 래디컬 페미니스트이면서도 성소수자와 연대하는 TIRF도 적지 않지만, 전자가 훨씬 높다.
5.5 # 제4파(4세대 페미니즘) #
4세대 페미니즘, 혹은 4물결 페미니즘(4th wave feminism)은 2010년대부터 페미니즘 운동 내에서 새로이 생겨난 개념으로, 2011년에 제니퍼 바움가드너가[26] 맨 처음 제시하였으며, 키라 코흐랜이 2013년에 본격적으로 개념화했다.[27] 단 용어의 정의와 범위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활동하는 것이 특징이며, 어떤 페미니즘을 주장하는지는 이용자마다 차이가 있다. 3세대에 비해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하는 특징이 있다.
6 분파
페미니즘은 범위가 매우 넓으며 폭넓은 사상답게 수많은 분파가 있어 페미니즘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단 그 넓은 범위안에서도 지지가 많은 분파도 있는 반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분파도 있는 등 분파별 사회적 노출과 영향력에 격차가 존재한다. 하기된 분파들은 서로 공유하는 이론도 있고 공유하지 않는 이론도 있기 때문에 특정 분파의 페미니즘이라고 해서 다른 페미니즘과 완벽히 분리된다고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28]
앤 카플란은 페미니즘을 자유주의 페미니즘, 급진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29],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으로 나누었다. 여기에 로즈마리 통은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추가했으며, 이들 다섯 가지 분파는 대부분의 여성학 교재에서 공통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 밖에도 보수주의 페미니즘, 레즈비어니즘, 에코 페미니즘 등으로 나뉜다. 흔히들 페미니즘이 진보적 사상이라고 불리지만, 스스로를 보수적인 페미니스트들라고 자칭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여성 인권 신장을 분석하는 다른 학문이나 문제에 접목하는 과정에서도 여러가지 분파가 갈리게 되었다. 즉 아나키즘처럼 좌우 관련이 없는 사상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한국에서는 진보 성향의 단체들이 리버럴 페미니즘 혹은 그와 유사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정당 중에서는 정의당, 노동당, 민중당 등에서는 온건한 페미니즘을 추구하고 있으며, 더불어민주당 내에도 관련된 인물이 몇몇 존재한다. 정의당에선 참여계와 진보너머를 제외하곤 여기에 해당한다.[30] 노동당은 리버럴 페미니즘에서 래디컬 페미니즘까지 페미니즘의 범위가 넓다. 개인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민중당에선 청년민중당과 여성-엄마민중당이 여기에 해당한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진선미, 정춘숙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녹색당이나 사회변혁노동자당 학생위원회와 사회운동위원회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종종 녹색당은 급진주의 페미니즘과 생태주의가 결합된 에코 페미니즘을 부르짖는다. 그 외에도 여성시대, 메갈리아, 워마드도 여기에 속한다.
우리미래는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에 해당한다. 트페미, 쭉빵카페 등은 사실상 메갈 2중대라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지만 현재는 메갈-웜과 달리 남성 성소수자, 트랜스젠더와의 연대를 주장하거나 래디컬을 거부하는 이들도 상당수 있다.[31] 이는 여성시대-메갈리아-워마드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전체적 분위기에서 나온 기조라는 설도 있다. 한편 소수자 운동권에서도 주로 교차 페미니즘같이 대안적인 방안들을 모색하곤 하지만,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은 세력도 있다.[32]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은 볼셰비키그룹을 비롯한 극좌파 사회주의 운동권 조직들과 법외정당(즉, 법적 지위는 노동운동 단체임)인 사회변혁노동자당의 학생위원회와 사회운동위원회를 제외한 나머지 당원들이 지지하고 있다. 이들은 페미니즘과 사회주의가 양립 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자신들의 사상이 페미니즘이라 불리는 것을 거부한다.
6.1 자유주의 페미니즘 (리버럴 페미니즘)
자세한 내용은 자유주의 페미니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페미니즘의 시초이고 본래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이쪽을 뜻했으나 의미가 점차 아래 문단의 의미로 변화하였다.
6.2 래디컬 페미니즘 (급진적 페미니즘)
자세한 내용은 래디컬 페미니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현재 '대한민국의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대부분 이쪽을 말한다.
6.3 상호교차성 페미니즘
자세한 내용은 상호교차성 페미니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모든 여성이 겪는 성차별은 같지 않다는 페미니즘으로, 이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이 여성들 간의 평등에도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성 성소수자와 트랜스여성/남성을 포용하는 것은 TIRF와 공통점이지만 이들은 성소수자를 우리와 같은 약자로써 생각하고 연대하자는 쪽에 가까운 반면, 후자는 성소수자를 공공의 적인 가부장제와 싸우는 동료로써 연대하자는 쪽에 가깝다는 차이점이 있다.
6.4 트랜스페미니즘
자세한 내용은 상호교차성 페미니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6.5 사회주의 페미니즘
자세한 내용은 사회주의 페미니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6.6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여성해방론)
자세한 내용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6.7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탈근대주의적 여성주의)
포스트모더니즘에 기반을 둔 페미니즘이다. 대표적인 사상가로는 주디스 버틀러가 있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 'n개의 성' 담론이나 '옷장' 담론으로 유명하다. 모든 인간은 독자적인 젠더를 갖고 있다고 보며, 여성과 남성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는 것은 부조리하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퀴어하다". 여성성이나 남성성 같이 정체성으로 성을 규정하는 것은 결국 실재하는 것이 아닌 이미지로 덮어씌우지는 것이라고 본다. 또한 가부장제나 자본주의 등의 억압에 대해서는 실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는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활동가들이 다른 페미니스트들과는 다르게 화장이나 옷차림을 '일부러' 더 신경쓰는 식의 방식으로 성에 관련된 이데올로기들을 조롱하는 실천을 하게 만든 기반이 된다. 이런 해결방식은 장 보드리야르 식의 해결방식과도 일맥상통하는데 의도는 어쨌든 남성사회에 순응하라는 식으로 비추어져서 다른 페미니스트들의 반발을 사기 딱 좋다. 항목참조.
<메두사의 웃음>(1975)에서 '여성적 글쓰기'를 주장했던, 프랑스의 작가 엘렌 식수(1937~ )도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에 속한다.
벨기에의 뤼스 이리가레(1930~ )는 <하나가 아닌 성>(1977)에서 정신분석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페미니즘에 접목시켰다. 쥘리아 크리스테바(1941~ ) 역시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에 속한다.
6.8 보수주의 페미니즘
자세한 내용은 보수주의 페미니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6.9 스피리추얼 페미니즘
이 페미니즘은 여성성에 자연과 연결되는 신비성이 있다고 하는 생각으로,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사회사상이라기보다는 종교나 오컬트 성이 강한 것이다. "고대에 모권제 사회에서 부권제 사회로의 이행은 초자연적인 원리에 따른 것이었다"는 등의 주장이 스피리추얼 페미니즘이다. 오리엔탈리즘의 여성 버전이란 비판을 받는다.
6.10 포스트콜로니얼 페미니즘
2차 세계 대전 이후 많은 식민지가 독립하면서 식민지라는 특수환경을 고려하여 여성 억압을 보는 관점. 국내에서는 주로 위안부(일본군 위안부)[33], 양공주(주한미군 위안부) 등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민족주의 계열 활동가들이 페미니즘을 공부할 때 주로 택하는 관점이기도 하다.
6.11 에코 페미니즘 (생태여성주의)
에코 페미니즘(ecofeminism)은 페미니즘에 생태주의를 결합시킨 사상이다.
생태주의(ecologism)는 환경 문제를 제도적 차원에서만 접근했던 환경주의를 거부하고 사회 전체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한 사상이다. 이들은 환경 문제를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의 문제와 연관지었으며, 생태 위기가 인간의 자연 지배와 착취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연 해방을 추구했다. 자연 억압의 원인을 무엇으로 보는지에 따라 생태주의는 분파가 나뉘었다. 심층생태주의는 인간중심적 사고를 문제삼았고, 사회생태론자는 국가의 권위주의 구조를 문제삼았으며, 생태사회주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문제삼았다. 반면에, 에코 페미니스트들은 자연이 여성성과 연관되어 왔기 때문에 자연 억압 역시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자연 해방과 여성 해방을 같은 맥락에서 파악했다.
여성이 사회에서 남성들에 의해 무시되고 억압되는 사회현상을, 인간이 자연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려 하고 자연 파괴를 일삼는 사회현상과 같다고 주장하였다. 즉 사회에서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또한 여성은 남성들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동일시하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모두 생태주의와 여성주의는 연관된 것이라 주장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생태여성주의는 양성에 대한 차별의식은 이원론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모든 관점에서 이원론적 관점을 배제한다. 또한, 단순한 이성이 아닌, 극단적 이성주의도 반대하며, 특히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주의에도 반대한다.
생태여성주의는 인간과 자연을 통합시켜 똑같은 권리를 누릴 존재로 인식하였다. 또한, 생태여성주의는 기존의 여성 운동과 환경 운동에 대한 수단 제시를 새롭게 제시하였는데 가령, 여성 운동은 사회적으로 남성의 권위와 거의 '똑같아질 정도'의 권위향상만으로는 만족해서는 안 되며,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완전히 없애고, 남성과 여성과의 양성평등 인식을 후대에서 널리 전할 수 있도록 여성 운동은 항상 직접적인 행동과 파격적인 권위향상을 조건으로 내걸어야 하며, 환경 운동 또한, 고액의 보수를 들여 만든 친환경 사업일지라도 그것은 환경 운동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생태라는 것은 애초에 물질적인 것으로 살 수 없기 때문에 환경 자체를 보존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환경 운동에 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설사 그것이 미미하게 지구 생태에 영향을 주는 친환경적인 정책 및 설계일지라도, 생태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존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만약에 이러한 여성 운동이 일어나지 못할 경우 여성은 언제까지 사회적으로 남성보다 권위가 아래일 수밖에 없으며, 환경 운동 또한 기존의 방향으로 고수하여 실행한다면, 서구권처럼 단순한 오염물질 폐기시설 설치, 고액의 친환경설비 건설로만으로 만족하는 본질없는 환경 운동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34]
이에 대한 비판으로 캐런 워런의 비판이 있다. 그는 인디언 수 족의 예시를 들어 이를 반박했다. 수 족은 매우 자연친화적인 부족으로 위의 생태주의에 충실히 따르는데 정작 여성인권은 최악을 달린다.[35] 이것을 두고 엘슈테인은 생태주의와 여성주의가 항상 연결되는 것은 아님을 지적했다. 그리고 자연-여성을 연결시키는 것에 대해 가부장제에 의해 규정된 여성성을 진실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오히려 여성억압을 조장한다고 래디컬 페미니스트에게 비난을 받고 있다.[36]
에코 페미니즘은 다시 두 개의 부류로 나뉜다. 사회적 에코-페미는 여성과 자연의 연관성이 서구 이분법적 사고에서 유래했다고 보고 자연 해방과 여성 해방을 동시에 진행했다. 반면에 컬추럴 페미의 영향을 받은 문화적 에코-페미는 자연과 여성은 합치되기 때문에 이러한 연관성을 강화시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주장했다. 메리 데일리나 수잔 그리핀은 후자에 속했다.
이 운동은 1970년대 시작으로 1990년대 부터 여성 운동의 큰 폭을 차지하고 있다. 반다나 시바로 인해 유명해졌다. 반다나 시바는 칩코(Chipko) 운동을 통해 에코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 초반에 신학자 현경의 저서 <결국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를 통해서 알려졌다. 원래 1세대 페미니스트에 해당되는 현경은 진보적인 성향의 신학대인 유니언신학대에서 아시아 여성 최초로 종신 교수가 되었다. 특이하게도 기독교 신학자이면서도 불교의 영향을 받은 범종교적인 성향이 강한 페미니즘이며, 모성을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최근 우리나라에서 주로 알려진 래디컬 페미니즘과는 사상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극단적인 대립을 피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라면 논란을 일으킬 만한 표현도 있다. 예를 들면 이슬람 여성들은 맞서 싸우려 드는 서양의 페미니즘보다는 한국의 기생 문화에서 배울 게 더 많다고 얘기해라든가. 링크
6.12 성적 차이 페미니즘
성차(sexual difference)의 페미니즘이라고도 불린다. 벨기에 출신의 프랑스의 여성학자 뤼스 이리가레에 의해 주창된 분파이다. 대충 컬추럴 페미니즘에서 주장한 남성-여성간의 특유한 차이를 인정하되 컬추럴 페미니즘의 다소 나이브한 면들을 제거하고 대신 그 부분들을 언어학적, 사회구조적, 정신분석학적 연구로 대체했다. 느낌상 컬추럴 페미니즘 + 사회주의 페미니즘 정도로 보면 된다. 이리가레의 이론은 첫째, 남성성을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둘째, 여성성을 새롭게 발견해내고, 셋째, 여성과 남성 사이의 간주체성을 탐구하는 데로 나아간다. 성적 차이, 혹은 성적 차이의 윤리라고 할 때는 이 셋째 측면에 강조점을 두는 것인데, 거기에 이르기 위해서는 여성성의 새로운 발견도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이 여성성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지점이 성적 차이 페미니즘과 컬추럴 페미니즘을 나누는 부분이기도 하다. 컬추럴 페미니즘이 기존에 있는 여성성을 긍정하는 경향을 지니는 반면, 이리가레는 기존의 여성성을 남성에 의해 규정된 여성성이라고 보아, 여성에 의한 새로운 여성성의 발견을 강조한다. 이리가레의 주요 저서로 《하나이지 않은 성》, 《나, 너, 우리》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사회진보연대와 전국학생행진 정도가 성적 차이 페미니즘을 따르는 편이며, 여성문화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여/성이론>에서도 종종 이리가레의 이론이 소개된다.
6.13 다윈주의적 페미니즘
찰스 로버트 다윈이 1859년 출간한 '종의 기원' 이라는 책에서 비롯된 페미니즘. 당시 다윈이 제시한 성 선택은 '암컷은 알을 만들거나 임신 등으로 에너지를 더 많이 소비하므로 보통 암컷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수컷은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심지어는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해 먹이를 물어다주고 갖은 공을 들여 집과 둥지를 지어주기까지 한다.'는 등의 사회적으로 매우 파격적인 내용 때문에 거의 100년 가까이 묻혀 있었던 학문이었다. 한 때 크게 불거졌던 진화론 및 진화심리학과 여성학의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6.14 흑인 페미니즘(우머니즘)
복합문화 페미니즘의 분파이기도 하며 '블랙 페미니즘'이라고도 한다. 마틴 루서 킹과 맬컴 엑스가 한창 활동하던 무렵에 태동하였으며 미국의 흑인 시인 앨리스 워커에 의해 제시된 분파이다. 1960년대 당시 주류였던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철저히 중산층 이상 백인 여성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들이었다.[37] 그들은 심지어 "백인 여성보다 열등한 흑인 남성"이 투표권을 먼저 얻은 데 대해 공공연하게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당연히 그들과는 성장 배경부터 다른 흑인 여성의 공감을 얻을 수는 없었다.
우머니즘 계열에서는 미국에서 흑인여성에게 행해지는 억압을 예로 든다. 그들은 미국에서 흑인여성은 먼저 백인여성에게 "흑인"으로서 억압받고 과거 인종차별에 대한 복수로서 백인여성에 대해 성폭행을 자행하는 흑인남성들이 백인여성을 흑인여성보다 더 상위인 것으로 봄으로서 일종의 도구로 취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머니스트들은 이 사례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이 시대의 문제는 성문제에만 국한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인종간, 계급간의 문제들도 성문제와 차별됨이 없이 동등하게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 담론이 인종 차별을 당하는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6.15 이슬람 페미니즘
자세한 내용은 이슬람 페미니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6.16 아나카 페미니즘
아무도 지배받지 않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여자와 남자가 무조건 똑같거나 평등한 곳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이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의 틀을 만드는 기준인 세상 말이다. 누구나 타고난 모습 그대로 살 수 있는 세상에서, 평화와 가능성의 세상에서 산다고 상상해보라. 페미니즘 혁명만으로는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없다. 인종차별과 계급 엘리트주의, 제국주의도 함께 종식해야 한다. 하지만 페미니즘 혁명을 통해, 우리는 여자로서 그리고 남자로서 완전한 자기실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의 공동체를 건설하고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며 자유와 정의를 향한 우리의 꿈을 실현하고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진리를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걸음 더 다가오라. 페미니즘이 당신과 우리 모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는지 지켜보라. 더 가까이 다가오라. 그러면 더 잘 보일 것이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벨 훅스 -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사회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더 많은 시간제 일자리와 수평적인 조직적 협력으로 노동의 구조가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남성과 여성의 노동의 차이는 폐지되어야 한다. 아이들을 돌보고 간호하는 것은 여성만큼이나 남성도 신경 써야 한다.권력을 가진 여성과 여성 총리는 대다수의 여성과 끝까지 함께하지도 않을 것이고, 억압을 철폐하지도 않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와 부르주아 페미니스트가 여성 해방 투쟁을 오도誤導하고 있다. 대부분의 여성들에겐 아나키즘 없이는 어떠한 페미니즘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아나르카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력이나 여성 총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 없는 조직, 총리가 없는 조직을 의미한다.
여성에 대한 이중의 억압은 이중의 투쟁과 이중의 조직을 요구한다. 한편으로는 페미니스트 연합을, 다른 한편으로는 아나키스트 조직들을 말이다. 아나르카 페미니스트는 이 두 조직에서 하나의 연결점을 형성한다.
진지한 아나키즘은 반드시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가부장적 반쪽짜리 아나키즘일 뿐 진정한 아나키즘이라고 할 수 없다. 아나키즘에서 페미니즘의 특성을 확보하는 것이 아나르카 페미니스트들의 과제이다. 페미니즘이 없다면 아나키즘도 없을 것이다.
아나르카 페미니즘의 핵심은 변화가 내일이나 혁명 이후가 아닌 바로 오늘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혁명은 영속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일상의 억압을 꿰뚫어보는 것으로 오늘을 출발하여 지금, 여기의 패턴을 부수기 위한 일들을 해야만 한다.
우리는 어떤 지도자에게도 우리가 원하는 것과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정할 권리를 위임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행동해야만 한다. 우리는 개인적인 문제에서, 순수한 여성의 문제에서 다른 여성들과 함께, 그리고 공통적인 문제에서 남성 동료들과 함께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아나르카 페미니스트 선언 - 노르웨이 아나키스트 연맹
아나카 페미니즘(Anarcha-feminism[38])은 아나키즘과 페미니즘을 결합시킨 사상이다. 그래서 '무정부주의적 여성주의'라고도 하지만, 최근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로 번역하는 데 문제 제기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탈권위주의, 반강권주의, 비권력주의' 등으로 번역하거나 원어 그대로 아나키즘으로 음차하는 것이 추세이다. 따라서 무정부주의적 여성주의라는 표현은 지양하는 것이 좋다.[39]
자유연애를 주장하며 국가의 권력을 가부장제의 연속성으로 보며 이를 폐지하기 위한 계급투쟁을 주장한다. 사회주의적 페미니즘과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과 유사하게 작업장에서부터의 혁명을 주장하며 여성, 남성으로 나뉘어서 싸우거나 무조건적인 평등이 아닌 서로를 존중과 사랑으로써 대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를 위해 나아간다고 주장한다.
그 특성답게 사회주의 페미니즘이나 여성해방론[40] 많이 교차되며 인종차별의 폐지, 자본주의[41]의 폐지, 국가권력의 해체, 제국주의의 종식등을 요구한다.
현 아나키즘은 대부분이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으로 흘러감에서 아나카 페미니즘은 아나키즘운동의 필수요소로써 자리잡혔으며 그 밖에도 퀴어 아나키즘등도 기본적 요소로 자리잡혔다. 사실상 아나키스트라면 모두 기본적으로 요구할 수 밖에 없는 사상이기에 현 아나키스트들은 굳이 아나카 페미니즘, 퀴어 아나키즘과 같은 것을 분리시키지 않는 편이다.
- 대표적인 사상가로는 볼테린 드 클레어(1866~1912)와 엠마 골드만(1869~1940), 루시 파슨스, 벨 훅스 등이 있다.
엠마 골드만은 리투아니아 출신의 아나키스트였다. 그는 1885년 미국으로 건너가 모든 정치 권력을 반대하는 아나키즘 운동을 벌였고, 자유연애를 신봉했다. 1919년 미국은 그를 러시아로 강제 추방했고 당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했다는 소련에 나름대로 기대를 가젔던 그녀는 미국과 다를 바 없는 권위적인 소련의 모습의 실망한 채 반 볼세비키 투쟁을 하다 소련을 떠났으며 이후 세계를 돌아다니다가 캐나다에서 사망하였다.
6.17 비만 페미니즘
자세한 내용은 비만 수용 운동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6.18 성 긍정 페미니즘
자세한 내용은 성 긍정 페미니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7 비판 및 논란
자세한 내용은 페미니즘/비판 및 논란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8 관련 여론조사
페미니즘에 대한 여론조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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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리얼미터에서 국민일보, 비영리 조사 네트워크 '공공의 창'의 의뢰로 12월 2~3일에 조사한 페미니즘 관련 여론조사임. 조사 방법을 비롯한 자세한 내용은 조사기관이나 의뢰 기관 홈페이지를 참고할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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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리얼미터에서 페미니즘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남성쪽에서는 반대가, 여성쪽에서는 지지한다는 응답이 높았다. 페미니즘 지지 이유로는 '남성중심 사회개혁'(39.9%), '여성이어서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아서'(37.2%), '남성을 혐오하기 때문에'(3.1%)순으로 나왔다. 반대 이유로는 '페미니즘이 사실상 남성혐오라서'(38.2%), '남녀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여성들의 태도'(29.9%), '고유의 문화나 가치관에 맞지 않아서'(18.3%)순으로 나왔다.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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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15F97, #315F97)"<br />{{{#ffffff '''75.4%'''}}}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15F97 30.8%, #BBBBBB 0%, #BBBBBB 52.4%, #C75252 0%)"<br />{{{#ffffff '''3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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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약자와 연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15F97 44.6%, #BBBBBB 0%, #BBBBBB 99.2%, #C75252 0%)"<br />{{{#ffffff '''22.3%'''}}}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C75252, #C75252)"<br />{{{#ffffff '''6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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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29세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15F97 42.6%, #BBBBBB 0%)"<br />{{{#ffffff '''21.3%'''}}}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BBBBB 30.2%, #C75252 0%)"<br />{{{#ffffff '''34.9%'''}}} | ||||
30세~34세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15F97 37.2%, #BBBBBB 0%)"<br />{{{#ffffff '''18.6%'''}}}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BBBBB 48.6%, #C75252 0%)"<br />{{{#ffffff '''25.7%'''}}} | ||||
35세~39세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15F97 28.6%, #BBBBBB 0%)"<br />{{{#ffffff '''14.3%'''}}}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BBBBB 57.6%, #C75252 0%)"<br />{{{#ffffff '''2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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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한국리서치에서 12월 6~16일에 조사한 페미니즘 관련 여론조사임. 조사 방법을 비롯한 자세한 내용은 조사기관이나 정책기획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할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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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리서치에서도 페미니즘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20~30대 한정으로 조사했으며 그 결과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 혜화시위 지지는 성별차이가 크게 나타났다.
페미니스트 정체성은 대해서는 여성이 더 높게 나왔으나 30대에서는 성별차이가 크지 않았다.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을 세부적으로 보면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 '남성혐오 항목', '페미니스트는 공격적', '페미니즘은 약자와 연대', '페미니즘은 정당한 요구' 항목에서 모두 성별차이가 크게 나왔다.[42]
'혜화시위'와 '미투운동' 지지항목에서도 성별차이가 크게 나왔는데 여성은 '혜화시위'와 '미투운동'지지 모두 70%가 넘은 반면(혜화 78.1%, 미투 88.1%), 남성은 두 항목의 차이가 크게 나타났다.(혜화 28.7%, 미투 56.7%)
여성혐오와 여성에 대한 차별의 심각성에서는 여성(혐오 61.1%, 차별 89.0%)이 남성(43.4%, 45.8%)보다 높게 나왔고, 남성혐오와 남성에 대한 차별의 심각성에서는 남성(혐오 68.0%, 차별 70.1%)이 여성(58.5%, 54.7%)보다 높게 나왔다. 네 항목 모두 19세~24세에서 성별차이가 가장 크게 나타났다. 특이사항으로는 '남성혐오의 심각성' 항목에서 25세~29세에서 유일하게 여성(68.2%)이 남성(67.2%)보다 남성혐오가 더 심각하다고 동의하였다.[43]
2021년에는 재보궐선거와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거치며 페미니즘 이슈가 정치권의 화두로 등장하였는데, 한국일보의 웹조사에서 국민들의 절반 이상이 페미니즘 및 페미니스트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페미니즘·페미니스트에 거부감이 드냐"는 질문에 "동의한다"는 응답이 52.7%,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35.8%로 드러났다. 남성의 경우는 전 세대에서 거부감이 든다는 응답이 높았으며, 여성도 거부감이 든다는 응답과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팽팽히 맞섰다. 다음은 상세 조사 결과. #
- 남성: "동의한다" 62.7%, "동의하지 않는다" 29.7%
- 20대 남성: "동의한다" 77.3%, "동의하지 않는다" 16.4%
- 30대 남성: "동의한다" 73.7%, "동의하지 않는다" 18.0%
- 40대 남성: "동의한다" 65.9%, "동의하지 않는다" 23.4%
- 50대 남성: "동의한다" 51.4%, "동의하지 않는다" 40.1%
- 60대 이상 남성: "동의한다" 51.7%, "동의하지 않는다" 43.3%
- 여성: "동의한다" 42.8%, "동의하지 않는다" 41.7%
8.1 30대 이하 남성의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
사실 본인이 보수적 성향이 별로 없거나 자신의 성향중 대부분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중도진보~진보성향의 20~30대 남자들 중에서도, 페미니즘을 싫어하는 인원수가 상당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듯,[44], 10대 및 20대 남성 한정으로는 자신의 다른 사회적 쟁점에 대한 생각 및 이념과는 상관없이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또한 반감을 가지게 한 요소들은 진보권에서 훨씬 많기에 20대 남성이 보수 진영으로 기우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20대 남성의 바른미래당에 대한 지지율이 높고, 심지어 21대 총선 때 제 1야당에 투표할 의향이 있는 응답층이 17%나 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을 정도다. 특히 보수정당 전체로는 34%로(바른미래당 17%), 이는 50대 남녀와 비슷할 정도이다. 갤럽 조사,또한 2019년 3월 기준 20대 남성 한정으로 보수정당(자유,바미) 지지율이 진보정당(민주,정의) 지지율을 넘었다.(14+17>23+6) 3월 총평, 총선에서 몇 % 차이로 갈리는 지역구가 많다는 걸 고려하면[45] 민주당,정의당에겐 위험한 신호인 것이다. 심지어 3월 26일~28일 조사 결과에 의하면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34.3%, 바른미래당의 지지율이 21.3%로 절반 이상이 보수 정당으로 지지가 쏠렸다.[46] 이는 21대 총선에서도 어느 정도 반영되어서 출구조사 한정으로 미래통합당과 더불어민주당의 격차가 7.2%p 밖에 나지 않은 것으로 어느 정도 증명이 되었다.[47] 심지어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는 비교적 진보정당에 우호적인 선거결과를 자주 보여줬던 서울에서 20대 남성의 국민의힘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의 무려 3배를 넘어섰으며, 현재 페미니즘 세력의 입김으로 성교육이라는 이름의 남성혐오 및 여성 우월주의 교육을 받고 있는 10대 남성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혐오는 20대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오히려 더하다는 의견도 상당히 많다. 이대로 이들이 성장하여 본격적으로 선거권을 얻기 시작하는 2020년대 중후반이라면 표차의 격차는 더욱 더 벌어질지도 모른다.
이렇게 된 이유로는 다음 세 가지 이유가 제시되고 있다.
8.1.1 페미니즘 단체의 '남성 혐오' 선 긋기 실패
주목할만한 부분은 '페미니즘이 사실상 남성혐오라서'(38.2%) 항목인데, 이는 메갈리아가 만들고 페미니즘이 정당성을 부여했던 "미러링"이 결국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미러링 항목에도 있듯이 남성들은 미러링에 대해 "너희 하는 게 사회비판적 운동이 맞느냐, 젠더의 규정적 경계짓기를 허물려는 운동이 맞느냐"라는 물음을 던졌고,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는 미러링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하지만 주류 여성인권단체들은 이들이 하는 행위, 심지어 메갈리아와 워마드에서 행하는 범죄행위와 부도덕한 행위들도 물타기하거나 물심양면 옹호함으로써,[48] 2030대 남성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오는데 실패하게 되었다. 여성단체에 크게 관심이 없는이상 당연히 "여쭉메워 = 페미니스트, 여성인권단체 = 이들을 지원하는 꼴페미 단체"로 보일 수 밖에 없고, 이게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진 것이다.[49]
실제로, 한국에 페미니즘이 논란이 된 이후부터 전부는 아니지만 다수의 친페미니즘 언론사나 기자들은 정 반대의 극단주의 세력인 일베나 디시인사이드와 관련된 사건들에 있어서는 모든 남성에 대해 끝없이 일반화의 오류를 저질러 왔거나[50] 혹은 더 급진적인 경우 필요이상의 자극적인 문구까지 섞어가면서 남녀갈등을 부추기는 반면에, 여쭉메워 같은 자신들과 같은 진영에 속해있다고 판단되는 집단[51]이 직접적으로 심각하게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무례한 사건을 일으키면 잘못된 점을 지적하면서 고쳐나가자는 글이 아닌 대부분은 은근슬쩍 말도 안되는 변명으로 쉴드를 치거나, 검증되지 않은 교수를 데리고 와서 마치 그게 맞는 말인것 마냥 합리화하고, 남성들의 여성혐오 때문에 이런 사건이 비롯되었다고 쉴드치는 경우가 훨씬 많다. 특히 이건 진보언론에서 많이 나타나는 특징이기에 평상시 진보언론이 표출한 선민사상에 대한 반감과 겹쳐져서 진보언론을 비토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참고로 미래통합당 지지자들이 대한민국의 진보정당을 친북적이라고 주장하는 이유 중엔 보수 정당과 군부 측에서 조장한 종북몰이도 있지만, 그 당시 좌익 계열이 실제로 종북사상에 경도된 사례가 많았고, 4050대 혹은 중도층에게도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서 민주통합당이 충청도와 강원도에서 참패한 것에 민주통합당의 통합진보당, 특히 경기동부연합 끌어안기가 크게 영향을 주었다는 걸 생각하면, 페미니즘 진영이 극단적인 세력들을 배제하고 최소 5년 이상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페미니즘 = 남성혐오라는 낙인이 사라질 것이다. 실제로 종북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는 민주통합당 - 새정치민주연합 - 더불어민주당도 종북 성향의 통합진보당과의 연계 때문에 종북 딱지를 받아서 19대 총선에서 패배한 이후 종북 낙인을 벗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희석될 때까지 4~5년 정도[52] 걸렸다.
참고로 기성 정치인, 특히 진보진영의 정치인이 젊은 남성들의 안티페미니즘의 이유를 이해 못하는 것도 페미니즘을 접하게 된 관점의 차이라 볼 수 있는데, 우선 기성 정치인인 일명 586세대는 실제로 여성에 대한 차별을 많이 접하거나, 심지어 본인이 행하기도 한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아직도 여성은 차별만 받고 있다고 생각하여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것이다. 요새는 가스라이팅을 여성이 남성에게 행하는 경우도 많아졌음을 불구하고 말이다.[53]
또한 기성 정치인은 운동권 시절에 여성인권단체와 같이 연대하면서[54]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인권단체의 활동 = 페미니즘 혹은 여성인권을 신장하는 성평등적인 사상 = 페미니즘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55], 대다수의 젊은 남성들은 위에서 언급한데로 여쭉메워 = 페미니스트 = 여성우월주의자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평등을 외치는데 실상 까보면 남성혐오 성향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이 게 무슨 성평등을 외치는거냐 말같지도 않은 소리하지마라!"라는 주장에 강력한 힘이 실리고 심지어는 저 여쭉메워에서 페미니즘의 문제점만 비판했다 하면 여성혐오 단어인 흉자(흉내 자지), 명자(명예 자지), 트랜스젠더 등으로 여성을 혐오하고 있는 점 때문에 여성들 조차도 페미니즘=성평등 싫어함으로 보고 있다.
의외로 아이돌 팬덤일수록, 反페미니즘 성향이 강한 편이다. 이는 워마드의 종현, 설리 비하, 달샤벳이 바나의 여혐몰이 때문에 해체된 결정적 원인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재발굴된 것 또한 결정타였다. 아이돌 팬덤에서는 여성인권단체나 여쭉메워 등지에서 남성 아이돌을 한남이라고 비난하거나 여성 아이돌을 성상품화라고 비난하는 순간 만을 기다리고 있을 정도. A.R.M.Y만 해도, RM이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긍정 반응 한 번 보였다가 팬덤 내에서 크게 난리가 나는 등으로 상당히 골머리를 앓았기 때문에 팬덤에서는 페미니즘을 빨면서 아미라고 하면 분탕러, 어그로 취급이다. 그 외에도 트위터에서 TWICE의 팬덤인 원스 팬덤이 남성층인 것을 두고, 한 트페미가 인터뷰 하는 사나 뒤에 있는 남성들을 모자이크/블러 처리도 안 하고 그대로 올리며, "여성 연예인을 살려주세요." 등으로 뜬금 없이 여혐몰이를 했던 전적이 있고, 화사만 해도 나혼산의 여은파에서 저지른 발언들로 인해, 본진인 마마무까지 페미 그룹이라 찍혀 피해를 보는지라, 아이돌 팬덤에서 페미니즘은 팬덤을 와해하는 이익집단으로 보고 있는 편이다.[56] 야구 팬덤에서도 이미 씨발쓰지마세요 사건에서 미뤄보듯이, 페미니즘=문화혐오세력 등으로 낙인 찍혀 있다.
또한 이런 점은 젊은 남성들이 김활란[57], 나혜석, 차미리사 같은 자유주의 페미니즘 성향 페미니스트들을 페미니스트가 아닌 이퀄리스트(...) 혹은 양성평등주의자라고 잘못 생각하도록 만든 주요 원인이기도 한데, 이들의 시각에선 페미니즘은 즉 래디컬 페미니즘이고, 이들은 즉 여쭉메워과 같은 종류의 페미니스트로 봤기 때문이다. 근데 김활란은 자기 제자를 정신대에 보낸 사실도 있을 정도로[58] 래디컬 페미니스트 성향을 보인 적도 많긴 하다. 아예 19세기 이후로는 페미니즘이 대한민국에서는 혐오만 양성해낸 사상이라고 까기도 한다. 소위 페미니즘 운동가들이 그토록 주장하는 참정권은 임정 때부터 도입되었기 때문.
8.1.2 기성 정치인[59]의 선민사상과 시혜적인 태도에 대한 반감
참고로 젊은 남성의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에는 설훈 20대 비하 사건으로 대표되는 586 정치인 등 기성 정치인도 한몫했다. 즉 정치권의 페미니즘 정책을 보고 20대 남성은 "페미니즘을 깨우친 기성 정치인들이 20대 남성에게 페미니즘을 가르친다"고 생각한 것.
사실 1960년대, 아니 2000년대 초반까지는 남성들은 맨박스로 총칭하는 남성으로써 의무도 역시 컸지만, 이를 메울 만큼 여성을 갈아서 고위직에 올랐다고 말한 만큼 가부장제의 특혜를 많이 받았었다. 특히 86세대 운동권들은 심상정이 심재철의 남성우월적 행위 때문에 총여학생회를 만들었다고 증언을 한 만큼, 성폭력이나 남존여비성향이 보수주의 계열이자 현 국민의힘에 아직도 잔존하는 친박(민정계, 공화계)과 맞먹을 정도였다. 따라서 이들이 페미니즘적 발언을 한다고 해도 실제적인 젠더의식은 20대보다 못한 경우가 많다.
또한 20대 남성들이 이들에게 요청하는 것은 기본적인 남녀평등 인식 아래서 역차별하지 말라는 것인데, 이들은 오히려 남성우월적이면서도 여성차별에 부채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기에[60] "남자가 돼서 여자랑 싸우고 그러냐, 너네가 져 줘야지." 이런 마인드로 20대 남성을 대하는 경우가 많다.
1980 ~ 1990년대에 태어난 위키러들은 동네 어른들이나 학교 선생님들에게 이런말을 한번쯤은 무조건 들어봤을 것이다. 사내자식이 계집애랑 싸우면 고추 떨어진다.(혹은 남자가 여자랑 싸우면 이라고도 말하는 등 경우도 있었고.) 라고 말이다. 그래서 이 세대 남자 위키러들은 학교에서 행여나 여자애들이랑 주먹격투를 하면 주변 동성 친구들이나 사람들의 이상한 눈초리를 받게 된다는걸 경험해봤을 것이다.[61] 이는 86세대들은 남자는 여자보다 강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보호받아야 하는 약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이 유년 ~ 청소년 시절이였던 4공화국이 어떤 시대였는가? 물론 그 시대가 전반적으로 인권? 그게 뭐에요? 먹는건가요?하는 시대였지만 여자에 대한 인권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식이 낮은 시대였고 자연스럽게 그들이 유년 시절일때도 그런 사회상을 보고 자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머리가 커지는 5공화국 시기도 별 반 다르지는 않았다. 물론 그런 사회가 잘못된건 맞는데 이미 시대가 변할 만큼 변한 90년대에 들어서도 여자를 남자와 싸움이 성립이 안 되는 존재, 보호해줘야 할 존재, 양보해야할 존재라 인식하면서 그걸 이미 남녀가 동등해진 현 2030에게 강요한다는 것이다.
차라리 "우리가 너희들에게 맨박스를 지워줘서 미안하다. 앞으로 우리가 남자다움을 강요 안할테니까 성평등을 위해 나아가 줄래." 였다면 반감이 적었을 것이다. 실제로 핀란드, 스웨덴 등 성평등 강국으로 불리는 국가에서 정치권이 취하는 태도가 바로 이런 유형이였다.
거기에 연일 터져나오는 기성세대들의 성범죄, 같은 남자라는 이유로 정당화 되는 수위높은 발언, 여성할당제를 외치면서 자기들 조직의 높은 자리는 다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는 등[62], 내로남불의 전형이고, 젠더 문제와 관련해서 오히려 이들은 심판의 주체가 아니라 심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 그런데 이들이 페미니즘의 전도사마냥 활동하고 있으니 젊은 남성들이 이를 비토한 것이다.
참고로 이런 문제점은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세력의 지지율도 폭락하게 만들 수 있다. 그나마 사표론과 "반페미니즘적이고 성차별적인 미래통합당은 당선 되면 안 된다."는 마인드로 더불어민주당에게 몰아주는 것일 뿐, 만약 페미니즘 정당이 성장한다면, 이들이 그 쪽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1대 총선에서 녹색당의 몰락[63]과 여성의당의 성장이 이를 뒷받침했다. 게다가 소위 영페미도 이들 진보진영이 여성정책을 밀어주니 그저 지지하는 것이지, 위에서 말한 기성세대의 성범죄를 방관하는 것은 결코 아니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여성 비하 논란이 있던 탁현민을 중용하자 트위터나 여초 커뮤니티에서 어떤 반응이 있었는지 생각을 해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이를 요약하자면 기성 정치인의 선민사상이 젊은 남성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란 역효과를 만들었고 이는 페미니즘 지지 세력의 이탈로도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는 21대 총선에서 20대 남성 한정으로 왜 미래통합당 지지율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엇비슷하게 나왔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데, 이는 이언주, 나경원 등 비동의간음죄 관련으로 법안을 냈거나, 황교안처럼 여성친화정당 발언을 해서 욕을 먹은 정치인도 있지만, 김소연, 하태경 등 20대 남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8.1.3 안티페미니즘을 단일하게 해석
한국에서 안티페미니즘은 1990년대에서도 있었지만 당시 안티페미니스트들은 신우파, 보수주의 성향이 있어 페미니즘이 가부장제, 처녀성, 전근대적 성역할을 해친다는 이유로 반대하곤 했다. 이들은 호주제 폐지 이후로 쇠퇴했다.
그런데 2010년부터 대안우파가 생기고 이들은 일베저장소, 디시인사이드에 영향을 미쳐 안티페미니즘이 부활하기 시작했다. 2021년 현재까지도 그들은 활동중이고 그들이 안티페미니즘을 하는 이유는 한국의 페미니즘이 남성 역차별, 희생을 강요하고 남성이 잠재적 가해자로 간주되어 인권 침해까지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둘을 구분하지 못하고 같은 안티페미니즘으로 간주하여 1990년대와 다를 바가 없는 대처로 일관했고 이는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이 서로 소모전만 부추기는 꼴이 되고 말았다. 1990년대부터 2005년대 중엽까지 안티페미니즘을 하던 사람들은 나이가 적어도 40대보다 어리지 않으며 이는 2020년대 20대 남성으로부터 젠더 기득권으로 간주되고 있다.
1990년대 한국의 안티페미니스트들이 필리스 슐래플리를 인용했다면 2010년대 한국의 안티페미니스트들은 크리스티나 호프 서머스를 인용하고 있다. 전자는 전근대 성역할, 성관념을 교조적으로 옹호하는 반동주의 성향이 있다면 후자는 주류 체제를 이미 성평등적이라는 이유로 비호하고 LGBT를 반대하는 페미니즘 성향이 있다.
8.2 30대 이하 여성의 높은 페미니즘 지지율
페미니즘 이론대로라면 가부장제를 극심하게 겪어온 40대 이상 여성이 페미니즘을 더 지지해야 한다. 그러나 가부장제가 약화되었을 때 태어난 30대 이하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비율이 더 높으며 이에 대해 안티페미니스트들은 30대 이하 여성들이 군대를 안 가는 식으로 의무도 안 하고 할당제로 혜택받는 주제에 이기주의적이서 그렇다고 판단한다.
8.2.1 자신의 고충해소로 페미니즘을 대안으로 인식
30대 이하 여성도 30대 이하 남성처럼 신자유주의, 양극화가 극심해진 2000년대 이후를 겪고 있는 세대이다. 한국의 사회자유주의자들은 30대 이하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더 지지하는 것을 보고 전 세대 여성에 비해 진보적으로 된 것이라고 오판하고 있는데 그들이 주로 있는 여쭉메워, 트위터를 보면 자유주의가 아닌 파시즘이다. 이는 양극화로 인한 배타적 정체성 정치의 성행이 시스젠더 스트레이트 남성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며 여쭉메워가 하고 있는 언행들을 분석하면 창의적이고 평화적인 대안을 논의하는 것이 아닌 남성혐오, 트랜스포비아같은 혐오발언만을 일삼으며 네오나치의 언행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쭉메워가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것은 한국의 주류 페미니즘은 성평등.성해방이라는 명분과 달리 시스젠더 스트레이트 여성만의 이익과 보호만을 추구하며 이는 양극화로 소외, 실업,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30대 이하 여성들에게 대안적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제시하는 대안은 도널드 트럼프가 말하는 대안과 다를 바가 없으며 이는 배외주의, 증오선동, 가짜뉴스이다.
그들은 한국의 주류 페미니스트들의 선전으로 자신들이 고통받는 것은 시스젠더 스트레이스 남성들이 정치성향과 관계없이 서로 짜고치고 자신들이 사회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믿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같은 세대인 남성의 주장보다는 주류 페미니스트의 주장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믿고 있다. 그들은 이런 남성들을 형벌, 폭력을 내세우서라도 이겨야 자신들의 고충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남성들은 이런 모습을 남성혐오라고 하고 있지만 그들은 자신은 남성을 혐오한 적은 없었고 자신의 하소연을 무시하는 남성을 "한남충"이라고 미러링을 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심리는 '남성중심 사회개혁'(39.9%), '여성이어서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아서'(37.2%)' 라는 응답이 남성을 혐오해서라는 응답보다 훨씬 더 높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8.2.2 성 주류화 전략의 결과
한국의 주류 페미니스트들은 냉전 이후로 주류 체제 하에서 법안 상정으로 성평등을 이룩하려는 "성 주류화" 전략을 택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주류 페미니스트들은 주류 체제에 안주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부정부패를 겪게 되었다.
그들은 신자유주의로 양극화된 사회에서 중상류층의 생활에 안주하게 되었으며 하류층 남성들이 겪는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고 하류층 여성을 자신의 기득권 유지 수단으로 이용하는 식으로 타락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스젠더 스트레이트 여성에게만 유리한 정보만 취사선택하고 심지어 왜곡, 곡해까지 하게 되어 하류층 여성들의 피해의식, 불안이 더 심해지고 하류층 여성에 해당되는 30대 이하 여성들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오히려 주류 페미니스트들에게 의존하는 모순적인 언행을 하게 되었다.
또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언행이 이론적으로 페미니즘이라고 할 수가 없는 남연갤, 메갈리아, 여성시대 심지어 자신을 페미니즘이라고 한 적이 없는 워마드를 페미니즘 단체로 치장하고 있고 아직도 이를 반성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사회주의자들과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주류 체제에 안주해버린 래디컬 페미니즘,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을 비판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지적된 문제가 바로 여성혐오를 관념론적 접근으로만 해석하고 하류층 남성 전체를 잠재적 가해자로 간주하는 우파적인 언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9 기존 학문의 재해석과 충돌
페미니스트 중 일부는 현재까지 확립된 학문의 기반이 남성의 지배적인 위치에 의해 단일한 관점만을 가지고 있는 형태라고 보며, 현대까지 타자의 시선인 페미니즘에 기반한 학문이 다양성을 추구하는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즘이 가치있는 것은 주류의 역사 대신 억압된 소수의 입장을 대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단일한 하나의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대중적 관점을 전제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대두와 긴밀한 연관이 있다. 따라서 지배자의 입장이 아닌 민초의 삶을 조명하는 미시사학이나 일상사, 서구중심주의의 탈피를 주장하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 조명되기 시작한 것과 맥락이 같다. 특히 한국에 대두된 페미니즘 계열은 타자 및 피억압자의 관점에 비중을 둔다는 점에서 포스트콜로니얼리즘과 많이 엮인다.
9.1 자연과학
위의 에코 페미니즘이나 강간에 대한 '과학적' 접근, 학계에서 여성 과학자들이 암묵적인 차별을 받아 오고 있다는 주장부터 과학적 방법론이 성 역할을 고착시킨다거나, 과학에서 여성을 상징하는 요소들이 의도적으로 무시당해 왔다는 급진적인 주장까지 여러가지가 있다. 주된 입장은 과학자 커뮤니티의 여성 차별 관행 비판과, 이 비판적 관점으로 과학사를 재조명하려 하는 시도가 있다.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의 딸이자 최초의 프로그래머였던 에이다 러브레이스, 사생활 문제로 노벨상을 못 받을 뻔한 마리 퀴리, DNA가 이중 나선 구조를 띄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한 로절린드 프랭클린[64], 셰페이드 변광성의 주기-밝기를 발견함으로써 현대 우주론의 기초를 쌓은 리비트[65] 와 같은 인물들을 재조명하고 재평가하는 것이 이에 해당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도 극단주의적 입장은 너무 나가고 마는데, 유명한 페미니즘 이론가 샌드라 하딩은 그의 저서에서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강간 매뉴얼"이라고 비하하고 실험도 논리도 없는 여성과학을 주장하자 리처드 도킨스에게 그건 여자는 논리력이 없다는 소리랑 똑같은 거임이라는 스티븐 핑커의 말을 인용하여 까이고 나중에 후회했다.[66]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인 뤼스 이리가레도 아인슈타인 방정식은 광속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므로 권력적이라고 주장하거나 여학생들은 월경으로 인해 수학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하고 심지어는 유체역학[67]이 상대적으로 발달하지 못한 이유는 과학에서 남성 지배적 성향이 여성의 성 기관과 연관있는[68] 유체역학의 발전을 막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가[69] 앨런 소칼에게 걸려서 탈탈 털렸다. # 이 정도 되면 사실상 반지성주의와 다름 없는 급. 이런 식의 주장이 SNS 등에서도 퍼져나가자 페미니즘은 지능의 문제라는 말도 생겨났다.
9.2 역사학
인류의 역사는 문명이 시작된 이후 꾸준히 남성이 여성을 억압한 형태였다는 건 페미니즘의 대전제 중 하나다. 이는 워마드 등을 받아들인 한국 여성단체와 여성계에선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몰아가는 원흉이 되기도한다.
이들의 주장은 농업혁명 이전의 인류는 모계중심사회였는데, 농업혁명 이후로 지속해서 남성이 여성을 억압해왔다는 것. 그러나 인류학의 최근 동향은 모계사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일부일처제가 확립되지 않은 시기 모계사회는 일부 국가에서 존재하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난교가 만연한 문화에서 남성은 자신의 자식을 확신할 수 없지만 여성은 임신하는 것이 본인이므로 가능하기 때문.
이러한 모계사회에 대한 의문 외에도, 정말로 페미니스트들의 주장대로 인류 역사 내내 남성은 언제나 고의적으로 여성을 억압했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점이 있다. 고대에서부터 근대까지 여성의 사회활동이 제한되었던 이유는, 남성이 의도적으로 여성을 억압했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이 종사할 직업도 마땅치 않았고[70], 여성이 스스로의 임신을 통제할 기술력이 없었고, 집안일을 도와줄 가전제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진 시기는 콘돔, 피임약, 전자레인지, 청소기, 냉장고의 발명시기, 그리고 사무직, 서비스직의 증가시기와 일치한다.
10 대안
10.1 포스트페미니즘
1980년대 중반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이다. 이 용어에는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
긍정적으로는 이제 여성들이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 승리를 쟁취했으므로 페미니즘 자체가 불필요하게 되었다는 '페미니즘의 종언'을 일컬을 때 사용된다.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여성들의 자유가 이미 확보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믿음에 연유하는 것이다.
반면 부정적으로 사용될 때는 그 동안의 페미니즘이 일시적인 유행에 불과했기에 이제는 그 효력을 상실했다는 의미이다. 포스트페미니즘의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페미니즘이 지나치게 여성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기존의 남성/여성이라는 이분법을 더욱 공고히 만들면서 여성들의 입지를 오히려 좁게 만들었다는 것, 혹은 여성들에 대한 특별한 장려와 배려가 결국은 훨씬 더 효과적인 여성 배제의 장치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차이보다는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 등의 보다 발전적인 제안을 담고 있기도 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포스트페미니즘 [Postfeminism]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 1. 30., 국학자료원)]
10.2 포스트젠더리즘
페미니즘은 근본적으로 사람을 인격과 개성이 아닌 태생적인 특질(=성별)로 구분지으며, 그로 인해 진영논리를 조장하고 사회 갈등을 유발하는 문제점이 있다. 포스트젠더리즘은 이러한 페미니즘의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영문 위키피디아의 문서에 의하면 포스트젠더리즘은 여성주의, 남성주의, 안드로진, 메트로섹슈얼/테크노섹슈얼, 트랜스젠더 운동 등에 뿌리를 둔다고 한다.[71]
포스트젠더리즘은 미래의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사회적, 문화적, 생물학적, 심리적으로 존재하는 성 역할이 해체되어 성별이라는 개념이 무의미해질 것이라는 사상이다. 한마디로 트랜스휴머니즘을 젠더적 관점에서 세부적으로 파고든 것이다. 포스트젠더리즘에서 성별은 불필요하고 인위적이며 인간의 무한한 잠재성을 한정하는 족쇄와 같은 것으로, 미래에는 인간복제, 단성생식, 인공자궁 등 새로운 과학기술의 상용화와 이에 따른 인류의 인식변화로 인해 구식이 되거나 점차 사라지게 될 것으로 예측한다.
기술적 특이점이라는 불확실한 미래에 기대를 걸어야 한다는 점은 안타깝지만, 실현만 된다면 지금과 같은 소모적인 갈등에서 벗어나서 개개인의 자아 실현과 인류의 복리 후생에만 오롯이 역량을 쏟아부을 수 있게 될 것이다.
11 정당
- 노르웨이:
노동당[72], 사회주의좌파당, 적색당 - 대만 : 대만기진
- 덴마크: 사회주의인민당
- 스웨덴[73]: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74], 좌파당, 여성주의구상[75], 녹색당, 자유당[76], 중앙당
- 아이슬란드 : 사회민주동맹, 좌파녹색운동
- 터키: 인민민주당
- 포르투갈: 좌파연합
- 핀란드: 녹색동맹, 여성주의자당
- 호주: 리즌당[77]
보통 여성주의자들은 좌파 정당 내에서 하나의 계파로써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78] 주요 특정 정당의 주요 이념이 되는 경우는 북유럽 정도 제외하면 매우 드물다. 다만 원외정당 쪽으로 가면 여성주의 정당들은 꽤 있다.[79] 대한민국의 녹색당도 여성주의 정당이지만 원외정당이다.
12 관련 문서
- 평등[80]
- 남성 특권
- 남성혐오
- 논리적 오류
- 급진적 페미니즘 (래디컬 페미니즘)
- 페미니스트
- 벡델 테스트
- 핑크바이너 테스트
- 여성주의 성 전쟁 - 페미니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
- 성녀-창녀 이분법
- 성차별
- 여성과 여성시민의 권리 선언
- 여성혐오
- 맨스플레인
- 메갈리아
-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 양가적 차별
- 여성들의 행진
- 여성 우월주의
- 여성주의 치료
- 정동
- 페미나치
- 만물여혐설
- 워마드
- 안티페미니즘
- 여성주의
- 남성주의
- 젠더블라인드
- 대한민국의 젠더 분쟁
- 트페미(트위터 페미니즘)
- 호주국자
- 퍼플워싱
- 페모내셔널리즘 - 페미니즘+존경성 정치
13 외부 링크
- 여기서 분류하는 문화 페미니즘은 성적 차이(여성성) 페미니즘 + 문화적 페미니즘 + 에코 페미니즘 류를 통틀어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두 공통적으로 여성성을 고결함, 평화, 순수함 등으로 바라본다는 특징이 있다.
- ↑ 주로 대한민국에서 주류인 페미니즘(래디컬 페미니즘)의 여러 논란 때문에 대부분은 부정적인 쪽으로 이슈가 되고 있다.
- ↑ 표면적으로는 남성에 대한 가부장제의 억압도 해체대상이 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여성에 초점을 두는 사상이므로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의 해체로 인한 부가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 남성권리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없다. 자세한 것은 페미니스트와 가부장제 항목 참조.
- ↑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의 어머니.
- ↑ 여성의 신비라는 번역판 제목은 국내로 들어오면서 오역된 것이다. 원제는 《The Feminine mystique》, 즉 여성성의 신화이다. 당초 1970년대 한국에서 이 책이 여성의 신비로 번역된 이유는 원제대로 출판하기에는 사회 정서상 논란의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 여성주의만의 상징을 넘어 흑인, 동양인 등 유색인종이나 성소수자도 상징하는 경우가 있다. 카말라 해리스가 취임식에 보라색 옷을 입고 온 것 또한 여성, 흑인 등을 모두 포괄한 것.
- ↑ History 참조
- ↑ 단, 초기 페미니즘 사상의 태동 당시부터 밀 등에 의해 페미니즘을 통한 차별의 철폐가 양성 해방의 맥락에서 같이 옹호되었다. 《여성의 종속》에서 밀이 여권을 옹호하는 근거 중 하나가 정당하지 못한 가부장적 지배권력에 도취된 남성이 삶의 왜곡과 인격파탄을 겪게 된다는 점이다.
- ↑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싫어한다면 단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단어 뒤에 숨겨져 있는 포부와 발상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후에는 성평등(Gender Equality)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 ↑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으나, 주토피아에서는 역차별까지 다루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 #
- ↑ 워마드와 메갈리아는 성소수자 등 약자를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나뉜다. 국내에서는 여성신문 등의 페미니즘 언론이 메갈리아계류를 옹호하여 '젊은 페미니즘'으로 분류기도 했다.
- ↑ 폴라 트라이클러(Paula Treichler)가 이 말을 했다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사실 이 글귀는 폴라 트라이클러와 체리스 크래머레이(Cheris Kramarae) 교수가 공동으로 집필한 'A Feminist Dictionary'(페미니스트 사전)라는 책을 마리 시어라는 신문 기자가 비평하며 신문에 쓴 글귀이다. 즉 폴라 자체는 이 말을 한게 아니고 오히려 이 말에 비평당한 입장. 현재로선 발언자에 대해선 둘째치고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인상적인 비평이라는 평이 많다.
- ↑ 이는 굉장히 획기적인 발언으로 그리스 문명에서는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보지 않았다.
- ↑ Botting Eileen H, Houser Sarah L. "Drawing the Line of Equality: Hannah Mather Crocker on Women's Rights".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2006), 100, pp. 265–78
- ↑ Karen M. Offen. "European Feminisms, 1700-1950: A Political History".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0.
- ↑ Karen M. Offen. "European Feminisms, 1700-1950: A Political History".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0.
- ↑ Ferguson, Margaret. "Feminism in time", Modern Language Quarterly, (2004), pp. 7–27.
- ↑ 강선미 외, "가족철학:남성철학과 여성경험의 만남",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97).
- ↑ 조희원, "『에밀』에 나타난 루소의 여성관에 대한 재조명", 페미니즘 연구 제12권 제2호 (2012).
- ↑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교육학용어사전", 하우동설 (2011).
- ↑ 마르크스주의 여성주의라고도 한다, 단 당시 자유주의 계열과 마르크스주의 계열 사이엔 갈등이 심했다.
- ↑ 한편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차녀 실비아 팽크허스트는 공산주의자로 활동였고, 좌파 정치와 멀어진 이후로도 파시즘과 제국주의를 반대했다.
- ↑ <여성성의 신화>는 <여성의 신비>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지만, 이것은 The Feminine Mystique의 오역이다.
- ↑ Tong, Rosemarie. Feminist Thought: A More Comprehensive Introduction (p. 49). Avalon Publishing
- ↑ 아직도 흔히 쓰이는 양성(兩性)평등이라는 단어도 이러한 맥락에서 굉장한 어폐를 지닌 것이다. 단어 자체가 '두 개의 성이 평등하다'을 뜻함으로써 '남성'과 '여성'이라는 획일화된 범주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 ↑ Fem: Goo Goo, Gaga and some thoughts on balls
- ↑ All the rebel women
- ↑ 분파가 너무 많아서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 첫 번째로 어떤 사람이 페미니즘(또는 불합리한 차별 철폐)을 주장할 때 '꼴페미=메갈 극혐' 과 같이 몰아가고 선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페미니즘=남혐과 같은 프레임이 한번 씌워지면(또는 진짜 남혐들이 그러한 프레임을 만들어내면), 사람들은 정말로 불합리한 차별 철폐 주장에도 시큰둥하거나 부정적, 심지어는 공격적 반응을 내비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장점으로도, 단점으로도 볼 수 있는데 분파의 다양화로 한 가지 상황에도 수십 가지 다른 해석과 행동, 반응을 보여 논점이 흐려지거나 정작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지 못할 수 있다.
- ↑ 이들은 페미니즘과 사회주의가 양립 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자신들의 사상이 페미니즘이라 불리는 것을 거부한다.
- ↑ 참여계와 진보너머는 페미니즘과 거리가 멀다.
- ↑ 스까페미라는 멸칭이 왜 나왔는지 생각해보자
- ↑ 단 이들도 워마드는 싫어한다.
- ↑ 위안부라는 존재는 과거에는 일본군 위안부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았으나 최근의 연구 결과 일본군 위안부외에 한국전쟁 중 존재했던 한국군 위안부, 그 이후 대한민국 정부에서 주한미군을 위해 만든 미군 위안부가 존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 [1]
- ↑ 평화적이라는 통념과 달리 인디언 부족에서도 명예살인이 많이 일어난다.
- ↑ 이상의 비판은 모두 Rosemarie tong, 'Feminist thought', westview, 1998.
- ↑ 실제로, 백인 여성의 페미니스트들은 "흑인에게 참정권을 주느니, 차라리 전쟁에 나가겠다."고 비하할 정도로 백인 여성 우월주의가 강했다.
- ↑ 아나코 여성주의로도 불린다. 참고로 아나"카"인 이유는 여성명사라서다. 그래서 일부 아나키스트들은 남성형, 여성형의 구분을 폐지하고자 아나카라는 표현이 아니라 아나코라고 부르기도 한다.
- ↑ 엄밀히는 아나키즘은 무정부를 주장하는 것은 맞다. 다만 무정부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 가부장제등의 인간을 억압하는 권위에 대한 폐지를 외치기에 부적절한 언어인 것.
- ↑ 마르크스주의적 여성해방론을 의미한다. 많은 맑시즘주의자나 사회주의적 아나키스트나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은 여성해방론을 위해서는 맑시즘이나 혹은 그에 준하는 사회주의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 ↑ 자본주의는 여성 가부장제의 시초와도 같으므로
- ↑ 특히 20대에서 차이가 가장 크게 나왔다.
- ↑ 참고로 25세~29세 여성의 혜화시위 지지는 74.5%다.(...)
- ↑ 대표적인 경우가 엠팍, 오늘의 유머, 클리앙, 루리웹 등지에 있는 젊은 남성유저들이 있다. 특히 오늘의 유머는 여성시대에게 제대로 시달렸기에 더 그렇다. 단 오늘의 유머나 엠팍인 경우는 이용자의 연령층이 다양하다 보니 반페미랑 친페미가 섞여있다. 한편 루리웹의 경우는(특히 북유게) 특이하게도 친문/친민주당 성향이 강한데도 페미에 관해선 문재인 대통령, 민주당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을 하지 않고, 여가부장관이나 여성단체, 페미니즘 단체 등에 대한 욕을 많이 하는 반페미니즘 성향이 강하다. 또 그렇다고 안티페미협회에게 호의적이지 않고, 오히려 일베저장소 2중대로 보면서 매우 싫어한다. 그래서 위에 언급한 중도성향 남초 커뮤니티(엠팍)나 보수성향 남초 커뮤니티(펨코, 디시인사이드) 등지에게 욕을 먹는 곳이 바로 루리웹이다.
- ↑ 수도권이나 부울경,강원도 영서, 충청도가 있다.
- ↑ 참고로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은 22.4%,정의당의 지지율은 7.4%으로 다 합쳐봐야 30%가 안 된다.
- ↑ 다만 21대 총선은 사전투표 비중이 높았는데, 사전투표는 출구조사에 잡히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 ↑ 특히 그 중에서 메갈리아와 워마드에 범죄행위에 대한 비판이 전혀 없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메갈리아 옹호가 남성혐오적 사상이라는 생각의 시작이라면 워마드 옹호는 사실상 페미니즘 = 남성혐오적 사상이라는 것을 남성들에게 인식시킨 대사건으로 보인다.
- ↑ 이는 개신교가 대한민국에서 이미지가 나쁜 이유와 똑같다. 개신교 내부에도 청렴한 목사도 상당수 존재하고 목사들 중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도 많이 있지만, 그보다 많은 숫자의 목사들이 부패하여 벌이는 추태가 매스컴을 자꾸 타니까 개신교에 대한 평판이 나쁜 것, 반대로 가톨릭은 페미니즘 단체에게 욕 먹는 걸 제외하면 이미지가 좋다.
- ↑ 실제로 일베저장소를 견제했던 것은 중도,진보 성향의 남초 커뮤니티들이였다.
- ↑ 단, 2019년에 들어서 워마드가 성소수자를 폄훼하는 일이 잦아져서 여성인권단체와 거리가 멀어지고, 성체 훼손 사건이 일어나서 기독교(개신교+가톨릭)계의 워마드에 대한 반감이 심해지자, 언론에서 워마드의 사건사고는 많이 보도되고 있다.
- ↑ 제19대 총선 ~ 제20대 총선, 제19대 대통령 선거
- ↑ 대표적으로 이낙연처럼 남성 비하를 하는 남성 국회의원도 있는 경우가 많다.
- ↑ 대표적으로 심상정은 아직까지도 성차별이 만연하다고 믿는 페미니스트 정치인 중 한 명이다.
- ↑ 사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젊은 남성 내부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지지율이 20% 정도 나온 것도 이와 같다.
- ↑ 가세연도 방탄소년단 해체설을 퍼트린 것 때문에 아이돌 팬덤에서는 주적인 이유와 상충한다.
- ↑ YWCA의 시초지만, 엄연히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다.
- ↑ 이 때문에 이화여대에서는 친일 행적을 보인 김활란 동상을 부숴야 한다니 마니 매년 시끄럽다.
- ↑ 특히 대한민국의 주류라 할 수 있는 86세대 운동권 정치인
- ↑ 그저 과거 성차별 수혜계층으로써의 부채감으로 위장한 86세대가 젊은 남성에게 가부장제의 책임 떠넘기기라고 보는 의견도 의외로 꽤 있다. 사실 86세대가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 치기엔 현재도 터져나오는 성추문 문제들을 보면 글쎄올시다(...).
- ↑ 초등학교 때는 남자가 여자보다 체급이 낮거나 비슷해서 힘으로 남자가 밀리는 경우가 많아서 여자가 이기는 경우가 많다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 기본적인 생물학적 특성이 초등학교때도 적용되기 때문에 초등학교때도 남녀의 격투는 남자가 거의 100% 승리한다. 왜냐면 이시기의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격투시 주먹과 발 등을 무기로 삼는데 여자들은 머리부터 잡고 보고 남자들은 지들끼리 한두번은 푸닥거리를 해보고 자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초딩싸움이라도 여자들의 머리끄댕이 잡고 꼬집고 할퀴는 쌈질과는 비교가 안 된다. 머리를 잡는것과 타격 중 뭐가 더 유리할까?
- ↑ 대표적으로 한겨레신문의 여성임원이 0명이다(...)
- ↑ 당시 녹색당은 내부에 성추문으로 시끌했었다. 아직도 해결이 안 된 상태
- ↑ [2]
- ↑ [3]
- ↑ Nemecek, S. (1997) The Furor Over Feminist Science, Scientific American 276(1), 99-100
- ↑ 참고로 유체역학은 카오스적 요소가 많아서 애초에 고전역학적 접근이라는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자세한 점은 브라운 운동 문서 참조.
- ↑ 남성기가 발기하면 단단해지므로 고체역학적이고 여성기에서는 애액과 생리혈이 분비되므로 유체역학적이라는 식이다.
남자도 쿠퍼액하고 정액이 나오는데? - ↑ Postmodernism disrobed
- ↑ 전근대시대에 성별 불문하고 할 수 있었던 직업은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고 학문에 정진하는 것 이외에는 군인 같이 몸 쓰는 직업밖에 없었다. 군인이 되는 것은 당대의 사회에서 출세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지만, 그 군인이라는 직업을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이 독과점하다시피 하는 이유는 워낙 근무 중에 사망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아이를 낳는 역할을 하는 판국에, 그 여자들이 전쟁터에서 대거 전사해버리면 성비 불균형이 극심해져서 인구의 감소로 이어지는데, 이러면 문자 그대로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는 대참사가 벌어진다. 그래서 어느 나라든지 간에 아무리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한들, 여성들은 후방에서 가정을 지키고 생업에 종사하기만 하니, 할 게 별로 없었던 것이다.
- ↑ Postgenderism as a cultural phenomenon has roots in feminism, masculism, along with the androgyny, metrosexual/technosexual and transgender movements.
- ↑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이나 아이슬란드 사회민주동맹과 달리 당 차원에서 '공식적' 페미니즘 정당은 아니다.
- ↑ 스웨덴은 북유럽 내에서도 페미니즘 운동이 굉장히 많은 나라이다. 일부 보수정당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정당들이 페미니즘을 당 강령에 넣고 있다. 반면에 비슷한 성평등 지수를 이루고 있는 뉴질랜드는 공식적인 페미니즘 정당은 없다.
- ↑ 아ㅇ메 당 정강에 있다. # 다만 어떤 계파의 페미니즘을 표방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 ↑ 공식적으로 래디컬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좌익정당이다.
- ↑ 사회자유주의 정당이지만 스웨덴 정치 기준에서는 중도우파 정당이다. 당 강령에서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표방한다고 명시되어있다. #
- ↑ 성 긍정을 비롯한 자유지상주의를 표방하는 중도주의~중도좌파 성향의 정당이다.
- ↑ 물론 리버럴 정당을 이끄는 정치인들도 립서비스로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밝히기도 하지만 이념적으로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설파한다기보다는 선거공학적 측면에서 여성표를 모으기 위한 립서비스인 경우도 있어서 제외한다.
- ↑ 알고 싶은 사람들은 영어 위키피디아 Feminist parties by continent 문서를 참조하라.
- ↑ 평등을 명분으로 세운 것은 맞지만 공산주의와는 무관하다. 평등을 추구하는 사상이 공산주의 하나뿐인 것도 아니고, 공산주의가 나타나기 전부터 이미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존재했으며, 무엇보다도 공산주의의 지향점이 평등에만 맞춰져 있는 것도 아니다. 대다수의 공산주의자들은 노동계급의 단결을 저해하고 분열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페미니즘에 비판적, 적대적이고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을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