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토쿠지

1 일본의 사찰


다이토쿠지 산몬

大徳寺

교토 기타 구에 있는 사찰. 한국에서는 대덕사라고도 부른다. 가마쿠라 막부 말기인 1315년에 세워졌다. 린자이슈(임제종) 계파의 대본산이다. 여러 탑두 사찰을 거느리고 있는 커다란 절이다. 전국 시대 다이묘들이 가문 사람들의 사후 안녕을 빌기 위해 세운 것들이 많다. 오토모, 미요시, 호소카와, 마에다, 아사노, 구로다 등 쟁쟁한 가문들의 이름이 등장하며, 여기에서 과거 다이토쿠지의 위상을 살펴볼 수 있다.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세운 탑두도 있다. 탑두마다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정원이 있어 구경할만하다. 특히 일반에 항상 공개하는 다이센인(大仙院)의 벚꽃이 일품. 다른 탑두인 고토인(高桐院)에는 가토 기요마사가 한국에서 가져왔다는 물건들이 여럿 소장되어 있으며, 호소카와 타다오키와 그 키리시탄 이었던 그의 부인 타마코 가라샤의 묘소도 있다. 참고로 호소카와 타다오키의 무덤으로 쓰이는 석등은 본래 조선의 것으로 센노 리큐가 제자인 그에게 준 것이라고 한다.

다이토쿠지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한/일 양국에서 주목할만한 이야기들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 다도의 유명인인 센노 리큐와 얽힌 이야기가 많으며,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다이토쿠지 산몬(三門) 상층에 있던 센노 리큐의 목상을 문제삼으며 누명을 씌운 일이 유명하다. 센노 리큐가 산몬을 기증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센노 리큐의 목상을 삼문 위에 만들어 모셨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를 자신이나 덴노의 칙사가 센노 리큐의 발 아래를 지나가게 하려는 발칙한 일이라는 핑계로 그의 자결을 명한다. 그리고 그 목상은 사람 대신 효수되는데(...) 지금은 다시 산몬의 2층에 모셔져 있다고 한다.

그 밖에 조선통신사의 숙소였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교토 내에 조선통신사가 머문 사찰은 여러 곳이 있으나,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은 다이토쿠지가 거의 유명하다. 임진왜란 직후 통신사가 다이토쿠지에 도착하면 고향 소식을 묻는 조선인들로 붐볐다고.

한국에서는 고려 불화를 많이 소장한 곳으로 알려져있다. 수월관음도와 양류관음도가 유명.

2 인명

다이토쿠지라고 하면 십중팔구 위의 절에서 따온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