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姬
(? ~ ?)
중국 후한의 13대 황제인 소제의 아내. 영천 출신으로 회계 태수 당모의 딸이다.
189년 동탁이 소제를 폐하였고 이듬해 의병이 일어나자 동탁은 당시 낭중령으로 있던 이유를 시켜 소제에게 짐새의 독을 억지로 마시게 하였다. 소제는 당희 및 궁녀들과 작별의 술자리를 열었다. 술잔이 돌자 소제가 슬피 노래하며 당희에게 춤을 추라고 했다. 당희는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며 노래했다. 소제는 그녀에게 왕비의 몸이니 다른 관리나 백성의 아내가 되지 말고 자존심을 지키라는 말을 남기고 독약을 마셨다. 그 뒤 당희는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아버지 당모가 그녀를 다른 사람에게 시집 보내려 했으나, 그녀는 끝까지 절개를 지켰다고 한다.
나중에 이각이 장안을 함락시키고 이각의 군대가 동관 지역을 약탈할 때 당희를 사로잡았다. 이각은 당희를 자신의 첩으로 만들고자 했지만 당희는 완강히 거부하였으며,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1] 나중에 상서 가후가 이 사실을 알고 상소를 올려 헌제에게 알렸다. 헌제가 그 말을 듣고 크게 슬퍼하며 조서를 내려 당희를 맞아들이고 농원을 설치해주고 시중에게 지절을 보내 홍농왕비로 봉했다고 한다.
연의에서는 이유에게 하태후, 소제와 함께 독살당한다. 죽기 전에 소제와 함께 시를 읊는다.- ↑ 사실 수절은 봉건시대에서는 당연한 처사이자 칭송받을 일로 당희와는 반대로 음탕해서 역사가나 유학자로부터 지탄을 받은 황후들이 꽤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북제(北齊)의 무성제 고담의 황후인 무성황후 호씨 였다. 북제가 북주(北周)에게 망하고 북제의 마지막 황제 후주 고위는 온갖 수치를 당하다가 반역죄로 모함받아 결국 살해당하고 북제 황족 고씨들은 장애자들을 제외하면 모두 피살당한다. 호씨는 원래 음탕해서 북제에 있을 때도 화사개나 중들과 놀아나고 이걸 숨기지 않고 당당히 드러냈다. 그러다가 북제가 멸망하면서 며느리 목황후와 함께 북주의 수도 장안으로 압송되었는데, 결국 이들은 장안 거리에서 몸을 파는 창기가 되어 북주의 이를 이은 수나라 초기에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몸을 팔아 스스로를 연명했다. 이들은 한 때 태후와 황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먹칠을 했는데 비록 망국이지만 태후와 황후 출신 여자들이 몸을 판다는 소식을 듣고 장안의 인사들은 너도나도 찾아오고 장사는 성황을 이루었다. 이 때 호씨가 한 말이 엄청 충격적이었는데 "황후나 태후 노릇 하는게 기녀보다 재미가 없다"고 했다. 결국 호씨 입장에서는 결국 소원성취한 셈으로 정말 죽은 남편인 고담과 아들 고위가 통곡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