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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건의 개요
- 토요타 자동차와는 상관없다.
豊田商事事件
1981년 도요타상사(豊田商事)를 설립한 회장 나가노 카즈오(永野一男, 1952-1985)는 노인들을 상대로 거액의 다단계 사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거듭 부연 설명하자면, 도요타상사는 도요타 자동차 회사와는 관계가 없는 회사다.
업무는 '순금 패밀리 증권' 이라는 이름의 순금을 판매하는 것이었으나, 이것은 전혀 실체가 없는 유령상술이었다. 판매 권유도 상당히 집요한 것이, 주로 혼자 사는 노인들의 집에 죽치고 앉아, 물건을 팔아줄 때까지 5시간 내지는 새벽이 밝아오는 아침까지 그 자리에서 집요하게 권유했다고 알려졌다. 식사 준비를 해주거나 청소를 해주며, "저를 아들이라 여겨주세요" 라는 방법도 썼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가노는 자금을 건넨 노인들에게 순금을 주기는커녕, '패밀리 계약증표' 란 종이(?)만을 주었고, 해약은 절대로 해주지 않았으며, 이렇게 노인들에게 받은 자금으로 자신의 재산을 불려 나아가 약 5만 명에게 2,000억엔을 받았다.
결국 1985년 도요타상사의 사원이 사기 혐의로 체포되어 사장인 나가노 카즈오도 참고인 조사를 받게 되었는데, 조사 다음 날 맨션의 자택에서 생방송 중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일본 NHK의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X' 에서 다룬 사건 중 하나다.[1]
1.1 나가노 사장 살해사건
豊田商事会長刺殺事件
1985년 6월 18일, 오사카에 위치한 나가노 사장의 자택 앞에 두 명의 남자가 난입했다(사기 사건으로 기자와 취재진들이 자택 앞에 모여 있던 상태).
당시 나가노의 자택 앞엔 취재진 이외에 '나가노의 친척' 이라는 남자 1명과 경비원 3명이 서 있던 상태였는데, 갑자기 나타난 두 남자의 이름을 묻자, "이름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고, 나는 철공소를 경영하고 있는 사람이다. 나가노를 만나고 싶은데 너희들 이딴 놈을 보호하느라 수고하는군. 돈은 얼마든 줄 테니, 내가 일하는 곳에서 개한테 먹이나 주라" 고 얘기했다. 그 말을 들은 '나가노의 친척' 이란 남자가 "전화로 물어보겠다" 며 갑자기 계단으로 내려가자, 같이 있던 경비원들도 함께 아래로 내려갔고, 그 사이 두 남자는 현관문을 파이프 의자로 마구 두드리기 시작했다.
안에 있던 나가노에게 아무런 기척이 들리지 않자, 두 남자는 창문의 새시를 마구 밟아 창문을 깬 뒤 칼을 들고 자택 안으로 들어갔다. 현장에는 나가노의 비명소리와 '살려달라' 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것을 보고 뛰어드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5분 뒤 피투성이가 된 두 남자는 밖으로 나와 "내가 범인이다" 라고 한 뒤 몸이 수차례 찔린 나가노를 끌고 나와, "87살의 노인을 속여서 850만엔이나 편취한 놈이니 이렇게 되는 게 당연하지"라고 하였고, 쓰러져 있는 나가노에게 기자들은 일제히 플래시를 터뜨렸다.
1.1.1 살해사건의 동기
나가노를 죽인 용의자 쿠라타 아츠로(당시 56세)와 야노 마사카즈(당시 30세)는 보도진에게 "누군가에게 부탁받았다. 이름은 절대 말할 수 없다"고 발언했으나, 체포 후엔 "도요타상사의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어 화가 났다"고 자백.
이 살해 사건은 모두 TV로 생중계되고 있었으며, 사건에 전혀 개입하지 않고 연신 보도에만 열을 올리는 취재진들에게 엄청난 비난의 화살이 꽂힌 사건이 되었다.
심리학계에서 연구되는 방관자 효과의 적절한 예시. 미국은 키티 제노비스 사건이 방관자 효과의 한 예로 인용되며, 일본은 이 사건이 방관자 효과의 예시로 인용된다.
다만 이것은 엄밀히 말해선 방관자 효과와는 조금 다른데, '사람이 많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나서지 않는다'를 골자로 하는 방관자 효과와는 달리, 이쪽은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을 구해주기 싫다'라는 생각이 포함되었을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범죄자의 인권을 존중해야 하는가'는 늘 뜨겁게 다루어지는 주제다.
사건 당시의 동영상. 편집이 되어있으나 다소 충격적일 수도 있으니 관람에 주의하자.[2]
일본 위키에 의하면,
그 후의 사기 사건의 수사로 도요타상사가 모은 돈의 대부분이 유용되었고 남은 것이 없음이 판명되지만, 최고 간부가 사망했기 때문에 돈의 흐름에 관해서 해명이 어려워졌다. 결과적으로 수사에 지장을 초래했으므로, 범인은 관계자에게 입막음을 위해서 살인을 의뢰받은 것은 아닐까 하는 억측이 나왔다. |
라고 한다.
2 나가노 카즈오의 일생과 도요타상사
피살당한 나가노 카즈오[3]는 33년도 못 되는 일생을, 기자들이 취재하는 눈앞에서 살해당하는 비극으로 마감한 인물이다.
그는 일본 전장[4]에 취업해서 2년간 일하다 퇴직하고, 여러 직장을 전전하다 고객의 돈을 횡령, 유용한 사건으로 해고당하거나 경마장에서의 소매치기 행각으로 체포되는 등의 문제를 일으켰다. 이후 1981년에 '오사카도요타상사(大阪豊田商事)' 라는 회사를 만들고, 1년 뒤에 '도요타상사(豊田商事)' 로 개칭한다. 회사명을 이렇게 정한 이유는 첫 직장이 토요타자동차의 계열사였기 때문이라고.[5]
그는 악덕 상술로 거금을 모아서 고급차는 물론 개인용 요트까지 갖고 있었지만, '얼굴이 알려지면 살해당한다' 면서 언론을 극도로 싫어했다. 심지어는 직원들조차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결국 그의 말은 1985년 6월 18일에 사실이 되고 말았다. 두 남자가 그의 집에 침입하여 칼로 13군데를 찔렀고, 결국 나가노 카즈오는 출혈과다로 생을 마감했으며 회사 자체가 완전히 사라졌다. 이 때 그에게 남은 돈은 711엔에 불과했다. 어떻게 보면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