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배경
동맹시 전쟁은 기원전 91년부터 기원전 88년까지 로마 공화국과 동맹시 연합이 벌인 전쟁이다.
초기 때의 고대 로마가 에트루리아 연맹과 삼니움족, 치살피나 지방의 갈리아족까지 화려하게 관광태운 뒤, 로마는 명실공히 이탈리아 반도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리고 남부 이탈리아와 캄파니아 지방의 여러 라틴계, 그리스계 식민 도시들은 로마와 겉으로만동맹을 맺고 있었는데, 이게 말이 군사동맹이지 사실상 로마에게 삥뜯기는 돈셔틀, 군사셔틀 네트워크(...)인데다가 각 도시의 외교관계에도 간섭하고 훼방을 놓으대서 각 식민도시들의 불만은 점점 높아갔다. 물론 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라쿠스 형제 같은 개혁가들이 라틴 시민권제 등을 주장했지만, 원로원의 보수파들은 이를 결사적으로 막고 나섰다.
2 전쟁의 시작
하지만 로마의 힘이 두려웠던 동맹시들은 그야말로 고대사의 충공깽 그 자체였던 한니발의 회유에도 넘어가지 않았는데, 한 사건이 이들의 반항심에 불을 붙였다. 바로 동맹시 시민들에게의 로마 시민권 부여를 주장하던 호민관 드루수스가 원로원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다. 결국 완전히 화가 난 동맹시들은 이탈리아 공화국을 결성, 정부와 수도를 정하고, 군대를 양성했다. 바야흐로 전쟁의 서막이 울리고 있었다.
3 전쟁의 경과
이에 로마는 북부 집정관에 푸블리우스 루푸스, 남부 집정관에 루키우스 카이사르[1]를 내세워 맞섰는데, 여기서 동맹시가 오랫동안 군사셔틀을 하며 쌓아온 경험[2]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동맹시는 로마군과 완벽히 같은 편제와 전술을 가지고 로마군을 궁지에 몰았고, 로마의 북부 집정관 루푸스도 전사했다. 하지만 남부 전선에 명장 술라가 배치되어 활약하면서 전쟁의 주도권이 로마로 넘어가게 된다. 거기다가 남부 집정관 루키우스 카이사르가 로마 시민권 제공 법안을 원로원 대신 민회에서 통과시켜, 전쟁을 할 명분이 없어지면서 전쟁은 사그러든다. 다만 남부전선에서는 종전 사실을 모른 동맹군의 게릴라 활동이 계속 있었으나 점점 수그러든다.
4 의의
이 전쟁을 통해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 내에 확실한 입지를 굳히며 완전한 반도 통일을 이룬다. 하지만 로마는 점령지를 부려먹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는 나중에 로마의 부드러운 속주 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